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3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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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의 〈첫 번째 권능〉이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또 효력을 발휘했을 때.
그는 시선을 느꼈다. 그 어떤 감정도 깃들지 않았고, 찰나의 순간에 사라졌기에 〈시선을 느꼈다〉라고 느낄 정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드낙은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허튼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말 주도면밀하게 주시하고 있구나.’
중립신이 만든 상에 앉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그냥 엎어버릴 생각을 한다면, 중립신 또한 그에 화답해줄 뿐이었다. 드낙은 결코 그런 승부수를 띄우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는 돌아가야겠다. 〈피의 잔〉은 꾸준히 핏빛쥐 사회에 퍼뜨리겠다.”
“예.”
검은 심장과 늪을 통해서 핏빛쥐들의 종족값을 높이고, 철도 사업의 부담을 적게 해줌과 동시에 잔을 내려주어서 그 어떤 짐 없이 힘을 상승케하는 피의 잔을 받은 위원장들이 공손히 대답하며, 드낙을 배웅했다.
오늘 드낙이 온 일은, 왜놈들에게 도자기를 대량으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를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핏빛쥐들의 종족값은 낮았고, 〈정신세계의 피의 잔〉은 완벽한 핏빛쥐 전용 권능이었다. 또한, 인간에게도 잘 어울렸는데, 종족값이 낮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동부로 돌아간 드낙은 이미 상황이 끝나있는 걸 보고 허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중립신에게 속았다고 하기에는 능력을 획득하고 나서 다이앤타의 변화가 너무 컸다.
순한 아기처럼 변해버려서였다. 드낙이 악마의 피로 내린 족쇄에 다이앤타의 몸 속에 있는 악마의 힘은 꼼짝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들-어라!
그러던 와중 드낙은 때아닌 정오에 울려 퍼지는 고함에 귀를 기울였다. 드낙과 함께 있는 세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매번 있는 일이야. 신경 안 써도 돼.”
공적인 자리가 아니었기에 세리안은 드낙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썼다. 드낙이 일어나서 고함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세리안은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내성 입구에 병사들과 기사가 있었고, 그곳에 둘러싸인 채 있는 사제 하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드낙이 일갈하자 길이 좍 열리며 사제의 면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고, 곰이라 부르기에 적당했다. 전형적인 북부 사제의 모습이었다.
강인한 자가 대우받았기에 사제들 또한 강인한 이미지를 위해서 머리를 미는 게 일반적이었다. 혹자는 머리 있는 놈이 머리 없는 척한다면서 화를 내기도 했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인간에게 외면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그런 불만을 들어도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머리는 일단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맹렬한 분노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
“동부왕은 악마의 힘을 봉인하고, 세계 질서를 위해서 빛으로 나아가라!”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신전의 대표자냐?”
“파문당한 자다. 악마의 피를 지닌 자를 용인하는 신전은 감히 나를 담을 수 없다.”
“허.”
드낙은 허파가 단검에 쿡 찌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 북부 사제의 맑은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떤 분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눈은 순교자의 눈이다.’
죽으면 저 1명이 수많은 광신도로 불어날 것이다. 이미 죽었기에 평판이 나빠질 수도 없었다.
“다이앤타 공주를 화형시켜라! 동부왕은 반마의 힘을 거세해라!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하라! 우리는 오롯이 인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북부 사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소리를 질러대다가 밤이 찾아오자 떠났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드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죽으면 드낙은 그가 원하는 악(惡)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둔다면 나날이 드낙의 평판은 낮아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 핏빛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낙은 이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찌 되었느냐.”
“신전과의 연결고리는 없습니다.”
“으음...”
드낙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유명한 사제인가?”
“북부 사제 울바론이라는 자입니다. 북부 사제들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산딸기 사제에게 설득을 받아서 돌아가던 도중 마음을 돌려 홀로 이곳에 찾아와서 난동질을 벌이고 있습니다.”
드낙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수백 번째 내쉬는 한숨이었다.
‘중립신이 놔두는 이유는, 나보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겠지.’
이런 작은 일까지 중립신의 케어를 바라면 안 되었다. 다 죽어 나자빠질 때도 신성력 하나 주고 끝인 게 중립신이었다. 꼭 필요할 때만 등장하는 게 그였다. 노출도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이유가 있어 보였지만, 그게 무엇인지 드낙은 몰랐다.
‘추방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죽여도 시원찮을 일이지만, 그리된다면 드낙에 대한 평판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가 인간의 거죽을 스스로 벗기 전까지 그는 결코 인간들의 평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걷던 와중에 드낙은 열이 뻗쳐옴을 느꼈다.
‘저 새끼는 추방하면 좋다구나하고 다시 북부에서 활동하면 그만이잖아. 이게 말이 되냐고.’
황당했다. 결국 드낙은 또 결정을 바꾸었다. 지하 감옥에서 평생 썩도록 만들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광산 종신형도 나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비난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없는 건 아니지. 나 욕했으니, 너 광산행이니까.’
그 무력을 생각하면, 광산보다는 지하감옥이 더 어울렸다.
드낙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정소 시간이 되자 이제는 제법 사람들도 모여있었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고, 이야기꾼이나 여행자에게 푼돈을 주고 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북부 사제 울바론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뭐야, 동부왕이 돌아오자마자 튄 거야?”
“어제 한 번 동부왕이 보고 갔을 때, 겁먹었나 본데.”
“에잉. 쯧쯧. 좋은 구경거리 하나 생길 것 같았는데, 허탕이네.”
구경꾼들이 쑥 빠졌다. 특히나 동부왕이 돌아왔다는 말에 더욱 시선이 모였지만, 이렇게 그가 나타나지 않으니, 허망하게 그간 모았던 이목이 쏙 사라져버렸다.
“으아아아아!!”
철컹, 철컹!
지하 감옥에서 고함이 퍼져 나왔다. 드낙의 힘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순식간에 새벽녘에 납치된 울바론이었다. 그는 목에서 피멍이 날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신성력으로 다시 몸을 회복시켜서 계속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그를 위해서 찾아오지 않았고, 오직 앞니 빠진 간수가 시시덕거리면서 식사를 가져올 뿐이었다.
허무한 최후로 느껴지겠지만, 적어도 신전이 최소한의 양심 있는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울바론의 최후는 절대 허무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허무한 최후였다.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쓸쓸히 죽을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마지막 불꽃을 터트리지 못하고 지하에 끌려온 울바론의 외치는 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무엇보다 드낙의 심성상 특별한 일이 아니면 풀어주지 않았고, 애초에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공산이 컸다.
드낙은 외성벽에 올라서서 눈을 감으며 바람을 느꼈다. 최근 일이 쉽게 쉽게 진행되고 있었고, 답도 빨리빨리 얻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눈을 뜬 그가 풍경을 구경했다.
‘어라?’
사람들이 열심히 밭일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문제는 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논농사를 퍼뜨려야겠어.’
*
〈동부의 서쪽〉
〈하나 태양 마을〉
술집은 시끌시끌했다. 어느 곳이든 수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지금 서쪽보다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곳은 없었다.
빛의 사령관이라 불리는 도렌은 마을의 이름 앞부분에 숫자를 붙여서 내정 단순화를 추진하는 모습부터 남달랐다. 반면 사자 앞의 깡패로 불리는 이스핀은 부사령관이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그 두 명이 벌리는 서쪽의 개발 사업은 극과 극의 사건이 부딪치는 곳이라 떠들 것도 많았다.
“아, 미친 깡패놈이 이번에는 〈열 둘 구릉 마을〉을 싹 다 뒤집어놓았다고 하네?”
“또 그 새끼야? 깡패 새끼를 언제까지 부사령관으로 둘 생각이신지...”
“무슨 일을 벌였길래?”
“돈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재산보유세를 내라는 거야.”
“뭔, 무슨 세금?”
“재산을...허허.”
말을 하는 사람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이스핀의 세력이 만든 맥주를 싹 비우며 말했다.
“빌어먹을,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내는 세금이래.”
“미친 논리인데. 내 돈 내가 가지고 있다는데 뭔 세금을 내?”
“몰라, 하여간 쌍 정신병자 새끼가 돈에 미쳐서 날뛰고 있어.”
“우리 서부 사령관께서는 왜 그런 놈을 계속 놔두시는 것인지.”
“인정이 너무 두터워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난 이해가 안 돼.”
그 말에 다른 테이블에서 툭 쏘았다.
“네가 이해가 안 되면 어찌할 건데? 어디서 서부 사령관님을 욕해?”
“뭐? 이 새끼가, 돌았나. 내가 언제 욕했어?”
“새끼 새끼, 듣는 사람 기분 생각 안 하느냐?”
“너부터 생각하고 씨부려.”
단번에 주먹다짐이 시작되었다. 도렌의 복지는 나쁜놈, 착한놈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자와 시민들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소 폭력적인 자들도 도렌 신봉자가 많았다.
반면 이스핀은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있었다. 특히나 세금에 관련해서는 그는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세금징수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독하게 많은 세금을 거두고 있었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가져갔다. 먹고살 만한 사람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다시 재분배되었지만, 빼앗긴 자에게는 그저 강탈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전령이 도착했다! 지금 벽보에 뭘 붙이고 있다!”
소란 중에 밖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술집을 빠져나갔다. 또 무슨 일인지 서둘러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싸우던 이들도 주변에서 흥을 돋구지도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흐지부지되었다.
벽보는 한글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품지 못했다. 절대적 다수가 글을 모르는 자들이었기에 한글을 배운 사람은 절대적 다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전과 다르게 이곳에서 신분이 높은 자들은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전령이 딱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그들보다 위에 있는 기득권이 시민을 위하니, 입을 나불거릴 용기도 없었다. 가진 자일수록 강약약강의 성질을 강하게 띠고 있어서였다.
“어떻게 생각해? 인부를 모집한다는데.”
“생노가다긴한데...”
성을 짓는 일을 할 인부를 모집한다는 벽보였다. 서부 사령관의 본거지로 사용될 〈서부 성채〉였다.
“인부가 원하면 외성지역에 집을 주고, 땅을 준다는데. 이거 맞나?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최소 100평에서 가족 인원수에 따라서 최대 300평까지...!”
“혼자 가면 30평짜리네.”
집 때문에 결혼해서 가야 할 판이었다. 특히나 땅이 넓은 동부 특징상, 사람이 살 집의 평수가 넓었다.
‘안 가면 병신인데?’
벽보를 한 번 보고 나서 든 공통된 생각이었다. 단점이라고 하면, 임금이 높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임금을 적게 주는 대신에 집을 줬다. 또한, 원한다면 임금 대비 밭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소작농 하는 이들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반면 그걸 지켜보는 땅주인은 침을 삼키면서 벽보를 두 번, 세 번 보고 있었다.
‘이거, 마을에 장정이 남아나질 않겠는데?’
“어어, 자네들 어디 가나! 기, 기다려보게!”
촌장이 벽보를 손으로 더듬다가 하나, 둘 말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허둥지둥 잡았다.
“촌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잭! 설마 정겨운 마을을 두고 떠날 생각은 아니지? 아직 자네는 결혼도 하지 않았지 않나. 홀몸인데 저런 곳에 가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지!”
“......”
잭은 신경질 하나 내지 않고, 촌장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대단히 크게 일어났다. 〈서쪽 대이동〉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도렌의 노림수는 실로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인구가 폭발적으로 이동한다는 것부터 계획의 첫 성공물이었다.
‘서쪽을 모두 균등하게 발전시킬 수는 없다. 최대한 인력을 모아서, 크게 성장한 다음에 지방 성장을 노린다.’
서쪽에 사는 이들을 최소한 7할~8할을 모아서 거대한 도시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통이 안 좋았기에 도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했다.
질병을 고칠 연금술사도, 사제도 미리 모아둔 것이 도렌이었다. 그의 선한 평판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었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관리하기 쉽고, 교역 상인들도 효율이 높다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끝없는 토목공사로 인한 지방의 화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 집과 밭을 주는 것도 완벽했다. 게제라스에게서 공부한 도렌이었다. 누구보다도 절댓값이 높아지면 결국 세금이 늘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동부의 성장을 눈앞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서부 중앙 성장 계획〉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효력을 뿜어냈고, 더 크게 효과가 일어나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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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십시오. 내일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