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7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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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닥. 다그닥.
말들이 느긋하게 움직였다. 동부 왕국의 진격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세리안이 이끄는 군대가 한 번의 공성전을 했다면, 아크온과 도렌이 함께 이끄는 군대는 공성전조차도 겪지 않았다.
매우 부드럽게 영토를 확보하고, 점령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부 깊이 들어오고 나서야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세리안도 마찬가지였다.
“남부에서 꺼져라! 이곳은 남부인의 땅이다!”
화살이 수십 개 쏟아졌다. 행군하던 도중의 기습이었다. 화살비는 오래가지 못했다. 적이 지닌 보유량이 적었다. 농기구나 나무창, 벌목용 도끼 등과 조잡하게 만든 나무 방패를 든 민병대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
이들의 호쾌한 기습은 실로 매서운 파도를 연상케 했다.
투두둥! 퍽!
“컥!”
“끄악!”
기습이었음에도 죽어 나자빠지는 건 민병대였다. 대부분이 중보병이고, 점령을 위해서 온 동부 왕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화살에 다친 이는 있어도 죽는 이는 없었다. 방패로 막고, 넘어뜨리고, 대면하는 상대의 숫자를 줄이거나, 여유로우면 방패를 하단으로 내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80여명에 달하는 민병대가 사로잡혔다. 죽은 이는 방치하고, 다친 이들은 후방에 있던 사제들이 치료해줬다. 물론 이 상황에서 기사와 다투는 건 필연적이었다.
“적군을 치료해주겠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들은 시민이오! 적군이 아니라 시민이오!”
막무가내인 사제에게 기사와 병사들은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사제들의 고결함은 그들로서는 창칼로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위협이 통하지 않는 광신도들이었다. 죽어도 순교자가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전무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혔지만 3번, 5번 계속 행군할수록 민병대가 많아지자 결국 처우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민족주의에 물든 민병대들이 더는 나오지 않게 단호하게 처형하여 효수해야 했다.
세리안은 당연히 마을마다 목을 걸었지만, 아크온과 도렌은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전쟁이오. 도렌 사령관. 인정은 개개인과 평시에나 있을 수 있는 법. 창칼을 겨눈 상대와는 결코 정을 나누어서는 안 되오.”
아크온 몽펠리에는 실로 답답해했다. 전쟁 상대국으로 인정을 베풀려는 도렌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통신하고 있었으나, 도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게 실로 아크온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은 적이다.
죽여야 한다.
서로 죽이는 상대에게 인정을 베푸는 지휘관은 적에게나 좋지, 아군에게는 배신자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살린 상대가 적이 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겉으로나 고마워할 뿐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10대입니다. 아크온 사령관, 그들 대부분은 직업도 가지지 못한 애송이들입니다.”
남부 왕국에서는 직업을 가지기 전의 시절을 〈애송이 시절〉이라 짓고, 이들을 애송이라 불렀다.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억압이기도 했다.
“그들을 죽인다면, 그들 부모 나아가 가족 전체가 동부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게 될 겁니다. 나중의 치안과 관계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동부 왕국은 남부인을 다 죽이고, 땅만 점령할 생각입니까?”
젊은 피들로 이루어진 민병대는 죽이기가 껄끄러웠다. 이를 도렌이 논하였다.
“이해하오. 허나, 그들은 일부일 뿐이오. 일부를 너무 크게 보시는 것 아니시오?”
“그래도 그들 모두가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선동을 한다면 그에 맞는 형벌을 주면 될 일이오. 그들 중 그 누구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소.”
갈대나 잡초를 두려워하는 야수는 없었다.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군을 상대로 거침없이 달려들어서 사로잡히는 것도, 모두 죽이지 않고, 공포로 다스리지 않아서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오. 소문이 퍼질 것이니. 만용을 부리는 자들도 많아질 것이오.”
“하지만...”
도렌이 목소리를 줄였다. 결국, 누구 하나가 양보해야 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런 소비적인 대립은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이 군단의 2공훈자가 되겠습니다.”
그 말에 아크온은 고개를 저었다.
“동부왕께서는 그런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
다분히 주관적인 행동을 자주 하는 게 드낙이었다.
“내 공을 내가 적게 하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후우...그냥 그렇게 하겠소. 그 어떤 대가도 필요없소.”
도렌이 확답을 줬고, 아크온이 한숨 쉬며 이를 받아들였다. 도렌은 손해도 보지 않고 수많은 젊은 피를 살릴 수 있었다. 자신을 공격했지만,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단! 주동자는 최소한 호수 성채로 압송시키겠소.”
“예.”
아크온이 양보했기에 도렌도 양보했다.
훈훈했지만, 아크온은 철저한 계산 아래 행동했다. 도렌이 저렇게 정을 베푼다면, 나중에 가서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전쟁이 끝난 상태에서 논공행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배포가 좋아진 상태고, 도렌의 평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도렌을 잡아먹는다면, 상관없었지만 불가능했다.
고로, 아크온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렌의 의견에 찬성하고 같이 가는 길뿐이었다. 무리해서 각을 세우지 않았고, 짓누르지 않았다. 전쟁에서 1순위 공적을 얻고, 그렇게 보고서를 작성하더라도 도렌은 다른 방법으로 공을 세운 것이 된다.
전쟁 외적으로 높게 판단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명분을 중히 삼는 건 문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아크온은 북부식을 버리고, 도렌의 편을 들어줬다. 똑같은 병사로 처우하여 죽이지 못했다.
*
“찍찍.”
멜마론 산. 북부에 있는 최대 검은 뿔쥐 거점 중 하나였다. 그곳에는 하늘을 감시하는 ‘하늘 거미줄’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많은 오벨리스크와 그 위에 배치한 황금의 밧줄들이 있었으며 그 바닥에는 수많은 검은 뿔쥐 마법사와 주술사가 힘을 보태고 있었고 몇몇 연구원들은 정보를 읽어나가기 바빴다.
엘프 원정대를 죽이고 나서 서둘러 신설한 마법, 주술 기구이기도 했다.
작동 방식은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가진 건축물이었다. 주력이 들어오고, 북부 일대의 하늘을 뒤덮는다. 그것이 사라질 즈음에 마력이 들어오고, 그 주술 거미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 힘을 쓴다.
자연의 주력은 퍼지기 좋아하는 성질을 지녔기에 퍼뜨리기 좋았고, 이를 마법을 통해서 주변을 해석하는 식이었다.
오로지 엘프들의 동향만 파악하는 것이었기에 북부 영향권을 넘어 제국 외곽지역까지 닿아있었다.
드낙은 분명히 엘프에 대한 소식을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큰 투자를 할 만했다.
보글보글.
한쪽에서는 둥둥 떠 있는 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내부에는 계란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의 흐름이 따라서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삶은 계란은 단번에 튀어나와서 따로 그릇에 알아서 담겼다. 또 물에서 계란이 딱 옮겨지자 생계란이 또 쏙 들어가 졌다.
마법의 힘이었다.
검은 뿔쥐는 출출한지 계단을 깨서 고대로 5알을 집어먹었다. 옆에 있는 소금도 능숙하게 손으로 쥐고 입에 털어 넣었다. 아주 꿀맛이었다.
우우우웅!
황금 밧줄이 붉게 변했다.
“찍찍! 엘프들이다!”
“제국 외곽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숫자는 3천! 이놈들, 침공이라도 할 생각인가!”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엘프 선봉대의 등장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백 명만 되어도 성 하나는 걸레 짝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엘프들이었다. 드낙에게서 악마의 힘을 받고 있었음에도 아직은 하등 종족에 불과한 게 검은 뿔쥐들이었다.
감히 엘프들의 군세를 보고 침착할 수 없었다.
“빨리 이를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 알려라!”
“뜨나악!”
핏빛쥐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나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복수적인 정보가 똑같이 들어가서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3천인지, 3천3천 합쳐서 6천인지, 정확한 숫자에 오해의 소지가 생겨서 전파 속도가 늦어졌다.
핏빛쥐가 제국 외곽에 나타난 엘프 선봉대 3천의 존재를 드낙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드낙은 벌러덩 뒤집혀 있었다.
“때려쳐. 안 해.”
동작을 외우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마치 떳떳한 직업을 가지고 또 수능을 치는 기분! 말도 안 될 정도로 귀찮은 일이었다.
현대인이라면 응당 포기하는 게 정상이었다.
20년이 넘게 지났는데 또 수능 같은 끔찍한 암기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그 어떤 자해와도 강력한 자해였다.
결국 드낙은 중립신과 흥정을 시작했다. 물론 불평불만도 토로했다.
“아니, 난 분명히 초월자가 되었는데 왜 기억력은 그대로냐고.”
“신은 만능이 아니다. 거기에 그대는 반마다. 온전한 초월자라고 할 수 없지. 그저 너 자신이라는 객체가 초월자의 반열에 올랐을 뿐이다.”
초월자라고해서 그들 간의 차이가 싹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특징이 남고, 특성이 잔존했다. 그걸 뛰어넘는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종족근본이 낮을수록 커졌다. 드낙처럼 인간 중에서도 범인, 노력해봤자 이류 수준인 존재는 초월자가 되어도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정말로 거기서 거기인 건 아니었다.
“그저 객체 특성이 남다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점점 적응해나가는 것이지.”
중립신의 말에도 드낙은 마음이 급했다. 이곳에서 떠나기 전에 성과를 크게 내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다.
“기억력을 확 올리는 능력을 만들고 싶다. 어차피 나 혼자서 쓸 생각이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짜고 싶은데...”
“나보고 짜달라고 말하는 건가?”
“나보다 능력을 잘 만들잖아. 효율성에서도 차이가 심하고.”
반마에 불과한 게 현재 드낙이었다. 꽃피우기 전까지는 초월자라고 하기에는 많은 게 부족했다. 그는 아직도 반마였다. 악마의 힘을 최대한 많은 곳에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건 명확한 단점이었다.
“3천의 업을 내라.”
“웬일로 싸게 해주지? 의심스러운데?”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쓰니까 배려해주는 것이다. 넌 이제 인간이 아니다. 무기를 쥘 필요조차도 없지.”
압도적인 초월의 힘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오히려 그런 말에 담긴 뭔가를 눈치챘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마치, 처음 사기를 당하는 사회초년생의 요상한 직감과 유사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드낙은 강력한 기억력을 소유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류의 흐름에 대한 기억력〉이었다. 오직 대련 장면에 대한 완벽한 기억능력을 제공하는 능력이었다. 중립신답게 매우 효율적으로 능력을 제공해줬고, 드낙의 그릇 중에서도 아주 얕은 부분만 차지했다.
드낙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또한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있었다. 중립신의 챔피언에서 벗어날 때부터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중립신이 받쳐줬었다.
중립신을 통해서 유사 일류의 흐름을 완성하게 된 드낙에게 비보(悲報)가 날아왔다.
“그, 그그그게 사실이냐? 3천? 3천 명이라고?”
“뜨나아악! 사실입니다. 하늘의 거미줄은 매우 미약한 힘이고, 엘프들조차도 자연 마력이라고 느끼고 있을 정도로 나약하고 음흉한 정보 마법입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북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큰일이다!”
3천이면 무시무시한 숫자였다. 어찌 될지 몰랐다.
“당장 새도우 위스퍼로서 검은 양피지를 돌려 북부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그들은...대항할 수 없다.”
마법 폭격기 3천이 출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막지 못하고, 막는다고 하더라도 하루도 버틸 수 없었다.
‘엘프 원정대가 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적극적 공세를 펼치다니?’
인간 상대로는 엘프 원정대도 엄격한 기준 아래에 내보내던 게 엘프들이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매우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 영혼 제국이 아니라 엘프가 먼저 쳐들어왔다. 괴상한 일이 일어났다. 대예언과는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영혼 제국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영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엘프도 더 신경 썼어야 했나?’
엘프 원정대를 잘 속여넘겨야 하는 공작을 대단히 깊게 준비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영혼 제국이 더 강하니까, 남부 왕국에는 전혀 손을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엘프는 남부 왕국, 인간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국력을 엉뚱한 곳에 2차, 3차 이상으로 계속 소모할지도 몰랐다.
그 1차전이 바로 3천의 엘프 군대였다.
‘그들을 처리하면?’
5천의 엘프 군대 아니, 몇만의 엘프 군대가 찾아올 터였다.
인간이 엘프를 이겼으니, 영혼 제국보다도 더 격렬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했다.
탁!
드낙이 무릎을 쳤다.
‘이래서 영혼 제국이 시간을 벌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초기 혹은 중반까지는 엘프가 크게 주도하고, 후반에 인간에 힘을 써버려서 엘프를 엎어치기로 역전하는 그림일 수 있었다.
물론 드낙의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우 그럴듯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엘프를 죽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나서서 머리에 땅을 박고...아니, 땅을 머리에 박으면 아니지!’
드낙이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인지했다.
“후우...”
심호흡을 했다.
엘프의 위대함이 그의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든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제갈량이 된 기분에 심취해서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엘프를 잘 다독거려야 한다!’
드낙이 단번에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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