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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59화 (758/1,239)

강철의 전사 75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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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자였던 락테아 시오는 호수 성채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비쳤다. 인간이었지만, 인간답지 않았고 그 어떤 자와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그 무례함 때문에 절로 툭 튀어나온 존재였다. 허나, 드낙이 개의치 말라라는 말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서 무관심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락테아 시오는 그 조용함을 즐겼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트롤보다 못한 엘프는 다른 면에서 뛰어났고, 자연스럽게 오우거와 비견될 정도였다. 그런 엘프가 드낙의 피를 전신에 뒤집어 엎어 쓰고 타락했다. 변형되었고, 뒤틀렸다.

완전, 완성된 종족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허나, 여전히 엘프는 엘프였다. 그녀는 끝없이 드낙과 연결된 정신 고리를 자극했다. 그것은 피로 이루어진 다리였고, 초월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충만감을 주는 곳이었다.

“그만 좀 해.”

배정받은 방에서 침대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락테아 시오의 앞에 드낙이 벽에서 튀어나와 모습을 갖추며 말했다.

황금색의 눈동자를 지닌 락테아 시오가 드낙을 바라보았다.

“느끼셨습니까?”

“느끼고 자시고, 그렇게 줄을 자극하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어.”

드낙의 정신세계는 거대한 거미줄과도 같았다. 수만의 갈래로 이루어져서 수많은 이들과 연결되어있었다. 대부분이 이 줄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저 받는 대로 받을 뿐이었다.

‘타락 엘프는 다르다.’

영혼, 마력, 지성과 이성. 그 모든 것을 완성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엘프에게 성장 활로가 열렸다. 그 여파는 당연히 다른 종족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정보가 소름 끼칠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10일 동안 독방에 갇힌 이에게 거세게 열리는 철문소리처럼 크게 다가왔다. 그 덕에 락테아 시오는 드낙의 핏줄을 당기고, 만지고 흔들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계속 만지고 있었습니다.”

“후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정된 존재인 엘프에게 드낙과의 연결로는 질식하던 이에게 공급되는 산소와 같았다.

“그렇게 할 일이 없다면 너에게 임무를 주겠다.”

그 말에 락테아 시오가 흑발을 뒤로 쓸어내렸다. 매우 품위가 있어 보이는 손길에 드낙이 순간적으로 눈에 힘을 줬다. 아름다운 백조의 움직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임무를 완수한다면, 신의 피를 받아마시고 싶습니다.”

“내 피?”

“예. 저의 신은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갑갑하게 저를 짓누르고 있는 벽을 허물고,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고도 다른 신을 믿는 엘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단 말이지...”

드낙이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락테아 시오는 드낙의 피를 원하고 있었다. 확실한 격의 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악마의 피를 받은 이상, 그녀 또한 피를 탐하고, 살육을 자행하여 격을 높일 수 있었다.

드낙의 아래 계급에 존재하는 하급 악마(Lesser Daemon) 계통에 속하고 있기도 했다.

‘이거 어쩌면 엘프를 통해서 엄청 편한 길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중립신의 말대로 이후에 X될 수 있었고, 타락 엘프는 드낙과 똑같은 반열에 올라 독립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허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미래의 자손이 큰일난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도 석탄을 태워서 발전소를 돌리는 게 인간이었다. 인간의 탈을 고집하고 있고, 힘과 격에 비해서 인간을 갈구하는 드낙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지르고 보는 거지.’

“좋다. 불파겐 마탑에 매일같이 마도 지식을 적은 양피지를 보내라. 중부에 존재하는 불파겐 마탑의 수준이 얼마나 발달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를 보고 너에게 상을 내리겠다. 그 상은 나의 피다.”

“직접 불파겐 마탑에 가서 가르쳐도 됩니까?”

대단한 적극성이었지만 드낙이 거부했다.

“나와 할 일이 있다.”

“그것 말고도 말입니까?”

락테아 시오의 황당한 반문에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2명이 할 일을 1명에게 시키는 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매우 정당하고 올바른 상식이었다. 그녀에게 두 가지 일을 배당하는 건 실로 자연스러웠다.

“일단은 내일부터 양피지를 써서 보내라. 나랑 같이 호수 성채 지하로 향한다.”

“예.”

두 사람은 호수 성채의 수로로 향했다. 큰 성채인 만큼 수로 관리를 위해서 수로는 대단히 넓은 지하 공간이었다. 지하를 통한 대피 시설이기도 했기에 꾸준한 관리가 이어져 오고 있기도 했으며, 관리들의 중요한 출세 수단이기도 했는데, 지하 수로 관리인은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물론 동부 왕국에서는 아니었다.

드낙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 하수도 관리인이 단순 관리직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특정 구간에 존재하는 주술 장치를 드낙이 발동시키자 벽이 뒤집혔고,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으로 드낙이 앞장서자 락테아 시오가 뒤따라갔다.

통로는 넓었지만 습했다. 하지만 꾸준한 관리가 되어오고 있었고, 촛불이 미약하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어두웠지만, 빛은 존재했다.

그 덕에 락테아 시오는 바닥 곳곳에 있는 털을 볼 수 있었다.

꾸준히 계단을 청소한 흔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빈틈은 있는 법이었다. 빈번하게 출입하기 때문에 청소하는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락테아 시오는 마법 바람을 일으켜서 털을 능숙하게 자신의 손에 오도록 유도했고, 이를 잡았다. 멧돼지 털처럼 굵었지만, 감촉 자체는 좋았다.

‘진화된 털이다.’

속털과 겉털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굵었지만 부드러움도 가지고 있었다. 관상용과 전투용이 하나로 합친격이었다. 짐승임에도 상당한 보호력을 갖출 정도로 털이 두꺼웠다.

‘비를 맞지 않는다면 화살도 가볍게 튕겨내겠지.’

뛰어난 털이다.

“넌 아직 보지 못했겠지.”

드낙과 떨어진 상태로 대기하고 있던 락테아 시오였다. 핏빛쥐와의 조우는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 기회는 있었지만 드낙이 다 걷어차 버렸다. 쌓여있는 검은 양피지 때문이다.

너무 쌓여버려서 아주 중요한 것만 보고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핏빛쥐의 정보력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게 드낙이었다.

세계를 내려다보려면 그만큼 많은 것을 읽고 들어야했지만 드낙이 어디 그럴 양반인가? 그럴 시간에 레이시아와 손잡고 따뜻한 오후를 보내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자였다.

“찍찍.”

어둠 속에서 통로의 울퉁불퉁한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틈새에서 핏빛쥐가 미리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한 호흡 뒤에 걸음을 내디뎠다. 자신의 신에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었다.

검은색 털에 뿔이 여러 개 돋아난 검은 뿔쥐의 모습은 락테아 시오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더는 핏빛쥐라고 부르기에는 검은 뿔쥐의 개체수가 다수가 되어버렸고, 당연히 뿔의 개수도 최소 3각수였다.

이런 지하 통로를 지키는 검은 뿔쥐는 당연히 가장 최하 개체는 아니었다. 핏빛쥐들의 인프라를 지키기 위한 자들이며, 핏빛쥐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경비병이었다. 6개의 뿔이 머리에서 목을 지나 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락테아 시오는 그 뿔의 개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뿔은 초월의 힘이며, 한계를 뚫은 횟수를 의미한다.’

종족값이 높을수록 뿔은 보기 힘들다. 악마는 일부러 뿔을 만들지만 그런 뿔은 그저 장식용에 불과했다. 그만큼 뿔이 지닌 상징성은 매우 대단했다.

“저 뿔이 정말로 진짜 뿔 맞습니까?”

“뿔이 뿔이지. 뭔 진짜 가짜가 있어?”

드낙은 너무 가볍게 이 질문을 넘겼고, 그를 대신하여 검은 뿔쥐가 자부심이 가득 찬 말로 락테아 시오에게 짧게 대답했다.

“한계를 여섯 번 넘는 건 우리 지하 연합의 검은 뿔쥐들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찍찍.”

그 말은 특히나 엘프들의 고정성을 쿡 찝는 것과도 같았다.

“준비는 다 해놨겠지?”

드낙의 말에 검은 뿔쥐가 냉큼 고개를 숙여 대답하며 그들을 안내했다. 드낙이 도착한 곳은 부활의 못이라 불리는 큰 연못이었다. 그곳에서 풍기는 향은 락테아 시오의 코를 찔렀다.

“약초 냄새가 엄청납니다.”

락테아 시오가 손짓을 하며 코로 더욱 바람을 불어넣었다. 빨리 코가 마비되는 게 고통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썩힌 약초도 제법 들어갔지. 미리 가공한 물약도 넣었다.”

부활의 못은 연금술의 못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약초와 물약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준비한 이유는 다름 아닌 키메라 제조 때문이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부활시켜도 쓸모가 없지.’

흰여우 새린은 중급 연금술과 점성술에 능하며 마력을 보유한 여자였다. 당연히 그 수준은 실로 형편없었다. 인간 중에서는 상위권이지만 그마저도 턱걸이 수준이다.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 변변찮은 가르침 하나 받지 못한 흑마법사였다. 스승에게 버림받아서 키메라가 되어버린 하찮은 자였다.

이런 자들을 현역으로 기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술이 필요했다. 그것이 부활의 못이었다. 준비는 간단했는데, 지하 연합을 시키면 그만이었다. 양피지 하나 준비하고, 적당한 공간을 이야기하는 게 드낙이 할 일의 전부였다.

고생은 지하 연합이 했지만, 과실은 드낙이 따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활을 시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부활도 아니지. 부여라고 해야겠지.’

그저 검은 꿈에 있는 이들을 키메라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어렵지 않아. 블러디 만티코어를 만든 것처럼 하면 될 뿐이다.’

드낙이 못 안으로 들어갔다. 못의 아래는 강철괴가 가득했다. 그것이 흰여우 새린과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의 육체가 될 것이다.

못의 색이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락테아 시오는 그 드낙의 옅어진 피를 핥아 먹고 싶었지만 엘프의 초인적인 이성으로 참았다.

*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낌새를 알아차리자마자 검을 뽑았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중립신의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그것은 허공으로 치솟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사라졌다.

“어디서 건방지게 함부로 내 정신에 간섭하려 드느냐? 난 부활한 인간이다. 죽어서 뼈밖에 없던 존재가 아니다.”

그가 으르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세계가 요동을 쳤다.

힘이 쎈 역사(力士)에게 귀신이 꼼짝도 못 하는 것과 비슷했다. 중립신이 초월의 힘을 이용해서 그를 굴복시키지 않는 한 정신세계는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이다.

그런 독한 방법을 독불장군에게 쓰면 역효과가 날 뿐이기에 중립신은 초월의 힘과 업을 이용해서 정신세계 자체를 강화해버렸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상태에서 중립신이 입을 열었다.

“진정하라.”

그런 중립신에게 세파리아스가 범처럼 달려들었다. 중립신은 검은 연기로 변해 꺼져버렸고, 세파리아스의 검은 허공을 베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중립신의 얼굴이 반 토막이 나서 생크림처럼 녹아서 그 밀랍 같은 몸에 후두둑 떨어졌다. 그럼에도 중립신의 입은 감정 없이 움직이며 단어를 나열했다.

“부질없는 짓이다.”

“흥. 허세는.”

세파리아스가 짐승같이 웃으며 그가 가지고 있을 턱이 없는 강철이 흐르는 강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꿈이었기에 소유할 수 있었다.

“용건이나 말하고 사라져라.”

“나의 챔피언이 날 섬기지 않는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이것은 거래다. 불멸자(不滅者). 난 너를 섬길 어떠한 이유도 없다.”

세파리아스가 어깨를 당당하게 펴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중립신도 이 이상으로 세파리아스를 자극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한다면 하는 사내였다.

“드워프의 소규모 군세가 서부에서 군사 활동을 시작한다. 이를 저지하라.”

“죽여도 되나?”

세파리아스가 거침없이 살의를 드러냈다. 동족조차도 포를 뜨고, 항문에 장대를 찔러넣어 효수하는 공포 정치를 펼친 게 그였다. 다른 종족? 벌레만도 못했으며, 기회만 된다면 모두 멸종시켰을 것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인간 중심적 사고를 지닌 골수 인간파였다.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호탕하니, 힘을 보여주면 납득할 수 있을 거다.”

“급한가 보군. 어째서지?”

세파리아스의 질문에 중립신은 그 어떤 답도 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세파리아스가 눈을 떴다. 밖은 어둠으로 가득 찬 야심한 밤이었다. 창문을 열자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그를 생각했다.

‘못난 놈. 또 헛짓거리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세파리아스는 웃음을 지었다. 중립신이 당황한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중립신이 곳곳을 찌르고 다니는만큼 이번 상황은 드낙에게 유리했다.

물론 세파리아스는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중립신이 당황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드낙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 작품 후기 ==========

5956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정말 춥습니다. 냉돔인데,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도 기침을 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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