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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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야금술은 너무 경험을 중시한다.’
1명의 장인이 하나의 전신갑주를 만든다. 다른 이가 만든 것과는 호환이 되지 않았다. 또한 반복적인 공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수십 년을 그렇게 보냈기에 뛰어난 전신갑주를 만들 수 있었다.
경험으로 닿은 정밀한 야금술이었기에 생소한 것을 만들 때는 장인도 별수 없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체계적인 발전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드낙은 깨달을 수 있었다.
‘왜 학문을 모두 정리해서 정립시킨 자가 업적으로 크게 이야기되는지 알겠다.’
뭐든지 정리가 필요했다.
법을 새로 정립시킨 것도 왕의 업적으로 남는다. 그만큼 정리는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다. 금속 성형이 뛰어나지 않으면 부품을 만드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 결과가 물레방앗간으로 달리는 기차다.’
얼마나 기술이 멍청하면 기차가 물레방아식으로 달리겠는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이 성공하려면, 전문직을 양성해야 했다.
‘아!’
드낙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유레카를 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사람이 미래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구나.’
전문직 양성! 기술자 배출! 이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생산력이 높아지고, 종족의 수준이 상승할 수 있었다.
‘경험을 너무 추구하는 장인 정신을 뜯어 고쳐야 한다.’
〈전문학문연구소〉의 출범.
‘연구하고, 공부해서 돈을 벌 수 있을 수 있게 하는 거다.’
돈과 명예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게 만들어줘야 했다.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가르치는데 인색해 하고, 〈애송이 시절〉을 겪게 해서 5년을 봉사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사회 풍토를 없애야 했다.
‘시험을 통해서 학문을 증진할 자를 가려 뽑고, 기술과 지식 전파를 통한 전문인을 양성하는 게 가장 큰 목표로 잡는다.’
드낙은 곧바로 회의를 통해서 전문학문연구소의 출범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찬성합니다.”
모든 이들이 반대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밥줄과 권위를 위해서 반대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할 놈은 없었다. 드낙은 큰 불만이 없자 곧바로 계획을 빠르게 진행했다.
“부지는 중앙에 짓는다. 불파겐 마탑과 대칭되도록 반대편에 거리를 제법 두고 짓도록 하겠다.”
“예.”
“농업부터 상업 그리고 목공과 광산을 캐는 것까지 모든 실부자로부터 필요한 지식을 사들인다고 벽보를 붙여라. 그 지식의 효능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예.”
지식 구매! 필요한 일이었다.
“책으로 배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목판과 철판을 만들 것이다.”
금속활자를 철판이라고 말했지만 모두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드낙은 이처럼 지식을 국가적으로 모아서 이를 책으로 엮어서 보급할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글을 아는 사람이 적은데 책으로 보급해도 읽을 줄 아는 이가 적습니다.”
“이런.”
문맹률! 그것이 드낙의 앞을 가로막았다. 책을 배포해도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일단은 전문학문연구소를 만들고 있어라.”
‘예.’
당황한 드낙은 회의를 파했다. 하지만 곧 방법을 생각해냈다. 쉬운 일이었다.
‘학교를 세우면 그만이지.’
글을 못 읽으면 글자를 배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안 된다고?”
비싼 술을 들고 찾아온 드낙을 보며 게제라스 법관이 눈두덩이를 뜨거운 수전으로 찜질하며 말했다.
서로 믿음이 있었기에 서로 어느 정도의 편의를 봐주는 모습이었다.
“예. 불가능합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잖나?”
“가르칠 사람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일하는 자를 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또 이 드넓은 동부땅에 학교를 짓는다고 해봅시다. 어디에 짓겠습니까?”
“중규모 수준의 마을 5개마다 학교 하나면 족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학교만 수천개 넘게 지어야 합니다. 도로와 건물을 짓는 것만으로도 건축 산업은 포화상태입니다. 누가 짓겠습니까? 경험 없는 이들이 짓습니다.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주면 될 것 아닌가. 그럼 실력 있는 이들이 붙겠지.”
드낙이 생각 없이 대충 말했다.
“그럼 다른 건설이 늦어지겠지요. 이주민들이 집이 없어서 하릴없이 천막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음. 그 정도로 건설이 호황이라고?”
“호황이고 말고요. 부랑자가 없는 나라가 저희 나라입니다.”
지나가던 부랑자도 머리채를 잡고 취직시켜주는 국가였다. 노는 인간을 보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구걸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하급 관리가 찾아가서 일자리를 권해주는 식이었다.
그걸 거부한다면 구걸로 돈을 벌지도 못했다. 자연스럽게 이는 사회 풍토를 만들어냈다. 거지들이 못사는 나라가 되고 있었다. 어디에서든 밥벌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거지들에게 일감을 주는 걸 재미로 삼기도 했다.
다리가 잘린 불구조차도 할 일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규모가 있는 마을에 학교를 짓는다고 해도 문제가 산더미입니다. 누가 그들을 가르칩니까? 글도 모르지 않습니까. 글의 기초만 1년. 제대로 된 문장가가 되려면 8년이 걸립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한글이라는 걸 보급할 생각이다.”
“한글?”
“아아. 그렇다. 발음을 그대로 적는 글자지.”
드낙이 대충 설명했다. 하지만 게제라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말과 글자가 같으면서 왜 단어가 다릅니까?”
한국인은 〈의자(uija)〉라고 쓰고 부르지만, 이 세계는 한글로 의자라고 써도 발음이 달랐다. 그걸 보고 드낙이 움찔했다.
‘어? 이게 아닌데?’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의 말과 한국어는 달랐기에 한글 또한 똑같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물론 조금만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냥 발음대로 쓰면 되지 않습니까. 왜 새로운 단어를 만듭니까?”
“아, 그렇지.”
이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의자라는 단어를 그냥 한글로 써버리면 될 일이었다. 드낙이 간단한 발상의 전환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분명 대단한 언어입니다. 저희는 외워야 할 것만 해도 십만 개가 넘지 않습니까? 그걸 고작 40개로 퉁치다니요. 엄청난 문자입니다.”
기본자음 14개. 쌍자음 5개. 기본모음 10개에 복모음 11개로 총 40개의 글자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놀랄 노자긴 하지.”
이곳의 말을 따라서 써야 했기에 조금 비효율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자 같은 상형문자를 쓰는 게 인간들이었다. 엄청난 도약인 셈이었다.
“전 찬성입니다. 오히려 더 늦기 전에 배포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인들의 반발이 있겠으나...”
게제라스는 찬성인 입장이었다. 많은 이들을 빠르게 교육할 수 있는 한글의 메리트에 크게 매료되었다. 반면 지식인이라는 무겁고, 빛나는 권위를 쥔 이들은 반대할 공산이 컸다.
“어쩌라고? 절대적 다수가 한글만 쓴다면, 그놈들은 그저 도태될 뿐이다.”
드낙이 실로 불쾌하게 말했다. 이야기는 다시 학교 설립으로 돌아갔다.
“교통이 나쁜 것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누가 생업을 버리고, 학교에 가겠습니까?”
학교의 설립 목적은 기술자와 전문가 양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타겟팅은 어린아이들이 아니었고, 현재 생산활동을 하는 이들이었다.
게제라스의 말과는 다르게 드낙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학교란 애들이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업?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예? 그럼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습니까?”
“꿈나무를 키우는데 그 정도 시간은 걸려야지!”
드낙이 무슨 대업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 게제라스가 수건을 내려놓았다.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당장 현재 일하는 이들이 글자를 모르는데 애들이 글자를 배워서 뭘 합니까? 그들이 일을 배울 자들이 글자를 모르는데 왜 글자를 배웁니까?”
“아, 그거야...”
드낙이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자냐 같은 문제로 여겼는데 예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애들을 안 가르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학교 설립을 제가 반대하는 겁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사람들을 교육하나?”
“가르칠 사람이 돌아다녀야지요. 교육 기관은 도시에서나 하나 지을법하지, 마을마다 배분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명색에 교육현장인데 땅바닥에서 가르치기는 좀...”
게제라스가 실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허례허식을 버리십시오. 오직 실리만 추구하셔야 합니다. 금으로 된 사과를 굶주린 이에게 건넨다면 그가 무슨 표정을 짓겠습니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데 목이 턱턱 막히는 고기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네 말이 맞다. 땅바닥에서도 글을 배우는데 누가 옷에 흙이 묻는 걸 상관하겠는가. 근데, 교육자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그래서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드낙은 맥이 탁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악순환의 연속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려면 조금씩 모든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집중성장?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전분야가 커야지만 결국 발전할 수 있었다.
“실망하시기는 이릅니다. 이 한글이라는 문자는 배우기 쉬우니, 교육자를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교육자를 단기교육해서 배출하면 됩니다.”
“그래도 언어에 대해서 잘 아는 이를 쓰기는 써야 할 텐데.”
드낙이 걱정하자 게제라스 법관이 해답을 순식간에 놓아주었다.
“이야기꾼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언어 능력은 상당합니다. 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준다면 훌륭한 언어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맞다! 이야기꾼들이 있었지!”
말로 먹고사는 놈들이었다. 그 숫자만 봐도 동부 전체에 한글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 아닌 한글이 배포되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읽을 수는 있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었다.
또, 드낙은 게제라스가 언급한 이야기꾼들을 또 다른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주둥아리 놀리는 것만큼 무서운게 없지.’
드낙이 음흉하게 웃었다.
“사람이 미래다!!! 여러분, 들어보십시오! 사람이, 사람이 미래입니다!!”
마을에 도착한 이야기꾼이 몇 가지 재미난 이야기로 사람들을 모으고 난 다음에 선동질을 하듯이 키워드를 말했다. 들어만 봐도 그럴듯하고, 뭔가 진리를 담은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이었다.
간단했기에 기억하기도 좋았고, 머리에 확 꽂혔다.
“동부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미래다. 하지만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아시는 분?”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오?”
바람잡이가 능숙하게 대꾸했다.
“그러면 돼지가 미래겠죠. 고기를 매일 먹을 수 있으려면 돼지가 사람보다 먼저야지 않겠습니까?”
푸하하하!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바람잡이를 멍청한 놈으로 만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좋아졌다.
“자자, 동부왕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전문인들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벌써 소문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전문학문연구소라는게 생겼습니다.”
“그게 뭐요?”
“지식을 돈을 주고 사는 곳입니다. 여기서 농사 잘 짓는 집 있습니까?”
“벨론 네가 최고지. 그 집 밭에는 해충이 없어. 희한하게.”
“그럼 벨론 네는 금화 1닢을 받을 수 있습니다.”
“뭐요!”
사람들이 경악했다. 금화라니? 귀족들의 화폐 아닌가. 시민이 그런 걸 가지고 있으면 도둑질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가치가 높게 책정되어있는 게 금화였다.
“들어보시오! 이제는 지식을 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뭔가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가져간다면 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은화를 주고, 뛰어난 것이라면 금화를 줍니다.”
“벌레 없는 밭이 금화를 받을 정도라면 너도나도 금화를 받을 것 같은데.”
“동부왕께서 농사를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그래서 금화를 받는 겁니다. 거리낌 없이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돈을 타 먹으십시오!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럼 잘 기다리십시오. 전문학문연구소의 관리가 이 마을에 오는 날이 생길 겁니다!”
“이야아...나도 금화를 만질 수 있는 거야?”
“꿈도 꾸지 마!”
모두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렇듯 소문을 퍼뜨리는 이야기꾼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천을 바닥에 깔고, 앉아서 사람들에게 한글 40자만 무식하게 가르쳐주고 중급 응용 책자 하나 던져주고 떠나는 이야기꾼도 있었다.
단기교육도 초급 단기, 중급 단기, 고급 단기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초급 단기 교육을 받은 이야기꾼은 한글 40자만 가르쳐주면 끝이었다.
중급 단기 교육을 받은 이야기꾼은 중급 응용 책자를 가르쳐줄 수 있는 자였다. 또한 그는 소설책을 하나 마을에 주고 떠났는데, 이는 고급 단기 응용자를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삼부류로 나누어진 언어꾼들이 동부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아니, 이 문서는 왜 받질 않는다는 거요?”
“앞으로 외청이든 내청이든 어디서든 한글로 된 문서를 써야 하오.”
“그 한글이 뭔데? 자기들끼리만 알고 자빠져서는 이 뭔 행패요!”
“아! 위에서 까라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것입니까! 다음!”
한참을 기다려서 외청에서 업무를 보려던 자가 허탈하게 외청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호수 성채에서 한글을 배우거나 배운 자에게서 푼돈을 주고 서류작업을 새로 해야 했다.
“무식하다. 무식해.”
그 무식한 짓거리에 학을 뗐다. 한 번 해야 할 일을 두 번해야 했기 때문에 열불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복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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