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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14화 (713/1,239)

강철의 전사 7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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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사 〈포리에로 라우렌티우스(Folliero Laurentius)〉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막힘없이 말했다.

“언제나 해결책은 있는 법이지. 지금 당장 우리 병사수로 흑황제에게 덤비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러니 병사들을 통해서 군둔(軍屯)을 일군다.”

“평야는 잘 보여서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제국 산비탈을 계단식 농장으로 만들면 된다. 분지 지형을 찾는다면 능히 가능할 터다. 또한 산에서 화전을 일구는 이들이 나에게 있으니 가장 최고의 방법이지.”

군둔(軍屯)! 민둔(民屯)과는 다르게 그 소유권이 군과 권력자에게 있음을 말했다. 그런 곳에 화전민 인력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실로 잔혹했다. 병사와 함께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소모하는데 계단식 농장을 일구어내도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흑황제가 사람을 산 채로 잡아다가 푸른 슬라임으로 바꾸는 이 시국에는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할 것이다.”

세파리아스가 근엄하게 말했다.

인류를 위해서라는 슬로건은 불만을 지닌 이들을 반인류적인 행동을 하는 자로 낙인찍게 만들 수 있었다.

“못해도 3년 이내에 흑황제와 일전(一戰)을 벌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세파리아스는 또한 자신의 목표를 입에 담았다. 결코 할 수 없는 목표였지만 노기사 포리에로는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얼마나 다른 인간에게 대단하게 여겨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은 야수를 잡아서 해결한다. 나아가 야수를 말살시키면, 초식 동물이 크게 번영할 수밖에 없다.”

목축 대신 다르게 육류를 얻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대량으로 확보하실 생각이십니까?”

“때마다 병사를 크게 풀어서 산 하나를 완전히 포위해서 올라가며 죽이면 되겠지.”

미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한 다음에는 당장 현실의 군량 해결을 위한 논의가 이어져야 했지만 그것도 3분을 채 가지 않았다. 이 또한 세파리아스의 결정대로 이루어졌다.

“나무를 베고, 물을 뿌려 썩혀서 그곳에 애벌레를 양산해서 식량으로 삼는다. 그리한다면 군량미를 비축할 수 있을 터다.”

“병사들의 불만이 대단할 겁니다.”

“불만을 품은 병사조차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지휘관인가? 또한 지금부터 군량을 비축하지 않으면 어찌 3년 이내에 제국을 흑황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겠는가?”

“마음 깊이 그 말을 새기겠습니다.”

“대의를 보라! 오직 흑황제를 몰아내고, 제국을 다시 시민에게 줄 것을 다시 한 번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다!”

세파리아스는 그 뒤로 병사들과 화전민 민병들을 모아서 일장 연설을 했다.

“흑황제가 만드는 푸른 슬라임은 인간의 영혼을 써서 만든다! 그 영혼이 어디의, 누구의 영혼인가! 바로 〈우리〉 제국민의 영혼이다! 나와 너, 어미와 애비, 아들과 딸을 산채로 죽여 그 영혼을 흡혈귀처럼 빨아 먹어서 만드는 악독한 것이다!”

현제 제국이 행하는 것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를 통해서 흑황제를 몰아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싸워야 하는 당위를 드높였다.

“흑황제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서 황제 작위를 찬탈했다!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제국 내전을 크게 일으키도록 유도했으며 그로 인해서 양치기는 가축을 잃고, 농부는 농지를 잃고, 어미는 자식을 잃고!”

흑황제의 악행을 거론했다. 크게는 개인사부터 작게는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경우를 입에 담았다. 흑황제는 황제직위를 얻었고, 그대들은 많은 것을 잃었음을 말함으로써 박탈감을 크게 느끼게 하였다.

앞과 뒤가 서로 차이가 나는 이 화법은 실로 민중들에게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가 받은 엘리트 교육이 만들어낸 탑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저 성공하기 위한 것만 배운 게 아니었다. 지배하기 위한 배움이 그에게 있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 남은 인간의 보루라는 것을 명심하고, 뼈에 새겨서 현재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걸어갔으며! 무엇을 기리고, 어떤 가치를 높였는지를 역사를 통해서 우리 다음 세대가 기억해줄 것이다!”

와아아아아!!!

단번에 기세가 올라갔다. 모두 자신이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악인은 처단될 것이며! 선인은 역사에 남을 것이며! 모두가 영웅이라 불릴 것이니, 후인들은 지금 이 시대를 영웅의 시대라고 부를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영웅주의를 마지막에 내세웠다. 모두가 영웅이라 불리는 영웅의 시대가 지금 도래하였음을 말했고, 이는 인간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합심하여 분지에 계단식 농장을 짓고, 병사들도 거리낌 없이 애벌레를 키울 나무를 벌목했다. 그들에게는 대의가 존재했다.

대의가 가진 영향력은 대단히 두려울 정도였다. 그 무엇도 세파리아스를 막을 수 없어 보였다.

*

불파겐 마탑을 개편하고, 드낙은 중부를 관통했고, 북쪽 지방의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북쪽에 대한 소식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이실레아가 중앙 정치에서 손을 뗐다. 하여간 발이 빨라.’

중앙 수도가 아직 건설 중이었기에 동부의 중앙 정치는 호수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녀가 길게이보다 늦장을 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핏빛쥐를 통해서 밝혀졌다.

손을 떼기 위해서 일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왜 길게이가 정신없이 달려와 마중을 했겠는가?’

드낙을 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으뜸임을 알고 있어서였다. 굳이 변칙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만족할 자가 아닌데...’

그녀는 더는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거짓임을 드낙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내려가고, 이번 기회를 벗어난다면 암중(暗中)에서 활약할 터였다.

‘공신에 동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커리어도 부족함이 없지.’

이미 오른 산. 다시 내려가도 상관없다고 여길 터였다.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고, 드낙 밑에서 계속 유지하려면 높은 직위에서 내려오는 게 맞았다. 그게 언제냐면 바로 지금이었다.

삼국지의 가후조차도 높은 지위에 오르자 스스로를 낮추고, 권력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사사로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와 사적으로 친하다고 말하는 자가 당대가 존재하지를 않았다.

그 자식조차도 권문세족과 맺어지지 않았다. 원한의 ㅇ자라면 좋아서 난리를 치는 조비조차도 그를 죽이지 못했다.

이실레아의 모습 또한 그와 판이하게 닮았는데, 중앙 정치에서 손을 떼고, 브릴리언트의 본가로 돌아가서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를 드낙은 알지 못했다. 그는 평범한 현대인이었고, 가후가 누군지도 몰랐다. 삼국지의 경우에는 연의조차도 중도에 하차한 자였다.

또한 그 일례를 현실에 빗대어서 거시적으로 보는 시야를 지닌 자는 0.1%도 되지 않았다. 남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자들이나 거드름을 피우며 ‘나였다면~!’이라며 호통치기 좋아할 뿐이었다.

“마중을 나온 무리가 보이네. 이실레아가 본가로 도망쳤다면, 저들은 누구야?”

“겐 장처럼 보이는데.”

세력을 뜻하는 깃발이 다채로웠고, 그중에서 강세를 보이는 곳이 하나 없었다. 브릴리언트 가문은 쥐새끼처럼 바짝 엎드려있었기에 여기에 올 수가 없었다.

‘레이시아나 신전이 날 마중 나올 리가 없지.’

그 정도로 쇼를 할 줄 아는 자들이 아니었다. 엘라한 가문의 경우에는 무력이 약해서 이런 곳에 낄 엄두도 못 냈을 터다.

안력을 돋은 드낙의 눈에 겐 장을 비롯한 북부 몰락 가문들의 가주들과 외척 그리고 베바란스 총관과 상인 연합의 지도자들이 보였다. 게제라스 법관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눈이 뚝 하고 멈췄다.

“도렌이잖아.”

정치적 활동은 전혀 안 하는 게 도렌이었다. 그는 게제라스의 밑에서 공부했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이후에 무력은 브릴리언트 가문에게서 하사받아 제대로 기사급이 되었다.

순둥이지만 알찬 도렌은 확실하게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인재가 되었다.

고요함은 태평성대에 재상으로 올라서도 괜찮을 재목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제후가 최대였다. 선정을 베풀 줄 알았기에 운이 따르면 제후급이 될 수 있었다.

진짜 개천에서 용난 경우이며 문무겸비의 표본과도 같았다.

핏빛쥐를 통해서 털어보아도 미담밖에 없었다.

‘이실레아한테 주는 게 아까울 정도다.’

서로 사회생활에서 추구하는 것이 정반대였다. 하지만 서로 크게 다르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경우가 있는 법이었다. 부부관계는 굉장히 좋았다.

‘개 같은 년이 도렌에게 강요를 했구나.’

아무튼, 도렌의 이런 정치적 행동은 이실레아가 억지로 시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정에 약해서 자신의 봉급을 공공사업에 투자하는 게 도렌의 마음씨였다. 그 정을 이용하기에는 아내라는 포지션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눈 감고도 볼 수 있었다.

드낙은 열이 뻗침을 느꼈다. 게제라스에게서 도렌의 떡잎을 확인한 뒤로 특별히 핏빛쥐 호위 분대까지 붙여준 것이 그였다.

유일하게 드낙이 직접적으로 발굴해낸 인재였기에 그 애정이 대단했다. 또한 결혼 당시에도 이실레아는 필요한 인재였기에 넘어갔던 것이 이렇게 독이 되어서 돌아왔다.

“동부왕을 뵙습니다!”

겐 장이 가장 먼저 나서서 인사를 올렸고, 그 뒤로 줄이 이어졌다. 드낙은 일단은 그들의 사과를 하나하나 받아냈다. 길게이에게 분노를 한 번 쏟아붓고 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서였다.

물론 냉정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드낙은 곁눈질로 도렌을 바라보았다.

“아. 먼저 가십시오. 전 가장 마지막에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가장 후학 아닙니까?”

“허. 은행장의 배려에 실로 감사를 표하는 바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먼저 서겠소.”

양보하는 도렌과 장원 기사가 서로 빙그레 웃었다. 옆에서 보면 낯간지러운 짓거리로 보일 정도로 훈훈했다.

같은 사회계급임에도 도렌은 귀족들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알아서 뒤로 물러난 도렌은 가장 마지막에 드낙에게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됐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드낙은 도렌을 일단 물리고, 여기까지 마중 나온 이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죄는 너희가 잘 알고 있을 터다. 내가 다시 말해줄까?”

“아닙니다.”

길게이처럼 안 죽는 대신에 따로 죄를 사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래서 길게이처럼 똑같이 마중을 나왔다. 물론 길게이처럼 디테일하게 드낙의 똥꼬를 핥아주지는 못했다.

노래까지 지어서 부르게 한 길게이의 정성과는 확연하게 달랐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생쇼를 잘하는 남부인과는 영 딴판이었다.

‘하여간 무식한 놈들이라니까.’

드낙이 피식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박살 냈다. 남들과 똑같이 처벌받으면 그것만큼 쉬운 처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너희의 처벌은 게제라스 법관이 자세하게, 개인별로 아주 잘 맞춤형으로 내리게 할 것이다.”

“예?! 게, 게제라스 법관을 통해서 말씀이십니까?”

너도나도 놀랐다.

기득권끼리 싸고돌며 으쌰으쌰는 개뿔 ‘제대로 된 법률제도의 맛을 봐라!’라고 지랄하는 놈으로 생각되는 게 게제라스 법관이었다. 도렌 때문에 이실레아도 적당히 그를 비호해주고 있었기에 아직도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자였다.

‘이건 길게이보다 더 심한 처벌이다!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겐 장이 눈을 부릅뜬 채로 속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감히 드낙 앞에서 대놓고 그를 찌르지 못했다. 전에는 합심해서 드낙을 찔렀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다른 이들이 눈총을 쐈지만 겐 장은 침묵했다.

‘남부왕조차도 굴복시켰는데, 어떻게 나선단 말인가?’

그 정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독한 것이 이제는 게제라스 법관에게 줄을 서서 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간 모른 체하고, 버러지취급을 했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서둘러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일을 하라.”

드낙은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고, 도렌만 따로 남기고 그와 독대를 했다.

말없이 술이 세 번 돌고, 드낙이 말했다.

“정치 행사에는 모습 하나 비추지 않던 놈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냐?”

이에 도렌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 아내 되는 사람 때문입니다.”

드낙의 눈이 술잔으로 내려갔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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