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27편
<-- -->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불덩이 제련님.”
몸을 흔들며 말하는 소리에 드워프, 불덩이 제련이 눈을 떴다. 그 앞에는 다소곳하게 옷을 입고 있는 늠름한 근육질의 고블린 전사가 털을 말끔하게 민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예.”
불덩이 제련이 하품을 하며 몸을 뒤집자 고블린 집사가 등을 주무르고, 다리를 밟아서 마사지를 해주었다.
“아~ 좋다!”
마사지를 받고,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불덩이 제련이 하루를 시작했다. 그 곁에서 고블린 집사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조해주었다.
“물.”
“예.”
고블린 집사가 물을 떠다 주고, 대장간 일을 하는 그의 땀을 닦아주었다. 때때로 샤워를 돕고, 잘 닦아주고, 보송보송한 옷을 새로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 사이에 대장간을 환기해서 후끈한 공기를 내보냈다.
“오늘도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고블린 집사는 하루를 끝내고 해가 지기 전에 잠에 빠져든 불덩이 제련을 뒤로하고, 지하 연합에게로 양피지를 썼다.
[기술 전송. 기술분류 #5329
제련한 철괴를 10개로 떼어내서 정밀하게 무게를 가늠하고, 매우 얇게 펴서 강도를 확인하여 부러진 부분은 과감하게 제거를 한 다음에 다시 괴를 뭉쳐서 무기를 만들면, 엄청난 수준의 무기가 만들어진다.
이를 이름 짓는다면, 강철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공정을 적는다면...]
양피지에는 불덩이 제련이 한 공정 과정과 그 시간이 빠짐없이 기록돼서 매우 길었다. 단단히 봉해서 핏빛쥐 정보원에게 이를 건네주었다.
이처럼 드워프 제국의 뼛속까지 지하 연합의 집사와 메이드들이 침투해있었다.
그들은 둔감하고 귀찮아하는 드워프들을 케어 직종에 종사하며 드워프 제국의 기술을 탐하고 이를 지하 연합에 건네주었다.
드워프 제국의 기술은 특히, 크놀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대장장이 일을 종족적으로 오랫동안 했기에 흡수율이 빨라서였다.
이는 곧 큰 바람이 되어서 지하 연합 사회를 강타하고 있었다. 크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전에는 고블린이 2순위 종족이었다면 이제 크놀이 2순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빠르게 드워프 기술이 지하 연합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크놀의 숫자만큼이나 빨랐다.
*
“뜨나아아악! 큰일 났습니다!”
검은뿔 핏빛쥐가 서둘러 최하층에 도달했다. 검은 돔은 지하 연합의 수도로 불리지만 사실상 핏빛쥐들의 중앙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배불뚝 리전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최하층에 들어설 수 있었고, 업무를 보고 있는 대장쥐와 마주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전에 말씀드렸던 인간들의 증기기관차 프로젝트에 드워프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뭐라!!!”
대장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 위에 걸려 있는 일백야수의 거대한 해골이 덜렁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초유의 사태였고, 매우 놀랄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분명 드워프는 농업진흥을 위해서 역량이 없을 텐데. 그걸 우리들의 신께서 허락을 하셨다고?”
“드워프 고집을 보고 자비로 허락하셨습니다.”
“으음...역시 우리들의 신이시다.”
드낙의 자비로움을 보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이제 드워프가 손을 걷어붙인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우리들이 만든 대책이 공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3년 만들 것을 1년 만들 것으로 줄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대책 또한 박살 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또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중앙 회의를 열겠다. 다른 위원장들에게도 알려라.”
전시가 지나가고 평시가 도래했기에 다른 리전의 위원장들 또한 이 검은 돔에서 지내고 있었다. 중앙의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예!”
명을 받은 검은 뿔쥐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원탁에 모인 위원장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장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 들었을 것이다. 인간 놈들을 드워프가 돕기 시작했다.”
“큰일 날 일이지.”
“〈지하 질주 수로〉의 대형화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찍찍.”
기존에 편도형식으로 가능한 지하 질주 수로를 더 크게 만들어서 왕복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곳에 뻗어 나가도록 만드는 게 인간들의 마법 증기기관차의 대항마였다. 하지만 드워프가 손을 걷어붙인 이상,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에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래서야 반반밖에 안 된다.”
“맞다, 맞아.”
찍찍.
모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종족의 성세를 위해서 하나 되어 싸우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과 같은 종족이었던 것만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를 역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업과 같은 멋진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지하 질주 수로〉로 능히 짓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드워프라는 복병이 있을 줄이야. 찍찍.”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원장들이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언제나 그렇듯 대장쥐로부터 나왔다.
“들어봐라.”
그 말에 이목이 쏠렸다.
“우린 이미 지하 질주 수로가 있어서 그것을 더 발달시켜서 인간을 짓누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닌가?”
찍찍.
쥐소리를 내며 위원장들이 수긍했다.
대장쥐는 손바닥을 뒤집으며 말했다.
“그게 돌아가서 이기는 길이라면, 이번에는 반대로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방법을 쓰면 된다.”
“똑같이 마법 증기기관차를 만들자는 것인가?”
“지하에서 그런걸 굴리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지상과는 다르게 크기에 맞게 땅을 파야했기 때문이다.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지나갈 통로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지하에 맞도록 만들어야지. 그 큰놈을 어떻게 운용하려고?”
대장쥐가 손을 비볐다.
“이미 답은 우리들의 신이 제시하지 않았나?”
“어떤...?”
“철로다. 인간 놈들은 쓸 수 없는 거지.”
돈이라고 하면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훔치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들이었다.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결국 멸망할 종족이다. 반면 핏빛쥐는 달랐다.
“우리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 오로지 종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그 차이는 철도의 도입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결정했다.
카드 놀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가 수많은 뿔 없는 핏빛쥐들의 피로 만들어졌기에 지하 연합은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된 상태였다.
“철로? 우리들의 신이 증기기관차를 언급할 때 같이 언급하셨던 것이로군.”
“확실히, 인간과는 다르게 우리는 할 만하지.”
지하 통로라는 특징상 훔치기도 힘들고, 한다고 해도 바로 들킬 수밖에 없었다. 나누어서 판다면, 핏빛쥐들의 귀에 들려올 수도 있었다. 수많은 위험이 존재했다. 그 위험을 안고 훔칠 정도로 살기 팍팍한 곳도 아니었다.
“철로에 주술을 깔고, 계속 주력을 유지한다면, 능히 소형화된 강철 수레를 증기기관차처럼 연결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운용할 수 있다.”
“매캐한 연기는 쓸 수 없을 테니, 오로지 주력으로만 움직여야겠군.”
장작을 데우면 매캐하게 연기가 배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물을 데울 수 없었다. 환풍구를 따로 만들기에는 아직 그런 지식이 존재하지 않았고, 산소보다 무거운 연기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될 공산도 컸다.
공기의 흐름을 연구하지 않고는 하기 힘들었다. 또 안다고 해도 매캐한 공기만 쏙 빼낼 수 없었다.
“오히려 현재로써는 그게 더 최고 아닌가? 어쭙잖은 증기 기술로는 그걸 구현하기 힘들다. 차라리 우리의 강점으로 운용하는 게 좋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방금 생각한 것이지만 방대한 주력을 보관하는 〈주력 보관로〉를 건설한다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수준의 교통수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태어나고 있는 핏빛쥐들의 주력 보유자와 마력 보유자 또한 폭증하는 추세다. 그 흐름을 응용할 수 있기에 더욱 좋다.”
드낙과 조련술의 업, 반마의 피로 연결된 것이 핏빛쥐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주력과 마력을 타고난 핏빛쥐들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상태였다. 10마리 중 8마리가 초월의 힘을 보유한 채로 태어났다.
“마력과 주력이 하나 될 수는 없으니. 하나만 정해야 하는 게 아쉽다.”
“둘 모두를 이용한 철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큼 대단한 것이 없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찍찍.
“리고를 이용하는 게 어떤가? 마법과 주술을 모두 사용하고 있지 않나. 그가 합일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모르지. 하지만 그에게 큰 힘을 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찍찍.”
“동감한다.”
단칼에 그 생각은 잘렸다. 그만큼 오우거는 위험한 종족이었다. 그 짝을 붙여준 것도 드낙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우리는 철도에 큰 비중을 둔다. 탈 것은 강철 수레를 중형급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주력의 양으로 대결하면 된다.”
“운송이 빨라지면 그만큼 더 세력이 성장할 수 있을 터다.”
“남부의 남쪽 끝에 있는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서 여기 검은 돔까지 운반할 수도 있다. 찍찍.”
대장쥐가 마지막으로 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의원장들의 눈도 빛났다.
해산물.
바닷물에 절인 물고기.
“그것만 지하연합 전역에 보급할 수 있다면, 더는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무시무시한 도약이 철도에 있다는 건가. 역시 대단한 혜안이다.”
모두가 대장쥐의 혜안에 감탄했다. 바닷물에 절인 물고기는 엄청난 식량 공급원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걸 제대로 빨리 지하 연합 전역에 보급할 수 있다면, 지하 연합은 다시 한 번 거대한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인간이 먹지 않는 벌레까지 농장화해서 압도적인 성장을 한 지금. 다시 한 번 더 도약할 잉여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실로 무서웠다.
“모든 걸 동원해라! 큰 위업은 필요 없다! 실용적으로 확실한 효과로 그분의 사랑을 받아낼 것이다!”
찍찍찍.
그들은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회의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쥐소리가 흘러나왔다.
*
구오오오오!
드낙이 블러디 만티코어를 탄 채로 구름 아래로 내려왔다. 블러디 만티코어가 크게 포효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다. 전과는 다르게 그는 도시를 빙 두르며 위협하지 않았다.
척 봐도 오크들의 성세는 눈이 부셨다. 엘프들이 그토록 막으려고 했던 오크들의 평야 진출이 실현된 지금. 황소굽이 도시는 엄청난 도시로 발전해있었다.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여 진 도시.’
자연으로 빚어 만든 도시가 황소굽이 도시였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수백이 넘는 정령들의 흔적 또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이 단기간에 저렇게 성장할 수 있었지.’
드낙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도시밖 하루 거리를 두고 내려앉았다.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굴었는데, 서로 양보하고 서로 적당히 체면치레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오크는 그럴 자격이 있지.’
예언부터 시작해서 명예로운 전사까지 허투루 여길 게 없었다.
마중을 나온 오크 전사들과 함께 드낙은 블러디 만티코어에 올라탄 채로 황소굽이 도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바로 대족장께 가는데, 괜찮겠소?”
“바라던 바다.”
대족장 규르소모스를 만나는 것은 금방 성사됐다. 드낙처럼 본론으로 확 들어가는 게 오크식이었다. 대로를 가는 도중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과 고블린이 서로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까는 동괴라며! 인제 와서는 뭔 철괴야!”
“내가? 네가? 야, 네가 그런 거겠지!”
인간이 고블린의 멱살을 잡았지만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지나가던 오크가 얼굴을 철썩 때려서였다.
“뛝!”
“아까부터 봤더니만 어디서 사기 치려고 그래? 그리고 고블린 상인, 너도 문제다. 계속 동괴라고 외쳤어야지.”
“예? 제가요?”
“그래, 새끼야! 목소리에 힘이 없으니까, 잘못들을 수도 있자나.”
인간이 귀에서 피를 흘리며 일어났다. 입술까지 터진 상태였다. 오크 전사가 그런 인간을 보고 버럭 했다.
“너도! 다 알면서 왜 그런 헛소리를 해?”
오크가 주먹을 쥐고 살짝 들어올리자 배짱장사를 하려고 했던 인간이 순식간에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서로 악수하고 가 봐.”
문제가 생기면 양쪽 모두를 후려치는 오크식 치안관리법을 본 드낙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피해자도 욕먹고, 가해자는 처맞고 잘하는 짓이었다.
가는 내내 신기한 건물들이 있었지만, 물어도 오크 전사는 말해주지 않았다.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건물로 보였는데, 그 용도가 확실하게 나누어진 듯해서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물이 쏟아져 내리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녹색 천이 아주 길게 내려와서 건물을 덮고 있는 곳도 있었다.
‘나중에 대족장에게 안내를 해달라고 요구해야겠다.’
이런 기회를 놓칠 드낙이 아니었다.
정령으로 가득한 오크 도시는 분명 보고 배울게 많아보였다.
“반갑다, 드낙 불파겐.”
규르소모스와 드낙이 서로 인사하며 악수를 하였다. 손에 피멍이 든 규르소모스는 손을 주억거리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오가 뇌를 지배한 모습이었다.
‘놈.’
드낙이 웃음 지었다. 오크들은 결코 싫어할 수가 없었다.
“나와 동맹을 하자고 토치라이트 가문에게 말을 전했던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멀리 있는 나와 그렇게 동맹을 하자고 했나?”
그 말에 규르소모스가 길고 넓은 통가죽 양피지를 원탁에 던졌다. 수행원들이 이를 받아서 쫙 펼치니 벽화가 만들어졌다.
드낙이 이를 자세히 훑었다.
먹구름에서 튀어나온 강철의 그리핀 용기사.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는 오크들의 대도시.
오크들의 시체 속에서 홀로 울부짖는 규르소모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 작품 후기 ==========
6439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