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5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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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오랜만에 검은 꿈에 들어왔다. 그게 원해서가 아니었다. 반마의 격을 획득하고 나서 중립신과의 교류는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마치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하듯이 초월자가 된 드낙과 중립신은 서로 만나는 일이 적어졌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밀랍같이 메마른 피부를 지닌 중립신이 눈을 감은 채 드낙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엘프들을 타락시키는 일을 그만둬라.”
“어째서?”
드낙이 순수하게 질문했다.
“엘프들의 고정성을 헤친다면 나중에 큰 해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종족성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그렇기에 완성된 것이다.”
오우거처럼 무리를 이끌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엘프들에게 자유를 부여한 드낙의 행동은 실로 위험했다.
“그게 왜 타락이야?”
“너에게 도움도 안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타락(墮落)의 뜻에는 무너지고, 떨어지고 파괴되며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뜻도 숨겨져 있지.”
“날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인가.”
드낙의 말에 중립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드낙은 락테아 시오(Lactea Seio)에서 그런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 엘프는 오히려 날 신앙으로 받들던데.”
“당분간은 그럴지도. 필멸자는 3차원의 존재. 시간이라는 자원을 관측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서 고정된 영속성을 기대하지는 마라.”
지금의 자신과 3년 전의 자신은 확실하게 다르다. 그것을 똑같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착각 속에 살아갈 뿐이었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필멸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4차원에 속하는 존재만 알 수 있었다.
어려운 말에 드낙이 습관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두피에 땀이 차는 감각! 그가 가장 싫어하는 감각이었다.
중립신은 조금 더 현실적인 근거를 대기로 했다.
“더 격이 높은 종족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리하면 신이 필요 없지. 자존심도 대단해질 것이고, 그들 스스로가 신이 되길 원하게 될 것이다.”
허나 그런 말에도 드낙은 태평했다. 그에게 500년 후를 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드낙에게는 당장이 중요했다. 나중에 일은 나중의 자신에게 떠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때의 드낙이 개고생하는 건 지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수능을 망칠 자신이 확실하게 떠오르지만, 지금의 게임 승급전이 더 중요한 이들은 수두룩 빽빽했다.
진정한 초월자가 되지 못한 드낙은 중립신과는 다르게 미래와 과거에 존재하는 모든 자신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이 중요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결국 내가 데리고 갈 건데, 뭐가 너한테 위협적인데. 테라를 넘어서서 행성에 살다가 독립하고 싶다고 하면 응. 그래~하면서 다른 차원으로 보내면 되잖아.”
“......”
중립신은 드낙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 말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세력에 위험 요소를 집어넣겠다는데 뭘 더 말하겠는가.
대신 드낙은 마침 잘 됐다며 중립신에게 질문을 하나 했다.
“지금 제대로 되고 있는 거 맞아? 영혼 제국은 언제 침공하는 건데? 차라리 지금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래서야 엘프들이 남는다.”
“강철 그리핀 용기병 수만보다는 오히려 엘프들이 낫지 않을까?”
그 말에 중립신이 잠시 침묵했다. 그는 한 손을 살짝 뒤집어서 손바닥이 천장으로 향하도록 했다. 곧, 환상 마법으로 인한 영상이 출력됐다.
거대한 대륙이 화염으로 잔뜩 타오르고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50km이상 높은 상공에 존재하는 거대한 공중 건축물이 수천 개가 부유하며 화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엄청난 스케일에 드낙이 입을 살짝 벌렸다. 마치 SF 판타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갈래가 존재한다. 그중의 하나가 지금 개입했을 때다. 영혼 제국을 큰 피해 없이 처리한 엘프는 폭풍의 요람을 연결하여 지정된 도시를 부유시키고, 하늘 아래에서 화염 마법을 쏟아내어 모든 것을 불사를 것이다.”
재로 하늘이 뒤덮였고, 엘프들은 그 위로 올라갔다. 지진과 화산을 마법을 통해서 종종 일으키며 하늘의 잿더미를 유지했고, 계속 살아갔다.
“혹한의 시대가 도래한 다음 120년 뒤에 엘프들이 다시 지상에 내려올 것이다.”
영상이 사라졌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엘프들의 총공세는 인간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모든 필멸자를 이 대륙에서 지우고, 완전히 새로이 시작하는 계획을 행할 터였다.
‘투모로우를 찍는 것보다는 강철을 찌그러뜨리는 게 낫긴 하지.’
드낙이 순식간에 태세전환을 하며 고개를 강철처럼 굳건하게 끄덕였다. 그는 고개를 굳건하게 끄덕이는 굳건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드낙은 팔랑귀를 펄럭였다. 중립신이 이상하리만치 엘프의 변형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놈의 약점이 엘프라는 것일지도 모르지.’
드낙은 엘프의 변형을 결코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다만 중립신 앞에서는 치웠다.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침투할 마음이 생겼다. 그의 경계 덕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더는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중립신은 그런 드낙을 보며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밑으로 사라져 갔다. 그런 중립신을 드낙이 서둘러 불렀다.
“잠깐만!”
“뭔가?”
“내가 요즘 능력을 이것저것 만들고 주고 있다는 거 알지?”
“알고 있다.”
드낙이 살짝 몸을 비틀었다. 아주 끔찍한 애교였다. 중립신은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고개를 살짝 틀었다.
“검은 꿈에 이제 세파리아스도 없고, 포낙서스란 새린도 자주 안 보이는데, 그냥 걔들을 부활시키는 게 어때?”
“내가?”
“아니. 내가. 악마의 힘으로.”
“상관없다.”
중립신은 대답만 하고 쑥 들어가버렸다. 포낙서스와 새린은 중간다리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드낙의 힘을 소모한다면 그는 환영할 일이었다.
중립신이 사라지자마자 검은 연기가 들끓으며 흰여우 새린과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정말 부활시켜 주시는 겁니까?”
“그래. 인간은 아니겠지만.”
“괴물이 되어도 살고 싶습니다!”
개똥물, 새똥이 몸에 묻어도 사는 건 항상 재미난 법이었다. 새린도 방방 뛰었다.
드낙이 이들을 부활시키려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재는 검은 꿈으로 연결되어있는 존재들이었다. 당연히 드낙과 연결되어있는 고리가 굵고 넓었다. 드낙의 힘을 많이 부여받을 수 있었으며, 드낙과의 연결고리 덕분에 드낙의 영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큼 완벽한 목줄이 없었다.
‘새로운 조커 카드지.’
〈정신 세계의 피의 잔〉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이들 두 명이었다.
*
2개월 보름 만에 도착한 동부 왕국의 사절단에 톤드라 가문이 주인으로 있는 푸른 바다 항구에 도착했다. 이들은 큰 환대를 받았다. 많은 이들이 준비했던 꽃을 뿌려줬다. 몇몇은 시들었지만 그래도 예뻤다. 환호하는 이들 또한 돈을 조금씩 쥐어본 이들이 많았고, 그들이 바람잡이가 되었기에 분위기 자체는 엄청났다.
특히나 동부 왕국의 사절단은 규모가 대단하여 감히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그 숫자를 보고 나름의 준비를 해야 했기에 톤드라 공국 또한 많은 돈을 써야 했다. 드낙의 영향력은 다른 국가의 세금을 펑펑 쓰게 만드는 효과까지 있었다.
이들은 3일을 쉬면서 물밑작업을 행했다. 서로 하급 관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조금씩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아주고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4일째가 되어서야 외교관과 톤드라 공왕과 서로 대면할 수 있었다.
“남부 왕국을 다시 평화롭게 하는데, 톤드라 공국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오.”
거짓이었다. 톤드라 공국은 그럴 여력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동부 왕국의 동부 해안까지 연안해로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시민의 평화를, 그들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동부 왕국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다.”
거짓이었다. 톤드라 공국은 콩고물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기에 동부 왕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들은 내륙으로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은 곧 기회였다.
‘이름 하나 올리고 승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데 수락을 안 할 병신이 어디에 있는가.’
역사는 톤드라 공국을 기회주의자, 민족변절자로 낙인찍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욕을 아무리 해봤자 돈과 영향력이 최고였다.
“사절단과 함께 원군 요청의 서한을 가진 이들을 보내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외교관은 크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에 톤드라 공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동부 왕국은 실로 외교를 할 줄 알았다. 외교실패는 전쟁이고, 외교는 부드럽고 품위가 있어야 했다.
“또한 오늘 당장 남부 왕국으로 사절을 보내서 전쟁을 선포하도록 하겠소. 그 외에 근처 마을에 병사를 보내 벽보를 붙여 동부 왕국의 참전을 명명백백히 시민들에게 보여주며 미리 대세를 ‘우리’쪽으로 돌려놓겠소.”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쪽 밑에서부터 시작된 소문의 바람은 동부 왕국이 남부 왕국의 수도로 향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동부왕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하오리다!”
톤드라 공왕이 크게 소리치며 호탕하게 끝냈다. 그들은 금방 돌아갔다.
톤드라 공국은 순식간에 병사를 국경선에 모으며 남부 왕국을 압박했다. 물론 동부 왕국보다 먼저 쳐들어갈 생각은 전무(全無)했다. 굳이 자신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도, 동부 왕국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부 왕국이 먼저 치고 들어가면 톤드라 공국군은 입을 털면서 무혈입성하여 수도로 향하면 될 뿐이었다.
톤드라 공국이 영향력을 모으고 있는 사이에 동부 또한 급하게 돌아갔다.
크레시미르 불파겐(Kresimir Bulpagen)와 다이앤타 불파겐(Diantha Bulpagen)을 통해서 둘로 쪼개진 세력의 줄타기가 전쟁 준비를 통해서 표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력권은 양측을 통해서 흑백으로 가려졌다.
중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예외로 게제라스 법관과 그 수하들만 제외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중산층과 하층민들도 신구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서 몸을 투신했다.
전쟁에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를 위해서 많은 돈이 민간에 풀렸다.
빚 있는 자들은 자식으로 빚을 갚았고, 병을 앓고 있는 부모를 위해서 자식들이 스스로 투신하기도 했다. 그 돈은 돌고 돌았다.
없는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전쟁이었다. 모순적으로 이는 산업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다. 생산가능인구가 전쟁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구세력은 본격적으로 강력한 유대관계가 생겼고, 그 관계가 매우 끈끈해지고 강화되었다. 실질적으로 자원이 모이고, 영향력을 공유하고 교환하면서 서먹했던 이들과도 사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과정에 피 한 방을 뿌려지지 않았다.
모두 드낙이 어떠한 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남부 사령관인 아크온 몽펠리에는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제안까지 했다. 배신하여 몰락한자는 있어도 죽거나 다친 자는 적었다.
*
“제기랄!”
5명의 드워프가 산길을 걷다가 그중 하나가 분노를 표출하며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또 이러네. 그렇게 화내서 될 일이 아니잖아.”
“나이 많다고 엉덩이 걷어차서 사절단에 속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실력도 없잖아.”
“......아무튼 타의로 인해서 온 거잖아. 너희들은 화가 안 나?”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잊어버려.”
실로 둔감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그런 반응 덕분에 더욱 답답해진 〈선명한 녹은철〉이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화병으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어쩌자는 거야.”
“몰라. 난...”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서 갑자기 수풀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드워프처럼 넓적하고 키는 작은 생명체는 얕보이기 쉬웠다.
“이놈이...!”
호랑이의 앞발이 드워프의 얼굴을 후려치고, 호랑이의 가슴이 드워프의 몸과 충돌했다. 허나 드워프는 한 발짝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르르르!”
묵직한 짐승소리를 내며 호랑이가 목과 어깨 사이를 콱 물었지만, 드워프는 무기도 쓰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서 호랑이의 머리를 쳤다. 한 방에 호랑이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버렸다.
선명한 녹은철은 호랑이의 가죽을 벗겼다.
“뭐 하는 거야?”
“때마침 저 앞에 삼거리가 있잖아. 작품 하나 남기자고. 어차피 동부 왕국으로 가는 거 위대한 드워프를 좀 알려야겠어.”
“나쁘지 않은데.”
“석상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씌워서 진짜 호랑이처럼 만들자고.”
“그럼 난 돌을 생성시켜서 조각상을 옆에 둬야지. 도망치는 멧돼지를 그릴 거야.”
다른 드워프 하나가 독자 노선을 달리겠다고 선언하자 너도나도 딴소리를 해대었다. 결국 선명한 녹은철은 펄펄 끓는 철을 굳히고 굳혀서 호랑이 상을 만들고, 거기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씌우기로 했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상이 자리 잡는 삼거리가 될 판이었다.
동부 왕국으로 향하는 드워프 5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활동에 빠졌다.
짬처리 당하고, 그 선임도 안 보이는데 제대로 일 처리를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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