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75편
<-- 엘프 침공 -->
‘역시 난 돌아갈 때는 돌아가는 남자였어.’
드낙이 이 번뜩이는 영감을 서둘러 적었다.
‘엘프를 다독여서 돌려보낸다면, 제국과의 싸움에서 보다 더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제국군은 나한테 오는 시간도, 규모도 줄어들 터다.’
완벽했다.
멈칫.
그러나 드낙의 펜이 멈췄다.
‘어떻게 그렇게 다독이지?’
휘황찬란하던 길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 여기서 막히네.’
펜이 점을 톡톡톡 찍었다.
그는 대단히 창조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이미 했던 것에서 방법을 찾기도 했다. 바로 락테아 시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그녀를 타락시킨 것처럼, 악마의 피를 이용해서 휘하에 둘 수 있었다. 엘프에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을 드낙은 줄 수 있었다.
그건 향상심과 발전이라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게 결정되어있고, 변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엘프였다. 그들에게 변수를 준다는 건 큰 혜택이었다.
이를 이용한다면, 3천의 엘프 또한 변절자로 만들 수 있었고, 그들을 조용히 엘프 제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용히 일을 끝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엘프의 역량이 쓸데없는 곳에 쓰이지 않게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드낙은 완전한 초월자가 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중립신의 덫에 걸려서 신이 아닌 반마부터 된 것이 드낙이었다.
‘선택집중이 무너진다.’
탄생하는 핏빛쥐와의 강력한 유대를 통해서 그들에게는 악마의 피를 주고, 능력을 주는 건 쉬웠지만 다른 건 전혀 아니었다. 다른 종족에 대해서는 드낙이 직접 접촉을 하거나 레우치터를 통한 마커를 남겨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블린처럼 조련술의 업으로라도 엮어있어야 했다.
‘엘프는 아니지.’
락테아 시오? 그건 개체에 불과했다. 그림자처럼 드낙과 매우 궁합이 좋은 레우치터와도 달랐다. 그들은 드낙과 정말 뭐 하나 교차점이 없었다.
‘3천 명을 회유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의심을 지워야 하기 때문에 온갖 거짓말을 미리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가치가 있는지를 짚어야 했다.
‘당연히 있지.’
드낙은 매우 탐욕적인 표정을 지었다. 동부 인간들도 중립신에게 받았다. 엘프들 또한 받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방면에 쓰일 수 있는 수재들이었다. 천재가 아니고, 수재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너무 미래를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외계로 나갈 때 도움이 되는 종족이었다.
거짓말하면 드낙이었다. 양피지를 꺼내서 본격적으로 펜을 들어 올렸다. 가장 첫 문장을 써내려 나갔다.
[진화학파는 엘프의 고정성을 파괴하여 초월로 나아가기 위한 신흥학파다. 이것은 락테아 시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능숙하게 새로운 학파를 만들었다.
엘프들이 원하는 바를 이미 락테아 시오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학파 이름부터 너무 유혹적이었다. 또한 드낙은 락테아 시오를 찾았다.
그녀는 마법으로 물을 데우고, 노천탕을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지하에서 이루어졌는데, 천장에 별빛과 달빛의 마법을 사용해서 매우 그럴듯하게 조명을 만든 상태였다.
‘허이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어서 옷을 입어라! 지금 큰일이 났다! 큰일이 났어!”
드낙의 외침에 락테아 시오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날을 꼬박 새워서 만든 4,200개의 대련 환영 마법진은 허탕으로 돌아갔다. 중립신이 능력으로 그냥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안한 마음에 드낙의 피를 핥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휴식할 때 오는 건 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생명체였고, 계속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빨리! 빨리빨리!”
김치를 오랫동안 먹지 않은 빨리빨리맨의 재촉에 락테아 시오가 결국 물 밖으로 나왔다. 수증기 사이로 나신이 보이자 드낙이 몸을 돌렸다.
피부에 묻은 물만 빠르게 수증기가 되어서 날아가고, 뽀송뽀송한 피부에 옷이 걸쳐졌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십니까?”
“소식이 어둡구나. 엘프들이 쳐들어왔다. 3천 군세다.”
그 말에 락테아 시오가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인간에게 엘프는 오로지 11명의 원정대만 보낼 수 있고, 그 이상은 못해도 3년은 논의해야 합니다.”
“무언가 변했다는 거지.”
그럼에도 락테아 시오는 부정했다. 그녀는 온갖 것들에 관해서 물었으며 검은 뿔쥐들의 마법 감시 체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됐다. 그만해라!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는 보면 알 것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만...제가 왜 필요하시다는 겁니까? 절 사절로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엘프들을 내 밑으로 두고, 그들을 너처럼 만든 뒤에 잘 돌려보낼 생각이다.”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동부 인간들을 지배하는 것도 아직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이미 먹은 건데 천천히 하면 돼!”
드낙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음...확고하시다.’
이미 마음을 정하신 듯했다.
락테아 시오의 입장에서는 동료가 늘어나는 걸 반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드낙의 피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또 그걸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해야 했다.
“이제는 필멸자들에게 맡겨보시는 게...”
“그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을 지켜보는 게 좀 그렇다.”
드낙이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나도 단위가 다른 죽음을 마왕 발라쿠 전투에서 맛봤기 때문이다. 그건 흥분이 사라지고, 점점 체감되어오는 또다른 종류의 공포와 책임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생각외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또,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작전이었고 잘 통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락테아 시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3천 명의 엘프들을 변절자로 만드는 데 같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정권? 없었다.
거의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나 다름없었다.
“진화 학파로 서서히 퍼뜨릴 생각이다. 나쁘지 않지?”
드낙은 침투할 생각을 말했다. 이에 락테아 시오가 걱정부터 했다. 엘프는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절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엘프로 변하는 건 쉽지만, 금방 들킬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드낙은 흠칫했다. 그것도 그랬다.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하나?”
“아뇨. 전투 후 장애를 앓고 있다고 둘러댄다면...”
“병자가 되라는 건가?”
“아뇨...약간 머리를 다쳐서 좀 이상해진...엘프를...”
“뭐라고!”
드낙이 역정을 냈다. 자신은 반마였다. 비록 인간에서부터 반마가 되었기에 썩 능력치가 좋은 반마는 아니었지만 전투력이나 격으로 보면 엘프보다 우위에 있는 게 드낙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보여?”
“적어도 대포동 미사일 개발 사건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건 잊어줬으면 해. 나도 그 정도는 개발하지 못하는 걸 알아! 그냥, 그게 된다면 편하니까 그랬던 거지!”
드낙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사일 또한 현대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그게 개발된다면 더더욱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기초 과학이 탄탄해야지만 가능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드낙은 서둘러 주제를 돌렸다.
“진화학파, 어때?”
“실패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원정대는 전멸하고, 저 혼자 살아남았으며 신께서는 400년을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배경이야기였다.
“400년 동안 응어리진 내 분노를 엘프들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드낙의 농담에 락테아 시오가 태클을 걸었다.
“인간이 받아야 하겠죠. 설정대로면.”
드낙의 피부가 녹아내리고, 엘프로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이 녹아내린 것 같은 휘황찬란한 머리카락과 선명한 녹색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
제법 미남으로 변신하고, 귀가 뽀족해지며 길어졌다.
“가자.”
“예.”
드낙은 타락 엘프 3천 명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상상을 했다.
*
엘프 선봉대 3천은 북부에 도착했다. 이곳에 온 다른 원정대와 루트가 전혀 변경되지 않았다. 인간을 상대로 다채롭고 안전한 루트를 여러개 준비하는 건 웃긴 일이었다.
선봉장(先鋒將) 테나시타스(Tenacitas)가 가장 먼저 땅에 내려왔다. 그와 다른 엘프들은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푸른빛을 은은하게 내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등에는 백금 카드들이 가득 부착되어있었는데, 조밀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신체구조에 맞게 구부러지거나 접혀 있었다. 매초마다 마력이 퍼져나가며 백금 카드의 틈에서 푸른빛이 전류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투구는 귀가 접히지 않게 머리 옆으로 뿔이 튀어나와있었다. 그곳에 귀를 넣는 식이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귀가 매우 뽀족하고 길었기에 어쩔 수 없는 투구 구조였다.
청강(靑鋼) 전신갑주를 입은 3천 명의 엘프 선봉대는 원정대와는 현격하게 다른 준비를 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에도 갑주가 아닌, 천옷과 백금 카드만 소지하고 있는 게 엘프였는데, 지금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이 모방할 거리를 준다는 걸 생각했을 때, 위험천만한 짓이었지만 전혀 그런걸 염두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인간의 멸절(滅絶)을 진행하겠습니다. 작은 산골마을과 화전민부터 처리하겠습니다.”
도망치는 인간을 생각한다면, 인간끼리 교류가 적은 외곽부터 청소해야 했다. 벌레 같은 지성종족이었기에 도망치고 숨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쐐액.
등에 붙어있던 백금카드가 뽑혀 나와 흉악한 소리를 냈다. 허공에 딱 정지한 백금 카드가 푸른 빛이 아니라 푸른 액체를 주륵 흘러냈다. 마력의 액체화. 인간의 경우 중급 연금술 이상의 경지에 들면 제작할 수 있었다.
반면 엘프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대기에 존재하는 마력을 백금 카드가 응축하여 마력 액체를 토해냈다. 그것은 곧 마법진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액체 마법진은 그 어떤 엘프이 마력 소모 없이 마법을 실현했다.
100km에 달하는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표면만을 탐지하고 베껴내는 지도였기에 손실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인간을 특정하는 건 매우 쉬웠다. 그들의 표면 형태는 확실하게 특정하기 좋았다.
집의 구조 또한 통일된 면이 많았다.
단번에 인간들의 가옥, 그들의 숫자가 점으로 찍혔으며 확대하면 디테일하게 볼 수 있었다. 3천 명의 엘프 선봉대는 100km의 원형지도를 하나의 구역으로 삼고, 차근차근 소거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외곽부터 시작해서 안으로 들어가 중앙에서 합류를 진행하겠습니다.”
100km 원형 구역 내에 존재하는 마을마다 100명의 엘프가 배정받았다. 총 112개의 중소 마을과 화전민이 잡혔다. 범죄 소굴 또한 카운트되어 있었다. 그들 또한 인간이었다.
나머지 엘프들은 숲과 산에 배정되었다.
선봉장(先鋒將) 테나시타스(Tenacitas) 또한 99명의 엘프를 이끌고 화전민 마을로 향했다. 그곳의 땅은 매번 태우고 태워서 거무튀튀했고, 잿가루들이 많았다. 그런 땅에서도 자연은 풍요롭게 자라나고 있었다.
딱! 딱! 딱!
벌목하는 이들이 벌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나시타스가 백금 카드를 뽑아들어 방어 마법을 펼치고, 백금 카드를 집어넣었다. 주변 대기에서 마력을 뽑아낸 백금 카드에는 마력액체가 남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무기를 소환했다.
루비, 흑요석, 사파이어, 에메랄드 순으로 네 가지 색의 보석이 박힌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푸른색의 코팅이 되어있었다. 창이지만, 다른 마법적 행위에 보정치를 넣어주는 마법 보조 기구이기도 했다.
그 창에서 새하얀 안개가 퍼져나갔다.
평범한 안개처럼 보였지만 유독한 독가스였다.
“응? 정오인데 웬 안개야?”
땀을 닦던 나무꾼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헉헉. 이게 대체 무슨?”
바람 마법을 타고 숲의 바람까지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기에 안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게 나뭇꾼 3명을 덮치고 지나갔다.
곧, 나무꾼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어?”
손으로 콧물이라고 생각하고 훔쳤지만, 피가 묻어나오자 나무꾼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눈에서도 액체가 주륵 흘러내렸다. 피였다.
“헉?”
“허헉. 이, 이거 뭐야!”
그들이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도 없었다.
그들에게 테나시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엘프들은 마을로 향한 지 오래였다.
“자비로운 엘프가 주는 은혜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건 실로 행복한 일이지.”
“웩. 웨애애액!”
피를 쏟아냈다. 이빨이 잇몸에서 너무나도 쉽게 떨어져 나갔다. 피와 이가 뒤섞였다.
“이으에 뭐으야? 넌 누우야?”
성대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알 하나가 그대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나무꾼이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덜덜덜 떨었다.
그 어떤 고통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너무나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풀썩.
무릎을 꿇으며 나무꾼이 머리부터 땅에 처박았다. 그것만으로도 두개골이 두부처럼 뭉개져 버렸다. 그 몸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액체는 주변 땅을 끓이고, 태우기 시작했다.
시체를 중심으로 최대 2m까지 사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매캐하게 연기가 피어올라 왔다.
인간의 시체와 독을 이용해서 주변 땅을 태워서 영양분을 지움으로써 생명체가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혹은 그 지역의 토지자원의 양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쉬이이이익.
테나시타스를 비롯한 엘프들의 장창에서 새하얀 안개가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굳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죽었고, 그 동물 또한 주변 땅을 끓이고, 태워 사막으로 변하게 하였다.
‘이제서야 이 벌레 같은 인간 종족을 멸하게 되는군.’
엘프들의 쓸데없는 고귀함 때문에 그간 살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곧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게 엘프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 엘프가 인간을 고통없이 안락사를 시켜주는 건 인간에게 큰 은혜를 주는 것이라 여겼다.
========== 작품 후기 ==========
6572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