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6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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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드낙이 침을 꼴깍 삼켰다. 동부 왕국의 세수 중에서 3할을 차지했던 기관차 사업이었다. 물론 공공사업이 많았기에 들어오는 돈이 꾸준하고 많았지만, 돈을 쓴다는 게 문제였다.
‘무섭다.’
그 기관차 사업이 3년 동안 주목할만한 성과도 내지 못했고, 제대로 개발하지도 못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노력이 있어야 했고, 관심이 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절대 발전하지 않았다.
‘내가, 진시황보다 못한 놈이 된 거나 다름없잖아? 이게 말이 돼?’
그렇게 하찮게 봤던 진시황이다. 하지만 나라의 세수를, 그것도 매우 유동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기업이나 다름없는 현 왕국의 세수를 3할이나 쏟아부으면서 정작 필요할 때 쓸 수 없었다.
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사람을 혹독하게 다루면서 만리장성을 쌓아 치안을 확보한 진시황제가 오히려 나을 정도였다. 결과론적으로 드낙은 돈을 허탕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에 쓸 보급 수단인 기관차를 전쟁을 앞두고 쓰지 못하니,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보다 못한 새끼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헉!”
드낙이 이내 〈자주포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벼락처럼 그의 머리를 때렸다. 겁이 덜컥 났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또 엄청난, 엄청난 돈과 이권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크와 드워프에게 맡겼던 프로젝트였다. 외주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종족이 달랐기에 이권까지 내어줬다. 오크는 교역에 있어서 주력 상품에 대한 관세를 30%나 싸게 덜어냈다.
‘이것까지 실패하면 난 진짜 진시황보다 못한 놈이 된다.’
마치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그냥 무너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원은 자원대로 쓰고, 본 목적에 쓰지 못하면 그 꼴이 될 것이다.
“이미 늦었겠지.”
드낙이 몸에 힘을 풀며 눈을 감았다.
분명, 자주포 프로젝트도 개망나니처럼 해놨을 게 분명해 보였다. 엔진조차도 못 만드는 것들이었다. 제대로 된 걸 만들 리가 없었다.
‘망했어! 아주 그냥 다 망했어!’
속으로 고함을 지르고 드낙은 백설산맥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자주포 주둔지였다. 그곳은 백설산맥으로부터 남쪽 10km 떨어져 있는 〈외로운 산〉이라는 이름을 지닌 산이었다. 백설산맥의 산들과 똑같이 매우 험하고, 높은 산이기도 했다.
오크들의 대예언을 정확하게 카운터치기 위한 곳이기도 했다.
산맥 주변으로는 매우 삼엄한 오크 순찰대가 대형 멧돼지와 늑대를 타고 다니고 있었고, 인간들과의 교역 증거나 다름없는 말도 타고 다니기도 했다. 또 인간들의 늙은 말은 오크들에게 질 좋은 육류 공급품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근육이 발달된 산짐승을 많이 먹기 때문에 희소하게 다 늙은 말고기는 오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었다. 값도 쌌다.
너도나도 늙은 말고기를 납품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오크들이다.”
오크 순찰대의 늠름한 모습은 실로 전사다웠다. 저들을 많이 키워서 제국 전쟁에 쓰고자 하는 게 드낙의 속마음이었다. 특히나 남부 왕국보다 본거지가 위에 있었기에 오크들은 자연스럽게 검은 뿔쥐들의 방파제가 될 수 있었다.
오크들에 대한 식량 보급은 초기부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오크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식량 보급을 통해서 오크들이 교역을 통한 식량 수급에 크게 의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 완벽하게 통하고 있었다. 오크들의 농업 기술은 형편없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은폐된 토성의 입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번에 화살과 창이 날아왔다.
터더더더덩!
오크들의 힘이 워낙 강하고, 오크 나무로 만든 활은 장력이 대단했다. 그 덕에 소리가 크게 났다.
“난 동부왕국에서 온...”
터더더더더덩!
“동부왕이다! 인간들의 왕!”
“아얄타! 오랜만에 내 도끼에...동부왕?”
움막에서 튀어나오는 대전사 하나가 벌거벗은 채로 덜렁이를 덜렁거리며 도끼 한 자루를 쥐고 호쾌하게 외쳤다. 대전사 중에 가장 실력이 미천해서 이곳으로 끌려온 대전사였기에 말 그대로 가뭄의 비처럼 소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그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동부왕이라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만, 이놈들! 그렇게 자주 본 몽타주를 보고도 모르느냐!”
“동부왕이면 엄청난 실력자 아닙니까. 한 번 몸이라도 섞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젠데?’
옆에서 활을 쏘던 오크 전사가 대전사의 외침에 대꾸하자 대전사의 귀가 팔랑거렸다.
‘동맹군이니까 설마 죽이겠어? 이거야말로 합법적 대련 아닌가?’
대전사가 단번에 몽타주가 그려진 것을 주욱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나와 붙어보자, 이 침입자 놈아!”
드낙은 황당해 했다. 자신과 안면이 있는 대전사였기 때문이다. 그가 팔짱을 끼고 노려보자 대전사는 흥이 식는 걸 느꼈다.
“젠장할, 동부왕! 대련 한 번 하자!”
“이기면 뭐해줄 건데?”
“예쁜 오크 여자를 소개해주지! 아니, 내 딸과 하룻밤 자게 해주마!”
“싫다!”
드낙이 칼같이 자르자 살키흐 크후루-(바람 손가락, Salkhi Khuruu)가 불같이 화냈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난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어서 자주포를 봐야겠다!”
“아, ‘자주’-포를 보겠다는 건가?”
띄워서 말하는 모습에 드낙의 등골이 오싹했다. 자주포와 자주 포는 확실히 달랐다.
“내, 내가 초장거리 대포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게 자주포라고...”
“엉? 자주색 대포라고해서 자주-포라고 들었는데.”
드낙의 눈이 뒤집혔다.
“허헉, 헉!”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은 감각은 실로 섬뜩했다.
“아, 앍! 아아악!”
드낙이 머리를 헝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크들이 뒷걸음질 쳤다.
“아니, 갑자기 왜 광인처럼 되어버렸어? 자주-포가 어때서? 내가 보기에는 아주 늠름한 대포인데? 자주색인게 좀 흠이긴 하다만.”
“과연 대전사다. 동부왕도 싫어하는 게, 역시 자주색이 문제였다.”
오크들이 가슴 근육을 불룩거리며 서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산맥에서는 그렇게 강고한 종족으로 보였지만 아군이 되고 나니 동네 바보형이나 다름없었다.
“으아아아아악!”
드낙이 땅바닥을 굴렀다. 마음이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데, 해소할 수가 없어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마음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다.
‘끄, 끝났다!’
황당한 것에 돈을 펑펑 썼다고 역사에 남기게 될 것이다. 낭비가 많은 군주가 아니라 돈을 못 써서 안달이 난 쩐군주, 쩐주로 불릴지도 몰랐다. 아니, 지금 당장 들을 수 있어 보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다.’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반드시 이 프로젝트만은 바로 잡아야 한다!’
“자주-포는 아직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줬지?”
“인간들이라면 철을 보급할 때마다 봤지. 상인들이 특히나 눈독을 들이던데.”
“뭐라! 그렇게 중요한 걸 왜 보여줘!”
“말 고기를...줘서?”
“나쁜 상인들은 아냐. 공짜로 고기를 많이 주니까.”
드낙이 한숨을 탁 내쉬었다. 보안 매뉴얼 자체가 없음을 깨달았다. 적군일 때는 철두철미한 사냥꾼이 오크였지만, 한 번 아군으로 생각하면 듬직한 형님이 되어버렸다. 그 울타리는 매우 컸고, 넓었다.
아군이 되면 실로 바다와도 같은 큰행님이 바로 오크들이었다.
“드워프들은 뭐했어? 걔들을 안 막고.”
“자주-포를 좋아해서 거기에만 집중해있지.”
“아주 명예스러운 대장장이들이다. 주술사만큼이나 존경할 만하지.”
“드워프라는 게 아쉬울 정도다.”
오크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 했다.
드낙은 서둘러 산맥 위로 올라갔다. 아직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으면 된다. 자주포의 구조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지만 그래도 현대인으로서 본 게 있다.
‘현대인의 자존심을 걸고, 바로잡아 보이겠어!’
드낙이 외로운 산맥 위로 올라갔다. 곳곳에 전투를 대비하여 자주색을 띈 대포, 자주-포를 놓을 포대가 마련되어있었다. 자주-포는 배치되어있지 않았다. 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부활의 못에서 거체가 튀어나왔다. 크기만 따지면 트롤급, 중형 몬스터였다. 하지만 외양은 헤드스 하이에나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허나, 기형적이다.
“쿠륵, 꾸에에엑.”
헤드스 하이에나 여왕 발바룽이 못에서 나오자마자 입에서 연금술로 만든 물약을 토해냈다.
“그하학. 헉헉. 헥헥.”
폐병 걸린 환자처럼 숨을 가쁘게 쉬었다.
물기가 묻은 그의 눈이 깜빡거렸다. 그 눈에는 긴 흑발에 새하얀 피부 그리고 엘프에게서는 보기 힘든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 찬 녹안(綠眼)을 지닌 락테아 시오가 비쳤다.
그녀는 조금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흥분해있었다. 검은 뿔쥐가 크게 관여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직접 손을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좋아. 천천히 움직여.”
괴물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오로지 〈생식 능력〉만 필요한 발바룽은 누구보다 빠르게 먼저 육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프 계급 중에서도 높은 법정자에 있던 락테아 시오 덕분에 단기간 만에 많은 능력치가 준수한 수준을 지닌 여왕이 탄생할 수 있었다.
턱!
사람의 손이 어깨에 달려있고, 이를 통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발바룽은 그전까지는 그저 검은 꿈에 속박되어서 지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야...여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물약을 한 번 토하고 나니 그제야 발바룽은 다른 곳에서의 감각을 느꼈다.
손으로 만져지는 흙의 감촉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어.’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그 몸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중형급 괴물이었기에 덩치가 컸고, 상체는 앙상했으며 하체는 부풀어져 있었다. 출산을 위해서 하체에 생명력이 집중된 탓이다.
매우 기형적 구조를 지녔다.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설계된 생명체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괴물이었기에 상체가 인간보다 강한 것은 당연한 소리였고,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컥, 커억. 쿨럭, 콜록!”
주르륵!
물약이 다시 한 번 쏟아져나왔다. 손을 떠는 발바룽. 분명 두려운 것이다. 이 육신이 혹시 잘못되었을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 폐에 차있던 물약을 뱉어내는 것뿐이니까.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야.”
락테아 시오가 침착하게 발바룽을 안심시켰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고, 벽까지 허물어진 락테아 시오는 작은 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발바룽의 상태 또한 손바닥 안이었다.
곧 진정이 되자 락테아 시오는 몸의 상태에 대해서 질문했고, 특별한 이상을 찾을 수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성공이다. 역시! 역시...! 악마의 힘이야. 육체의 유지력이 실로 탁월해. 흑마법사들이 왜 키메라를 그렇게 쉽고 수월하게 운영하는지 알겠어. 정말 놀라워...”
락테아 시오의 새하얀 손이 발바룽의 몸을 더듬었다. 그녀는 마치 신이 된 기분을 맛보았다. 그녀가 만든 육신이, 거침없이 뛰는 심장의 맥동이 느껴지는 혈맥이 손을 타고 그녀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아아, 나도 이 힘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또한 드낙의 피를 원했다. 분명 그는 칭찬해주며 자신의 피를 그녀에게 흘려줄 것이다. 그것을 받아먹고, 핥아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검은 뿔쥐들에게 요청하고 싶다. 우리들의 신에게 말씀드릴 일이 있다. 매우 중요하니, 가서 전해주었으면 한다. 크릉. 크릉.”
대형화된 헤드스 하이에나. 거기에 하체가 비대한 발바룽은 태어나자마자 드낙을 뵙기를 요청했다. 이는 검은 뿔쥐를 통해서 드낙에게 향할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락테아 시오가 궁금해했지만 발바룽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발바룽은 눈을 감았다. 벌써 자궁에서 키워지고 있는 자식들이 느껴졌다.
‘내 자식을 통해서 이곳에서 권력을 잡는다.’
발바룽은 다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드낙의 총애를 받아서 외계로 같이 나아간다. 그 끝에 그는 초월자가 되는 상상까지 했다.
‘검은 뿔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한다면 헤드스 하이에나와 나는 능히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눈을 감은 발바룽이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모습을 락테아 시오는 조금 바라보다가 이내 신경을 껐다. 자신 또한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다. 무너진 벽을 지나며 수련해야 했고, 양피지를 써서 불파겐 마탑에 마법 지식을 전수함과 동시에 검은 뿔쥐 마법사들이 하고 있는 부활의 못 프로젝트를 틈틈이 검수하고 관리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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