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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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다가 살아났음을 길게이는 깨달았다. 또한 드낙이 어떻게서든 현재 최고 간부들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으름장을 놓아도 결국 살려줬다는 게 중요했다.
‘나였다면 그냥 칼춤 췄다.’
권력자의 속성 중 가장 독한 것이 숙청이었다. 지금은 숙청해서 기득권층을 한 번 싹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사실상 동부는 더는 전쟁의 위협도 없고, 있다면 유입되는 이주민들이었다.
‘개인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애초에 다른 권력자처럼 다른 세력이 커져도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홀로 가문 하나 씹어먹을 수 있는데, 왜 숙청을 하고, 다시 최고 간부를 골라야 하느냐는 마인드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그게 귀찮기 때문임을 그간의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드낙을 낮게 볼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길게이는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런 왕이야말로 최고의 왕 아닌가?’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문이었다. 그리고 드낙은 그런 이들에게 매우 좋은 왕임은 틀림이 없었다. 적당히 선만 지키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어서였다.
‘직함은 줘도 작위는 주지 않았기에 의심했었다.’
남부 사령관이라는 직함 외에 백작 같은 작위를 받아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지켜보십시오. 이번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 봐주십시오.”
길게이의 말에 드낙이 가까이 가며 다른 이들을 크게 물렸다. 흥미가 생겨서였다.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바로 풀어야 건강에도 좋았다. 또한 그토록 빨리 반성하고 바로 태세전환 하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제 밑에 있는 관리 중에서 이번 일에 가담하거나 찬성표를 던진 이들 7할을 전부 파직시키고, 나머지 3할도 인사이동을 통해서 좌천시키겠습니다. 밑에 있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제가 느꼈던 바를 똑같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크...’
실로 역겨운 모습이었지만 드낙은 감탄, 또 감탄했다. 가장 충격적인 요법으로 동부왕의 이번 결단을 확실하게 사회에 퍼뜨릴 수 있었고, 그 이유는 〈시민들을 괴롭게 한 죄〉였다.
드낙의 생각을 가장 충격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드낙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터였다.
‘많은 사람이 먹고살 만해야 경제와 상업이 산다.’
드낙은 시민 경제 같은 어려운 말은 알지 못했다. 그저 현대의 자본주의를 참고해서 나아갈 뿐이었다. 또한 규모의 힘을 믿고 있었다. 수요가 많아야지,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재물을 독차지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았다. 화폐와 재물이 창고에 처박혀서 썩은 내만 풍길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박호훈이 많이 가져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런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믿고 지켜보겠다.”
그 말에 길게이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동부왕이야말로, 제가 모셔야 할 왕임을 이 땅에 명명백백히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갈등할 수밖에 없었는데, 데자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칸과 같이 이미 증명된 인재들을 사전에 가려내고 포섭을 해야 했는데...’
악마 준동으로 가장 많이 죽은 건 누구보다도 인간을 위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사전에 미리 포섭을 했다면, 동부 기득권을 거침없이 갈아치울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게 문제지만.’
건국 이후 공신들을 다 죽이고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능력이 검증된 이들이 드물었다. 또한 그놈의 정(情)이 문제였다. 한솥밥 먹던 이를 쉽게 내치기에는 드낙의 감성은 소시민 그 자체였다.
평생 가도 자기 고혈 빨아먹는 가족조차도 내치지 못하는 감성이었다.
남이 배에 칼을 직접적으로 박지 않으면 단점이 눈에 계속 박히는 인간이기도 했다.
모인 이들은 한 자리에서 길게이의 입으로 좌천되고, 파직되었다. 물론 장원 기사들은 예외였는데, 조직이 달라서였다. 남부 사령관은 지방 정부나 다름없었고, 그 중앙 관리들과 무인들이 피를 봤다.
‘다 같이 죽자. 개자식들아.’
동시에 이는 길게이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드낙에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어차피 그는 인재풀이 많았다. 큰일을 맡기기에는 하나같이 부족한 놈들이지만, 작은 곳에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남부는 몰락했고, 그곳에 있던 중간계층은 자연스럽게 길게이의 아래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다 같은 남부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길게이의 이 판단은 자신에게 가장 손해가 적은 일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폭풍이 휘몰아치고 난 다음에 길게이는 드워프들과 하프 드워프의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쾅!
천둥소리를 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철조각을 쏘아내는 장총부터 길게이의 혼을 쏙 빼놓았다. 서적으로 된 글로 읽는 것보다 장총의 총포 소리를 듣는 건 너무나도 큰 차이였다.
강철조차도 찌그리는 충격량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특히나 뭉툭하고 큰 총알은 저지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써레(harrow)가 왜 이렇게 가벼운가?”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는 거냐? 인간! 이 써레가 가벼운 이유는 그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기 때문이지!”
“그런!!!!”
말에 묶어서 미리 갈아놓은 밭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하로우는 그 덩치가 매우 큰 중대형 농기구였다. 그런 농기구가 혼자서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내구력 또한 금속합금을 쓰고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다.
‘말도 안 된다!’
길게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나 써레를 훑었다. 이게 만약에 동부 농지에 지급된다면 농업 효율은 엄청나게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써레를 끄는 말이 가벼움을 느낄 테니 해야 할 일의 2배, 3배는 할 수 있었다.
‘아니, 5배도 가능하다.’
드워프 써레의 무게를 생각하면 말이 써레를 매고도 달릴 수도 있어 보였다.
“어떤가? 동부에는 항상 식량 사정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 내가 농기구를 직접적으로 많이 만들라고 지시했지.”
“대, 대단하다는 말로 끝내기에는 그 여파가 감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집을 사기보다는 농지를 사야할 판이었다. 부동산 판을 뒤엎을 힘이 이 써레에는 있었다. 과수원을 엎어버리고 계단식 밭을 지을지도 몰랐다. 드낙은 그걸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아아, 농업 진흥을 위한 드워프 농기구라는 것이다.’라고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엄청난 사회혼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몰랐다.
‘과수원이 엎어지면 주류 생산에도 차질이 생긴다.’
도미노처럼 혼란이 초래될 터였다. 또한 과도한 농지는 작물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
길게이는 조언을 하려다가 말았다.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였다. 마음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그것을 이겨내고 직언을 할 자가 아니었다.
남쪽 국경선에서의 일을 끝내고, 드낙은 불파겐 마탑으로 향했다.
‘마탑 관리하라고 했지, 파벌을 만들라고 하지는 않았다.’
마법사들 또한 고질적으로 기득권층이 생겨나 버렸다. 이를 또 드낙이 해결해줘야 했다. 20명의 상위 외부 마법사들이 가진 지식으로 불파겐 마탑을 지배하고, 조금조금 생계형 마법을 하나 배워서 졸업하는 다른 마법사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있었다.
수많은 폐단이 생겨나고 있었기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했다. 수많은 마법으로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그들이었다.
‘어림도 없지!’
드낙은 이미 주술 아이템을 두른 핏빛쥐를 통해서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힘이 있으면 권력이 생겨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는다.
사회적인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의 속성이었다.
공부하기 위해서 모인 스터티 그룹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하물며 불파겐 마탑은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곳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마법사들에게 오롯이 쥐어진 권력이기도 했다.
‘그놈의 권력이 뭐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맑은 물을 퍼서 위로 올려야 했다. 귀찮기 짝이 없었다. 또한 이는 원탁 회의를 통해서 논의되었다. 참가자는 세리안과 길게이로 조촐하기 짝이 없었다.
남쪽의 국경선은 매우 멀었고, 서로 자신이 벌인 일을 정리하기 바빠서 다른 이들은 오지도 못했다. 또 길게이가 악의를 품고 정보를 차단한 것도 있었다. 현재 북부로 향하는 길은 죄다 병사들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통제된 상태였다.
가려면 길을 벗어나서 가야 했고, 자연스럽게 크게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불파겐 마탑이 그 지경이 되어있을 줄이야...이건 정말 큰 일입니다. 마법사에게 권력을 준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길게이가 크게 걱정하면서 마법사 계급의 위험성을 논했다. 마법으로는 무엇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연거푸 말하며 역사 속에서 이 사례들까지 논했다.
“죄다 죽여야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세리안 또한 마찬가지로 죄다 죽이자고 말했다. 하지만 드낙은 마법이야말로 키워야 할 산업으로 보고 있었다. 상위 마법사 20명을 죽이면 큰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생산적인 생각은 없나?”
마법사 계급이 지닌 가능성 때문에 하나같이 죽여라! 반드시 처벌해라! 고 말하고 있었다. 드낙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길게이는 순식간에 태세전환을 했다.
반마법파에서 친마법파로 몸을 돌렸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력입니다. 10년 내지는 20년 동안 마탑에 마력을 계속해서 쏟아붓거나 빼앗기도록 만드는 형벌을 내리고, 후학을 양성하며 지내도록 하십시오.”
“호오.”
아주 지독한 형벌이었다. 동시에 이 형벌은 그날로부터 마법사들에게 내려지는 최대 형벌이 되었다.
인간이라는 종(種)은 극소수만 마력을 느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어서 사형시키는 것 자체가 큰 종족적 피해였다. 그만큼 드낙은 많은 욕을 먹기도 했는데, 마법사를 수십 명을 한 번에 처형시킨 전력이 있어서였다.
능력을 위해서 내가 죽이는 건 OK였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마법사를 죽이는 건 NO였다.
“그대로 진행하겠다.”
*
“누구냐!”
세파리아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파괴된 제국 도로의 옆 수풀 너머에 적당히 땅을 파서 지반을 내려 엄폐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감을 느껴서였다.
그의 기감은 인간을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았다. 괜히 인간 중 인간이 아니었고, 죽어 나자빠져도 영혼이 자아를 잃지 않고 수백 년이나 유지되었다.
“민병대인가! 도적인가!”
수풀 속에서 까랑까랑한 노인의 고함이 나왔다. 그 위치는 세파리아스가 있는 곳에서 왼쪽이었는데, 오른팔잡이가 많은 인간 종족에게 있어서 쥐약인 방향이었다.
전술을 아는 자였다.
“나는 민병대 55명을 이끄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자다!”
“뭣이? 겁도 없구나! 역사 속에 잊힌 기사의 이름을 쓰다니. 아무리 불파겐 후예라고는 하나, 건방지다!”
제국 군단장이 세파리아스에게 죽은 전력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수 세대가 지났다. 역사 속의 인물에게 적의를 드러낼 자는 제국에 거의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굳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백성을 토로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주둥아리를 쪼물쪼물 거리는 것만큼 구질구질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그였다.
“상대가 누군지는 물어놓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니, 제국 기사란 것들은 하나같이 겁쟁이들 뿐이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국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를 쓰고 있었음에도 새하얀 백발이 삐져나와서 산발해있었고, 땟국물이 그득했다. 손질되지 않은 갑옷에는 동물 비계가 발라진 흔적이 보였다.
‘보급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군.’
갑옷만큼 손질을 자주 해야 하는 방어구도 없었다. 동물 기름을 추출해서 관리할 정도면 보급을 오랫동안 못 받고, 현지에서 징발하거나 알아서 자급자족을 하는 듯했다. 석궁 중에서도 근력이 뛰어난 자만이 운용할 수 있는 아바레스트로 전원 무장해있는 병사 10명이 나무 위와 아래에 적당히 분배된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이름은 〈포리에로 라우렌티우스(Folliero Laurentius)〉! 서부 도시의 위대한 가문의 기사다!”
세파리아스는 거침없이 다가갔다. 병사들의 기색이 좌충우돌 뻥튀기처럼 튀기 시작했다. 노기사 포리에로가 일갈하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아바레스트를 올려라!”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그들은 석궁의 대가리를 위로 올렸다. 세파리아스와 포리에로가 서로 가까이 마주했다. 그리고 거칠게 악수를 하였다.
“아직도 민병대를 이끌고 있다니, 목숨이 여러 개인가? 클클.”
“보급도 없이 제국 병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흐흐.”
무인은 무인끼리 통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세파리아스는 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포리에로를 높게 쳐주었다.
‘윽.’
포리에로가 움찔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최강의 인간이 보여주는 악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코 먼저 손을 풀지 않았다.
그 기개를 세파리아스가 높이 사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 대쪽같은 웃음 소리에 포리에로의 눈빛이 빛났다.
실로 패왕(霸王)다운 웃음 소리였고, 거대하게 휘몰아치는 태풍과도 같은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건 무시무시한 매력이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세파리아스는 포리에로의 충성을 받고, 병사 지휘권을 양도받을 수 있었다. 이미 제국의 황제 혈통은 끝이 나버린 지 오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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