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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78화 (777/1,239)

강철의 전사 77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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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엘프의 뒤통수가 반들반들한 게 한 대 세게 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동족의 타락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이지 무방비했다.

엘프 전체를 이용해서 영혼 제국과 공멸시키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상했다.

“어째서지? 수많은 신들과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텐데? 왜 이렇게 무방비한 것이냐.”

그 말에 아시에소렘이 즉답했다.

“전에는 이 정도로 무방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맹신을 지니게 된 이유는 그들은 항상 대가를 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락테아 시오도 말했다.

“그들은 저희에게 족쇄를 먼저 채우려고 했습니다. 두려운 것이지요. 초월자라는 자들이 장생(長生)하는 필멸자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희 엘프는 스스로를 불멸자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초월자조차도 두려워하는데, 불멸자라고 할 만하지 않습니까.”

쾌감을 맛보기 전에 도살장에 끌려가 묶어야 한다.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로 신과 악마들 수많은 초월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엘프같은 종족, 특히나 중립신의 피와 살을 받아서 잉태된 필멸자를 족쇄 하나 없이 그 격을 높여주고, 열어준다? 사람 입에 속아서 전재산을 탕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그래서 나구나.”

드낙이 그제야 이해했다. 엘프들이 반란을 하고, 독립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놔두면 되는 일이라 여기는 드낙은 실로 특별한 존재였다. 지금 이 상황을 타계하고, 외계로 나가서 살아야 하는 드낙에게 타락 엘프는 함께해도 좋지만,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의 위기만 극복하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대해보다 깊고, 우주보다 넓은 대심(大心)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능했다. 드낙이 중립신처럼 테라 같은 걸 만들고 싶어 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피를 나눠주고 있었고, 그것만큼 업이 소모되고 있었다.

온전한 악마와 신으로 가는 길이 멀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아니, 이렇게 보면 난 그냥 자판기잖아?’

피 뽑아내는 자판기나 다름없었다. 비용은 전무(全無)! 공짜 자판기가 대학로에 떡하니 생겨버린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드낙이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 아시에소렘과 락테아 시오가 서로 눈빛교환을 했다.

‘이분의 피는 한정되어있다. 엘프 3천 명을 타락시킨다면, 그 뒤는 진짜 진흙탕밖에 안 된다.’

목줄도, 족쇄도 없다. 거기에 상대는 일을 하면 피를 내준다.

‘이 기회를 남들과 공유한다고? 미친 소리지!’

초월자가 될 직접적 기회가 찾아왔다. 경쟁자가 적을수록 그 속도는 빠를 것이다. 초월자가 되면 동급이 될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진정한 의미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혹은 동족을 아래로 둘 수 있겠지.

찌릿.

척추가 곤두섰다.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그저 태어난 순서대로 서열이 나누어지고, 노력해도 한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벗어난 순간, 그 굴레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동기를 그들에게 부여했다.

한순간에 아군이 되어버릴 정도로 거침없기도 했다.

“엘프를 너무 많이 타락시켜도 문제겠는데.”

“예.”

드낙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찌 되었든 침공한 1만 5천명은 타락시키는 게 옳았다. 이미 물은 엎어진 지 오래였다.

‘성급했다. 제기랄, 이래서야 여포 같은 띨띨이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또한 현재로서는 엘프 군대를 적은 피해로는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지닌 청철 갑주는 그만큼 강력한 마법 갑옷이었다.

‘이들을 흡수하는 게 일단은 맞다.’

거기에 놈들은 오크를 노리지 않았다. 인간부터 멸절하기로 했다. 가장 성공한 자주포 프로젝트는 활약할 수 없었다. 전장이 백설산맥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동력이 형편없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얻었다. 수틀리면 피만 뺏기다가 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중립신이 왜 엘프를 버렸는지도 체감했다. 알고 있었지만, 깨달은 건 지금이었다.

‘초월자 근처도 안 가도 그저 가능성의 벽이 허물어진 것만으로도 강하다.’

3천 명 나아가 만 오천 명을 타락 엘프로 만든다면, 드낙이 굉장히 곤란해질 수 있었다. 엘프가 원하는 피를 지닌 드낙은 그 피 때문에 사지가 잘릴지도 몰랐다.

‘아예 없을 일은 아니다.’

본래는 엘프를 타락시켜서 수준을 높인 뒤에 영혼 제국을 크게 피해를 주려고 했지만 깔끔하게 접었다.

‘만오천의 다크 엘프로 어떻게든 엘프를 지배하는 수밖에 없겠어.’

드낙이 갈 수도 없었다. 그를 지켜줄 검은 뿔쥐가 없었기 때문에 배신에 무력하게 당할 수 있었다. 엘프를 신용해서는 안 되었다.

그 경계심을 대놓고 심은 게 락테아 시오와 아시에소렘이었다.

자신들은 이미 강을 건넜기에 상관없었다. 다른 엘프가 최대한 적게 힘을 받는 게 중요하고, 드낙에게 이름 도장을 꽝 찍는 게 더 중요했다. 확실히 두 사람은 드낙에게 각인되었다.

스스로 엘프의 맹점을 드낙에게 말했으니까.

그 공은 확실하게 드낙에게 각인되었다.

그가 많은 걸 짚어내는 사이에 선봉장(先鋒將) 테나시타스(Tenacitas)가 도착했다.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가 이 엘프입니까?”

“예.”

그리 말하는 아시에소렘을 테나시타스가 훑었다.

‘뭔가 달라졌다. 엘프의 진화인가? 그 실마리는 듣는 순간 엘프를 변화시키는 것인가?’

큰 의문점이 그 이마에 찍혔다.

“드코라르바라고 합니다.”

드낙이 손을 내밀었다. 모진 고문을 받았는지, 엘프임에도 흉터가 많았고, 주름이 자잘했다. 늙은 엘프였다면 모두 기억하고 있었을 터다. 그러지 않았기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디테일함은 테나시타스의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꽈악.

서로 손과 손이 잡혔다. 뭔가 액체 같은 게 들러붙은 듯한 감각이 들었고, 삽시간에 신경계를 타고 테나시타스의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파도와도 같은 해방감과 쾌락이 쏟아져나왔다.

엘프의 녹안(綠眼)이 화려하게 빛났다.

그 속에서도 이질적인 것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족쇄나 쇠창살, 제약과 해로운 것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아!’

그제야 드코라르바가 눈을 감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드낙의 다섯방울도 안 되는 피로 엘프를 타락시킬 수 있었다.

선봉장으르 타락시키고 난 다음에 드낙이 여유를 가지고, 락테아 시오에게 물었다.

“왜 불파겐 마탑에 청철 갑주에 대한 지식을 먼저 전수하지 않았지?”

“그건 저에게 허락되지 않은 지식이기 때문에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소지조차도 불가능했고요.”

“그런가. 재수 없는 짓을 하는구나.”

그 말에 드낙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동일한 엘프 사회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사회 이동이 불가능한 경직된 사회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수량과 질이 구분되어있을 터였다.

그게 똑같은 역량을 지닌 엘프를 구분하게 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더 우월한 신흥 마법 체계로 나이 어린 엘프보다 우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득권이 된 엘프들은 모두 동의했겠지. 드낙조차도 그랬을 터였다.

당연하다.

권력은 남에게 쥐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나눠주고 있기에 드낙은 락테아 시오의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건...역시 세팔이 덕분이겠지.’

잔혹한 반면교사가 있었기에 드낙은 힘을 나눠줄 수 있었다. 핏빛쥐에게도, 고블린에게도 심지어 통수가 보이면 일단 때려놓고 시작하는 인간들에게도.

상황이 흔들렸기에 엘프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갔고, 그건 그들에게 큰 행운이기도 했다. 좀처럼 얻기 힘든 세기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다.

드낙에게 접촉 당한 엘프는 모조리 백이면 백 그 힘을 받아들였다.

“선봉장. 다른 엘프를 모두 모아라. 그리고 한 명씩 면담해서 타락 엘프로 만들겠다.”

“예.”

반론은 없었다. 단 몇 명으로 엘프의 결정을 번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에 뒤에는 본대가 보급대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뿔쥐를 비롯해 북부 인간들을 쓰면 맞불을 놓을 수 있고, 그 속에서 내가 활약하면 승리는 할 수 있다.’

그런 선택지, 분명 존재한다.

드낙은 그런데도 홀로 나서고 있었다. 격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검은 뿔쥐들의 생(生)과 사(死)의 반복이다. 그들의 삶이 매초마다 흐르고 있었다.

그게 그에겐 느껴졌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다치고, 죽는다.

그 고리는 끝이 없다.

그렇다면 부질없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드낙은 그 반대로 그것이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어차피 뒈질 것 지금 뒈지나 상관없다는 냉소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초월자의 문턱에 턱을 걸었고, 그들의 심장 고동소리가 눈을 감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생명을 짊어지면서 받은 첫 번째 생각은 경외심이다.

‘난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중립신을.’

그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봤기에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백색 밀랍같은 중립신은 그전의 중립신과 얼마나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그렇기에 드낙은 중립신과 반대되는 사상(思想)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깨닫기에는 드낙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자신을 깊게 관조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저, 바쁜 하루하루에 치이고, 휩쓸리고 나아갈 뿐이다.

정신 차리고 나면, 반백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는 사람처럼...

드낙은 순식간에 3천의 선봉대원들을 모조리 타락 엘프로 만들었다. 족쇄도, 무엇도 없는 그저 힘의 은총을 받아들지 않는 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우거에 목줄을 채우지 않고, 마신장처럼 만드는 것과 같은 정신 나간 짓을 하는 놈이 있다는 건 엘프들에게 크나큰 기회였다. 또한 엘프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기회의 문은 곧 닫힌다.’

몇 명이 지나갈 수 있을지 몰랐다. 많아 봤자 10만이다. 아니, 드낙의 변덕 때문에 5만이 될 수도 있고, 1만5천에서 끝날지도 몰랐다.

한 명이 문을 넘으면, 그만큼 앉을 좌석이 줄어든다.

끝없는 제로섬 게임.

한 명이 얻으면 다른 놈은 못 얻는다.

드낙에게도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이 엘프들에게 있었다. 순식간에 계산기를 두드렸고, 단번에 그 힘에 순응했다.

‘쉽다.’

드낙이 거드름을 피웠다. 하지만 이 엘프들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을 정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문제는 방향성이었다.

“본대를 3천으로 어떻게 회유할 수 있겠는가?”

드낙의 말에 테나시타스가 부정했다.

“그들은 인간 멸절을 기본으로 두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기습을 통해서 쓸어버릴 수는 있지만, 도망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3천으로 1만5천과 싸우는 일이다. 거기에 엘프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고, 고국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신식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드낙은 검은 뿔쥐를 불러들일까 싶었지만 포기했다. 100만이 싹 쓸렸던 핏빛쥐였다. 그 피해를 복구하는 데 힘을 써야 하는데 또 피해를 보면 악재가 겹치는 셈이다. 무엇보다 검은 뿔쥐는 드낙의 보험이다.

중립신이 그를 외계로 보낼 수 있게, 검은 뿔쥐가 외계로 갈 수 있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검인 셈이다.

이미 핏빛쥐가 다각수가 되며 검은 뿔쥐로 종족변이 및 진화를 겪을 때부터 중립신은 핏빛쥐를 놓아버린 상태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놓아준 것이다.

생각보다 드낙의 자질이 더 형편없어서였다. 그는 초월자가 되어도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적수라고 하기에 부족한 자였다.

‘결국 만오천 전부를 타락 엘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크게 하면 결국 그들로부터 엘프를 장악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일에 드낙의 피와 업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북부와 검은 뿔쥐들의 목숨이 그럴 가치가 있나?’

있다.

드낙이 단호히 결단했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감정적인가? 감정적이다.

‘일단은 이미 저질러버린 걸 수습하자.’

그가 그렇게 마음먹고 일어섰을 때, 중립신이 간섭해왔다. 검은 꿈으로 접속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드낙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중립신과 대화함으로써 많은 걸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불러?”

당당한 드낙의 말에 중립신이 코로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신조차도 한숨짓게 하는 드낙이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그거 있잖아. 제이제이. 적으로 적을 상대하는 거지. 영혼 제국이 승기를 잡고 백설산맥을 침공하는 대예언을 생각한다면, 엘프에게 힘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 같은데.”

중립신이 눈을 떴다.

“마신만이 오우거를 챔피언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 그럼 중립신께서 엘프들의 침공을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까?”

드낙이 냉큼 손을 비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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