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6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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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은 후방 지원을 원했다. 큰 세력이 그렇게 빠지니, 아주 편했다. 또한 신전은 약탈과 방화. 살인과 강간을 막기 위해서라도 큰 임무를 맡는걸 꺼릴 수밖에 없었다.
동부 왕국이 제안하고, 나아가는 전쟁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에 일그러진 짐승들을 처단하고, 남부 왕국의 시민들에게 평화를 주기 위함이었다. 고로, 그들의 방식이 인정받으려면 병사들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예쁜 여자가 무법지대에 있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다.
고로, 케이슨 성기사는 피 흘리는 이들을 최대한 치유하며 동시에 중소마을을 공략하며, 혹시 있을 게릴라를 막으려는 주둔군에 대한 신전의 감시 체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좋은 일이지.’
적어도 1군보다는 2군이 더 많은 명성을 거머쥘 수 있을 터였다. 세리안의 중립은 없다는 표명 아래 신전까지 정치에 발을 담갔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파벌이 나뉘었다고 해서 어린애처럼 굴지는 않았다.
세리안의 파벌 또한 신전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남부 왕국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내가 진격군을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길게이 중앙 사령관이 입을 올렸다. 그는 세리안과 공동 중앙 사령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또한 남부에 기반이 있었기에 남부 사령관인 아크온 몽펠리에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쟁쟁한 이들이 있는 구세력보다는 신세력이 나았다. 무엇보다 다이앤타의 어머니인 세리안은 강력한 직위에 있었고, 크레시미르의 어머니인 레이시아는 그저 왕비일 뿐이었다.
동시에 레이시아와 길게이는 하나의 핏줄로 연결되어있었다. 그가 세리안을 선택해도 그 문제 때문에 구세력에서 큰 역할을 얻지 못할 게 분명했다.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일말의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아니라고 믿는 이들은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잘리기 마련이었다. 또 되려 나중에 가서 그것 때문에 다른 곳에 붙어버릴 공산도 존재했다.
수많은 외부, 내부적 요인들로 인해서 길게이는 신세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흠...”
도렌이 상체를 움직이며 손을 원탁 위로 올렸다. 그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였다. 길게이, 아크온과 함께 사령관 직함을 지닌 도렌이었다. 몇 년 만에 사회 계급의 이동이 엄청났다.
“서부 사령관은 사병이 그리 많지 않은 거로 아는데.”
“소수라고 해도 대부분이 순찰자 출신이오. 전방에 안 설 이유가 없지.”
길게이에게 아크온이 도렌을 대신해서 대꾸했다. 순찰자에게 할 일과 권리 그리고 명성을 쥐게 해주며 시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이들로 만들게 해준 도렌은 순찰자들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보이지 않고, 멀리 있는 산맥에서 숭고한 임무를 행했던 이들이다.
그들의 공익에 대한 신념은 여전했다.
그 보답으로 순찰자 중 극한의 신념을 가진 이들이 아니고서야 도렌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그 덕에 도렌은 순찰자를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서부 사령관의 입지가 줄어들면 순찰자들의 입지도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순찰자가 도렌을 돕는 것이었다.
서로서로 지켜주는 형국이 만들어졌고, 이것은 큰 순환의 고리가 되었다.
‘그렇다면...나의 최대 경쟁자가 서부 사령관인가?’
길게이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크온 사령관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도렌의 정중한 말에 아크온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오. 이번 전쟁은 무혈입성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오. 사분오열(四分五裂)된 남부 왕국이 뭘 할 수 있겠소? 봄이 시작되어 각 1만씩 층 2만의 전투 군세만 유지해도 백기를 드는 성이 수두륵 할 것이오.”
‘저 놈이...’
길게이가 눈을 좁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너도 들어오라는 식으로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순찰자는 서부에서 악인을 잡는데에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아, 그렇소? 안타깝소. 이런 절호의 기회에...”
아크온은 아쉽다고 말했지만, 이미 모든 보고를 받아둔 상태였다. 서부 사령관은 현재 손발이 잘린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기 가문원이 없고, 세력도 낮다. 브릴리언트 가문원들은 쥐죽은 듯이 지내고 있었다.
이런 큰 사건에 머리를 내밀 수 없었다.
‘확실하게 답을 받았으니...’
아크온과 길게이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서로 미소를 지었다. 팽팽함은 유지되었고, 결국 함께 가며 확실하게 전공을 나누기로 했다. 이를 레이시아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른 외척의 왕비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건들거나 각을 세우고, 싸울 이유를 못 느꼈다. 또한 신전이 후방 지원으로 빠진 이상 쎄쎄쎄를 하며 함께 진군하면 될 일이었다.
“보급은 아무래도 도렌 사령관이 맡으셔야 할 것 같소만.”
“병사 하나 못 내드리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적어도 3위의 공적에 세워드리겠소.”
길게이와 아크온은 너도나도 도렌을 추켜올렸다. 또 3위의 공적을 약속했다. 큰 건 아니지만, 작은 것도 아니었다.
‘치고 나온다면 여기서 치고 나오겠지.’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역시.’
“말해보시오.”
“어떤 걸 원하시오?”
3명의 사령관이 모든 걸 주도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사전에 모든 걸 이야기해놓고 원탁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각자에게서 은궤 50짝을 받고 싶습니다.”
3위의 공적을 가져가고 은궤 100짝.
능히 들어줄 수 있었다.
“좋소.”
“어렵지 않은 일이오.”
단번에 결정이 났다. 원탁회의가 끝나고 도렌이 나오자 이스핀도 따라 나왔다. 벽에 기대면서 모든 걸 지켜봤던 이스핀은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미리 고개 숙일 거면 좀 더 뜯어내지. 은궤 100짝도 줬을 것 같은데.”
“그건 너무 많아. 전쟁 준비 때문에 물가가 높아지고 있거든.”
“상단 연합이 최대한 틀어막고 있잖아.”
“그래도 시민들의 심리까지는 막지 못하니까.”
더 비싸게 팔 명분이 있는데 싸게 팔 상인은 없었다. 시민들 또한 이해할 만한 사건이니, 어쩔 수 없을 정도였다. 진정시키려고 해도 조금만 벗어나면 비싸게 파는 보부상을 볼 수 있었다.
“엉? 어디로 가?”
이스핀이 엉뚱한 곳으로 도렌이 발걸음을 옮기자 물었고, 도렌이 눈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세리안 중앙 사령관께 가야지.”
“헉. 미쳤어? 박쥐 노릇을 하려고?”
“아니. 같은 가신끼리 서로 도움이 되는 거지.”
이스핀이 무릎을 탁쳤다.
그제야 도렌이 뭘 할지 깨달아서였다.
“햐. 그럼 은궤를 요구할 거야?”
“아니. 병사를 빌려야지.”
“뭐? 왜? 어차피 보급을 담당할 거면 신세력 보급도 담당해서 더 많이 이득 보려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하면 확실하게 3위의 공적을 획득할 수 있겠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야.”
“그럼 군대를 빌리면 어디로 갈 건데? 아니, 너가 갈 수가 없잖아.”
이스핀의 말에 도렌이 이스핀을 검지로 쿡 찔렀다.
“너.”
“나? 지랄하지마. 내가 왜 전쟁터에 가.”
“서부 사령관의 명령으로 가는 거지.”
이스핀이 도렌의 정강이를 깠다.
“악. 크흐흐.”
소리를 질렀지만 도렌이 웃음 소리를 냈다. 실로 유쾌한 웃음이었다.
“이런 제기랄, 서부 성채에서 오래 쉬어도 된다고 하더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이스핀이 절규했다. 하지만 그들은 병력을 받을 수 없었다.
“싫다.”
세리안이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도렌은 승천을 준비하는 청룡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자에게 기회를 주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스핀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숨겼다.
결국 도렌은 타협하여 은궤 100짝을 받아낼 수 있었다.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국가의 전공보다는 가치가 낮았다. 총 은궤 획득은 200짝이었고, 서부 개발에 쓰이게 될 터였다.
*
“어서 일해라!”
락테아 시오가 잠자고 있는 검은 뿔쥐 마법사들을 다그쳤다. 잠자고 있는 검은 뿔쥐의 양다리를 움켜쥐고 조금만 쑥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검은 뿔쥐들은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허으어억.”
“일할 시간이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위해서!”
락테아 시오가 깔깔거리며 모든 검은 뿔쥐 마법사를 기상시켰다.
눈을 비비고, 손에 침을 묻혀서 세안한 검은 뿔쥐들이 하나둘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늘 일감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변동이 없다! 궁금한 것이나 물어보고 싶은 것 그리고 막히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날 찾도록.”
“찍찍! 락테아 시오는 아무것도 안 한다! 명령만 한다!”
마법사 하나가 크게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락테아 시오에게 붙잡혔다.
“이 검은 털! 이게 문제지?”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이마에 있는 털을 뽑아서 땜빵 한 개를 만들고 난 다음에 락테아 시오가 마법사를 풀어주었다.
“자꾸 이렇게 불만을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대머리가 될 뿐이다!”
“크, 크윽...”
“또 내가 하는 일이 없다고? 난 전체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너희들에게 마법과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지! 불파겐 마탑에게도 양피지를 보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락테아 시오가 박박 소리를 지르며 기강을 한 번 잡았다. 그녀는 매시간 부활의 못을 돌며 감시를 빠짐없이 했다.
탁!
“찍!”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근육과 살부터 따로 도려내고,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대보고 확신이 들면 그때 붙여놓으라고! 안 그러면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일단은 대충 구색을 잡아놓고 그다음에 다시 검수를 하며 나아가야 한다.”
“알았다!”
“거기! 지정된 마법 외에는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피곤하다!”
“참아! 그 마력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어!”
락테아 시오는 곳곳을 누비며 검은 뿔쥐들이 알아서 키메라 작업을 할 수 있을 실력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은 느리고, 실패도 많이 하지만 숙련되면 금방 제작속도가 붙을 터였다.
드낙이 준 임무를 검은 뿔쥐 마법사에게 수행토록하고, 그 사이에 락테아 시오는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드낙이 엘프를 비틀었고, 그녀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그분의 오른팔이 되는 것.’
강력한 권위를 손에 넣고 싶었다. 이런 쥐새끼들이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탐욕에 물든 그녀는 녹안의 힘으로 검은 뿔쥐에 대한 혐오를 지우며 그들을 가르치는데 열일 했다.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엘프의 마도 공학을 검은 뿔쥐에게 전수해주고 있는 모습은 실로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락테아 시오는 개의치 않았다.
고정되고 완전했던 엘프 때나 위협스럽지 계속 성장하는 타락 엘프가 된 그녀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휴식시간이다! 기본 마법의 정교함을 높여주는 양피지를 풀어야 할 것이다! 잠자기 전에 확인할 것이니 외우지 못한 이들은 수면 시간이 1시간 더 늦춰질 것이다!”
“찌...찍...”
검은 뿔쥐 마법사들이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절로 축 처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은 마법 술식이 적힌 양피지를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야 했다.
이들 100명의 마법사는 키메라에 대한 지식을 대단히 높게 터득하기 시작했다. 매우 편향된 지식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잘 통했다.
〈키메라 전문 마법사〉들의 탄생이었다.
*
“도오끼! 도오끼! 도오끼이잇!”
가장 앞장서서 걸어가는 드워프가 소리를 꽥꽥 질러대었다. 지긋지긋한 여행 속에서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할 것도 이제는 바닥나서 그냥 가문 명만 외쳐대는 망나니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2천 명의 드워프 군대가 중앙 제국의 서부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어떤 보급 부대도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게 드워프라는 존재였다. 육체가 생명체 같지 않았다.
“흡! 흡!”
또 다른 드워프는 조각칼로 나무를 깎고 있었다. 물론 평범하게 깎지 않았다. 속도를 높여서 정교하게 깎는 게 힘들게 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패널티를 먹인 것이다. 걸어가면서 조각해야 했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심심해서 돌아버릴지도 몰랐다.
당연히 척후병력도 운용하지 않았다. 기습하면 얻어맞고, 역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덕에 드워프 군대의 중앙에는 수레에 쿨쿨 잠자고 있는 드워프가 수십 명 있었다.
허무하게 기습당해서 상처를 입고 잠자고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땅에서 움직이다가 그대로 집어삼키는 중대형 몬스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드워프들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았다. 똑같았다.
“젠장할. 또 언덕이야?”
도끼 노래를 부르던 〈파도 도끼〉가 짜증을 냈다. 분명 지도상에는 영혼 제국의 국토에 들어섰지만, 영혼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엘프가 거짓말한 거 아닐까?”
“그놈들이 우리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
의심하는 드워프도 그런 말을 듣고 금방 질문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더 생각하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렁찬 목소리가 언덕 위에서 퍼져 나왔다. 제법 가파른 언덕이었고, 해가 그곳에서 비치고 있었기에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멈춰라! 키 작은 난쟁이들아! 이곳은 힘의 언덕! 전사의 언덕! 용맹함과 명예의 언덕이다! 여길 지나가고 싶다면, 날 이기고 지나가야 한다!”
“오오...”
드워프들이 그 소리에 절로 활력이 돋아나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식한 드워프들이었기에 밤낮 구분 없이 걸어갔고, 한 달 반동안 변변찮은 사건 하나 없었다.
이런 전개는 드워프들에게 흥미로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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