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746화 (745/1,239)

강철의 전사 746편

<-- -->

다이앤타 불파겐(Diantha Bulpagen)이 벽을 기어 올라갔다.

“꺄하하!”

드낙을 통해서 다이앤타의 자아와 상관없이 날뛰는 악마의 힘은 잘 제어가 되고 있었고, 드낙 덕분에 다이앤타는 그 힘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드낙을 통해서 도움닫기를 해서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과 같았다.

본래라면 뛰어넘을 수 없는데, 뛰어넘게 되었다. 그 덕에 다이앤타는 인간을 뛰어넘는 행동들을 할 수 있었다. 이제 1살이 되었음에도 벽을 기어 올라가는 건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엄마 나 어때? 잘하고 있어?”

육체적으로 근력이 발달하는 건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말도 할 줄 알았다. 지성과 이성이 일찍 눈을 떴다.

“잘하고 있어. 조금 더 크면, 자랑스러운 불파겐의 이름으로 우뚝 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야.”

세리안이 그렇게 말하며 다이앤타의 빈틈을 노려서 다리를 냉큼 잡아당겨 품아 안았다. 다이앤타는 버둥거리며 웃었지만 이내 세리안의 살냄새를 맡으며 세리안의 목을 가볍게 껴안았다.

드낙이 지닌 〈과열 신체(Overheating Body)〉의 능력 때문에 다이앤타는 조금 높은 체온을 지니고 있어서 이런 한겨울에 껴안고 있고 싶은 아기였다.

세리안은 그녀를 껴안은 채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앉아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흑색의 복장을 한 암살자였다. 그는 대낮인데도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도 그늘져 보였다.

세리안이 들어오고, 집무실에 있는 병사들을 물리자 그제야 암살자가 로브를 벗었다. 흑색 복장 속에 검은색으로 염색한 강철 갑주가 언뜻 보였다. 전신갑주는 아니었고, 강철을 구부려서 덧댄 형식의 가벼운 중갑옷이었다.

히프노틱의 그림자 기사들의 정통 복식이기도 했다.

로브를 벗은 그림자 기사는 여자였고, 모델처럼 목이 제법 길었다. 일어선다면 키도 늘씬할 것 같았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이 살짝 웨이브 져 있었다.

평범한 모습이야말로 히프노틱의 그림자를 연상시켰다. 인상이 적기 때문에 적이 확실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불파겐과 정반대되는 혈통 발전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불파겐과 히프노틱은 매우 끈끈한 관계를 과거에 유지했었다.

드낙이 자리를 잡고도 그들을 매우 크게 대우해주지 않아서 관계가 틀어졌지만 세리안 덕분에 다시 바로 잡혀가고 있었다.

“가주가 직접 암행을 하는 건 처음인데. 그림자 기사가 그렇게 적나?”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가주지만 아직 많이 젊지 않습니까. 또 그림자 기사의 숫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리안 왕비님의 지원으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많은 숫자를 보유할 수 있을 겁니다.”

세리안의 말에 세레니티 히프노틱(Serenity Hypnotic)이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히프노틱 가문은 그들의 가보를 보면 추측할 수 있듯이 암살자가 지녀야 할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이렇게 늦은 정오에 찾아온 걸 보니, 매우 중요한 일 같은데.”

“역사의 만남이 어제 이루어졌다고 쪽지를 보냈고, 오늘부터 그들의 계획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외척들과 공조해서 중앙을 벗어나 남쪽에 똬리를 틀 것 같습니다.”

“기껏 생각한 것이 나한테서 도망치는 일이라니. 과거 불파겐 가문과 함께한 가문답지 않네.”

절로 열이 뻗쳤다. 특히나 겐 쟝의 정치 영향력은 중앙 정치에서 드낙 충성파로 기반을 다졌는데, 외척과 함께 남쪽에서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부터 모순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드낙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는 굼벵이가 드낙이었다. 다른 일이 많다고 해도 내실을 다지는 데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건 문제의 여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움직여야 한다.’

드낙의 사후.

모험하는 아버지를 둔 자신의 딸을 지킬 것이 필요했다. 아기를 낳고 서둘러 종신보험에 돈을 집어넣는 대다수의 부모와 똑같았다. 세리안에게는 보험이 필요했다.

불파겐 가문의 혈족, 가문원은 드낙과 세리안 그리고 다이앤타 뿐이었다.

다른 불파겐의 성을 쓰는 아이들? 방계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방계취급할 마음도 없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불파겐의 이름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직계 취급을 할 마음도 없었다.

지독한 생각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개발시킨 혈통을 공으로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드낙의 강함에 세리안이 매료되지 않았다면 벌써 킹슬레이건 몽펠리에건 싹다 죽였을 터였다. 또한 다이앤타 때문이기도 했다.

적극적 공세를 펼치고, 상대의 머리채를 잡아서 그 목을 베어버리기에는 세리안 또한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그렇기에 타협한 것이 불파겐 방계들을 다시 한 번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 어떤 협박도 없고.

그 어떤 이득도 제시하지 않은 그 부름에 대답한 것은 단 두 가문이었다.

브루드 가문과 히프노틱 가문이었다.

특히 히프노틱 가문은 처음에 틱틱거린 것과는 대조될 정도로 냉큼 대답했는데, 그만큼 불파겐을 믿었는데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서 크게 빈정거린 것이었다. 그 빈정거림만큼 불파겐에 대한 깊은 신뢰가 존재했다. 그 신뢰만큼 반발한 것이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말이 안 통하니, 작게 싸워봐야죠. 작게 싸워도 안 오면 그때는 별수 없지. 찍어 누르는 수밖에.”

세리안은 중앙 사령관이었다. 그 영향력을 생각하면 중부에서 그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 빈자리는 히프노틱과 브루드 가문이 충분히 책임질 수 있었다.

“남부로 도망칠 준비를 하더라도 못해도 반년은 걸리고, 그 시작도 봄에서나 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사업장에 수작질하면 좋겠는데.”

그녀의 말에 히프노틱의 가주가 표적을 말했다.

“웃터 가문은 목재소를 많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건드리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나무를 키워서 다양한 곳에 쓰고 있는 게 웃터 가문이었다. 세리안은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져 있는 양피지를 가져왔다.

“상당히 위협적인 소득을 내고 있긴 했는데, 그만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어서 눈감아준 적이 있지.”

문무겸전의 가문인 웃터 가문은 어디서나 좋은 결과를 내는 기사 가문이었다. 극점을 노린다기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문이었다. 그 유동성은 불파겐 가문의 윤활제로 활용됐다.

그들 가문은 포섭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목탄의 가격으로 장난질 안 하는 건 분명 칭찬해야 할 일이지만...”

목재를 토막 내서 가지런하게 쌓은 뒤에 진흙으로 이를 덮고, 불을 지르고 난 다음 숨구멍을 막아 내부의 불을 꺼트리면 나오는 목탄은 동부에 꼭 필요한 소비재였다.

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데 힘을 쓰고 있는 웃터 가문의 목재소를 친다면 손해가 생기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웃터 가문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게 만들 상황을 만들 수 없었다.

‘답답하다.’

피를 조금 뿌리면 단번에 큰 절을 받는 세파리아스의 처세와는 확연하게 다른 게 현재의 동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수단과 때가 정해져 있었고, 이를 놓치게 되면 손발이 꽉 묶이게 되는 감각이 세리안을 덮칠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손해를 메우는 데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데, 가능한가?”

“브루드 가문이 협력을 해줘야 합니다. 그들은 마법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몰락하고 가장 잘 먹고 잘살던 놈들이지.”

마법 혈통을 통해서 불파겐의 방계가 되고, 불파겐 덕분에 더욱 발전시킨 놈들이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성씨를 바꿔서 곳곳에서 마법사로 활동하며 많은 것을 획득한 가문이기도 했다. 시류를 잘 읽을 수 있었기에 겐 쟝처럼 우두머리 혹은 하나의 조직으로 우뚝 서기 보다는 그냥 강자 옆에 서는 걸 즐기는 자들이었다.

“웃터 가문의 목탄 제조소를 타격한다면, 당연히 브루드 가문이 공급되지 않는 목탄을 초급 마법 아이템으로 대신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허나, 히프노틱이 할 일이 없어진다. 남에게 일을 떠맡기는 일이었다.

“히프노틱 가문은 무얼 할 생각인가.”

이를 세리안이 지적하자 그제야 히프노틱 가주가 대답했다.

“서부에 많은 개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나무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상당한 인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현대와는 다르게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서였다. 그제야 세리안이 웃을 수 있었다.

“아주 좋은 판단이야. 중부의 목탄 가격이 높아지면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잘 부탁한다.”

“대신...”

“걱정 마라. 남쪽으로 갈 놈들은 지닌 것을 대부분 놓고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 늦게 들어온 놈보다는 일찍 들어온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그 말에 히프노틱 가주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 물러났다. 그녀는 세리안의 거처를 떠나면서 생각했다.

‘머저리 같은 쟝 가문. 권력을 쥐고, 우두머리가 되어보니 결코 그것을 손에서 놓지를 않는구나.’

도망쳐도 남은 건 외척과 협력하거나 그들과 싸워서 남부 영향력을 쟁취하는 일이었다. 그런 싸움은 싫었다. 가문의 영향력을 보존하고 싶은 게 히프노틱이었다. 다른 가문과는 다르게 〈기사〉를 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그들이었다.

쟝 가문의 방향성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세리안의 생각과는 다르게 히프노틱은 대우해줘서 세리안에게 붙은 게 아니었다. 그들의 내부 사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림자 기사〉는 양과 음지. 그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그릇이었다.

또한 암살 가문이 세리안에게 붙으니 무력이 다소 낮은 브루드 가문은 자연스럽게 세리안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세파리아스의 안배이기도 했다. 불파겐 방계의 혈통 발전성을 강제하고, 장점과 단점을 통해서 서로 물고 물리게 만든 것이다. 그 혈통은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했고, 세파리아스는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자신의 딸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

“어으야. 떨린다.”

〈부드러운 아연〉이 호들갑을 떨었다. 드워프의 가슴을 떨리게 할 정도로 오늘은 중요했다. 술기운이 있어 보이는데 도수가 강한 술을 몇 명이나 들이킨 게 분명했다.

술을 마시면 조금 기분이 올라가는 게 드워프였다.

“언제 우리 차례가 오는 거지.”

호수 성채에서 떨어진 큰 공터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차례대로 호명을 받았고,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펼쳐 보였다. 그 동부왕이 직접 지켜볼 정도로 대단한 공모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모전의 이름은 〈강철 파괴자 공모전〉이었다.

무슨 방식을 쓰든, 강철을 부수는 것을 만들어서 출품하는 공모전이었다. 이는 강철 그리핀 용기사 때문이었다.

“마지막! 아이언 스트림!”

“우리다.”

드워프를 주축으로 마법사들과 합작을 하는 작업소. 〈아이언 스트림〉.

그들이 벌떡 일어났다. 인원수는 총 62명으로 중규모에 해당하는 작업소였다. 오늘을 위해서 창설된 곳이기도 했다. 계획서가 통과되어서 지원금을 받았기에 반드시 공모전에서 발탁되어서 계속 지원금을 받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오늘을 위해 땀과 코피를 쏟으며 노력해왔다.

“준비한 건 골램인가? 평범하군.”

상석에서 드낙이 공터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아이언 스트림이 준비한 골램이 작동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곧 수레에 실려 온 강철 철판이 장대와 같이 고정되어서 벽처럼 세워졌다.

“깃발 올렷!”

붉은 깃발을 쥔 이들이 일제히 깃발을 올리자 골램이 기동했다. 평범한 골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가장 먼저 관절 부분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화악! 화악! 확!

오!

연달아서 화염이 짧게 단타를 치듯이 쏟아져나오자 감탄사가 살짝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라 왔다.

증기였다.

푸슈우웃!

증기를 거세게 내뿜은 중형 골램이 마치 고릴라처럼 섰다. 사족보행을 할 수 있음에도 양팔이 길고 굵어서 체고는 확실하게 높았고, 머리도 꼿꼿이 위에 설 수 있었다.

“원숭이의 구조를 사용했네. 나쁘지 않아.”

괜찮아 보였다. 골램의 특징상 사족보행을 선택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기동성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고릴라처럼 사족보행임에도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게 탁월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마법 외에도 증기 기관을 통해서 또 다른 원료를 확보했으니, 더 오래 움직일 수도 있겠지.’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그냥 합쳐보자. 하지만 그것만큼 강력한 것이 없었다.

1+1이면 일단 사놓고 보는 거 아닌가? 합체는 무조건 옳았다.

중형 골램의 기준에 해당하는 최소수치인 체고 5m짜리 골램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발로 달렸기에 속도가 제법 났다. 다른 골램보다 월등히 빠른 속력으로 달려간 중형 골램은 그대로 두 팔을 올려치며 철판을 때렸다.

10cm가 넘는 철판을 때리는 과정에서 양팔에 증기가 가득 피어오르며 마법적 현상을 동반했다.

‘순간적인 〈강화 마법〉까지. 효율적이다.’

증기기관의 연료를 통해서 운동력을 더욱 확보함과 동시에 마법을 순간적으로 사용해서 강화마법까지 공격에 가미시킨 공격은 철판을 단번에 찢어버렸다. 굉음이 울려 퍼져나갔다.

드낙은 크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짓이었다. 화려한 공격을 한 직후 양팔의 관절이 그대로 박살이 나서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형 제트스트림 골램〉은 그렇게 채택되었다.

공모전에서 확실하게 공격력을 각인시켜줬기 때문이다. 내구력만 챙기면 되었는데, 그게 해결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6386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