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7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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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아시에소렘(Aciessolem)〉은 단 한 번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맛보았다.
‘아아아!’
그것은 환희였다.
자신에 대한 우레와도 같은 박수소리였다.
성공의 북울림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고정되어있는 엘프는 결코 발전할 수 없었다. 조각술조차도 처음부터 잘하고, 그게 이어진다. 숙련은 될 뿐, 발전하지는 않는다.
마법도, 검술도, 궁술도, 연금술도.
모두 똑같다.
지식을 획득하는 건 나름 재밌지만, 그것도 빠르게 소모되고 벽을 마주한다. 또한 지식의 획득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재밌지는 않다. 남들도 똑같기 때문이다.
하루해서 하나를 획득하면, 다른 친구들도 하나를 획득해있다.
평등하다.
그렇기에 흥미가 떨어진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 명, 만 명의 의사가 모두 실력이 똑같거나 수준이 떨어졌다. 의욕을 잃기 때문이다. 특출난 의사는 없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균이기에 누구를 찾아가든 그저 그렇다. 그게 아니면 별로던가.
시대를 뛰어난 치료는 어림도 없는 셈이다.
사랑니 잘 뽑는 의사를 찾기도 힘들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 엘프 사회에서 드낙의 피는 맹독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엘프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간 아시에소렘은 죽어버렸다. 드낙이 독을 풀어버렸다.
새로운 존재가 눈을 떴다. 그는 송두리째 변했다.
그 힘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힘이었고, 우주와도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수한 객체 변수를 지닌 인간조차도 발전할 수 있다는 동기하에 노력하는데, 엘프 같은 종족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면 그 여파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락테아 시오와 드낙은 엘프의 화려한 금발이 검게 물들자 안심했다.
힘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에소렘이 눈을 떴다. 그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종족값이 높은 엘프는 드낙의 피 몇 방울만으로도 현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핏빛쥐의 종족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용되는 능력과 권능 그리고 악마의 힘과는 다르게 엘프는 오로지 격과 혼의 상승을 노릴 수 있었다.
큰 것에 크게 담기고, 준비된 곳에 확실하게 담기는 법이었다.
엘프는 준비된 선진국이고, 핏빛쥐는 폐허부터 쌓아올리는 개발도상국과 같았다. 똑같을 수 없었다.
“......”
아시에소렘은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푸른 마력이 그의 몸을 훑었다. 발달하고 체계화된 조사 마법이 신체를 스캔했다. 그 내용은 아시에소렘의 뇌로 직접 전달되었다.
‘신체능력만 3배가 강해졌다.’
오우거와 비교될 정도로 엘프의 종족성은 높았지만, 오우거와는 반대되는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덩치가 작은 만큼 신체가 강인하지 않았다. 청철 갑주를 통해서 어떻게든 초월의 힘을 압도적으로 사용하게 발전된 것 또한, 엘프는 신체적으로 더는 강해질 수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인간처럼 〈일류의 흐름〉을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절반을 버리고, 다른 이를 절반 자신에게 담는 것이다.
완성되고 완전한 엘프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프에게 부족한 것이기도 했다. 이를 육(肉)을 근본으로 삼고, 힘으로 육신과 피를 소모하는 악마의 힘이 채워 넣었다. 자연스럽게 그 육체를 강화했다.
오우거보다도 엘프에게 악마의 피가 어울렸다. 오우거보다 더 격렬한 변화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타락한 엘프는 그전보다 신체적 능력만 3배가 강해졌다.
‘육체를 소모해서 초월의 힘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마력을 소모해서 육체를 자연스럽게 회복하고 강화시키는 등의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마치, 악마가 된 것 같았다.
‘하급 악마(Lesser Daemon)가 되었다.’
마력을 넘어서서 뭔가 그 너머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단숨에 그곳에 놓였다. 고로 이 또한 타락 엘프의 강함이었다. 무엇보다 청철 갑주와 궁합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대기의 마력을 치유 마법으로 전환하고, 육체를 소모하여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수단의 증가와 같았다.
육체가 지닌 마력, 대기의 힘을 응축시키는 청철 갑주가 2+2+2...의 힘을 지녔다면 이제 그는 악마의 육체를 소모하는 힘의 작용을 얻어 3+3+3+...의 힘을 지닌 것과 같았다.
그 어떤 엘프와 싸워도 더 강력한 출력을 보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선봉장조차도 쉽게 꺾을 수 있다.’
지식과 숙련만 다를 뿐, 다른 엘프와 똑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업과 격 또한 높아졌다. 하급 악마도 악마다. 초월자의 반열에 살짝 걸친 셈이 되었고, 이는 곧 노력하면 악마 같은 초월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결국, 드낙의 피를 맛본 엘프는 단번에 상승한 본인의 수준과 그로 인해 생기는 쾌락 때문에 결코 드낙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굉장히 큰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드낙이 내어주는 피는 곧 드낙이나 다름없었다. 악마는 육체에서 생기는 초월의 힘이다. 육체가 곧 신의 힘이다.
이를 받아먹는 행위는 중립신의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것과 똑같았다.
드낙의 챔피언이 되는 셈이었다. 그가 완전한 초월자가 되면 두드러지게 나타날 터였다. 완전한 악마 혹은 신이 되지 않아도 드낙과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게 당연했다.
그의 피를 받아먹고, 그를 어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적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뒤에 타락한 엘프는 드낙을 아버지라 부를게 될 수도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군사활동을 하며 북부를 초토화하고 있는 엘프 장군은 누구인가? 총사령관 말이다.”
“선봉장(先鋒將) 테나시타스(Tenacitas)가 맡고 있습니다. 나의 신이시여.”
엘프의 탄생에 깊게 관여한 중립신조차도 부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게 엘프였지만, 실질적인 한계돌파를 하게 해준 드낙을 신으로 모시는 건 매우 자연스러웠다.
“선봉장이라고? 본대가 따로 있단 소리냐?”
“예.”
“본대는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
“1만 2천입니다. 정확히 인간 멸절을 위한 군대의 규모는 15,800명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마, 만오천!”
드낙이 경악했다.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통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다. 마왕 발라쿠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검은 뿔쥐, 인간, 고블린...그를 믿고 따르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자들의 죽음은 매우 꺼려지는 일이었다.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죽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특히나 드낙은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전과는 달랐다. 격이 오르며 그 마음이 진실인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이득이 있으니까 사랑한다고 치부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많이 내려온 것이냐? 기껏해야 11명이 전부였거늘.”
“원정대의 소식이 끊겼다면 많아 봤자 백여 명 내외의 엘프가 진상조사를 위해 내려왔을 겁니다.”
“그렇지.”
드낙이 수긍했다. 하지만 그것의 100배에 달하는 엘프가 내려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중립신의 별의 움직임을 거짓으로 꾸미고, 부활하려고 하고 있어서 인간을 처리해서 중립신의 부활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어서 1만5천에 달하는 엘프군대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의문을 지녔다. 중립신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테라를 위해서 행성을 차근차근 변화하고 준비시키고 있었다.
당장 부활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중립신이 지닌 업의 양이었다.
특히나 드낙에게서 뜯어낸 업이 어마어마했다.
중립신에게 있어서 일등공신은 바로 드낙이었다.
“1만 5천으로 중립신을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기에 가능합니다. 물론, 영혼 제국과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10만 대군을 보냈을 겁니다.”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을 뿐.
이에 락테아 시오가 아시에소렘에게 물었다.
“하지만 1만이라도 해도 보통 숫자가 아니다. 엘프가 양면전쟁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시에소렘은 조금 흥분했다. 보통 엘프와는 다르게 반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 또한 락테아 시오에게 말을 놓았다.
그건 제법 짜릿한 배덕감을 선사해줬다. 이제 그는 다른 엘프들과는 〈다름〉을 언행을 통해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이 2천의 군대를 보내 제국의 서부에서 활동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제국 또한 양면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서로 똑같이 부담하는 셈이었다. 물론 영혼 제국이 더 골치 아플 터였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건 드워프기 때문이다.
머리를 부숴도 세월이 흐르면 수리가 된 갑옷처럼 일어나는 게 드워프였다. 그들을 진정으로 멸하려면 육편을 다지듯이 해야 했다. 물론, 머리가 모두 자연 회복되려면 수년은 걸렸다.
드워프 또한 머리가 잘리면 굉장히 장시간 전투 불능에 빠지고, 그건 그냥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미친 육신을 지닌 드워프 2천 군대를 상대하는 데에는 혼이 빠지게 노력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소리였다.
‘드워프 이 새끼들이 엘프 편을 드네?’
드낙의 기분이 나빠졌다. 박쥐처럼 인간과 엘프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줬기 때문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한 마디 해야겠다.’
라인을 잘 탈 줄 모르는 드워프였다. 자신이 그 방향을 잘 잡게 해주는 게 옳았다. 또한 서부에 있을 세파리아스가 생각났다.
‘불안하다.’
드워프와 궁합이 잘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었다. 극과 극의 반응이 일어날 듯했다.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처세가 변했다는 걸 인지 못 하고 있었다. 그 강함에 집중해있어서였다.
‘중립신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물어봐야겠다.’
나중에 할 일을 드낙은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선봉장에게 내 피를 하사한다면, 나머지 3천의 선봉대원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겠지?”
“예.”
“그에게 연락을 넣어라. 락테아 시오와 400년 동안 사로잡혀있던 엘프가 찾아왔으며, 그 엘프가 엘프의 진화에 대한 실마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말해라.”
“예.”
테나시타스는 분명 나타날 것이다. 출세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선봉장을 자처하는 자였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위로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다른 엘프와는 다르게 열정이 제법 있는 자였다.
“그는 많은 이들을 신께 소개해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가 본대까지 안내를 해줄 수도 있고, 혹시나 생길 의심을 지우게 할 수 있습니다.”
“의심? 하나도 안 할 것 같은데.”
워낙 우월한 놈들이라, 동족에게 뒤통수 맞는다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엘프를 회유, 포섭, 배신하는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름은 있어야 합니다.”
“...그럼 뭐가 좋겠어?”
드낙이 두 엘프에게 물었다. 락테아 시오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Dcolarva)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았다. 매우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전해.”
아시에소렘의 갑주 뒤에서 백색카드가 뽑혀 나왔다. 마력이 응축되고 액체화가 되어서 카드에서 주르륵 물방울이 맺혀서 흘러내렸다. 곧 마법이 발동되고 인간이 쓰는 메시지 마법을 아득히 웃도는 속력을 지닌 메시지 마법이 하늘로 쏴졌다.
“저러면 어떻게 상대에게 닿아?”
“구름 위에서 이동합니다. 다른 자들에게 보일 수 있는 걸 막는 겁니다.”
“아하.”
곧, 선봉장 테나시타스와 연락이 닿았다.
“무슨 일입니까. 급할 때만 메시지 마법을 쓰라고 했을 겁니다.”
“급한 일입니다. 사망처리 되었던 법정자, 락테아 시오가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라 불리는 엘프를 구출해서 저와 지금 함께 있습니다. 엘프 군대가 내려왔다는 걸 알자마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엘프 학자입니까?”
“400년 전에 포획 당했다고 합니다. 금기를 범해서 엘프 사회로부터 퇴출되어 도망쳤다가 인간들에게 잡혔다고 합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진화학파라는 건 처음 들어봅니다. 어떤 건지 설명은 들었습니까?”
“그것이...매우 자극적인 말을 했습니다. 엘프 객체 하나하나가 모두 한계를 돌파하여 초월자의 반열로 올라가는 방법을 깨우쳤다고 합니다.”
“예? 그게 사실입니까?”
“믿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엘프보다 3배는 강인한 신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들도 그를 고문하고, 연구한 듯했습니다만, 결국 인간은 인간. 탈출하여 락테아 시오와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능숙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날이 갈수록 설정이 붙어서 정말 그럴듯했다.
“당장 가겠습니다.”
테나시타스가 냉큼 떡밥을 물었다.
엘프는 그 강함과 고귀함 때문에 동족에 대한 맹신이 존재했다.
이 모든 과정을 본 드낙은 섬뜩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건 음모였다.
‘엘프도 그냥 깡그리 타락시켜서 같이 영혼 제국을 조져버리면, 더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거 아닌가?’
타락시키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워 보였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일이 진행되자 거대한 욕심이 솟아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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