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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57화 (756/1,239)

강철의 전사 75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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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중부를 지나가지 않고, 최북단인 황무지를 거쳐 불필요한 사건 없이 드워프 산맥에 도착한 엘프들은 기괴한 것에 이끌렸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산맥 위로 가득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드워프들의 대장간은 지하 깊이 있었고, 통로를 타고 흐르면서 연기는 자연스럽게 작아지기 마련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심상치 않았다. 엘프 사절단은 곧바로 강철 산맥에 가지 않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프들은 서둘러 착지했다. 그들이 본 것은 거대한 호수였는데, 오로지 피로 이루어진 호수였다. 그 바로 옆에 거대한 공장이 지어지고 있었고, 지어진 부분에 있는 굴뚝에서는 끝도 없이 검은 연기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마왕 무구〉를 옮기는 드워프들이 엘프들의 눈에 들어왔다. 큰 할버드와 묵직해 보이는 방어구였다. 보기만 해도 단단히 정제된 암흑을 보는 것처럼 새까만 색을 지니고 있었다.

이 마왕 무구는 하프 드워프나 고블린을 통해서 동부와 지하 연합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량의 엘프 사절단이 도착하자 단번에 이목이 모였다. 드워프들은 무장한 채로 엘프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저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대의(大意)를 전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엘프들은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말했고, 드워프들은 큰 대꾸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강철 산맥으로 갈 것이지, 왜 능선 아래로 왔는가.”

“저 호수가 무엇인지, 그 피를 어디에 쓰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드워프의 말에 엘프들은 솔직하게 말했다. 드워프를 상대로는 복잡한 화법이 필요가 없었다. 해주면 해주고 안 해주면 안 해주기 때문이며 돌려서 말하면 되레 될 것도 안되는 것이 드워프와의 대화였다.

너무 대화를 오래 끌면 화를 내기도 했다.

국가대표가 일본에게 0:10으로 패배한 다음에 잔소리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드워프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들을 안내해주었다. 가장 먼저 피의 호수에 담긴 피를 소량 떠서 엘프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은 그것에 손을 대지 않고, 마법으로 투사해서 조사했다.

“마신장의 피...”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걸 추천하지.”

드워프가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들은 이제 알아차릴 것이다. 드워프가 맞이했던 거대한 위기를.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다는 것을.

“이건...”

엘프들이 감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드워프가 그새를 못 참고 냉큼 대신 말했다.

“마왕이지, 마왕!”

“...예. 어떻게 죽였습니까? 마신장이 마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감히 죽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들이 아는 드워프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만히 놔둬도 몰락하던 종족이었다.

“모두 중립신의 은총과 드낙 불파겐의 용맹함 덕분이지.”

엘프의 귀가 쫑긋거렸다. 감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두 개나 들어가 있어서였다. 특히나 그들은 중립신에 대한 관측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별을 통해서, 행성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탄생에 깊이 관여한 중립신을 제법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기에 엘프는 중립신을 높여 말했다.

“중립신께서는 아직 부활하지 않으셨고, 끝없는 바닥으로 내려가시지 않으셨습니까. 헌데 중립신의 은총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멸자(不滅者)를 자처하는 엘프였다. 그들에게 중립신은 뛰어넘어야 할 자였고, 부활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이 행성의 주인공이 눈을 뜨고, 세상에 두 팔을 벌리며 그 햇빛을 받는다면, 어찌 될지는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부활했네. 우리들을 모두 그분의 은총으로 깨우고 계시지. 드워프 제국은 다시 부흥했고, 이 세상에 다시 한 번 드워프 제국의 명성이 전대륙을 진동시킬 것이야.”

그가 콧김을 크게 내뿜었다. 수염이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반면 엘프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들은 드낙 불파겐에 대해서도 물었고, 드워프는 짧게 몇 마디만 했다.

자신들에게 대단한 일도 오래 말하기도 귀찮아했다.

마왕 무구 공작을 뒤로하고, 이들은 강철 산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드워프의 수도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산맥 왕가의 왕족, 용맹한 산맥과 마주했다. 다른 왕족들은 모두 딴 일 하기 바빴다.

이들은 마왕 무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언급하며, 〈신의 봉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신의 봉화가 얼마나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느냐에 따라서 중립신의 현재 역량을 파악할 수 있어서였다.

“그가 헛소리했군. 중립신은 확실히 눈을 떴지만, 아직 부활한 것은 아니다.”

못 믿는 눈치에 용맹한 산맥은 사절단 전원을 데리고 다시 깊은 곳에 모셔둔 신의 봉화로 향했다. 봉화는 은은한 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에 드워프 100명 정도를 깨우고 있을 정도고, 의욕을 잃은 드워프를 100명에게 다시 한 번 장작을 넣어주는 정도에 불과하지. 그걸 부활한 신이라고 할 수 있나?”

엘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웅장한 신의 봉화에서 흩날리는 빛가루를 바라보기 바빴다. 그것은 전조였다.

‘부활을 위한 힘을 키우고 있다는 전조다.’

중립신의 존재감은 결코 숨길 수 없었다. 그것이 표출된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중립신은 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툭 튀어나온 송곳의 부분을 적절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이득을 취하면서 보여줬다.

‘곧 다가온다. 부활의 때가.’

그게 언제 될지는 몰랐지만 시작된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취했다. 동시에 영혼 제국을 빨리 밀어버려야 할 이유도 생겼다. 그간 전 도시에 존재하던 폭풍의 요람이 모두 전쟁용도로 사용될 명분이 생겼다.

“이 정도면 되었나?”

“드워프들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흘흘.”

용맹한 산맥이 웃었다. 그들은 다시 웅장한 대전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동안 조용히 지내던 엘프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온 것인가.”

한때는 전쟁도 했지만, 옛날 일이었다. 중앙에 인간들을 살게 해주며 방파제를 둔 이후로 전쟁은 싹 사라졌다. 모두 어느정도 합의를 거쳤고, 세월이 많이 흘러가 있었으며 드워프는 그런 걸 속에 담아둘 양반이 아니었다.

호탕함의 극의! 그들이 드워프였다.

“중앙에 둔 인간들의 제국이 악에 물들었습니다. 그들은 동족을 죽여서 영혼을 회수하여...”

엘프들이 영혼 제국에 대해서 말했다. 허나 이미 드워프들은 그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었다. 오크 대예언으로 드낙이 드워프들에게도 연락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그건 이미 알고 있네. 하지만 당장은 전쟁을 못 하는데.”

“어째서입니까?”

“마왕 토벌자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와 공조하여 영혼 제국을 치는데 드워프 제국의 판단이다.”

“한낱 인간이 어찌 드워프의 판단을 좌지우지합니까? 긍지 높은 드워프가 남에게 의견을 듣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엘프가 드워프들의 긍지를 논했지만 용맹한 산맥은 칼같이 손을 들어 올려 그 말을 중단시켰으며 더는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허허. 은혜를 입었으니, 그를 존중하는 것뿐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긍지도 필요 없다네.”

“엘프의 사정을 봐주십시오. 지금 영혼 제국은 전면전을 선포했고, 그들의 모든 역량은 동부로 점점, 날이 갈수록 집중되고 있습니다. 버티는 것도 버겁습니다. 서부에서 영혼 제국에 군사활동을 재개한다면 반드시 영혼 제국의 역량은 어지럽게 변할 겁니다.”

“흠...”

용맹한 산맥이 고민했다. 자긍심 높은 드워프는 이 세계의 위협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역량을 아끼기에는 영혼 제국의 포악함에 엘프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었다.

애걸하는 자를 두고 볼 드워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드워프들이었다. 죽음을 모르는 강인한 신체를 지닌 지성종족이었다. 용암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었고, 수많은 적이 득실거리는 굴속에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는 용맹한 종족이었다.

〈신의 봉화〉 덕분에 열정이 살아있는 드워프들은 엘프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정의를 위해서 망치와 도끼를 들어 올리겠다.”

엘프들이 엄숙하게 고개를 숙여줬다.

“못해도 2천 명의 드워프 군대를 가려 뽑아서 영혼 제국의 서부에서 군사활동을 시작하겠다.”

매우 적어 보였지만 결코 아니었다. 머리에 구멍이 뚫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드워프였다. 그들을 죽이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마음이 죽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아니면 사지를 뜯어먹던가.

“엘프 제국의 원군 요청을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괘념치 말라. 이는 모든 지성종족을 위하는 일이니,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엘프 사절단은 곧장 엘프 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곧, 드워프 제국의 수도에서 수많은 드워프 가문이 모였다. 이들 대부분이 영혼 제국에서의 군사 활동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그만큼 정의로운 일이었다.

“영혼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를 잡는 일을 하지 않을 드워프가 어디에 있나! 우리 〈톱날 가문〉을 선택하지 않으면 파업하겠다!”

“어디서 감히! 당연히 전사 가문이 가야지, 대장장이 가문은 뒤로 빠져!”

“드워프의 손길이 변변찮아서 무기나 들어 올리는 것들이...저기 대장간에 가서 망치나 더 두드려! 괴라도 많이 만들다 보면 드워프 손길이 조금 더 좋아지겠지!”

시끄러운 와중에서도 왕족인 용맹한 산맥은 오로지 전사 가문만을 뽑는다고 발언했고, 단번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단번에 파토가 났다.

마음에 불이 지펴진 드워프들은 실로 열정적인 전사들이었다. 그중에 한 명이 갑자기 하품하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신의 봉화는 한계가 있었고, 몇몇 드워프들은 이렇게 갑자기 잠에 빠지기도 했다. 다시 중립신과 마주하게 되면 일어나게 될 터였다. 그만큼 드워프는 너무나도 불안한 존재였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불안한 존재이기에 괴이한 육체를 보유했다.

엘프들이 서둘러 돌아가자 용맹한 산맥은 동부 왕국에 사절단을 보내도록 명령했다.

“그 또한 우리를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

두 면에서 치는 것보다 세 면에서 흔드는 게 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드워프 사절단은 고작 5명에 불과했는데, 모두 가기 싫어해서였다. 느릿느릿하고 지긋지긋한 여행길은 가장 어린 드워프가 도맡아야 했다.

별수 없는 일이었다.

*

남부 왕국의 상황은 더더욱 나빠졌다. 양아들인 엘러스데어가 너무 빨리 플래티넘 왕가를 폐(廢)하고 이아손(Eason) 왕정 시대를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남부에는 자칭 플래티넘 사생아 4명이 더 튀어나와서 권력 싸움에 깃발을 들어 올리며 군대를 궐기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이를 사군(四君) 궐기라 불렀다. 또 지금의 내란 사태를 오군 내란이라고 불렀다. 사실상 엘러스데어도 왕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정당성이 없었다.

오직 황궁 기사단을 소유한 것이 그를 왕으로 만들고, 아라온을 죽이게 만들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오히려 아들이 아비를 죽였으니, 욕을 대단히 많이 먹고 있었다.

이 내전을 해결하지도 못해서 엘러스데어 이아손(alasdair Eason)은 그저 군대를 소집해서 수도를 점거한 채 있을 뿐이었다.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반발이 컸다는 걸 이제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제기랄! 어서, 어서 동부 왕국에 원군 요청을 보내라!!”

“어제도 보내지 않았습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

“말이 많다! 어서 보내지 못할까!”

“예, 예! 보, 보내겠습니다!”

어서, 어서어어어어!

집무실 너머로 그의 발악을 들은 이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덩치, 그 무재와는 다르게 사방에 적이 생기자 수도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굳건하게 잠겨진 성벽 때문에 수도에 들어온 이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기사였지만 사령관은 되지 못했다.

아라온은 실로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그저 탐욕에 눈이 먼 기사들에 의해서 죽임당했다. 그게 끝이었다.

플래티넘을 받쳐주던 세력과 영향력이 사라지고 남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린 애가 쥐고 있는 금괴를 가지고 가지 않을 자는 이 세상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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