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6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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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이 게제라스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이마는 따뜻했지만, 그의 반마(半魔)로서의 격(格)이 게제라스의 문드러지고 썩은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강철 방패에 얻어맞은 부러진 코뼈나 다름없었다.
‘엉망이다. 엉망...’
피곤함으로 인해서 영혼이 크게 위축되어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또 알게 모르게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관계를 다져나가던 여성 또한 떠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가정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자 게제라스를 떠난 것이다.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지만 드낙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게제라스에게 영원히 안으로 굽는 팔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는 결코 깨어날 수 없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하여 정신 자체가 피폐해져 버려 육신이 아무리 만전(萬全)해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가 다시 자력으로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신성력을 너무 믿었다. 신성력 또한 만능은 아닌 것인데...’
신성력은 게제라스의 영혼과 정신만은 완벽하게 치유하지 못했다. 큰 도움이 되었지만 계속되는 과로로 쌓이는 앙금을 깨끗하게 치우지는 못했다.
그 결과가 이렇다.
‘남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라의 이인자조차도 제대로 대우해주지 못한다고 여길게 분명했다. 드낙은 다시 게제라스의 몸을 바라보았다.
‘......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육체가 영혼과 정신을 치유하는 몸을 가져야 했다. 중립신과 협동해서 능력을 빚어내면 그런 능력을 보유한 육신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게제라스 상대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악마의 육체에 잡아먹혀서 이성을 상실하고, 지성을 잃고, 야수가 될 수 있었다. 그저 괴물이 되는 것이다. 그건 더는 게제라스가 아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육체를 바꾸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게제라스의 영혼은 이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문인(文人)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건 아니었다. 게제라스는 강하다. 그의 육신은 물렁물렁할지언정, 그 정신과 고귀함이 문인이라서 약할 수는 없었다.
‘너무 약화되어 있다는 게 문제지.’
드낙은 금방이라도 새로운 육신을 그에게 주고 싶었지만, 완벽에 가까운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장 할 수가 없었고, 고민이 필요했다.
“5부 임명식은 보름 뒤로 미룬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전하라.”
냉정한 드낙의 말이 튀어나왔다. 드낙은 자존심이 원래 잘 없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중립신에게 향했다. 어느 때든지 검은 꿈으로 접속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럴 격이 되어있는 존재였다.
중립신 또한 단번에 등장했다. 그가 이런 좋은 일에 빠질 수가 없었다. 드낙에게는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지만 중립신에게는 업을 벌 좋은 기회였다.
“10만.”
‘어쭈?’
“그 정도로 대단한 능력인가?”
“대단히 까다로운 능력이다. 아주, 아주 나약한 존재에게도 줄 수 있는 선물이니까.”
격에 맞지 않는 힘을 갖출 수 있으며, 그 어떤 부작용도 없었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주는 일이다. 10만 정도는 받아야 했다. 한 마디로 게제라스의 값이었다.
드낙의 애정이 만들어낸 비싸디 비싼 대가였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위축되고, 약화된 정신과 영혼을 깨우고 보조하며 동시에 이를 변질시키지 않는 힘을 부여받은 육체라니. 특히나 악마의 힘이다.
‘어떤 능력을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최대한 인간적 모습을 담아내야 했다. 강철로 내부를 개조한다든가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보여줘 봐.”
“거래 성립이다.”
중립신이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천장으로 향하게 했다. 환영으로 이루어진 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제단이었고, 그 제단의 위에는 게제라스의 머리가 우두커니 있었다. 제단의 아래에는 늪처럼 피가 그득했고, 그 피들은 역설적으로 제단을 올라가며 게제라스의 목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다시 배출되기도 했다.
그 일련의 과정은 평범한 격을 지닌 자라면 모르겠지만, 드낙은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깊게 고민했다. 평범한 방법이 아니었기에 대단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특수한 능력이었다.
곧, 권능이었다. 허나 드낙은 이를 깨우치지 못했다.
일곱 번째 권능인 〈머리를 떠받치는 제단〉이 그렇게 드낙의 손에서 빚어졌다. 중립신 또한 이를 도와줬는데, 드낙의 제어력으로는 빚을 수 없는 고등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드낙은 중립신에게 1만의 업을 더 얹어줘야 했다. 확실히 중립신이 도와주면서 엄청나게 세심한 능력이 완성되었고, 그걸 본 드낙은 다음부터는 똑같이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권능은 영혼과 정신이 약화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매우 모순적인 권능이었다.
짐승이, 거대한 야수가, 악마가 인간을 떠받드는 형국이기 때문에 대단히 모독적이었다. 약자에게 큰절하는 강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세세한 부분을 도와줬음에도 권능의 발현과 안착에는 7일이 걸렸다. 혼자서 한다면 10일이 걸릴 터였다. 〈정신 세계의 피의 잔〉을 통해서 게제라스의 그릇을 더욱 넓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게제라스의 육체는 목 아래로만 변형되었다. 악마의 피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힘은 오로지 게제라스의 영혼과 정신의 영양분이 되고, 스스로 자해하여 바치는 공물이 되었다.
육체의 강함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유지가 목적인 능력인 셈이었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가능하지만 드낙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격이 오르고, 더욱 큰 벽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련하고, 지하 연합에 피의 거미줄로 교감하고, 연결하여 종족값을 높이고 인간에게도 하나씩 천천히 손을 뻗쳐가고 있었다.
게제라스가 눈을 떴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깬 것처럼 개운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드낙과 많은 중책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게제라스가 겁이 덜컥 났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고 있었습니까? 임명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드낙이 쾌활하게 웃었다. 몸을 들썩이며 겁먹은 게제라스의 모습은 영락없이 늦잠으로 출근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직장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동공마저도 수축할 정도였다.
“뒤로 미뤄뒀다.”
게제라스는 크게 사죄하였다.
그 이후에 보름 이후로 미뤄졌던 임명식도 잘 치러졌다.
본격적으로 하급 관리들의 조직 분할이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되는 일이었다.
“오부제관(五部制官)들은 앞으로 나와서 직위를 하달받으라!”
게제라스가 큰 목소리를 냈다. 한 번 쓰러지고 나서 그는 정말 활력이 넘쳐났다. 본래는 뒤에서 지켜보며 체력을 보존하거나 눈을 감고 졸기 바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매우 주도적으로 나설 활력과 개운함이 있었다.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오부제관들이 나와서 양 무릎을 꿇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들에게 드낙이 직접 관모를 씌워주고, 끈으로 묶어주고 다시 일으켜 세워줬다.
그들은 1명씩 다시 내려와서 좌측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짧게 연설을 해야 했다. 내청에서 벗어나, 외청의 또 다른 머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분권은 중앙 관청인 내청의 견제도구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자격이 있었다.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들의 목적과 포부를 말할 수 있었다.
“오로지 시민! 시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부제관 칼비누스(Calvinus)는 인구를 증진하고, 허무하게 죽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최대한 인력을 유지시키고, 관리하는게 그의 목표였다. 인구의 감소는 두고 볼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한다면 모든 분야에 툭툭 머리를 그냥 들이밀 수 있었기에 게제라스가 특별히 새도우 위스퍼에게 의뢰를 넣어서 선별한 자였다.
아주 독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모든 땅을 농지로 만들어 식량을 동화 1닢에 구매하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강성대국의 시작은 오로지 먹을 것입니다!”
식부제관 토마(Thoma)는 피부가 새까맣게 탄 자였다. 농민들과 자주 이야기하고, 그 가족 또한 농부였다. 농부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인부터 다양한 이들에게 간섭할 수 있었다.
사각형 얼굴에 후덕해보이지만 농사꾼 출신답게 깡마르고 잔근육이 화려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 뒤를 이어서 동부 왕국의 자원의 현황을 파악하고, 밀수품을 비롯해서 누수 자원을 파악하는 게 현재 주목표인 물부제관 베르트람(Bertram).
점점 경제의 규모가 커지며 자연스럽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 상인들의 부정부패, 독점과 담합과 협박 등을 꾸준히 관리하고 예방하며 중소 마을에 대한 강력한 관리 영향력을 확보하는게 현재 목표인 상부제관 트리스턴(Trystan).
비단 병사가 하는 일인 치안을 문인처럼 부드러운 자들을 통해서 피드백을 받아 이를 고치도록 하는 병사 및 기사들의 견제를 맡은 치부제관 오를란도(Orlando)까지.
오부제관들이 하나씩 연설을 끝마치고 내려왔다. 군중, 시민에게 확실한 키워드만 인식시켜주고 내려왔기에 길어도 다섯 문장 안팎이었고, 그 문장 내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연거푸 말하는 데 집중했다.
“십부부제관(十部副制官)들은 앞으로 나와라!”
오부제관이 관장하는 것을 돕는 열명의 부부제관들 또한 나와서 양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연설을 하지는 않았다.
우레와도 같은 박수소리가 나왔다. 매우 영광스러운 날이었지만, 기득권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오직 좋아하는건 드낙과 게제라스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기득권층의 싸움을 유발시키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기득권이 싸우고, 문과 문이 싸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민들에게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견제 덕분에 갑질이 줄어들고, 수탈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강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도우 위스퍼와 오늘의 일이 겹쳐지며 더욱 완벽에 가까운 부정부패 예방률을 보여줄 것이 기대되었다.
*
드낙은 그 다음으로 레이시아에게 맞춤형 능력을 부여해주었다. 그것은 권능이 되지는 못했다. 체질과 눈만 고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 쓸 수도 없었고, 그렇게 큰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천공의 눈〉은 레이시아의 시력을 좋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천성적 초월의 힘 거부 체질을 바꾸었다. 피의 잔이라 명명지은 권능으로 그녀에게 추가적인 악마의 힘을 부여할 수 있게 했고, 그 넓혀진 그릇에 담긴 악마의 힘으로 변질된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강화되었고, 체질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힘으로 짓눌러버렸다.
그날 일어난 레이시아는 눈이 확 밝아지는 걸 느꼈다. 협소한 시야를 제공했던 안경을 끼고 잤나 싶어서 손으로 얼굴을 만졌지만 안경은 없었다.
“아!”
레이시아는 직감적으로 이게 드낙의 덕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불편한 안경을 벗어 던지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안경 때문에 크게 제한된 시야도 넓혀져서 남들처럼 똑같은 시야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날 온종일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그 하늘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물론 드낙이 선물해준 안경은 목함에 고이 모셔두었다.
항상 시종이 머리를 빗겨줄 때, 그녀는 목함을 꺼내 자신이 사용했던 안경을 만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과거도 현재가 행복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법이었다. 또한 드낙의 은혜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오직 레이시아만 아는 비밀스러운 행위였다.
〈천공의 눈〉은 조금 변형되어서 북부 순찰자들에게도 돌아갔다. 물론 동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순찰자에 한했다. 또한 한 번 꺾이고 탈주한 순찰자에게도 똑같이 돌아갔다. 그들 또한 동부 왕국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신체의 강화와 더불어 시야의 확장.
순찰자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필요치도 않았다. 드낙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의 피를 수혈해야 했고, 그것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처럼 드낙은 차근차근 효율적으로 동부의 인간들에게 악마의 피를 뒤섞어서 힘을 키워주기 시작했다. 그건 서서히 하지만 착실하게 동부 인간들의 종족값을 높이며 알게 모르게 드낙을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중립신은 이를 그냥 넘어가 주었는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드낙이 다른 이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할 때마다, 능력을 부여해줄 때마다 그의 업은 피와 함께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그 업은 매우 적었기에 드낙에게 인지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업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드낙의 업은 야금야금, 쥐새끼 한 마리가 곡물창고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소모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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