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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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검은 꿈에서 깨어났다. 마음이 매우 심란했는데, 중립신이 자신을 자꾸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똑똑이가 왜 저럴까.’
마치 자신에게 칼을 어서 찌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무슨 의도를 지녔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하려면 하고, 하지 않으려면 아예 할 생각 말라는 소리인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도 없다...나한테 뭘 원하고, 기대하는 거냐?’
극단적 선택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가설을 접고 드낙은 세리안을 불렀다.
‘그녀도 알 자격이 있지.’
레이시아가 평화로운 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여자라면 세리안은 위기 속에서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의 느낌이 강했다. 어디서든 활약할 수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무슨 일이야?”
“세파리아스 불파겐에 대한 것이다.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그는 제국에서 부활하여 중립신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 대가로 육신을 받고?”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끝이야?”
“뭘 더 말해? 난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봤어.”
생각보다 세리안은 무덤덤했다. 이미 세파리아스를 마음에서 떨쳐냈다.
그가 죽어도 잊지 못했지만, 드낙과 함께하기로 한 이후로 세리안은 그 미련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특히나 세파리아스의 죽음을 목도한 것이 오히려 열쇠로 작용했다.
‘평범한 부녀관계는 확실히 아냐.’
무인과 무인, 기사와 기사의 관계와 비슷했다. 그 속에 분명 애증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드낙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대신에 다른 것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세팔이가 육아에 신경 쓸 것 같지는 않고.’
삭막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컸다. 드낙이 세리안과 결혼한 이후 세파리아스의 태도가 변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르기를 싫어했다.
‘선은 그은 것일지도 모르지.’
왜인지는 모른다. 자신을 그렇게 분리해야 할 이유를 드낙은 알 수 없었다.
“왜 그는 그렇게 그는 나에게서 너와 그를 분리하려고 하는 걸까?”
“모르지. 자신이 가는 길을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걸지도. 자존심이 대단하거든.”
심장이 멈추는 순간 속에서도 자존심 때문에 칼 한 번 더 휘두를 양반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그 심리를 알기 위해서는 세파리아스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했다.
자존심 하나로 문드러지고 원한에 사무친 하찮은 혼령인 상태에서도 중립신과 거래한 이 시대의 상남자가 그였다. 그의 심리에서 세상을 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순하게 중립신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세리안은 세파리아스에게 큰 관심이 없었기에 따라갈 것 같지는 않았다. 따라간다고 해도 허락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급발진하는 빈도수가 적어져서 써먹고 싶은 곳이 많았다.
‘적당히를 알아. 적당히를.’
그가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할 줄 알았다.
이번 원정에서 계속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실레아 또한 그랬지만 그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지만 세리안은 아예 드낙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활동했다.
이실레아가 테두리를 오간다면 세리안은 내부에서 활동한다고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매우 큰 차이였다.
‘이실레아는 자기 가문이 있지만 세리안과 나는 불파겐으로 함께 엮여있으니까.’
그게 매우 컸다. 이 시대는 사실상 혈연이 모든 출세하는 동앗줄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귀족 아랫것들은 지연으로 묶여있는 게 보통이었다. 타지 사람이 오면 물건 하나 매입하여 장사하는 것도 웃돈을 주고 해야 했다.
빌어먹다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건 현대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사람이면 권리금도 없이 상가에 들어가는 게 인생이다. 그걸 모르거나 화내는 자들은 단 한 번도 그걸로 이득을 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만큼 꿀단지가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게 없었다. 손쉽게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랄도, 개지랄이지.’
고치고 싶었지만 그건 민족성과 같은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확실하게 제도로 두들겨 때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 학문을 구하는 것조차도 가문과 혈통이 있어야 했다.
엘라한 가문에게 준 물의 기술관 정도가 겨우 시민들에게 개방된 곳이었고, 불파겐 마탑의 경우에는 인간 중 마력을 깨달은 자만이 가능했기에 완전한 시민을 위한 교육 기관일 수는 없었다.
머리 아픈 것은 제쳐놓고 드낙은 꾸준히 동부로 귀환했다.
홀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드워프와 하프 드워프들이 트러블에 엮일 공산이 컸다. 또한 부수입도 꼬박꼬박 챙겨야 했다.
쿠웅...!
블러디 만티코어가 그대로 숲에 내려앉았다. 잘 은폐하고 있던 30명 규모의 도적무리가 그 소음에 절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한순간에 속박마법에 사지가 뒤엉키며 묶여서 나뒹굴어야 했다.
“흐윽! 흐아아아악!”
재수 없게 화덕에 머리를 처박으며 쓰러진 도적은 그대로 얼굴이 타버리며 3초 내에 그냥 죽어버렸다. 화기가 그대로 고함을 지르는 입속으로 들어가며 폐를 태워버렸고 동시에 화상의 고통 때문에 단번에 쇼크사해버렸다.
“꿹!”
혹은 넘어지며 돌부리가 이마에 박혀서 죽은 도적도 있었다.
30명 중 4명이 재수 없게 죽어버렸다.
휘익, 좌아악!
속박 마법에서 마법 밧줄이 튀어나와 드낙의 왼손에 잡혔고, 단번에 잡아당겼다. 끌려온 26명의 도적이 곡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외쳐대었다.
‘눈치가 좋다니까.’
도적 아니랄까 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 만큼 눈치 하나는 대단했다. 항복하는 속도가 귀신같이 빨랐다. 벌써 두목이 어떤 놈인지 토해내는 놈이 있는가 하면, 꿍쳐둔 재물이 있는 곳을 까발리는 간부도 있었다.
“이놈들은 전혀 모르는 비밀창고의 위치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도적들 몰래 비밀창고를 놔둔 두목 또한 존재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살아남으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안내해라. 하나씩 들고, 돈 될만한 건 모조리 수레에 담아라!”
약탈품을 가지고 오던 손수레에 온갖 것들이 쌓여갔다. 숲에서 활동한 도적들답게 손수레는 혼자서도 운송하기 쉽게 작았지만 여러 개가 있었다.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가면 손수레가 자주 부서지기 때문에 여분이 많았다.
드낙이 광산으로 보낼 생각으로 도적들을 살려서 데려왔다면, 세리안은 모조리 죽여서 그 수급을 챙겼다.
“내 영지에 둘 거야. 도적놈들은 간이 콩알만 한 놈들이거든.”
공으로 삼는 건 물론이고, 한곳에 모아두어 도적들에게 경고를 할 생각이었다. 도적질도 생업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다.
가는 내내 도적들을 토벌하고 그 재화를 손에 넣고, 이 재화 중 무거운 건 현지 마을에서 식량으로 바꾸었다.
“도, 동부왕이시여! 부디 저를...악!”
벌벌 떨면서 부랑자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길을 막고, 바짝 엎드렸다. 단번에 병사의 창 밑부분이 옆구리를 쿡 찔러졌고,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갈비뼈를 정확하게 뭉툭한 철로 찔렀으니, 끔찍한 고통이 부랑자를 덮쳤다.
“꺼억.”
창대 두 자루가 목을 조였다.
그 어떤 자비심도 없어 보였지만, 날로 베지 않은 게 병사의 마지막 남은 자비심이었다.
약자의 모습에 현혹되면 그 독단검에 찔러 허망하게 죽을 수 있었다.
“그만!”
배만 불룩 튀어나온 것이 못 먹은 지 오래된 듯했다. 드낙은 여자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시작을 하기 위해서 받아들였다.
‘고된 일을 할 남자가 필요한데. 어쩔 수 없지.’
“이 마을에서 동부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자들은 합류해라! 식량이 내어줄 것이고, 동부에 정착해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겠다!”
“동부왕 만세!”
돈이 없어서 이주하지 못하는 남부인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특히 남자들은 혜택을 받았는데, 광산이나 고된 건설업에 종사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1차 산업이 주효한 이런 세계에서 여자들은 잘 해봤자 농사꾼이 되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방직 작업장도 건설해야 하지만, 그때는 그때다. 지금 필요한 건 아니야.’
섬세한 여성 노동력이 지금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혜택을 못 받아도 오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이 남부에서 자식이 징집병으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러운 땅에서 살고 싶어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못 가서 가지 못했을 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그들이 감사를 올렸다. 이렇게 이주민과 도적 포로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남부의 관리들이 드낙에게 뇌물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식량 비율이 매우 높았는데, 동부가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아라온의 영향력은 지방에서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부의 분열이 언제 시작될지 몰랐다. 누군가가 독립을 선언한다면...
‘골치가 아프겠는데.’
드낙은 그것을 막고 싶어 했지만 하지도 않은 독립궐기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되려 역침공이라 생각할 터였다. 그건 남부인들의 민심을 건드릴 가능성이 존재했다.
“이런 제기랄...”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남부의 관리들과 지역 유지들이었다. 숫자만 해도 4만이 넘어서는 드워프 이주민들이었다.
‘찍소리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쥔 기이한 무기들과 외골격 갑주 때문에 떡 벌어진 떡대같은 드워프 전사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 지방 관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지역 유지도 깨갱거릴 뿐이었다.
무주공산 인근에 도착한 드낙은 핏빛쥐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변경백 영지 내에서의 알력다툼이었다.
“심각한데.”
게제라스가 청했지만 윤허하지 않고, 그냥 무주공산으로 만들어버린 변경백의 영지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있었다.
‘너무 감정적으로 외척을 대했나.’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음험한 세력전쟁은 더 많은 혼란을 가중했고,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남부 사령관과 외척들이 관리하는 마을은 괜찮지만, 그 외의 마을이 문제입니다. 또 서로 각을 보고 있어서 다른 마을에 쉽게 뻗치지 못하고 있고 지역 유지들에게 자금을 대며 서로를 방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일종의 삼각대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외척들은 변경백 영지의 지역 유지들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였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는데, 길게이의 공작 때문이었다. 반대로 길게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판이군.’
양쪽에서 자금과 무기를 얻은 지역 유지들은 서로 싸우며 반목하고 있었고, 외척과 길게이는 자신들이 최대한 보유한 마을들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신경 쓰고 있었다.
죽어 나가는 건 이 영지에 남은 시민들이었다. 호랑이와 용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못 할 때 여우 같은 놈들이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다.
“새도우 위스퍼로 사안을 전달했는가?”
“예. 하지만 외척과 길게이는 협의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변경백의 영지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땅은 그만큼 중요했다.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천지 차이로 변할 수 있는 땅이었다.
누군가가 정리를 해주지 않은 덕분에 보이지 않는 싸움으로 피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정리해야겠는데.”
“다 죽여서 빼앗으면 돼.”
세리안이 매우 급진적인 의견을 냈다. 문제가 되는 건 외척도, 길게이도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마을 곳곳을 돌며 세금을 이중, 삼중으로 부과하고 다니는 미친 지역 유지들이었다.
‘변경백 가문이 송두리째 남부로 이주를 해버렸으니.’
토착 세력이 우후죽순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었다. 그들을 관리해야 할 자가 없으니, 몽둥이 들고 도적이 촌장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 지랄 염병을 떨고 있었다.
“바로 개입한다.”
아무렇게나, 흐르는 대로 만들어진 변경백 영지의 세력 구도를 부술 생각을 가졌다. 가장 먼저 건드려야 할 것은 외척의 세금이다. 길게이의 세금이다. 보호세다. 등등으로 시민들의 삶을 갈취한 지역 유지들이었다.
‘가장 먼저 튈 수 있는 놈들이다.’
필히 먼저 타격해야 했다. 세리안이 드낙에게서 양피지를 받았다. 어떤 놈을 족쳐야 할지 상세하게 적혀지고, 그려져 있는 문서 다발이었다. 드낙 또한 블러디 만티코어를 타고 날아올랐는데, 만티코어만큼 상황을 쉽게 정리하게 만드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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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눈을 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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