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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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식 헤비 랜스의 규격은 450cm에 달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스컬 마커스 분대의 영혼 중기병은 옆구리에 랜스 거치대 하나 없었다. 오로지 힘만으로 무식하게 그걸 운용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100보 이내에 들어오자 전력으로 중기병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해도 상관없지만, 그들이 지닌 지식과 판단력, 이성과 지성은 모두 베테랑 기수의 것이었고 그 습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강철과 영혼력으로 달리는 말의 체력과 지구력을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상대하는 세파리아스는 말도 타지 않고 있었음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상대의 전술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양익 중 랜스를 쥔 놈이 돌파하고, 다른 쪽은 저속으로 다가와서 날 맴돌며 기병용 대검으로 압박한다.’
회오리치듯이 조여들어 와서 검 하나 휘두르지 못하게 공간을 점유할 터였다. 전신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기병용 대검으로 막는 감옥의 완성이 저들의 노림수였다.
영웅을 잡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도 했다.
사지를 못 움직이게 무기와 몸을 밀착시켜서 막고, 멱을 따는 것이다. 활이나 석궁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자들이 하기 좋았다. 원거리 사격전을 할 필요가 없는 스컬 마커스 분대는 당연히 원거리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달려가서 쥐어패면 되고, 상대 원거리 수단에 큰 피해를 입을 수가 없는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에 사격전투를 하기보다는 돌격전투가 주류였다.
특히, 현재 영혼 제국 특징상 원거리 화살의 보급이 어려웠다.
마법사 중에서도 천재인 아웃버스트는 마법 이외의 것은 모두 하찮게 보기 때문이었다.
노기사 포리에로 라우렌티우스(Folliero Laurentius)에게서 받은 제국 전신갑주에 깃든 방어 마법을 세파리아스가 연쇄적으로 사용했다.
‘방어 마법을 쓸 때는 무조건 중첩해야 하는 전신갑주.’
우우웅.
서로 공명하며 강해지는 울림 방어막은 최소의, 아주 최소의 용량으로 전신 갑주에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중첩으로 사용해야 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위대한 제국의 마도 공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적은 마력과 적은 용량을 연거푸 써서 다른 방어 마법과 똑같은 위력을 만들어낸다.
실로 효율적이었다.
‘무식한 놈들.’
방어막을 보고도 양익 전술을 고수한 채로 랜스 차징하러 오는 놈들을 보며 세파리아스가 웃음 지었다. 그들의 랜스 차징이 방어막을 박살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푸거거걱! 꽈자자작!
물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아무리 공명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다고 해도 그건 일반적인 방어 마법과 견줄 수 있다는 것이지, 뛰어넘을 수 있단 소리는 아니었다.
유리창처럼 보호막이 부서지고, 웅웅거리는 소음이 주변을 뒤덮었다.
스컬 마커스 중기병의 기세가 살짝 내려갔다. 진형도 조금 비틀림이 생겼고, 속력 또한 경감되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빈틈이라고 발하기에는 부족한 작은 틈새에 불과했다.
“후아아악!”
그곳으로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황소처럼 뛰어들었다. 뒤에 따라오던 중기병이 랜스를 통해서 살짝 땅을 긁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 피해를 자신이 입을 수 있었지만, 놀라운 기마술로 땅을 긁으면서 질주할 수 있었다.
질주하는 속력. 땅의 형태. 우둘투둘함 속에서의 균형.
그 오묘하고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숙련된 기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땅이 긁어지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보병의 시야가 단번에 차단되었다. 그건 세파리아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215cm의 거구라도 바람을 등지고 내달리는 중기병이 만들어낸 흙먼지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월한 시야를 지닌 기병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체고가 3m가 넘었다. 괴물 같은 강철마 위에 있는 스컬 마커스 중기병들은 겉모습만 중기병이었지 몬스터라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후우우욱!
범인(凡人)은 그저 휘날리는 흙먼지의 움직임 속에서 그 어느 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이 무질서하게 뿌려지는 것과 같았다.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낙엽 중 하나라도 손에 쥐기에도 버겁다.
어디서든 튀어나올 것 같았고, 어디서든 그들의 발굽 소리가 귀를 크게 때렸다.
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력의 헤비 랜스 차징이 세파리아스를 노렸다. 이미 인간이 아닌 제국 영혼 기수는 그보다 우월한 시야를 통해서 그보다 더 긴 450cm 헤비 랜스를 통해서 선제 타격을 시도했다.
후.
노련한 낚시꾼이 흔들리는 찌를 보고 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숨을 살짝 내뱉으며 근육을 이완시키며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 듯이 세파리아스가 작은 숨결을 내뱉었다.
랜스가 찔러지는 곳의 반대쪽으로 상체부터 기울여 뻗어 나갔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어찌 먼저 찌른 사람의 창을 피할 수 있겠는가. 최적의 회피 경로로 달렸음에도 세파리아스의 어깨를 스쳤다.
카각!
조금만 긁혔음에도 세파리아스의 몸체가 균형을 잃었다.
중기병이 지닌 힘을 실감케 했다. 완전히 기울어진 몸이었지만 세파리아스의 손이 땅을 짚으며 몸을 들어 올리며 엎어졌다. 동시에 그가 있던 지점을 중기병이 지나갔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랜스 차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꽝!
굉음과 함께 대검과 랜스가 부딪쳤다. 차징하면서 손을 놓았기에 중기병은 유유히 지나갔고, 해비 랜스와 부딪친 대검은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가드가 완전히 풀렸다.
두두두두!
이어지는 랜스 차징에 세파리아스가 대검을 손에서 놓았다. 몸을 구르며 발로 말의 발굽을 후려쳤다. 단번에 강철마가 머리부터 땅에 처박으면서 뒹굴었다. 영혼 기수 또한 휘말렸다.
쿵.
땅에 박힌 대검의 손잡이의 크로스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쑥 뽑은 세파리아스가 일어나려는 강철마의 목을 대검의 검면으로 후려쳤다.
쾅!
둔기에 맞은 강철마가 정신을 못 차렸다. 거대한 충격이 강철마 내부에 있는 시스템에 충격을 가하며 오류를 발생시켰다. 일어난 기수가 그를 향해 덤볐다. 그도 녹록한 병사는 아니었다.
랜스를 손에 놓자마자 대검부터 손에 말아쥐고, 낙마하면서도 기병용 대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대가로 왼팔의 관절이 꺾여있었지만, 영혼 병사의 근력은 한 손으로도 기병용 대검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캉!
검수와 검수가 맞붙었다. 양쪽 모두 중단세로 시작했고, 모두 사선 베기로 시작했다. 비슷한 자세, 비슷한 첫수였지만 그곳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세파리아스였다. 보고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퍽퍽퍽!
그의 주먹이 두 번 스컬 마커스 기수의 턱을 올려쳤고, 기수가 뒷걸음질 치면서 무릎이 꺾이며 기울어졌다. 그사이에도 기병용 대검이 휘둘러졌고, 세파리아스는 대검으로 이를 막으면서 한 걸음 나아가며 손잡이 끝으로 머리통을 내려쳤다.
한쪽 무릎을 뚫었기에 내려치기가 가능했다.
동시에 앞발 차기로 발가락 부분이 턱을 또 후려쳤다. 제국 영혼 기수는 목뼈가 흔들거리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동시에 이마에 대검 손잡이가 자국을 내고, 박살을 내버렸다.
둥근 머리와는 반대로 이마는 반듯해서 내려찍기 좋았다.
콰드득!
허물어진 놈의 등을 발의 뒷부분으로 송곳처럼 걷어차기를 반복해서 영혼관을 충격으로 부수자 영혼이 터져나가며 빛을 냈다.
그 빛에 이끌려 스컬 마커스 분대가 호흡을 맞춰서 일시에 밀고 들어왔다.
강철마와 제국 영혼 기수의 시체를 장애물 삼은 세파리아스는 그 속에서 맹렬하게 싸우지 않았다. 상대가 치고 들어오면 뒤로 물러나고, 상대가 빠지면 앞으로 달려드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었다.
쿵!
우드득!
전신갑주의 무게. 인간 같지 않은 기술적인 도약. 그 때문에 무릎 관절에 금이 갔지만 세파리아스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도약해서 동시에 치고 들어온 놈들의 뒤를 잡은 세파리아스는 무식하게 강철마의 다리를 대검으로 때렸다. 같은 강철이라서 베지는 못했다.
측면이 약한 말답게 픽 쓰러진 놈의 허벅지를 밟고, 올라섰다.
깔려있는 제국 영혼 기수의 머리통을 대검으로 세 번 내려찍어서 강철로 된 머리통이 우그러들게 하였다. 입이 헤 벌려지고 버둥거리며 반항하던 양팔이 대지에 떨어졌다.
쾅!
동시에 제국 영혼 기병의 기습이 세파리아스를 두들겼다. 그가 성공한 게 아니라 세파리아스가 기습을 허용해준 것이다.
“카악. 퉤!”
주르륵 물러난 세파리아스가 입에서 피를 퉤 하고 뱉었다. 피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가루가 뒤섞여있었다.
텅. 데구르르...
반대로 세파리아스를 기습한 스컬 마커스 영혼 기수는 목은 대검에 의해서 깔끔하게 날아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 몸은 땅에 대(大)자로 뻗게 되었다. 세파리아스가 그의 돌진력을 자신의 검에 담았기에 강철로 된 목마저도 잘라버린 것이었다.
공격은 제국 영혼 중기병이 했는데, 죽은 건 제국 영혼 중기병이 죽어버렸다.
세파리아스가 대검을 고쳐잡았다. 검신의 한 부분이 비틀려 있었다.
흙먼지에 잔뜩 가려져 있었기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만약 봤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아득할 정도로 대단히 깊은 무재(武才)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부딪친 시간은 고작 24분에 불과했다.
세파리아스의 공격력은 겨울에 부는 칼바람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금방 전투가 끝이 나버렸다.
스컬 마커스 분대가 후퇴하지 않고, 그에게 덤벼서 상황이 더 빨리 끝난 점도 있었다.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던 세파리아스가 영혼 제국 기수의 목을 잡아들어 올렸다. 흙먼지가 걷히면서 목책 위로 올라와 있는 이들의 모습이 달빛에 환하게 보였다.
퍽! 퍽! 퍽!
세파리아스가 대검도 없이 박치기로 강철로 이루어진 머리통을 우그러뜨리고는 놈을 손에서 놓았다. 시체처럼 허물어진 영혼 제국 기수의 몸은 세파리아스의 피로 가득했다.
“우아아아아아!!!!”
세파리아스만이 홀로 서서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광전사다운 면모에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개망나니처럼 발악하듯이 고함을 지르며 화답해주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호쾌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세파리아스가 투박한 대검을 회수해서 마을에 돌아왔다. 단 한 번의 싸움이었지만 모든 힘의 방향성을 파악하고 이용했던 터라 보통 대검보다 굵게 만들어진 대검은 반토박이 나 있었다.
검신 또한 비틀려있고, 크게 흠집이 나기도 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다 보니 상대가 지닌 힘에 따라서 무기의 피해도 대단히 클 수밖에 없었다.
대검을 받은 노기사 포리에로가 대검의 끔찍한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이 마을에 대장장이가 있던가?”
“그, 그것이...한 명이 있긴 합니다만, 농기구만 만드는 자입니다. 무기를 만들어도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노기사가 머리를 긁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대검보다 굵기도 두배인 대검이 한 번 전투로 다시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서였다.
“무기 밸런스는 상관없다. 거기에 내가 맞추면 그만이니까. 최대한 굵은 대검을 제작도록 하여라.”
“예!”
세파리아스의 말에 포리에로 라우렌티우스가 크게 대답했다. 무인으로서의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왔다.
스컬 마커스 분대 30기는 모조리 녹여져서 운반하기 쉽게 괴로 만들거나 세파리아스의 대검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물론 스컬 마커스 분대의 수급은 녹이지 않았다.
“목을 잘라라!”
“자를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병사들의 사기 또한 대단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도끼질해도 목을 자를 수가 없어서 목을 녹여야 했기 때문이다.
〈강철로 강철을 베는 기사〉라는 명성이 세파리아스의 작은 세력이 쫙 퍼지게 되었다.
강철로 된 척추에 붙어있는 깨어진 영혼관과 함께 목이 녹여져서 머리만 남은 수급이 장대에 걸어졌다. 앞으로 세파리아스의 세력 확장에 필요한 전공이었다.
*
드낙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앞으로 대산이 크게 보였다. 그곳에서 혜성처럼 빠르게 날아오른 하얀 점 하나는 몇 초 만에 며칠 거리를 주파해서 단번에 드낙의 손에 내려앉았다.
“까악!”
순백의 털을 지닌 카이야는 까마귀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제법 커져 있었다. 하지만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작았다.
“잘 지냈어?”
카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낙의 말을 알아들으며 어깨로 자리를 옮겼다.
드워프들과 하프 드워프들이 그걸 보고 신기해했다.
“영물인가?”
“말을 알아듣다니.”
“예. 영물이죠.”
드낙은 신나에 카이야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대었다. 새하얀 카이야는 길한 동물로 여겨져서 드워프들에게서도 호감을 샀다. 하지만 카이야는 드워프들을 싫어했는데, 금속 냄새를 풍기고, 먹을 걸 거의 들고 다니지 않아서였다.
“나쁘지 않은데.”
“나도 마찬가지야.”
드워프들이 대산을 보며 잡담을 떠들어대었다.
대산 너머는 거친 산맥이 이어져 있었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드낙은 직접 드워프들에 대한 실무를 처리했는데, 그만큼 드워프와 하프 드워프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많았다. 다른 두종족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대산 인근에 도착하자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도노와 그의 가족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제는 그냥 곰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다. 그 가족들 또한 덩치가 큰 대형 늑대가 되어있었다.
“어이구! 이놈!”
드낙이 소리를 치며 다가가자 도노가 몸을 비벼대었다. 털이 잔뜩 묻었지만, 드낙은 이를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만져주었다.
“하하하!”
드낙이 호쾌하게 웃었다. 대산에서의 기분 좋은 해우 뒤에는 드워프와 하프 드워프들의 회의에 참석해야했다.
두 종족간 해결해야할 일이 남아있어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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