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6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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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고 살아서 권력을 탐하고, 나이로 후배를 찍어 누르는 엘프들의 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회였다.
그렇게 경직된 사회풍토는 그들을 결코 리스크를 손에 쥐지 않게 했으며, 오로지 이득만을 취하려는 자들이 된 지 오래였다. 또한 현상 유지를 좋아했다.
그 결과로 영혼 제국과의 지지부진한 전쟁이 일어났다.
몇 년이나 지속할 정도로 전쟁이 끝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혼 제국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마법 화력을 지닌 엘프 때문에 총공세를 펼쳐도 소득이 없었다.
엘프의 경우에는 영혼 제국을 강하게 치기에는 위험요소가 컸다.
전쟁의 변수는 엘프조차도 예측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말만 전면전이지 장거리 마법 타격으로 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드워프 제국의 참전을 알리는 게 끝이라 생각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허어...”
엘프 의원이 감히 입을 놀리지 못했다. 그 입술이 오물거렸다. 애새끼처럼 옹알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단어를 밖으로 내는 게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곳은 대의회였다. 다른 곳에서 중립신이나 부활에 대해서 언급하는 태도와는 다르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수천 명의 노괴들이 모여있는 엘프 대회의는 실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모두 마법구에 손을 올려 놓고 해당 정보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싸늘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점성술사들이 초기에 있었던 별의 움직임도 다시 본래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경직된 분위기에 엘프 의원이 부드럽게 하려고 한소리를 했다. 실로 그럴듯한 근거도 들었다. 별! 별이 원래 있던 자리에 왔고, 중립신에 대한 소리는 헛소문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바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만약 중립신이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이를 통해서 힘으로 별을 통제하고 있다면! 당연히 본래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괜히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별이 지닌 힘은 상당했다. 그리고 중립신은 한참 전에 별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었다. 드낙에게 별의 힘을 내려주지 않게 되었을 즈음 별은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평범하게 행동했다.
모두 중립신의 간계였다.
“가, 간악한!”
“신이 어찌 그렇게 비열할 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불멸자가 필멸자를 두려워하다니요? 쥐새끼처럼 숨어서 별을 제어했다? 믿기 어렵습니다.”
곳곳에서 반대하는 소리가 드높아졌다.
불확실성을 찰떡같이 믿는 건 엘프가 아니었다. 저들이 하는 건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아주, 아주 위험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대륙 북쪽의 황무지를 경유해서 도착한 드워프 사절단보다 더 빨리 왔어야 할 남부 왕국 사절단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엘프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립신의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립신은 남부 왕국에서 부활하려고 하고 있었다.
“시기가 매우 적절한 것이 역시 업(業)과 격(格)을 지닌 신답습니다. 무섭습니다.”
때를 잘 타고난 것이 아니다. 이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만들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모든 신이 그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또 모든 대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 하나의 권능, 전초극(戰超克)의 권능으로 대신에 오른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이상할 정도로 대단한 것뿐이었다.
수많은 과정, 장면, 결과를 모두 디테일하게 구상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인내심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몰랐지만 권능을 하나만 쥐고 있는 카사다민 또한 버린 것이 있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했다. 둘 모두를 잡는 건 큰일일수록 힘들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를 버렸고, 강력한 대계를 짤 수 있는 세상의 베틀이 될 수 있었다.
대신에 오른 자가 권능을 하나만 가지고 있다는 건 다른 하나를 취했다는 뜻이었다. 대계(大計)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지금 이 대륙의 형세를 기다리고, 그리고 잘 공예하여 그럴듯하게 빚어내는 건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라고 해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무서웠다.
“진정하십시오. 영혼 마법이 중립신의 작품입니까? 아닙니다. 드워프 제국은 친중립신을 표방할 것 같지만, 적극성은 없습니다. 열의를 품고 저희들에게 전쟁을 선포할 리가 만무합니다.”
“드워프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영혼 제국이 있기에 드워프들을 되려 견제하게 된 격입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걸 더 좋은 일로 만들려면 영혼 제국이 있을 때, 중립신의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심처를 쳐야 합니다.”
그 심처는 남부 왕국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을 모조리 멸(滅)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엘프들은 멸족할 수밖에 없었다.
필멸자 중에서 오우거와 다르게 정신적, 영혼적, 마법적으로 완전하고 완벽한 종족이 엘프들이다. 개체수가 많으면 신조차도 죽일 수 있었고, 이런 종족을 신이 품을 리가 만무했다.
적어도 엘프들은 중립신이 자신들을 내칠 것이라 여겼다.
“양면전쟁이라니, 미친 짓입니다. 이제 정말로 총력전으로 들어가 전면전에 근접전투도 마다치 않고 진격하여 영혼 제국부터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 어떤 강성대국도 양면전쟁으로 승리한 전례가 없었다.
매우 위험했다.
“실패하면 끔찍한 결과만이 기다릴 것인데, 어찌 그렇게 쉽게 선택하려고 하십니까.”
“우리 엘프들의 그런 고정된 태도가 도리어 중립신에게 예측됩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중립신이 우리를 내친다는 증거가 적지 않습니까?”
“드워프에게는 연락하고, 우리에게는 징조 하나 보여주지 않지 않습니까?”
“거기에 우리는 드워프와는 다르게 중립신을 배척했습니다. 이제 와서 그가 우리를 품어주겠습니까? 반드시 이를 저지해야 합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결국 아직 부활하지 못했다는 게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인간의 씨를 말린다면, 근본이 인신인 중립신은 그 갈기갈기 찢긴 몸을 다시 회복시킬 수 없을 겁니다. 중요한 건 인간들입니다. 그들만 말살시키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지만!”
“그래도!”
5일의 격론 끝에 엘프들은 원정군을 남부 왕국으로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원정군에 불과했다. 모든 엘프 전력의 1% 정도에 불과한 원정군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고작 1만7천 800명의 엘프 원정군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대의회의 수천 명의 엘프 의원들은 우레와도 같은 박수를 쳤다.
“큰 결과입니다! 대단한 결단력입니다!”
하찮고 열등하며 버러지 같은 인간 종족에게 1만이 넘는 엘프 군대를 보내는 일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엘프 사회의 혁명을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많은 원정대원이 남부 인간들을 멸하는데 출정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드워프의 군사활동 덕분입니다. 영혼 제국의 역량을 완화했기에 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영혼 제국의 영혼 진지를 드워프 게릴라는 확실하게 처리해나갈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남부 엘프원정군의 전투 인원은 1만5천 명이었고, 나머지 2,800명은 종자를 수송하며 생체 마법을 통해서 엘프 전투원에게 보급을 하는 보급 인력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비행할 수 없었기에 육로를 통하여 남부 왕국까지 가야 했다.
출정식에서 수많은 엘프 의원들이 모두 연설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보름이나 출정식을 하고 나서야 남부 원정군이 출발하게 되었다. 원정군에 속한 엘프들의 표정은 전쟁터에 나가는 이들의 표정이 아니었다.
비행으로 싹 날아올라서 마법 포격을 하면 인간 군대가 싹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마실을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 포격 속에서 죽어갈 열등종족이 그들 눈에 선했다. 그래서 재미났다.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프의 위대함을 알리는 길이다!”
대답도 없고, 환호성도 없었다. 당연하기 때문에 환호하지 않았다.
*
드낙은 도노와 카이야를 찾았다. 마왕 발라쿠와의 싸움에서 드낙에게 생명으로, 희생으로 보답해준 검은 뿔쥐들을 전쟁터에서 소모하고 싶은 마음이 적어진 그는 고블린과 크놀은 물론이고 동부 인간에 발바룽을 헤드스 하이에나 여왕으로 만들고 있었다.
도노와 카이야에게도 신경을 써줘야 했다. 그들도 뭐라도 해야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드낙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검은 뿔쥐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만큼 드낙에게 희생적으로 죽어간 이들이 적었고, 검은 뿔쥐들이 처음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대산의 남방향, 햇빛이 오래 머무는 곳의 능선은 싹 다 갈아엎어져 있었다. 나무는 물론이고 우거진 수풀도 없었다. 그렇다고 계단식 농장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꽃.
오로지 꽃만 가득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꽃 반, 꿀벌 반이었다. 엄청나게 숫자가 불어난 꿀벌들이 머리를 꽃잎 속에 처박고 엉덩이에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드낙의 눈에 꿀벌을 잡아먹으려고 붕붕거리는 날갯짓을 하는 말벌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림자 하나가 그런 말벌을 덮치고 지나갔다.
카이야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이 날갯짓할 때마다 날개 안쪽에 있는 새하얀 털이 드낙의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하, 이것 봐라?”
드낙은 그림자로 변해서 빠르게 카이야를 찾을 수 있었다. 벌꿀 두 개를 양옆에 두고, 한 번은 오른쪽 벌꿀을 냠. 또 한 번은 왼쪽 벌꿀을 냠하고 있는 카이야가 들어왔다. 황당한 것은 그렇게 먹으면서도 짝짓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이건 좀 심하다.’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허리를 놀리는 야동을 드낙은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까마귀를 통해서 그와 비슷한 것을 보게 되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았지만...
“이노오오옴!”
드낙이 냉큼 고함을 지르자 카이야가 혼비백산하며 튀어 올랐다. 정말 빛과도 같은 속력이었지만 드낙인 걸 알고 나서야 다시 내려앉았다.
“하하하.”
드낙이 웃으며 자연산 벌꿀에 슬쩍 손을 대려고 했는데 단번에 카이야한테 쪼였다. 물론 강하게 쫀 것은 아니었다.
드낙을 살짝 건드릴 정도로 카이야는 벌꿀을 소중히 하는 듯했다.
그는 기어코 벌꿀을 한 입했다.
‘역시 자연산이 최고야.’
다른 것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함이었고, 건강해지는 맛이었다. 드낙은 카이야가 하는 일들을 두루두루 살폈다.
‘이거다.’
본래라면 다른 걸 궁리했겠지만 드낙은 도노와 카이야를 양봉업자로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다. 천연벌꿀을 생산하는 일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지성종족의 돈을 빨아들일 수 있지.’
돈되는 사업이었다. 거기에 인력을 쓰는 게 아니라 짐승을 쓰기 때문에 임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먹을 것만 챙겨주면 될 일이었다. 벌꿀이 제법 소비되겠지만, 알아서 계속 규모를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순수익이 발생할 터였다.
‘대산 너머에 있는 나무를 싹 다 밀어버리고, 꽃밭으로 만든다.’
드낙의 머리가 꽃으로 가득 찼다. 또, 꽃이 마르면, 그것을 거둬다가 찻잎으로 만들면 더욱 이득이었다. 산업 두 개가 뚝딱 만들어졌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게 꽃차였다. 다른 찻잎과는 다르게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있기에 인기를 몰 수 있었다. 건강에도 좋았다. 맹물 먹는 것보다 데워진 꽃차를 마시는 게 더 좋았다.
“도노는 이제부터 파수꾼이다!”
“영토 확장을 그만두고, 카이야의 꽃밭을 지키겠습니다.”
도노가 중후한 음성을 냈다.
“카이야는 섬세하게 벌레를 잡아먹어라! 아주 광범위하게 열씸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깍.”
된소리를 내며 열심히를 드낙이 아주 강조했다. 또한 이들에게 지성과 이성을 심어줄 생각을 했다.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이족보행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도노와 카이야도 지성종족이 되어야지.’
그럴 필요성은 없었지만, 끝까지 같이 가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물론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꾸준함이 요구되는 작업이 야수의 이족보행이었다.
〈지성과 이성의 쪼개진 조각〉을 도노와 카이야 그리고 그 패밀리에게 선물해주었다. 그 선물은 활짝 열려서 진화와 발전을 정확하고 치밀한 발전 방향성을 제시하여 움직이게 할 터였다.
숨구멍과 식구멍이 한 곳에 몰려있는 인간 같은 진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진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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