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735화 (734/1,239)

강철의 전사 7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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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왈데마르 톤드라의 말에 연회장에 1명의 남부 관리가 난입했다. 병사들은 그를 강하게 잡지 못했는데, 그간 돈독하게 지내온 자였기 때문이다. 몇 번, 톤드라 가문을 위한 발언을 플래티넘 왕가에 직접 해주기도 했다.

“이럴 수는 없는 법이오! 톤드라 가문들이여! 톤드라 공작이여!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톤드라의 가문원들은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왈데마르 공작을 볼 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발언할 수 있는 자는 그뿐이었다.

스스로 배신을 논하기에는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왈데마르 공작은 아니었다.

“이런 날에 이렇게 마주하니, 내 얼굴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시오? 발리테르 중앙관리.”

“그게 정상 아닌가. 우리들의 왕은 그대들에게 공작령을 주고, 공작위를 내려주었다.”

“공작임에도 공왕을 칭하지 못하고 세금은 전보다 더 가중되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작령이 되면서 많은 땅을 받지 않았소.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이건 명백한 배신행위며, 도둑질이오!”

“폐허가 된 영토를 받아서 하는 일은 매일같이 땅을 구워서 피를 날려보내고, 돌을 씻어서 강을 피로 물들이는 일 뿐인데, 그게 무슨 정당한 대가인가! 세상 어느 왕이 공작되는 자에게 악마에게 황폐화가 된 땅을 내려주는가!”

날선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서로가 지닌 패를 하나씩 공개하며 맞서 싸웠다.

톤드라 가문은 허울뿐인 공작임을 드높였고, 남부 왕국이 준 것은 하자뿐이라는 걸 논했다. 반면 발리테르 중앙 관리는 그런 것을 논하기 전에 이미 배신자의 길을 걷는 것임을 입에 담았다.

“잘 생각해보게. 우리들의 편에서 고민해보게. 플래티넘에게 충성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없기는 왜 없는가. 그간 플래티넘 왕가로부터 비호를 받지 않았나...어찌 그 역사에서 등 돌려 오늘의 이익을 추구하는가.”

맥이 탁 풀리는 소리를 내며 발리테르 중앙관리가 새하얀 천으로 덮인 테이블을 손으로 잡았다. 절로 동정심이 일어나는 모습이었지만 그것 또한 화법의 일종일 뿐이었다.

귀족이 아닌 자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악마 준동 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그들을 저지했소.”

“그걸! 지금 말이라고!”

발리테르 중앙관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철면피를 깔고 말하는 왈데마르 공작의 도발은 실로 능숙하게 발리테를 꿰어냈다. 정직한 파견 관리인 발리테르에게 그건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운 좋게 건드려지지 않았던 것을 자주적으로 막았다고 말하다니!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스스로 나와서 다른 이들을 돕지도 않고, 쥐새끼처럼 숨어서 전화를 피해낸 주제에...!”

“무엄하다아아아아!!!”

발리테르가 선을 넘자마자 공작이 고함을 내지르며 그 말을 끊고, 병사와 기사를 통해서 단번에 그를 무릎 꿇리게 했다.

“으으!”

“어디서 중앙에서 파견 나온 관리가 공작에게 쥐새끼라고 말하느냐.”

“구부러지는 강철검을 본 적이 있느냐. 나는 그와 같다. 부러질 지언정, 구부러지지는 않는다.”

“없다고 말할 것 같나? 강철이 흐르는 검이 있다.”

그 대답에 발리테르 중앙 관리가 흘흘 웃었다.

“고블린이 오우거 따라 하는 격이다. 스스로를 불파겐이라고 여기는 건가? 우습고, 무지렁이나 다름없는 생각이다. 지금도 독립을 외치지만 다른 왕에게...”

서걱!

그대로 발리테르 중앙 관리의 목이 달아났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자의 최후였고, 여기까지 선을 넘고 가만히 있으면 톤드라 가문은 결코 플래티넘 왕가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잘 됐다.’

달리는 황소의 꼬리에 불을 붙였다.

피로 물든 연회장 속에서 왈데마르 공작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변호할 시간이었다.

“전보다 두 배 높은 세금을 내라고 하는 개돼지 같은 플래티넘을 따르겠는가!”

“아니다! 아니다! 아닙니다!”

“거친 바닷바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개돼지처럼 그들에게 굴복하겠느냐!”

“맞다! 맞다! 맞습니다!”

들어 올린 처형검에서 흐르는 피가 왈데마르 공작의 옷을 물들였다.

“수급을 잘 챙겨서 남부 왕국의 수도로 보내라. 개밥의 먹이가 될 위인은 아니다.”

“예!”

내륙에서는 작은 남작령에 불과했던 톤드라 가문은 오랫동안 인근 섬들을 세력화하며 키웠고, 이제는 스스로 공왕이라고 칭할 수 있게 될 정도로 세력이 커진 상태였다.

내륙에 작은 항구 도시 하나만 가지고 있는 톤드라 가문이 공작이 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2천 명에 달하는 가문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악마 게페락스에게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연회는 3일 내내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사절단 500명이 깃발을 휘날리며 동부왕에게로 향했다.

*

“초월자여. 그대는 지금 큰 위기에 처해있다.”

검은 돔에서 〈검은 심장〉을 만들며 지내던 드낙에게 중립신이 검은 꿈을 통해서 간섭해왔다.

‘갑자기 내가 X됐다니?’

황당하기보다는 흥미를 느꼈다. 거지 새끼가 너 큰일났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신이 너 큰일났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신뢰성이 큰 것과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내가 큰일 났다니?”

“쿼터 데몬의 기질을 다이앤타가 제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유모 한 명은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피에 절어서 신전에 몸을 의탁했다.”

“헉!”

드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악마의 힘에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것인가?”

“당연한 소리를. 악마는 종(種)이다. 다른 종족의 육신을 지니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민족적 특성을 뛰어넘어 종족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기질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였다.

“또한 악마의 육체는 정신(心)이 아니라 몸(肉)이다. 신의 힘과는 다르다. 신의 힘은 정신이 성숙하여야지만 얻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악마의 힘은 다르다. 누구나 획득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경계 받는 것이다.”

수천 년을 기다리며 떡상각을 기다리던 흑마법사조차도 초월자에 오르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 무분별한 탄생을 가질 수 있는 건, 객체가 지닌 정신과 영혼 따위 아무 소용이 없고 오로지 육체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릇 자체가 지닌 초월자적인 면모는 그 그릇에 담긴 물의 색을 변질시키기에 충분했다.

‘섬뜩하다.’

“그런 힘을 나보고 선택하라고 한 건가?”

“난 그저 선택지를 준 것일 뿐, 선택은 그대가 했다.”

그것은 실로 쉬운 일이었다. 신의 격은 정신에서 나온다. 간단히 말하여 정신체다. 가 아득히 높은 인식의 강에서 인간이라 불리는 물고기의 방향을 유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돌고 돌아서 결국 격(格)이었다.

격이 낮으면 평생 노예를 면치 못하고, 격이 높으면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스케일의 차이는 실로 불합리했다. 그리고...절망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개새끼.’

욕을 하면서도 드낙은 사지가 잘린 기분을 느꼈다.

결국, 이 박호훈이라는 자의 한계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한계점은 점점,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격(格)이 오른 드낙은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중립신이 검은 꿈에 간섭한 것만으로도 느꼈다.

‘확실한 격차.’

상대는 송곳처럼 자신을 찔렀는데, 드낙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검은 꿈이라는 다리는 중립신이 확실하게 드낙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력행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밤까지 기다리지 않고, 〈좋은 의도〉로 찾아왔음에도 눈치 빠른 드낙은 이를 깨달았다.

더는, 중립신의 세뇌에 휘둘리지 않았다. 작은 앙금조차도 사라졌다. 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신전은 공론화를 택할 것이고, 세리안은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지.”

중립신은 드낙을 천천히 요리했다. 그 표정이 절로 심각해졌다. 단 한 문장만으로 드낙은 수십, 수백 개의 걱정거리를 토해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낚시대 하나를 호수에 던져놓으면, 그 파동은 저 먼 곳까지 퍼져서 알아서 물고기가 관심 갖게 해줄 터였다.

‘큰일이다. 신전이 분열하면 안 되는데.’

중앙 사령관의 직함을 얻자마자 단번에 장악해낸 세리안이었다. 신전과 정면 충돌을 하면 했지, 쉽게 물러나지 않을 터였다. 특히나 딸이 연관된 곳에서 한 걸음 뒷걸음질 친다?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조급함이 생겼지만, 알아서 해결하겠지라는 믿음도 있었다.

‘내가 있는데 설마 피를 뿌리려고.’

어느 정도 표정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중립신이 딱 낚시대를 잡아챘다.

“〈종족 결속〉이라는 능력이 있다. 오로지 초월자의 격에 올라서야만 가능한 일이지. 반마라고는 하나 결국 악마는 초월 종족. 너 또한 이를 운용할 수 있다.”

“종족 결속...”

듣기만 해도 현재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악마라는 속성으로 너와 다이앤타는 연결되어있다. 또한 조련술의 업과 탄생부터 함께한 핏빛쥐와 너와 연결되어있지.”

중립신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들은 결코 너에게 반기를 들지 못할 거다. 오히려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다.”

“필요한 업은?”

“인간을 기준으로 49만 명 분.”

검은 연기가 쏟아져나오며 드낙의 앞에서 환영을 만들어냈다. 더는 드낙에게 환상을 체험해주지 못하기에 그 눈앞에서 이루어진 초월의 이미지가 현상을 보여주었다.

‘짓누르는 힘.’

드낙, 자신이 지닌 격과 상대의 격에 따라서 효과가 다 달랐다. 쿼터 데몬인 다이앤타는 하프 데몬인 드낙을 이기기 힘들었기에 사실상 절대적 복종과 같았다. 그저 겉으로 표출되지만 않을 뿐이었다.

동시에 핏빛쥐 사회를 한층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다.

드낙에게 불만을 품은 핏빛쥐들의 행동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드낙은 그 환영을 바라보며 자신의 육체가 가져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감탄, 또 감탄했다. 악마의 육체를 지닌 것만으로도 인간의 인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정보와 감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와 척추를 떨게 하였다.

정신은 아직도 인간이었지만, 악마의 육체가 보여주는 중립신이 빚은 능력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콜.”

모든 핏빛쥐를 제어할 수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게 드낙이었다. 고로 그는 단번에 딜을 외쳤고, 중립신에게서 능력을 얻고, 업을 내어줬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라 여겼다.

검은 꿈에서 깨어난 드낙은 손을 쥐락펴락하며 웃었다.

이렇게 쉽게 위기를 하나 넘겼기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드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척추가 떨릴 정도로 〈종족 결속〉이 지닌 능력 설계도를 엿볼 수 있었다.

‘비슷한 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족 결속은 서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드낙은 이 〈연결〉에 주목했고, 그것을 〈피의 다리〉로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고정된 다리는 쓸모가 없었다. 핏빛쥐와 드낙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해서 뭔가 특출난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악마의 힘을 더 단기간에 많이 쏟아부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게 아닌데.’

자신이 생각했던 게 아니었기에 드낙은 자신의 힘을 무너뜨리며 포기했다. 역시, 능력의 설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했다. 모방해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봤음에도 그걸 응용 변화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똑같이 따라 하면 그냥 제2의 종족 결속만 생길 뿐이었다.

‘의미가 없지.’

대장쥐와 연결한 피의 다리를 무너뜨리자 그 피가 쏟아지며 사라져 갔다. 그걸 정신 세계에서 바라보던 드낙이 무릎을 쳤다.

‘저거다!’

학교에서 들은 기억이 갑자기 확 살아났다. 왕이 술을 놓으면 돌고 돌아서 아래에 있는 신하에게 가고, 그 잔이 다시 왕에게로 돌아간다니 마네하며 시를 읊고 즐겼다는 일화였다.

‘잔이 가기 전에 술을 모두 못 마시면 벌칙을 받았던가? 그건 기억이 안 나네.’

물론 그런 내용을 지금 기억한 건 재밌어서, 흥미로운 일화라서가 아니었다.

선생과 눈이 마주쳐서 웃었는데, 자기 수업이 웃기냐며 그 뒤에 엉덩잇살이 터지도록 맞았던 기억 덕분에 기억할 수 있었다.

‘개 같은 선생 새끼. 지금 만나면 뚝배기를 깨버리는 건데.’

버러지 같은 교육자였다.

드낙은 이를 응용했다. 피로 만든 잔이 오가도록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장쥐와 드낙 사이를 오고가는 〈피의 잔〉은 확실하게 존재하며 대장쥐의 격을 높여주었고, 그 잔에 있는 악마의 힘은 고스란히 대장쥐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장쥐의 것이 아니고, 드낙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대장쥐에게 그 어떤 짐도 짊어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있기에 가능한 편법이었다. 또한, 기괴하게도 그 피의 잔은 육체로 만든 것임에도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초월적인 육체〉가 지닌 모순은 드낙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단점이라면 상대에 따라 피의 잔을 그에 맞춰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땀 한땀 수공예로 만들어서 줘야 했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정신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멀리서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드낙은 몰랐지만, 이 〈정신 세계의 피의 잔〉은 드낙의 첫 권능이 되었다. 반마이기에 육신을 정신에 간섭할 수 있었고, 악마였기에 정신세계에 육신으로 만든 잔을 놓을 수 있었다.

고로 그것은 오직 드낙만 할 수 있는 〈권능〉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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