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4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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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한 가문의 가주 〈페슬라 엘라한(Pesla Ellahan)〉의 사죄를 게제라스는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습관적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남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재능이 있어서였다. 누군가는 토론을 통해서 도출해낼 결과를 홀로 순식간에 판단 내릴 수 있었다.
게제라스는 가장 먼저 교통정리부터 했다.
“우리는 국업으로 저수지를 계속 만들고 있고, 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부 곳곳에 퍼져서 마을에 물이 부족할 때마다 대고 있는 엘라한 가문원들은 필요하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드낙은 묻자 게제라스가 공손히 대답했다.
“예. 특정한 계절에만 필요할 뿐이고, 지금처럼 퍼져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뭄이라는 것은 한 번에 크게 몰아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저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뭄에 큰 손해를 입을 수 없습니다.”
“있다고해도 그 규모는 적을 것입니다. 고로, 엘라한 가문원은 이제 다시 뭉쳐서 동부로 향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인원이 동부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물이 필요할 때 빠르게 파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찬성한다는 뜻이군.”
드낙은 턱을 손으로 두드렸다. 확실히 동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저수지를 만들어왔다. 빌어먹을 정도로 물이 부족해서였다. 강수량은 많았지만, 물이 쑥쑥 빠져서였다.
“자연스럽게 그 인원이 물의 기술관에 남아서 교육생들을 가르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예. 10명 정도를 남긴다면...”
엘라한 가주가 냉큼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서 게제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허나 엘라한 가문원 소수로는 물의 기술관을 모두 활성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매년 천 명의 기술자들을 배출하는 공공기관 아닙니까. 그걸 어찌 10명으로 감당하겠습니까.”
헛소리하는 엘라한 가주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 말에 엘라한 가주가 뜨끔했다. 물의 성채에 있으면서도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어서였다. 가문원의 역량까지도 단박에 탁 내뱉을 정도였는데, 게제라스가 얼마나 일에 미친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못 가는 것 아닌가?”
드낙은 화도 내지 않았다. 엘라한 가문이 얼마나 바다 진출을 꿈꾸는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밑에 것들 교육해서 얻는 것도 적었다. 이제는 엘라한 가문이 그간 봉사하며 키운 공을, 그 과실을 따는 일만 남았다.
생각하기 싫은 드낙을 보며 게제라스가 답안지를 쓱 내밀었다.
“동부왕이시여.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엘라한 가문이 동부 해안에 항구를 짓고, 그들의 영지를 얻어야 합니다.”
게제라스는 혼자 북치고 장구를 쳤다. 자기가 안 된다고 했으면서 그걸 감안 해야 한다고 하고 있었다. 드낙을 위한 모순적인 화법이기도 했다. 검은 양피지가 쌓이고 있어서 이제는 쳐다도 안 보고 있는 게 동부왕이었다.
“아! 톤드라 공국 때문인가?”
항구라는 말에 드낙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게제라스 법관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맞아도 이렇게 맞는데 다른 걸 모두 제쳐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드낙은 구구절절 의견을 내놓았다.
“진주를 담은 궤짝을 여기 다 두고 갔으니 못해도 3개월 안에 남부 끝에 도착하겠고. 거기서부터 다시 동부 해안길을 뚫으려면 못해도 2년.”
“해안을 통한 해상 무역의 정상화까지 생각한다면 적어도 5년이 걸립니다.”
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톤드라 공국의 배가 있지 않나.”
“그들만 이득을 보게 할 생각이십니까?”
“그들의 물건이 들어오면 그만큼 물건값이 싸지는 것 아니겠나. 또 관세가 있지. 그게 싫다면 장기적 관세 할인을 빌미로 배를 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드낙은 순식간에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반질반질한 돈을 얻는 것에는 빠르게 의견을 내놓을 줄 알았다.
“해상 무역을 담당할 영지를 관리할 가문으로는 엘라한 가문이 적격입니다. 그들은 특히 지금까지 〈물의 기술관〉과 마을 곳곳에서 농업을 진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공사업이기 때문에 큰돈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게제라스 법관이 엘라한 가문을 크게 칭찬해주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들 스스로가 아직 무력(武力)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들은 내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그 덕에 게제라스는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었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칭찬하는 가문은 처음인 것 같은데.”
드낙은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언급되지 않은 엘라한 가문이 실제로는 참된 가문임을 알 수 있었다.
“좋다. 지금부터 일을 진행하고, 이번 년 추수가 끝나고 크게 엘라한 가문을 위해서 축제를 벌이겠다.”
“가, 감사합니다!”
페슬라 엘라한이 크게 감사해 했다. 역사의 표면선에 툭 튀어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부 왕국은 축제를 자주 벌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쉬는 날은 제법 있었지만 주기적인 국가 공휴일은 건국일과 드낙의 탄축일. 불파겐 자식들의 탄신일 정도뿐이었다.
“그럼 끝인가?”
“끝이 아니지요. 무슨 바쁜 일이 있습니까?”
서둘러 일어나려는 드낙을 게제라스 법관이 막아섰다.
“크흠...자주포 프로젝트 때문에...”
드낙은 궁색한 변명을 내뱉었다.
“그들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내가 제법 지식이 있거든.”
드낙은 매우 자신만만했다. 게제라스는 그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할 일이 많았다. 드낙의 잡담에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소수의 엘라한 가문원이 물의 기술관에 있으면 분명 마비가 될 겁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려내어 기술관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전과 다르게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엘라한 가문은 귀족의 일원이었고, 그들은 목표가 있었기에 돈보다는 명분을 선택했다. 허나 평범한 사람들은 돈을 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직에 있는 이들을 기술관으로 오게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을 제시해야 하죠.”
“예산이 충분하지 않는 건가?”
“충분합니다.”
기득권층으로부터 매우 효과적으로 세금을 확실하게 걷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돈을 줘도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돈이라면 올 텐데?”
“오기야 오겠지만 대부분 그곳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진짜 실력 있는 기술자들은 해놓은 게 있고, 지방마다 입지가 있어서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교육관 일에 주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틀어서 집어넣어야 합니다.”
“다르게?”
드낙은 단박에 물어봤다.
“사교육을 진흥시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물의 기술관의 역량이 대단해서 시도하는 이들이 적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겁니다.”
엘라한 가문원이 물의 기술관에 소수만 남게 된다면, 그 역량 감소는 명백했고, 명성도 예전만큼 크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사교육을 진흥시켜야 했다.
실력 있는 현장직 기술자들은 그들의 명성과 입지 때문에 물의 기술관에 오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냥 그들이 사는 곳에 그들이 직접 교육관을 짓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드낙은 그로 생길 수많은 일자리를 생각했다.
“방법은?”
“가장 먼저 장기 토지 대여를 해줄 생각입니다.”
동부 왕국의 제도 제1원칙은 결코 토지를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지 않는 것에 있었다. 모든 것이 대여였다. 그 금액은 싸지만, 결코 소유권 양도는 없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다음은 건축금 지원입니다. 이건 생각보다 많이 해줘야 합니다.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긴 하지.”
건물을 짓는 건 큰돈 드는 일이었다. 또한 동부 왕국은 개인이 큰돈을 모으기가 힘든 형편이었다.
“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그들에게 줄 생각입니다.”
“땅은 국가의 것이지만 건물은 그들의 것이다?”
“5년 장기로 꾸준히 세수를 확보할 생각입니다.”
화폐의 가치는 매년 변한다. 그에 맞춰서 세금도 변동되어야 했다. 드낙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며 말했다.
“진행시켜.”
*
“잠깐, 잠깐!”
일하던 농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외청의 관리로 보이는 자들이 다섯이나 모여서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예이!”
그가 대답하고 밭에서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이 밭의 대여를 받은 자가 누구인가?”
“쟝 가문의 기사님이십니다.”
그 말에 외청 관리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면서 저급한 종이에 이를 적었다.
“무슨 일이시길래...?”
“중앙 기사가 땅을 대여했으니, 이를 모두 확인하기 위함이다. 땅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밀 두 마지기입니다.”
밭의 크기는 생산물의 생산량으로 판단되고 있었다. 땅의 질이 나쁜 밭은 생산량도 적은데 세금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관리하고 있는가?”
“예? 아뇨. 가끔 다른 곳에서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랑 협동하기도 하고...”
“결혼은? 결혼은 했나?”
“하긴 했습니다만...”
“자식은?”
“예?”
외청 관리들은 쓸데없는 것을 묻기도 했다. 쓸데없는 것으로 시간을 빼앗았다. 농부는 감히 농사일에 열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저 쟝 가문에게 이를 알릴 뿐이었다.
세리안 불파겐의 사업 압박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12가문이 관리하는 밭부터 시작했으며 그녀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12가문이 그대로 남쪽으로 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괴를 못 준다니?”
대장장이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거래했던 상인이 대장간에 찾아와서 통보한 것이다.
“지금 이러는 거 결코 좋지 않소. 괴 가격을 높이기 위함이오?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셨소. 내 뒤에는 셔토이언트 가문이 있소.”
“젠장할, 나도 얻어터져서 이러고 있는 것이오.”
상인이 고개를 두리번거린 다음에 다가와서 속삭였다.
“과거 불파겐을 도운 친우 가문과 중앙 사령관이 피만 안 터지지 싸우고 있소. 전쟁이라는 소리지.”
그 말에 대장장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는 서둘러 상인의 팔을 당겨서 대장간 안으로 들렸다. 그리고 독한 술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놓았다.
“자, 자세히 말해보시오.”
남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첫 목소리가 떨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은 빈번하기 때문이다.
“내 창고에 외청 관리가 와서 창고를 당장 비우라고 큰소리부터 치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벌벌 기니까, 12가문과 연관된 사업을 모두 접으라고 하지 않겠소!”
“모, 목소리! 목소리 낮추시오.”
그 말에 분통을 터트리던 상인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새도우 위스퍼〉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다.
“허면 괴는? 괴는 어쨌소?”
“다 비웠소. 살려는 곳은 많으니까.”
그 말에 대장장이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서둘러 다른 상인을 구하러 발품을 팔아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 모습에 상인이 빙그레 웃었다.
“내 신의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왔고, 창고 세 개를 관리하는 상인이 되었소. 그런 내가 고객을 그냥 버리겠소? 어떻게든 괴를 충당해주겠소.”
“정말이오? 하지만 새도우 위스퍼가...”
“씨발, 뒈지면 뒈졌지. 내 약조한 물품을 지급 안 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상인은 안 될 것이오.”
그가 욕을 지껄이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을 걷어냈다. 그가 약속했던 괴를 이 대장장이에게 공급하지 않으면 대장장이는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다른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정말로 뒈지면 X되는 것은 나다.’
“지금 당장 세리안 왕비가 하는 사업장에 가든지 해서 탈출구를 찾으시오. 셔토이언트 가문이 주문한 것을 파기하는 대신에 위약금을 대신 내달라고 하는 거지.”
“끙.”
대장장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분명 고민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에 상인이 눈을 반짝였다.
“내가 그쪽 사람을 하나 아는데...오늘 같이 가지 않겠소?”
“당장 준비하겠소.”
대장장이가 그대로 떡밥을 확 물었다. 또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세리안과 아크온이 서로 작당해서 12가문의 역량을 심하게 감소시킨다는 소문까지 이어졌다.
쾅!
겐 쟝이 거칠게 원탁을 쳤다.
“모두 개소리다! 이걸 믿는 자는 없을 터요! 안 그렇소?”
허나 그 말에 대답하는 가주들은 적었다. 그 말이 진짜라면 남쪽으로 내려가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셔토이언트 가문이 세리안 중앙 사령관에게 붙었소. 우리도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하오.”
웃터 가문이 목소리를 냈다. 흥분한 겐 쟝이 물었다.
“결단? 무슨 결단? 이제는 이를 공론화 시키고, 표면화시켜서 동부왕의 판결을 받는 일뿐이오! 지금은 거의 전면전이나 다름없소. 피만 없을 뿐이지! 동부왕의 중재를 받아야 하오! 우리는!”
“너무 성급한 결론이오!”
원탁에서 격론이 펼쳐졌다. 허나, 결론은 파국이었다. 규합되지 않았는데, 중앙 사령관 같은 높은 직함을 지닌 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리안은 정확한 시기에 정확하게 찔렀다.
그녀가 한 것은 전면전도 아니었다.
그저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뜨리고, 사업에 차질을 준 것뿐이었다. 거기에 거칠게 반응한 건 그만큼 세리안 불파겐이 보여주는 공포 때문이었다.
과거의 명성은 지금에 다시 부활했고, 그것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소문 때문에 모두가 수군거리니 자신들이 정말로 큰일 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의 망상과 확장된 공포가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그들은 단번에 와해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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