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5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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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약초꾼 울림은 주위를 살폈다. 그는 팔까지 다쳐있었다. 웬 멧돼지 새끼가 갑자기 수풀에서 튀어나와서 돌진하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으윽...’
팔이 조금만 쓸려도 고통스러웠다. 뼈에 금이 간 듯했다. 결국 울림은 부목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했다. 비스듬하고 평평한 바위에 팔을 대고 강하게 입과 남은 팔로 당겨서 묶었다.
고통으로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이라면 약초꾼으로서의 공부를 실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배도 고프고, 해도 지기 시작하는데, 큰일 났다. 대산의 반대편으로 와버린 게 분명해.’
대산은 거대했다. 반대쪽으로 내려왔다면, 오늘 내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부왕국의 지형은 큼직큼직했다. 자잘하게 놀지 않았다.
“인간.”
그런 그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표정이 확 살아났다.
“누구십니까? 어디에 계십니까. 전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서둘러 외치자 우거진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털을 지니고 있었고, 눈은 새까만 색이었다. 머리가 사람만 했기에 울림이 그대로 뒤집혔다.
트롤이 사족보행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몸체를 지닌 늑대였다.
“놀라지 마라. 난 널 잡아먹을 생각이 없으니.”
중후한 목소리에 울림이 절로 큰절을 올렸다. 그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삶을 구걸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에게는 어미에게 버려진 딸이 하나 있습니다!”
최하층 계급에서 태어나고, 그와 비슷한 여자와 함께 자라왔다. 자연스럽게 술과 나쁜 이들과 어울리는 그를 아내가 떠나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바로잡고 동부왕의 지원을 받아서 약초꾼이 될 수 있었다.
아직 그는 살아야만 했다. 무거운 책임감이 그에게 있었다. 그 책임감은 자신을 향하는 창도 될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지팡이도 될 수 있었다.
욕심 때문에 모르는 길을 멀리 온 것도 책임감 때문이었다.
도노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잠자코 바라보자 남자가 겨우 마음을 추수를 수 있었다.
“그대가 아는 곳까지 데려다주마.”
“가, 감사...켁!”
도노의 거대한 아가리가 벌려지자 울림이 혼비백산하며 뒤로 넘어가서 기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상상에 불과했고, 도노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아가리가 그대로 울림을 덮쳤다.
날카로운 이빨이 울림의 허리를 물었다. 따끔거리는 감각이 있었지만, 그를 문 상태로 도노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알만한 곳에 데려다준 도노가 그를 내팽개치다시피 땅바닥에 버려버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서 감사를 크게 표했다.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도노는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카이야와 다르게 그는 지성(知性)을 획득한 상태였다. 카이야보다 도노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이야가 더 뛰어났다. 말만 할 수 없는 상태일 뿐이었다.
이 차이는 도노가 이끄는 무리의 숫자로 인한 차이였다.
그는 50무리의 팩(Pack)을 소유한 늑대왕이었다. 늑대는 농사나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산 너머에서 각자만의 영토를 소유한 채 그를 따르고 있었고, 그것은 업이 되어서 도노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대산의 능선에서 꽃밭을 일구는 카이야의 자식보다 월등히 숫자가 많았다.
그 덕을 본 도노는 덩치 또한 대단히 커졌고, 400마리가 넘는 늑대들의 우두머리가 되어있었다. 드넓은 땅에 퍼져 있어서 그렇게 많은 늑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볼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런 도노가 대산에 있는 이유는 숫사슴 발룬이 그랬던 것처럼 대산의 영기를 받기 위함이었다. 이는 카이야도 마찬가지였다. 꽃밭은 어디서든지 크게 일굴 수 있었는데 굳이 대산 능선을 택한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두 마리의 영물이 대산에 거주하는 이유는 대산의 영기를 받기 위함이었다.
도노가 스리슬쩍 눈치를 보며 나무에 달린 벌꿀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벌들이 모두 나오게 한 다음 꿀을 먹을 생각이었다.
부우우우웅!
벌들의 날갯짓이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노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겉에 있는 벌집을 아가리로 건드리며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혓바닥으로 애벌레를 골라내서 뱉어버리는 것도 곧잘 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까아아아아아악!”
나무를 부수며 빗살처럼 도착한 카이야가 날개로 도노의 싸대기를 거침없이 때렸지만, 고개를 크게 털며 도노는 벌집 하나를 다 먹고 호다닥 도망쳤다.
씩씩거리는 카이야가 도노의 뒤를 쫓아서 꼬리를 쪼아대었다. 도노가 으르렁거리며 몇 번 아가리를 벌렸다가 닫았다 하며 위협했지만 카이야는 10분을 괴롭히고 물러났다.
벌집을 지켜주고 키워주지도 않으면서 꿀을 먹는 도노는 호로 상놈의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
드낙은 고블린 지하 감옥의 한쪽을 얻어서 엘프를 완벽하게 가두었다. 그리고 그 업을 조사했다. 이 행위로 기대되는 것은 엘프를 통해서 능력을 제작하는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핏빛쥐들이 그들의 피를 받아마셔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콱.
드낙이 락테아 시오(Lactea Seio)의 머리를 잡았다. 그 손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서 그녀에게로 흘러내려 왔다. 뜨거운 온천수 같은 피의 온도에 깜짝 놀랐지만, 밖으로는 삐져나오지 않았다.
“헉.”
그러나 이내 헉소리를 냈는데, 드낙과 연결되면서 그 거대한 존재감을 봤기 때문이다. 심연이 그녀를 들여다보았기에 그녀 또한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녹색의 빛깔로 반짝여졌다.
녹안의 효능으로 더욱 확실하게 드낙을 볼 수 있었다. 그 존재는 악마이기도 했으며, 신이기도 했고, 오우거일지도 몰랐고 트롤일 수도 있었다. 그 뒤섞인 기괴한 존재를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아악!”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절대 드낙은 인간이 아니었다. 녹안을 뛰어넘어 그 감각이 오감으로 번지자 법정자가 발악을 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녀를 떼놓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당황한 것이 드낙이었다.
‘왜 이래?’
고블린이나 핏빛쥐는 가만히 있었는데, 엘프의 경우 너무 끔찍할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엘프는 필멸자임에도 불멸자를 자처할 정도로 종족값이 준수했고, 이 때문에 일어난 촌극이었다.
적어도 드낙에게는 황당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드낙이 아니었다. 특히나 엘프의 고통 따위 알 바 없었다.
남에게 벌레, 하등한 존재라고 입을 나불거리는 놈들이다.
드낙이 락테아 시오의 존재를 훑었다.
‘기분 나빠.’
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자신의 영혼, 정신, 마음, 존재, 육체를 피가 흐르며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그 기분 나쁨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익숙해졌다. 이내 쾌감으로 변해갔다. 왜냐하면 엘프의 고정성을 드낙의 엉망진창인 존재로 인해서 비틀러 지고 있어서였다.
락테아 시오는 꽉 막힌 공간이 넓혀지는 감각 때문에 상쾌함마저 들었다.
“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성장하는 감각은 척추를 떨게 하고, 그녀의 골반이 꿈틀거리게 하였다.
그러든 말든 드낙은 락테아 시오, 엘프가 지닌 것들을 파악해나갔다.
가장 눈여겨본 것은 당연히 엘프의 녹안(綠眼)이었다.
이성을 강화하고, 지성의 상승을 도모하며 전투 시에도 냉정을 유지하게 하는 엘프의 녹안은 강력한 신체 부위였다. 이를 더듬은 드낙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다.’
눈은 뇌와 직결되는 신체 부위였다. 그렇기에 녹안의 효능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녹안은 단순히 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영향력이 대뇌까지 들러붙어 있었고, 시신경조차도 강화하고 있었다.
‘눈 하나만 강화했지만, 그 영향력은 시신경과 신경계까지 이어지고, 대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메모...’
눈이라는 위치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낙은 이를 열심히 뇌에 기억했다. 신체에 따라서 어떤 능력을 주냐에 따라서 다른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눈은 뇌와 신경과 관련된 능력을 주는 게 좋았다.
‘핏빛쥐가 가져갈 수 있다.’
피를 받아먹으면 핏빛쥐들은 반드시 엘프의 녹안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불파겐이 오우거를 죽여서 마법 상쇄의 적발을 획득한 것처럼 신체 부위는 100% 획득 가능한 종류였다.
피로 범벅이 되어있어서 몰랐지만, 이때부터 락테아 시오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드낙에게 감화되기 시작했고, 엘프라는 존재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고정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고 있었다.
드낙과 공명할 정도의 종족값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모순적으로 드낙과 엘프의 감응도는 핏빛쥐보다도 뛰어났다. 완벽하게 대치되는 존재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드낙이 찍어 누르니, 그대로 변형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드낙이 지닌 자유성, 변수성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 컸다.
그녀는 드낙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지닌 것이 변형되어도 가만히 두었다.
‘마법재능도 탁월하다.’
드낙이 눈을 반짝였다. 엘프들의 마법재능은 다른 필멸자들과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우월했다. 특히 제어력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아쉽게도 마법재능은 드낙의 능력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엘프라는 종족 전체를 아우르며 거미줄처럼 엮어진 확정된 재능이었다. 반면, 그 제어력만은 드낙이 훔쳐서 쓸 수 있어 보였다.
핏빛쥐는 엘프의 마법재능은 못 가져갈 것처럼 보였다. 엘프가 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했다. 얼마나 많은 엘프의 피를 받아마셔야 할지 몰랐다. 고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프의 무재 또한 준수한 수준이었다. 드낙은 그것 또한 결국 녹안의 부차적인 효능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대로 넘겨버렸다.
마지막으로 드낙은 락테아 시오의 영혼을 더듬고, 헤집었다.
‘불변하는 영혼. 고정된 그릇!’
엘프의 가장 큰 특이점이었다. 불안 불안한 핏빛쥐들을 생각하면 필요했다. 이 때문에 드낙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락테아 시오의 영혼을 특정할 수 있을 때까지 파악해나갔다.
불변하는 영혼을 뇌리에 새기고, 능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나서야 드낙이 눈을 떴다. 그가 손을 뗐다.
“뭐야?”
드낙이 한 걸음 물러났다. 금발벽안의 미녀가 흑발벽안의 미녀로 바뀌어 있어서였다. 새하얀 피부에 흑색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졌고, 입술은 매우 붉은색이었다. 눈매는 날카로웠다.
락테아 시오는 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거대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종족값이 높은 엘프는 반신의 행위에 노출되면서 순식간에 뒤바뀌어버렸다.
“당신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드낙은 어안이 벙벙했다. 예상외의 소득을 올려서였다.
“내가 너를 헤집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락테아 시오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정말 한 끗 차이로 초월자가 되지 못하는 종족이 엘프구나.’
드낙은 황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엘프의 종족값은 오우거와 동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저 크기가 작은 소형 지성 종족이라 특출나지 못할 뿐이었다.
‘리고를 가만히 놔두면 안 될지도 모르겠는데?’
오우거 리고가 절로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언제든지 뛰어넘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걸 드낙은 엘프를 통해서 깨달았다. 하지만 죽이기에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엇보다 리고는 포악성과 호전성이 낮았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이 될 수 있다.’
일단 드낙은 락테아 시오를 받아들였다. 비상한 머리를 쓰기 위함이었다.
“좋다. 넌 이제 내 부관이다.”
“감사합니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드낙에 의해서 모든 것이 비틀린 그녀는 실로 엘프답지 않았고, 순식간에 종족을 배신하고 드낙의 밑으로 들어왔다.
‘이거 엘프 내부로 들어가서 배신자들을 양성할 수도 있겠는데?’
머리카락이야 염색 혹은 마법으로 바꾸면 그만이었다. 만약 영혼 제국이 엘프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드낙은 이를 통해서 엘프 제국의 내전을 유발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법정자 락테아 시오를 부관으로 들인 드낙은 핏빛쥐들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아라온 플래티넘이 죽고, 그 양아들이 왕위를 찬탈했고 내전에 들어갔습니다.”
“뭐라고! 이런 미친 남부 새끼들을 봤나!”
드낙이 분노했다.
플래티넘 왕가의 정통성, 강함이 컸을 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 지배를 받았던 남부였지만, 망할 대로 망해버리고 실패할 대로 실패해버린 플래티넘 왕가를 보고 누구나 왕위에 눈독을 들였다.
난세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막기 위해서 드낙이 아라온의 편을 들어주었다. 헌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죽여버렸다.
‘골치가 아프다.’
드낙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나도 왕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 권력 싸움 때문에 인류는 결코 발전할 수 없었다. 기회가 생기니 서로서로 죽이기 바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서였다.
“호수 성채로 가야겠다. 레우치터!”
드낙의 그림자에서 어엿한 성인의 모습을 한 레우치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락테아 시오를 데리고 호수성채로 와라.”
“알았다.”
드낙이 눈에 힘을 주자 레우치터가 뒷말을 덧붙였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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