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726화 (725/1,239)

강철의 전사 72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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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서부〉

〈시네 노미몬스(sine nomine mons) 분지〉

그곳에서 세파리아스와 포리에로가 오두막에서 서로 마주한 채 탁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탁자에는 이 서부에 대한 대략적인 지도가 크게 펼쳐져 있었다.

영혼 제국은 중요 군단장들이 반란을 쉽게 일으킬 명분을 줘서 깡그리 털어버린 뒤에 제국 동쪽을 통해서 엘프와 전쟁 중이었다.

지금이 제국 서부에서 힘을 키울 절호의 기회였다.

“휘하로 들일만 한 곳은 여기. 평야에 자리 잡혀있는 마질란 성채입니다.”

“규모가 작은 성인가보지?”

“예.”

세파리아스의 말에 노기사가 깍듯하게 대답했다. 또한 마질란 성채에 대해서 줄줄 읊었다.

“가구 수는 약 600~700이며, 인구수는 3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사 수는 많아 봤자 3명도 안 되겠는데.”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병사 숫자는 30명을 넘지 못할 겁니다.”

평시였다면 병사 열다섯도 버거웠을 것이다. 평야 지대에 있는 성이었기에 군사력에 관심이 있었다면 병사는 20명은 될 터였다.

“전시니까 30명은 있겠지.”

치기 좋은 숫자였다.

심장이 멈췄음에도 검을 휘두를 정도의 정신력을 지닌 인간인 세파리아스에게 기사 3명과 보병 30명은 허기진 피웅덩이의 배를 채울 수도 없을 정도의 상대였다.

“그들 또한 분지로 데려오실 생각입니까?”

“당연한 소릴. 영혼 제국과 상대하려면 그들로부터 우리의 세력을 숨기는 게 첫째다. 스컬 마커스 분대처럼 제국 영혼 기수들이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것만 봐도 영혼 제국이 보통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쳐들어갈 가치도 없는 놈들을 계속해서 조지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방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규합된 모습이 보이면, 적어도 1만 대군. 영혼 제국의 상황이 좋다면 3만도 그냥 밀려올 터였다.

세파리아스는 단번에 계획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1초도 생각하지 않아도 정석을 논할 수 있었다.

“평야지대에서 소란을 피우고, 밭을 태우며 이동하는 상인들을 약탈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성주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놈들을 죽이고 마질란 성을 점령한다.”

성주와 기사 병사까지 참살해서 이를 효수해서 대로를 걷는다면 단번에 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기사가 이에 반대했다.

“제가 내정관이었던 〈페테르 베나르드(Peter Benard)〉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내정관으로서의 역량이 대단합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포섭할 수 있겠나? 내가 지닌 병사는 10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산했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력이 약한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는 권력자는 없었다.

“예. 계획이 있습니다.”

“말해보라.”

세파리아스가 말한 파괴적인 점령과는 다르게 노기사는 제법 음흉한 수법을 들고 왔다.

“전 내정관, 현 성주인 페테르 베나르드는 혈족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이를 이용한다면, 능히 그를 포섭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혀를 짧게 찼다.

“가족을 건드리고 어찌 뒤가 안정되겠느냐. 다 죽여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낫다.”

무력으로 무릎 꿇린 자는 주먹이 멀어지면 딴생각을 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강한 주먹이라도 멀어지면 약해 보이기 마련이다.

“피로 닦은 길이 얼마나 깔끔하겠습니까. 망나니 같은 장남을 부추기고, 알찬 차남을 포로로 사로잡는다면 저희를 위해서 일할 것입니다.”

“그 정도로 말하니, 내 이번에는 그대의 말을 들어주마.”

“감사합니다.”

복장을 가볍게 하고, 세파리아스는 파란색 염료로 붉은 머리카락을 염색했다. 검은색 염료는 구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곧바로 마질란 성으로 향했다. 작은 성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외벽이 존재했고, 그 안팎으로 집들이 있었다. 다만, 외성벽이라고 부를 정도로 외벽이 뛰어난 구조로 되어 있지 않았다.

‘단순한 성이군. 가장 하찮은 성이다.’

지상에서 외벽위로 올라가는 병사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세파리아스가 생각보다 빨리 외벽에 오른 병사를 보며 생각했다. 이리 굽히고, 저리 낮추고, 다시 올리거나 나선형으로 꼬아서 올라가는 통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듯했다.

‘정직한 통로는 적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거늘.’

“너무 단순한 외벽같은데.”

“예. 하지만 서부에서 무슨 싸움이 일어나겠습니까? 비용 감축을 위해서 저렇게 한 것일 겁니다. 또 마법성이기에 성의 구조는 사실 무의미합니다.”

외벽 곳곳에 있는 음각(陰刻) 마법진에는 푸른 액체가 단단히 굳어있었다. 척 봐도 마법성으로 보였다.

‘구조는 단순하게 한 만큼, 마법으로 성의 수준을 높였다는 건가. 버러지 같은.’

세파리아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일에 구슬땀을 흘려도 인간이라는 종족은 부족함이 있는데 마법을 너무 맹신하는 모습이었다.

“으흐흐흐흑.”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가 세파리아스의 귀에 들려왔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적당히 둘러본 세파리아스가 감상을 노기사 포리에로에게 말했다.

“분위기가 안 좋은데. 처세를 잘하는 게 맞나?”

“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움직이지 말고 하루를 더 지켜봐야겠다.”

“예.”

두 사람과 수행원 2명은 철저하게 염탐하기 좋은 여관을 2곳 잡아 흩어졌다.

“어서오십시오!”

세파리아스는 3층이었지만 층마다 높이가 큰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최상층에서 가장 비싼 곳을 고른 이유는 성을 멀리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소리 없이 잘 열리는 창문에서 세파리아스는 새벽이 오기까지 계속 밖을 훑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여관을 나와서 음식점 앞에서 만나 식사를 했다.

“어떻더냐?”

“병사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굶주린 자들도 생각 이상으로 많고, 무엇보다 세금이 대단히 높은 상태입니다.”

노기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였다.

“외벽을 순찰도는 병사 숫자만 100명이다. 내성에는 이것보다 적겠지만 적어도 50명은 더 있겠지.”

“그걸 어찌 잘 아십니까?”

“무얼. 그냥 온종일 외벽만 보고 있으면 다 아는 일이다.”

“밤을 새우셨습니까?”

세파리아스는 대꾸도 하기 싫은지 손사래를 쳤다. 쓸데없는 주제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야 성이 가질 수 있는 병사 숫자는 최대 30명이다. 근데 그 5배 이상을 굴리고 있으니, 성의 시민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살 수 없습니다.”

전과 다르게 세파리아스는 시민의 상황을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모두, 드낙 덕분이었다.

‘약자에게는 약자의 삶과 생각이 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라고 여겼던 나약한 인간들을 그저 숫자로 매겨서 영지를 운영했던 게 세파리아스였다. 그는 진실로 완벽한 반면교사였다. 하지만 그 핏덩이의 면모는 드낙 덕분에 사라져 있었다.

이는 강자 중 강자로 태어난 세파리아스에게 큰 재산이 된 상태였다.

“명백한 군사력 과잉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공포.”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짧게 대답했다. 그가 등받이에 기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평시에는 좋은 내정관이었겠지. 하지만 흑황제가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그 영혼을 뽑아다 쓰면서 시대가 변했다.”

“시대가 변하니, 사람의 재능도 변하다니.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게 인간이다.”

평생 자신의 주관 없이 살아가는, 파도에 휩쓸리는 갯지렁이 같은 삶을 살아간다.

상황에 따라서 고개가 홱홱 돌아가고 이리 부딪치고 저리 밀려 나가며 사는 게 인간이었다. 고정된 것이 없기에 1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똑같은 현상에 똑같이 대처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대쪽같은 인간이 추앙받는 이유도 다른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소인배라 칭하지만, 이는 바보 같은 소리였다.

성인이 적기에 성인이라 추앙하는 것처럼, 대인배도 마주하기 어렵기에 추켜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자가 아니라서 소인배라 남을 꾸짖은 이 또한 대인배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대인배를 보면 고개 숙이기 바쁘기 때문이다. 소인배와 대인배를 나누어서 태도를 달리하는 것부터 이미 그 자신 또한 소인배였다.

이를 드낙을 통해서 배운 게 세파리아스였다. 그는 훌륭한 반면교사였다. 물론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난세에서는 두려움에 발발 떠는 쥐새끼 같은 놈이 성주 노릇을 하며 시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데, 내가 그를 거두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 말에도 세파리아스는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갔다.

“전에는 좋은 내정관일지 몰라도 지금은 나쁜 성주다. 내가 어떻게 해야겠느냐?”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제가 민란을 유도하겠습니다.”

“외벽 안팎으로 기사가 하나 있다. 놈을 죽이고, 난 내성으로 향하겠다. 시작은 거기서부터 하자.”

“예.”

세파리아스는 잡화점에서 긴 장대를 구해서 그곳에 넓고 긴 붉은 민병대의 깃발을 묶었다. 그걸 바라보는 잡화점 주인이 절로 침을 꼴딱 삼켰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핍박받고, 높은 세금에 고통받은 이 마질란 성에서 민병대의 깃발을 만들고, 들어 올린다? 반란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감히 눈조차 마주하기 힘든 존재감을 지닌 게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대로를 세파리아스가 걸었다. 대검은 등에 짊어졌고, 오른손에는 롱소드를 뽑아든 채였다. 시민들이 슬금슬금 대로의 끝에 붙거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의 뒤로 노기사와 병사 넷이 이마에 붉은 천을 두른 채 세파리아스의 뒤를 따라 네거리를 점거하고, 고함을 질러대었다.

“언제까지 높은 세금 속에서 빨아 먹히고 살 텐가! 평야의 향긋한 밀내음을 맡으며 추수를 해도 손에 쥐어지는 건 풀떼기 뿐이다!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보며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것인가!”

세파리아스는 장대를 노기사에게 넘기고, 롱소드를 집어넣은 다음에 등에 있는 대검을 풀어서 땅에 내린 뒤에 다시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어디서 반란 선동질이냐!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소란을 듣고, 서둘러 기사가 나타났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고, 방패 없이 클레이모어 한 자루만 가지고 있는 제국 기사였다.

클레이모어는 대검 중에서도 길이가 짧고, 다른 것은 다른 대검과 비슷한 대검이었다.

“흐!”

긴 대검을 쓰지 못하니, 저런 클레이모어나 쓰는 것이었다. 무기마다 용도가 있다고 빼액 거릴 놈의 말 따위 듣지 않아도 된다. 병사 중에 대검을 잘 다루는 자는 웃돈까지 받는다.

후웅.

투착하고 굵은 무식한 대검이 기사에게 겨누어졌다. 그 상대로 우직하게 세파리아스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기사나 병사들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무력시위였기 때문이다.

대검을 쭉 뻗은 상태로 걸어오는 기행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힘과 균형 모두 일정 수준에 올라있어야만 가능했다. 대검의 무게 때문에 앞으로 쭉 내미는 순간 땅으로 푹 꺾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지 않은 채로 10초 이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민병대 우두머리가 지닌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말이 많다. 난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 무기를 버리면 살고, 덤비면 죽는다.”

“날 따르라! 마질란의 병사들아!”

“와아아아!”

기사가 앞장서서 달려나가고, 그것이 쐐기가 되어 병사들의 기세를 돋운다. 상대에게 기사가 없을 때 하는 정석 전술이었다. 세파리아스의 존재감을 느꼈음에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제국 기사가 젊고, 열등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후우우우...”

깊은숨을 들이 내쉬며 세파리아스의 상체가 부풀어 올랐다. 숨을 잔뜩 들이쉰 채로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대검이 내려쳐 졌다.

화아아악!

화염 덩어리가 제국 기사의 갑주에서 튀어나와 전방을 뒤흔들었다.

“하하하! 이 어리석은...”

웃음을 터트리는 제국 기사의 눈에 화염을 두른 채로 눈썹이 날아가 눈알이 크게 보이는 세파리아스의 흉측한 모습이 들어왔다. 한 번 죽은 세파리아스는 이제 적발의 제어까지 가능한 괴물이 되었다.

“웃!”

클레이모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시작 자세가 좋지 않았다. 웃음을 터트리며 등을 살짝 굽히며 손으로 입을 가린 자세에서 시작된 수비태세는 결코 좋은 모양은 아니었다.

콰직!

대검이 클레이모어를 짓누르고, 클레이모어가 제국 기사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동시에 밀착한 세파리아스에게서 맡아지는 매캐한 탄내와 고기 굽는 냄새가 맡아졌다. 무릎과 허벅지로 제국 기사를 들어 올린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상체로 상대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체급 차이가 있었고, 다리가 들어 올려진 제국 기사가 그대로 넘어졌고, 투구를 향해서 대검이 찔러졌다. 고개를 돌렸으니 기이하게 대검의 궤도가 따라왔다.

꽝!

피가 튀었다. 제국 기사의 투구가 통째로 짓이겨지며 대검이 제국 기사의 머리에 박혔다. 인간이 했다고 볼 수 없는 호쾌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병사들의 창이 세파리아스의 몸 곳곳을 질렀다.

그 속에서 세파리아스는 대검을 좌우로 돌리며 틈을 내고, 대검을 뽑았다. 피가 그대로 솟구쳐올랐다.

투두둑.

그 피가 얼굴에 묻은 병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우우...”

창을 꽂아넣은 병사들이 주춤거렸다.

“비켜라.”

“꿀꺽.”

창대를 잡은 체 그렇게 말하자 병사 하나가 주춤거리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른 병사들도 너도나도 물러났다. 세파리아스가 흘리는 피에서 황금빛깔이 반짝였다. 손수 창대를 뽑고, 노기사와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등에 있는 것도 뽑았다.

물을 뒤집어엎어 쓴 세파리아스의 상처가 황금빛에 물든 채 빠르게 회복되는 게 눈에 보였다. 흰 뼈가 근육으로 덮이고, 살이 메꾸고 다시 피부가 이를 덮는 광경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악독한 성주를 몰아내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제국의 시대를 열겠다! 이 끝에는 흑황제마저 땅에 드러누울 것이니, 이는 위대한 출발이다!”

“와아아아!”

“더는 세금은 없다! 종족을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싸울 시대가 도래했다!”

세파리아스가 그렇게 두 번을 외치고, 나머지를 포리에로에게 맡기고 그대로 내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들어라! 사악하고 악독한 자들이 난세를 이용해서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고기를 올려놓고 그 기름을 손에 묻히며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을 죽여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

“더러운 돼지를 죽이자!”

“죽여라! 죽여! 죽여어어!!”

사람이 죽이자고 말하면서 사람이 살자고 논하였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지는 해를 짓누르고, 새로운 태양을 따르자!”

“와아아아!”

그렇게 이 작은 성의 권력 가문이 몰락했고, 또 그곳에 새로운 권력자가 탄생했다. 시민들 중 절반이 강제로 분지로 끌려가게 되었다. 서부가 아직도 난장판이라는 걸 영혼 제국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약화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흥분한 이들이 지니고 있던 고양감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었다.

전과는 다르겠지라는 나약한 인간의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짓밟혀도 그대로 있을 수 있는 피해자의 망상을 유지해주는 덧없는 자기합리화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이를 세파리아스는 철저하게 이용했다.

“세금은 없다! 오로지 흑황제를 죽이기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바로 영웅이다!”

영웅주의와 대의명분을 드높였다. 그 속에 깃들어있는 흉험한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듣는 자는 1명도 없었다. 세금은 없어도 흑황제를 죽인다는 명분을 통한 공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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