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6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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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는 발바룽.
끝없이 발전하는 두뇌를 지녔고, 매우 음흉한 작자였다. 그가 훈련시킨 헤드스 하이에나는 드낙의 정신을 잃게 만들고 죽음 직전까지 가게 한 전적이 있었다.
그가 드낙과의 만남을 구걸했다.
매우 무례했지만, 드낙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른 이들은 부활했는데, 그는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약자의 포지션에서 살아온 덕에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손해 보는 일도 아니었기에 관후함을 베풀었다.
“저도 부활시켜 주십시오. 개가 되건, 벌레가 되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득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투 또한 전과 달랐다.
더는 자신을 찾아주는 이가 없고, 검은 꿈 회의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드낙이 판단해야 할 것이 드물어지고, 현실의 다른 이가 이를 대체하고 일을 해결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이 하는 일은 가불(可不)을 딱 말하면 되는 위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발바룽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적어졌고, 이내 당장이라도 잊힐 수 있었다. 아니,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로 이렇게 구걸하고 있다.
“기다리면 중립신이 약속을 지킬 것인데, 왜 이렇게 성급하냐?”
“불안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발바룽이 검은 꿈에서 드낙을 향해 절을 하고, 땅에 머리를 박아넣었다.
“음...”
그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발바룽은 특출나지 않기 때문이다. 드낙을 대신해서 음흉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넌 쓸데가 없다.”
“저 또한 검은 꿈을 통해서 오랫동안 함께하지 않았습니까? 더 많은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는 권속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미 포낙서스와 새린을 만들었다. 포낙서스는 키메라에 견습 흑마법사지. 변변찮은 주문 하나 배우지 못했지만, 괴물로서의 노하우가 존재한다. 새린은 중급 연금술사이고. 그러나 너는...”
드낙은 제법 상세하게 포낙서스와 새린을 택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발바룽이 불쌍했기 때문이다.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그 물음에 발바룽이 대답했다.
“악마의 힘이 깃든 헤드스 하이에나를 잉태하는 여왕이 되겠습니다.”
“으음...”
드낙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얼마나 발바룽이 육신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그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또, 그는 확실한 동아줄이 필요했다. 이 검은 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매우 위태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중립신과 드낙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공간이었고, 한쪽이 거부하면 무너지는 정신세계였다. 또 언젠가는 드낙은 중립신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발바룽의 처지는? 그 상황에서 드낙이 여유로울지는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발바룽은 지금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후연금을 타기보다는 지금 돈을 받는 걸 원했다. 무엇보다 중립신은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런 자를 믿기는 어려웠다.
존재의 생살여탈권을 상대에게 맡기는 건 필멸자에게 매우,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고, 끔찍한 감각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모략가 같은 중립신의 면모는 그의 여동생마저도 그를 죽일 생각을 갖게 할 정도였으니,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니, 놀랍다.”
“......”
발바룽은 대답하지 않고, 드낙의 판단을 기다렸다.
‘헤드스 하이에나.’
반인반수의 지성종족이었다. 켄타우르스 같은 놈들이지만, 체구는 그것보다 조금 작다. 날 때부터 경기병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고, 투창도 곧잘 한다. 또 잡초와 꽃을 먹어도 살 수 있고, 그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이었다.
못 먹는 게 없어서 보급을 담당하고 수송하는 임무를 맡기기에도 좋은 종족이었다.
‘여차하면 데리고 와서 전력으로 써도 된다.’
그 외에도 발바룽의 높은 지능을 타고난 헤드스 하이에나가 탄생할 터였다. 그건 좋았다.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중급 혹은 고급의 인력 확보였다.
확정적으로 지능이 높은 이들은 과학, 마법, 제도 등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현대의 다양한 것을 복원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중립신이 개입하지 않을까?’
드낙이 주위를 훑었지만,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관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검은 꿈의 이용가치는 이제 희미했다.
초월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다른 초월자와 계속 업과 격을 비교하게 된다.
악마인 드낙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그 여파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정신체인 신은 〈힘은 힘일 뿐이다〉라는 대명제에 강력하게 구속된 불멸자였다.
중립신이 업에 집착한 것도 이와 같았다.
‘중립신에게서 더 많은 능력을 사서 업을 건네준다면, 그는 딴짓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를 안심시키는 것도 필요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건 생각으로만 남았다. 중립신을 믿기가 힘들어져서였다. 최대한 백중세를 끌고 나가다가 독립하는게 가장 나은 선택지로 굳어진 지 오래였다.
“좋다.”
결국 드낙이 허락했다. 드낙은 부활의 못에 추가적인 강철괴를 넣고, 또 하나의 하급 악마를 탄생시켰다. 덩치는 대형에 가깝고, 중형의 끝자락이었다.
“최대한 헤드스 하이에나의 모습을 지키도록 해줘라.”
“예.”
락테아 시오가 무리 없이 대답했다. 드낙은 조금 반응이 달라져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다.
‘여왕 발바룽이 낳을 녀석들이 어떤 놈들이 될지는 조금 기대되는걸.’
평범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드낙의 피를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발바룽 같은 검은 꿈의 멤버들이었다.
*
봄이 오기 전에 동부의 신세력과 구세력은 남부 왕국으로 내려갈 인선을 구성하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리안 또한 다이앤타를 보지 못하는 나날이 점점 길어질 정도였다.
인간 군대가 내려가는 일이었기에 무엇보다도 역할 분담이 필요했고, 모두가 원하는 역할과 직함이 있는가 하면 모두 꺼리는 역할과 직함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리안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기에는 그녀의 아래에 모인 이들이 모두 만족할 수 없었다. 수많은 대가성 상을 베풀거나 해야 했다.
‘원래라면 그냥 약자에게 보급을 맡겨버리면 그만이지만...’
동부라는 광활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땅에서 세력을 못 키우면 병신이었다. 그녀의 구세력은 실로 기반이 탄탄했다. 대부분이 몰락 귀족 출신이었기에 기본이 딴딴했다.
그게 큰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특출난 이들이 있더라도 세력비율로 보면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또한 이들 모두 알고 있었다.
‘남부 전쟁은 무혈입성(無血入城)이 충분히 가능하다!’
징집병을 썼다면 약탈, 방화, 강간이 이루어졌겠지만, 이번에는 징집병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병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면 큰 스트레스도 없고, 보상심리도 적었다. 월급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보급을 담당하고 싶지 않았다.
세리안은 그런 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보급 소리가 나오니까 왜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건가?”
“음.”
“으음...”
너도나도 시선을 회피하기 바빴다. 절로 어깨가 수그러졌다. 당당한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제비뽑기 같은 거로 할 수밖에 없다.”
“보급이 장난입니까? 그렇게 어찌 정합니까.”
가장 마지막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겐 쟝이 자신도 모르게 반박하고 다시 턱을 조금 내리며 시선을 피했다. 뱀의 머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던 습관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차라리 상단연합에 대리보급을 맡기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도 책임자는 필요합니다. 보급을 계산하는 일은 상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오가는 건 대신해줄 수 있어도, 그 큰 틀은 아무나 못 합니다. 무조건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정해진 날에 보급이 온다는 건 정말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다. 때맞춰서 보급을 하는 건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동부의 도로는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좋아지고 있었지만, 시간과 거리는 언제나 인간의 적이었다. 이를 해결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겐 경은 강력한 전력이니 갈 수가 없고...”
세리안이 겐을 보며 말하자 겐이 냉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른 이들, 특히나 브루드 가문과 히프노틱 가문의 가주들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무력 순위로 따지면 하위권이기 때문이다.
허나 진짜로 침을 꼴딱 삼킨건 웃터 가문이었다. 문무겸비로 명성을 떨치고, 어디서든지 이름 한 번은 무조건 들어가는 게 웃터 가문의 가문원들이었다.
돈도 잘 벌고, 사교성도 좋다. 그렇다고 무력이 약한 것도 아닌 기사 가문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면 안 된다.’
동부 발전을 통해서 내정 공적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지만, 전공은 기회가 드물었다. 그 여자가 어찌나 야수와 몬스터를 토벌했는지 동부 왕국의 서쪽을 제외하면 씨가 말라 있었다.
오죽하면 멧돼지가 산에 가득해져서 기사가 돼지나 잡고 있을 정도였다.
몬스터와 일백야수 이상의 강력한 적을 죽여야 할 검이 멧돼지 도축검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구세력 모두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너도나도 사활을 건 것이다. 그건 세리안에게 분명 좋은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전쟁 자원이 모이기 때문이다.
‘재물을 빗대어서 출정권을 따가는 것도 우습다.’
전쟁의 ㅈ자도 모르는 자가 할법한 발상이었다.
“중립을 표명한 게제라스 법관님에게 보급로를 부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확실히...”
이야기는 남에게 떠넘기기로 계속 유지되었는데, 게제라스 법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세리안이 제법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이인데 이런 걸 어찌 부탁하겠나. 안 그래도 요즘 하급 관료제를 다시 하고 있지 않나.”
외청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진 하급 관리를 용도에 맞게 5개로 쪼개는 작업이 차츰차츰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대한 반발력이 안 나오고, 부작용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도가 바뀌는 것이었기에 베바란스 총관과 행정관들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가장 적임 아닙니까? 거래를 통해서 맡길 수 있을 거로 보입니다.”
“하하하!”
세리안이 쾌활하게 웃었다.
“좋다. 무엇을 게제라스 법관에게 줄 수 있을까?”
“음...재물에 큰 욕심이 없는 자이니 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명예욕도 적습니다. 공식 석상에 잘 나오지 않지 않습니까. 귀족들과 관료들과도 사적으로 만나는 일이 드물고...”
“가족과도 아예 절연한 상태고, 결혼도 하지 않아 홀몸이라 돌려치기도 안 됩니다.”
협박은 아예 말하지도 않았다. 기사가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평범한 수준으로는 되지 않았고, 특별한 수단을 쓰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제라스 법관을 움직이려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가?”
조용한 침묵에 쌓인 상태에서 세리안이 다시 말하자 웃터 가문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기사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저희들의 보급을 담당해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겨우 그런 거 때문에 세금을 더 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기사들이 지닌 권리를 하나 내지는 둘을 손에서 놓겠다고 하면 저희를 도와줄 겁니다.”
둘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납될 수 없었다.
“이제 알았겠지? 다른 이들을 쓰면 그만큼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안 그래도 많이 빼앗기고, 거세된 것이 동부의 기사 권리였다. 더 손에 놓을 수 없었다.
“그대들에게 협의할 시간을 5일 주도록 하지. 나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생각이다. 계속 면담을 할 것이야. 개인적으로든 가문 2곳을 불러 같이 논의를 하든. 그래도 안 된다면 6일째에 내 말대로 해야 할 것이다.”
“허나...”
세리안의 말에 모두가 불안해했다.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리안은 듣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한 것만으로도 관대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누구는 손해를 보고, 누구는 이득을 보는 것이지. 그게 현실 아니겠나?”
그 말을 끝으로 원탁회의가 끝났다. 많은 가문이 동분서주하고, 다른 가문에게 보급하라 종용하기 시작할 터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돈도 제법 줄지도 몰랐고, 몇몇 사업을 제안할지도 몰랐다.
신세력 또한 원탁회의를 하기 바빴다.
케이슨 성기사 또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도 파벌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중립은 없다는 말 때문에 신전도 선택해야만 했다. 중복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이번에 성전대는 궐기를 하는 것이오, 안 하는 것이오?”
“저희는 후방에서 병사들을 치유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다친 이들을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싸우지는 않는다는 것이군.”
신전의 의견은 그 어떤 반대도 거치지 않았다. 전방에 서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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