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2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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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 전체가 우리들의 신 녹색 도끼를 위한 축제를 벌였고, 그 대가로 대예언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예언에서 얻은 것이 이것이다. 주술사들은 나오라.”
그들은 대형 움막에 들어와서 환영을 통해서 드낙에게 오크들이 마주한 것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오크가 경험했던, 수많은 예언이 주술사들의 손에서 뻗어나와서 원탁 위에 재현되었다.
홀로그램보다 뛰어난 환영이었다.
드낙은 정신을 못 차리고 빠짐없이 그것을 주시했다. 1시간에 이은 강렬한 경험이 끝나고, 침묵이 잠깐 내려앉았다.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저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잡으라는 걸까?’
깊은 고민에 빠진 드낙이 온갖 생각을 했다. 그 모습은 오크들에게 크게 진정성이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핀 용기사가 나오기 전에 잡는다? 어렵다...’
제국을 잡는다고 해도 제국을 잡은 인간을 두려워한 엘프들이 토사구팽(兎死狗烹)할 것이 분명했다. 엘프와 제국이 힘싸움을 하며 녹초가 되었을 때, 쳐야 했다. 그때가 언제일지 드낙은 몰랐다.
‘핏빛쥐를 제국과 엘프들이 전투하는 곳으로 많이 보내야겠구나.’
또 하나의 목적이 생겼다. 이는 큰 재산이 될 수 있었다.
“많이 고민될 것이다. 하지만 혼자 고민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지.”
“대족장조차도 잡지 못하는 강철의 그리핀 용기사를 잡는 게 가장 큰 목적이 되겠는데. 대책이 있나?”
드낙이 오크들의 대책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강철을 찌그러뜨리고, 박살 낼 정도로 강력한 충격량을 보유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산맥에 주술 토템의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방법밖에는 없지. 하지만, 공중 병력이기 때문에 도시를 그냥 때린다면?”
절로 한숨이 내쉬어지는 소리였지만 오크들은 달랐다.
“자신감 있는 놈이 뭐하러 돌아서 오겠는가. 그들은 정면 승부를 겨뤄서 단기전을 노릴 것이다. 장기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그건 맞지.”
드낙이 그것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규르소모스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었다.
“너희들은 위쪽에 있는 인간들을 제국인이라고 부른다지? 그들 피난민들이 계속해서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어떻게 했지?”
“적당한 곳에 잡아두었다. 그들에게서 〈영혼 제국〉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목을 자르고, 척수를 뽑아서 영혼을 가져간다고 하더군.”
“끔찍한...”
드낙이 적당히 맞장구 쳐주었다. 하지만 관심은 제국민들에게 가 있었다.
“그들 피난민들을 우리에게 넘겨줄 수 있나?”
“조건만 좋다면.”
“일단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드낙은 손사래를 쳤다. 제국민들에게서 얻을 건 분명 있었지만, 지금 형편상 다른 곳에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사람이 미래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동부에는 사람이 가장 싼 값에 동원되고 있었다.
그만큼 사람이 바다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았다.
‘돈 주고 가져간다면, 기술자나 마법사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작부터 굽히고 들어갈 순 없었다. 오크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다음에 달라고 하면 더 싸게 업어올 수 있는데 뭣 하러 지금 값을 정하겠는가.
조삼모사는 살아가는 데 그만큼 중요했다.
앞과 뒤를 조금만 바꿔도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강철 그리핀 용기사를 잡기 위해서는 오크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서 싸워야 한다. 적어도, 서로 다른 곳에서 싸우더라도 상대에게 검을 겨누지는 말아야겠지.”
싸우는 스타일이 다른 것이 오크와 인간이었다. 함께 한 곳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싸운다고 해도 서로 진영을 다르게 잡고, 포위하는 식으로 싸워야 했다. 그만큼 서로 믿음이 없었다.
“믿음을 달라는 것인가?”
“그렇다.”
“생각해둔 것이 있으면 말해줬으면 하는데.”
“영혼 제국 대책 회의를 매년 열었으면 한다. 개최지는 오크 한 번, 인간 한 번으로.”
‘좋은데?’
드낙이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오크와 자주 회의를 열기 때문에 아래에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확실한 동맹임을 과시할 수 있었다. 현대로 따지면 군사 협동 훈련과 같았다.
명분과 진영간의 포지션을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좋다. 그렇게 하지.”
드낙은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들은 그 호쾌한 모습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오크다운 면모를 드낙이 보여줘서였다. 하지만 규르소모스는 인간에 대해서 제법 알았기에 그를 의심했다.
“이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오크를 동부왕이 지지한다는 것이 된다. 그걸 알고 하는 것인가?”
“그래. 알고 있다.”
“음.”
드낙이 단숨에 대답하자 규르소모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짝.
드낙이 박수를 치며 주제를 환기했다.
“이렇게 쉽게 한 대신에 제국민을 내 쪽으로 돌려보냈으면 한다.”
“뭐, 상관없다. 앞으로도 피난민이 있다면 내 쪽을 통해서 보내주도록 하지.”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오크들의 편을 들어줬기에 규르소모스도 제국피난민에 대해서 양보했다.
서로 훈훈하게 하나씩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드낙이 제시한 것이 오크가 제시한 것보다 가치가 한없이 낮아서였다. 이를 드낙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오크들은 이것으로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녹색 도끼님의 예언에 나온 인간이다. 이렇게 퍼주다니.’
‘종족혐오가 없는 인간이라니. 특이한 인간이다.’
지켜보던 주술사들의 생각처럼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오크에게 큰 양보를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를 혼자 보낸 것 자체가 인간의 큰 실수였다. 반대로 세리안은 그래서 드낙을 홀로 보냈다.
오크들을 추켜세워줘야지만 인간이 똘똘 뭉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외적은 내부를 단단히 하는 데 꼭 필요했다. 오크들은 훌륭한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일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게 세리안이 원하는 진짜 목표이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들의 적을 두고두고 보고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흉악하고, 피비린내 나는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이들이 일에 치여서 살고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럼 다 된 건가?”
“그렇다. 우리는 이제부터 동맹이다.”
“그럼 오크 나무를 좀 줬으면 하는데.”
“무역을 말하는 건가?”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증기기관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오크 나무가 필요했다. 물레방아의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원하나?”
“못해도 1만 그루는 필요한데, 더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1만 그루?”
규르소모스가 반문했다. 그 정도로 대량의 오크 나무를 필요한 것이 이상해서였다.
“너무 많은데 뭘 할 생각인가.”
“교통 수단을 만들 거다.”
드낙이 대충 설명해주었다. 오크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걸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쓰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교통 발전의 위대함을 그들은 모르는 듯했다.
규르소모스가 입을 다문 상태에서 혀를 굴렸다.
‘이용할 수 있어 보인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오크 나무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자주 시장을 열어서 교환하는 게 어떤가.”
“나쁘지 않은 방법인데.”
드낙이 원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인간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횃불 성채 앞에 평야가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시장을 대규모로 연다면, 인간과 오크 모두 이득이다.”
“흠. 거대 시장이라?”
드낙이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듯했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도 있다. 선두주자가 되면 많은 것을 독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드낙이 냉큼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규르소모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하 연합〉의 무분별하고 자유로운 무역을 경험해서 이득을 많이 본 대족장이었다.
“지금 인간과의 교역은 귀족이라 불리는 인간 부류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되어있다. 이를 풀어서 거대 시장에서는 자유롭게 인간과 교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
드낙이 제법 감탄했다.
이 시대의 감성은 남이 먹는 꼴을 못 본다는 감성이었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딴놈들이 먹어도 규모를 키우면 무조건 이득이지.’
그 또한 반대할 리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온 드낙에게 있어서 넌 무역 못 해라는 소리는 개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나도 바라던 바다.”
“좋다! 하하하!”
규르소모스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어 말했다.
“이제 품목을 정해야 하는데 내 생각에는...”
“무슨 소릴. 품목도 없어야지.”
“품목의 제한도 푼다고? 허!”
규르소모스가 깜짝 놀랐다.
“그래.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자유 시장이다. 대신에, 관세를 붙인다.”
“관세?”
“너도나도 거래하며 이득을 보는데, 그 장소는 우리가 합작해서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러니, 거래를 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세금을 내야지.”
실로 악독한 소리였다.
“일종의 자릿세라고 볼 수 있지. 거기에 우리가 주도한 것이니, 서로 거래를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비용이기도 하고, 소개비라고 할 수 도 있고. 그런걸 퉁쳐서 관세라고 하는거지.”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폐쇄적인 교역이 성행하는 이 세계에 관세가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다른 종족이 자신들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데 그냥 놔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말에 드낙이 뒷머리를 긁었다. 당연히 모르는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관세는 거래 값의 5%면 적당하겠다.”
“그렇게 적게 한다고?”
“난 다른 세금이 많아서. 오크들은 오크 마음대로 관세를 정해라.”
“알았다.”
그렇게 관세까지 서로 정하기로 했다. 드낙은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재물을 상인이 쌓아봐야 나라와 종족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안 되지. 창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놈들 아닌가. 그들이 재물을 쌓아두게 하지 마라.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거대 시장이 만들어지면 분명히 오크쪽에서도 부유한 상인이 등장하게 될 터다.”
“충고 고맙다. 참고는 하겠지만, 오크의 일은 오크가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해라. 나중에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흐흐.”
그렇게 〈거대 무역 시장〉이 토치라이트 가문의 영지에 세워지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의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수수료를 챙겨주면 넙죽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드낙이 그들을 신경 쓸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굳세게 악수하고 난 다음에 드낙은 규르소모스에게 부탁했다.
“도시 구경을 시켜줬으면 하는데.”
“아무렴! 날 따라와라!”
규르소모스는 수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물소의 전당〉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건물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치료에 능한 물의 정령과 치료 주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노련한 주술사들이 있었다. 병에 걸린 오크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크식 병원이네.’
신기했다.
〈녹음진 요람〉은 녹색 천이 길게 늘어뜨려져서 건물을 가리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공동 육아의 현장이었는데, 걷거나 뛰지 못하는 아기 오크들을 키우는 여성 오크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혼자서 애를 키우는건 잠잘 시간도 없어서 힘들지만, 이곳에서는 여성 오크들의 표정이 밝았다.
〈작은 용맹의 골목길〉이라 불리는 지정된 골목길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볼품없는 나무 방어구를 입은 오크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대전사다!”
“이곳은 불리해! 도망쳐서 포위를 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규르소모스가 으름장을 내면서 포효했다.
“이노오오옴들! 나 뭉개주마!”
“와하하하! 쫓아온다!”
“도망쳐!”
“어디서 날 이기려고!”
적당히 쫓다가 다시 규르소모스가 돌아왔다. 워낙 무식한 오크들이었기에 지정된 골목길에서만 저렇게 골목대장짓을 하고, 칼싸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진귀한 것을 보여주지.”
규르소모스는 그렇게 말하며 도시의 지하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주술로 만들어진 작은 햇빛이 통로를 밝히고 있었고, 통로를 지나서 나타나는 거대한 동공에는 기괴한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족히 천 걸음 되는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천장에는 나뭇가지와 잎이 가득했고, 곳곳에 주먹 크기만 한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바닥에는 뿌리가 가득했다.
‘사과나무잖아.’
사과나무 한 그루가 족히 천 걸음이 넘는 거대한 원형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받침대도 전혀 없었고, 장대로 나뭇가지를 걸치고 있지 않았음에도 나뭇가지가 천장에 들러붙어서 끝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열려있는 사과를 하나 뜯어서 규르소모스가 드낙에게 건네고, 자신 또한 따로 하나 따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육즙이 손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드낙 또한 한입을 먹었다.
‘어우, 달아.’
이 세계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당도를 가지고 있는 사과였다. 또 딱딱하기도 매우 딱딱해서 보관하기도 좋아 보였다.
“〈무아지 니타우(Muaj Ntau)〉. 풍요의 나무이며, 지하에서 재배하는 과수원이기도 하지.”
일정 주술사가 한곳에 있으면서 이런 것도 가능하게 된 듯했다. 나무 가까이 가자 한 그루를 중심으로 물웅덩이가 존재했는데, 그 색이 한약색처럼 검었고, 흙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왔다.
‘한약 냄새네.’
“약재 물이 이렇게 가득 있다니.”
“호오.”
오크가 아닌 종족들은 그걸 〈흙냄새〉라고 평하겠지만 드낙은 달랐다. 그 모습에 규르소모스가 감탄했다. 흙내음과 약재 내음을 구별하는 다른 종족은 보기 힘들어서였다. 또한 드낙은 정령이 이 나무에 깃들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주력을 내뿜으며 나무에 보내주자 나무에서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늘보보다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정령인데? 무슨 정령이지?”
그 느릿느릿한 모습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 모습에 드낙이 물었다.
“태초의 정령이며, 오직 오크만이 소통할 수 있는 정령이다. 나무의 정령이기도 하지. 철저하게 오크들의 수호를 받고 살아가는 정령이다. 이걸 다른 종족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이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직선으로 걸어서 천 걸음을 걷는 나뭇가지를 뻗게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게 이 〈태초의 나무 정령〉이었다.
“일 년 내내 사과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식량 수급에도 좋지.”
규르소모스의 말에 드낙은 감히 그 수확량을 가늠하지 못했다. 열매가 계속 열리기 때문이었다.
“전투력이 없고, 싸울 의지도 없어서 비밀스럽게 지켜지고 있는 정령은 이 외에도 많지만, 여기까지 밖에 보여줄 수밖에 없다.”
“괜찮다. 이것만으로도 큰 경험이다.”
드낙은 그 나무 정령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무 사과〉라 불리는 딱딱 사과를 한 상자 얻어서 그는 다시 동부에 귀환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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