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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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제라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이들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다. 꼼꼼하게 그 누구도 놓치지 않았다. 말단부터 가장 윗선까지 모두 그 사람이 지닌 것을 파악하고 적절한 판결을 내려주었다.
불만을 지닌 이들에게는 따끔하게 한 소리 했다.
“남부 사령관 길게이가 받은 판결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니, 그게 싫다면 동부왕에게 직접 가서 말하시오. 나는 남부 사령관이 받은 판결을 기준으로 벌을 받고 싶지 않다고.”
“끙.”
불만을 이야기하던 주둥아리가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중에서 오직 길게이와 견줄 수 있고, 그가 받은 판결을 기준으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자는 그녀뿐이었고, 그녀는 드낙이 직접 판결을 내렸다. 동시에 길게이와 다른 판결 기준을 받는다면 그녀가 받은 판결을 받겠다는 것이고 그건 길게이가 받은 판결보다 더 심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게제라스 법관의 말에 감히 대꾸할 수 없는 이유였다. 길게이처럼 되기 싫다면 그녀처럼 되라는 소리였다.
“아니! 내가 가진 밭이 왜 이렇게 많이 책정되어있소?”
“새도우 위스퍼의 정보력을 얕보지 마시오.”
게제라스 법관이 책상에서 양피지를 하나 꺼내주었다. 새까만 색으로 염색되어있는 비싼 양피지였다. 그곳에는 새하얀 돌을 가루로 내고 물과 섞은 것으로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어디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밭을 양도하고 대리인으로 삼아 관리하고 있는지, 그 밭에서 얼마만큼의 밀이 생산되는지 적혀져 있었다.
게제라스 법관의 암살 시도 때문에 핏빛쥐들 또한 이놈부터 저놈까지 싹 다 감시하기 시작했기에 이런 정보가 동부에 자리잡혀있었다.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다고 할 수 있지만, 정보전쟁에서 핏빛쥐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부들부들!
“이런 말도 안 되는...경우가...”
비밀 금고의 위치까지, 그곳에 방문한 횟수와 얼마만큼의 재물이 들어있는지도 보였다. 장원 기사가 벌벌 떨었다.
끔찍한 공포였다. 보이지 않았던 심연의 공포를 마주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보유 재산의 9할을 내시오.”
“9, 9할...”
“직위와 장원 또한 다른 장원 기사와 교체할 것이니 인수인계도 준비하셔야 하오.”
“내가 관리한 장원을 다른 장원 기사와 바꾼다고?!”
“어허! 길게이 남부 사령관 또한 지금 파면이 되었는데, 굳이 파면을 받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소.”
장원 기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파면보다는 장원 기사의 직함을 계속 유지하는 게 백 번, 천 번 옳았다. 하지만 장원 기사에게 있어서 자신이 꾸미고 발전시킨 장원을 떠나야 한다 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게제라스 법관은 철저하게 드낙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았다.
재산의 9할을 벌금으로 내는 건 가장 기본이었고, 인사이동 또한 필수적이었다. 그 외에 직위가 높은 자는 밑에 두는 관리까지 싹 다 갈아치울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판결을 받지 않은 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상단 연합〉이었다.
“처처처천단주 파면...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3개월 자격 정지요. 자중하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시오.”
파이살 천단주를 비롯해서 이스핀과 깊은 거래 관계인 〈술취한 통(Drunken barrel) 상단〉의 카이라트 천단주 또한 예외는 없었다. 상단 연합은 그냥 조직 와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장기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자격 정지 때문에 기껏 모아둔 사병들을 죄다 풀어줘야 할 판이었으며, 재산 또한 절반을 내놓아야 했다.
“너, 너무하신 처사 아니십니까?”
“대신 재산을 내놓아야 할 품목은 개개인이 알아서 정하시오. 총 내야 할 가치의 절반을 채우면 되오.”
“아하. 그렇다면...”
이처럼 그들이 큰 타격을 입은 이유는 게제라스 법관은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어서였다. 매년 그들의 창고에 있는 식량이 무더기로 썩어서 버릴 지경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이럴 때 걷어내야지.’
게제라스 법관은 이들에게서 화폐를 뜯기보다는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뜯고 싶어 했다. 상인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3개월간 무력을 빼앗기고, 팔아야 할 품목을 영지에 주면서 생길 여파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규모 상단이 커질 수 있는 기간이 만들어졌다. 지방상생(地方相生)의 기회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세력이 게제라스 법관에 의해서 꼼꼼하게 뒤집혔다.
‘하나. 영지의 세수를 부유하게 한다.’
‘둘. 동부왕의 위세를 명명백백히 세상에 보여준다.’
‘셋. 모든 세력을 동시에 약화한다.’
‘넷. 다른 사람이 세력을 만들 기회를 준다.’
‘다섯. 관리를 물갈이하여 새로운 인재가 경험을 쌓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만든다.’
‘여섯. 법과 제도가 살아있음을 시민들에게 보여준다.’
‘일곱. 신전이 가장 믿음직한 곳임을 확실한 잣대로 가려낸다.’
‘여덟.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드높여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게 확실하게 기강을 잡는 기회로 삼는다.’
그 외에도 자잘한 이득이 있었다. 물론 불만을 길게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으아아아!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그냥 죽여라!”
법원에서 온갖 난리를 피우는 기사가 끌려가기도 했다. 당연히 즉결처형은 당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인력이 없어서 범죄자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든 광산으로 보내는 게 동부였다.
“광산 종신형을 선고한다!”
게제라스가 판결을 내렸지만, 반마의 힘을 수련하던 드낙이 지하 감옥까지 쳐들어가서는 몽둥이로 기사를 핏덩이로 만들었다는 소문도 퍼졌다. 병사가 술자리에서 이를 증언했고, 회복 물약만 10병이나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 힘 있다고 명을 재촉하는 놈은 더는 나오지 않았다.
기사고 나발이고 법이고 X까고 몽둥이로 피죽음을 만드는 드낙의 행보가 너무 자극적이었다. 법원에서 깽판 치는 놈을 감히 가만두고 싶지 않은 사심이 다분했다. 그리고 그런 사심을 막아줄 사람도 없었다.
나중에 게제라스에게 한 소리 듣는 게 끝이었다.
“으아아아아!”
겐 장이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이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서 만든 개간지 중 8할이 국고로 전환되어서였다. 동부의 땅이 아무리 넓다고 하지만 뼈아픈 상처나 다름없었다.
씨족, 가문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국가와 민족으로 넓어진 사관을 가지고 있는 제국뽕 맞은 게제라스 법관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자였다.
제국의 제도에 완전히 간 문인인데다가 청탁의 ㅊ도 듣지 않는 게제라스 법관은 기득권층이 마음 같아서는 철퇴로 쳐 죽여도 시원찮을 개새끼였다.
그건 드낙의 충신을 자처하는 겐 장을 비롯한 과거 북부 몰락 가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가진 걸 빼앗기고 헤실헤실 쳐 웃는 새끼는 결코 귀족이 될 수 없었다.
‘문제는 지금은 웅크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사지가 벌벌 떨릴 정도로 흥분한 겐 장은 탈력감을 느끼며 의자에 주저앉아서 축 처졌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호수 성채에서부터 시작된 처벌은 서서히 퍼져나갔다.
은닉 재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브릴리언트 가문 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전부 빼앗겼다.
“저요? 아닌데요?”
한 농부가 순박하게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바로 병사들에게 물 먹인 나무 몽둥이에 처맞으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아아아악! 맞스빈다! 맞아요오오옷!”
고함을 질러도 병사들은 그를 피떡으로 만든 다음에 회복 물약으로 적당히 치료해주었다. 눈물 콧물이 질질 짜진 얼굴로 모든 진실을 말했다. 이런 경우가 수백, 수천 건에 달했다.
“내애애가 누군 줄 아느냐! 난 게제라스 법관님의 아래에서 일하는...켁!”
현재 가장 이인자다운 위치에 올라선 게제라스 법관의 권세를 믿고 까불던 판사는 그대로 머리채가 잡혔다. 경찰과 군인의 역할이 나누어지지 않았기에 실로 폭압적인 진압이었다.
이처럼 으름장을 내던 게제라스의 밑에서 일하는 판사 또한 예외는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판사들에게 재산을 숨긴 것이 브릴리언트 가문이었다.
농부와 양치기부터 판사와 중앙 기사와 장원 기사까지 브릴리언트 가문의 돈을 받고 재산을 은닉한 자들이 줄줄이 쏟아나오나 아주 난리가 났다.
가장 주적으로 삼고, 깎아내려야 하는 브릴리언트 가문에게 편승한 변절자들이 그토록 많을 줄 몰랐다.
“빨리 관련자들을 모아라! 남 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게제라스를 욕하던 겐 장은 그를 욕할 시간조차 없이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중앙 기사들을 족치고 다녔다. 수많은 자가 야반도주를 하기 시작했고, 사회 혼란이 크게 야기되었다.
맑지 않은 자가 만들어낸 사회의 어둠이 드러났을 때, 그 혼란은 너무나도 컸다.
마을에서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법과 제도에서 벗어난 무분별한 복수가 이루어졌다.
이때를 틈타서 강도가 들끓기도 했다.
서로가 함께 범죄를 저지르고 그 재물을 독식하기 위해서 대로에서 칼부림이 나기도 했다. 성벽을 자력으로 넘으려다가 추락해서 죽은 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페테르 베르나르(Peter Bernard)〉를 새로이 장원 기사로 임명하는 바이다!”
이 기회로 삼아서 공을 세워서 새롭게 기사가 되는 자유기사도 나타났다. 동시에 순찰자들이 이 혼란 속에서 공식적으로 〈치안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조직이 되었다.
병사와 기사들의 권력 중 하나인 치안을 드낙은 혼란 속에서 날치기를 통해 그냥 통과시켜버렸다.
‘내가 한국에서 보낸 날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는 껌이지.’
사방팔방에서 온갖 일들이 터지니 주류 소비가 대박이 나기도 했다. 술집이 곳곳에서 새롭게 개업하고, 밭을 갈아엎고 주류 산업에 뛰어드는 농부도 생겨났다.
*
세파리아스는 마을 하나를 성공적으로 획득하고, 그들을 〈시네 노미몬스(sine nomine mons) 분지〉로 이주시킬 작업을 위해서 6일을 마을에서 보냈다.
쾅쾅쾅!
야심한 밤. 세파리아스가 거주하는 집 문을 두드리자마자 세파리아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너무나도 빠른 대응이었다. 알리기 전에 이미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적인가?”
“예? 예!”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온 세파리아스를 보며 병사가 황당해 했다. 전운(戰運)을 감지하는 능력은 가히 대예언가급이었다.
목책으로 단숨에 올라간 세파리아스의 눈이 달빛이 내려오는 땅에 모습을 드러낸 삼십의 분대를 훑었다.
‘스컬 마커스 분대다.’
노기사 포리에로 라우렌티우스(Folliero Laurentius)에게서 많은 것을 들은 그였다. 저 30기의 기병 분대의 정체를 단번에 색적할 수 있었다.
‘내전이 끝났으니, 이제는 소규모로 마을을 순회할 뿐이다.’
내전을 유도해서 군단장을 싸그리 처리한 흑황제는 이제 더는 대군을 제국에 주둔하지 않고 있었다. 엘프 쪽으로 끝없는 영혼 군대가 진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잔존 인간에게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 추가적인 영혼 수급을 위해서 스컬 마커스 분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30기의 중기병으로 이루어진 영혼 기병들은 소규모의 마을을 순회하며 인간을 죽여서 그 혼을 수거하여 영혼 진지나 영혼 마탑의 영향력이 있는 곳에 풀어놓는 자들이었다.
“전원 중기병(重騎兵). 거기에 말이 금속으로 되어있군.”
강철로 만들어진 말은 입과 눈에서 탁한 청색의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체 균형이 어긋나 있었는데, 알아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오크의 대예언에서 보여준 제국군의 위용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소란 때문에 모두가 야밤에 깨어나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백번 싸운다면 백번 도망칠 수준의 사기와 정신력이었다.
“흥.”
콧소리를 낸 세파리아스가 대검을 뽑아들었다. 오로지 무식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안된 대검이었다.
“다른 곳에서 추가적으로 놈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곳에서 대기하며 이주를 할 준비를 마무리하라.”
“예!”
세파리아스가 홀로 목책에서 뛰어내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국 전신 갑주의 무게 때문이라도 무릎이 박살 났겠지만 그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천천히 세파리아스가 30기의 제국 영혼 중기병을 향해서 걸어갔다.
시퍼런 달빛에 대검이 서늘하게 빛났다.
중기병들이 그대로 그를 향해서 그와 똑같이 느긋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 손에는 쇠사슬로 된 올가미가 빙글빙글 돌려지며 철소리가 울려 퍼졌다.
찰그라라라라락!
그 공포의 소리는 도망치는 인간들을 수없이 공포에 떨게 만드는 소리였지만 세파리아스에게는 기분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피가 들끓기 시작하자 흉포한 기세가 그로부터 튀어나왔고, 이내 제국 영혼 중기병들이 진형을 바꾸었다. 일자진에서 양익을 펼치고, 쇠사슬이 아닌 헤비 랜스와 기병용 대검을 들었다.
오로지 기세만으로도 상대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게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인류가 잉태한 최강의 인간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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