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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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들의 부패한 가죽으로 이루어진 최하층. 그곳에서 바짝 말라 비틀어진 미노타우로스의 텅 빈 눈을 드낙이 바라보았다.
‘마신의 왼팔.’
미노타우로스의 체고는 3m에 달했다. 또한 매우 날렵한 몸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마신장이 타고난 씨름꾼이라면 미노타우로스는 체조선수였다.
드낙은 이내 주먹으로 뿔을 손에 쥐었다.
다른 부위에 비해서 색이 남아있어서 무너지지 않아 보여서였다.
퍼서석.
뿔을 제외한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먼지가 피어올라 왔다. 그건 실로 기괴했는데, 왜냐하면 부패한 가죽 때문에 습도가 높은 게 최하층의 제단이었다.
밀랍 같은 몸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게 정상이다.
‘초월의 힘으로 이렇게 되었다는 뜻.’
그것도 물리적 법칙을 밀어낼 정도의 힘에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찌나 손절을 빨리했는지 미노타우로스의 양뿔은 무력화시키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점이다.
완벽한 도망은 없는 법이었다. 마수들의 가죽 또한 그중에 하나였다. 아쉬운 점은 도착이 너무 느렸다는 점이라 마수들의 가죽을 쓸 수가 없었다. 모두 부패해버렸다.
‘서부에 그렇게 많은 마수를 퍼뜨려놓은 것이 기만이었을 줄은...’
검은돔 직선로만 1만의 마수를 죽였다. 서부 전국토에 10만의 마수가 첨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흙을 먹는 하마 마수였기 때문에 덩치와 비교하면 들어오는 업은 적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숫자였다.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수 십만으로 공격해오는 자가 함부로 못 들오게 했다. 검은 돔에서 바짝 준비한 것처럼 여기게 하였다. 실제로 드낙은 남부 군대와 함께 검은 돔에 들어왔다. 자잘한 마수와 중대형 마수를 처리하는 데 자신의 힘을 소모하는 게 꺼려졌기 때문이다.
‘지하 7층까지 이루어져 있는 대규모 시설.’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는 큰 규모에 지하 7층까지 있었다. 적어도 마수 100만 마리가 고스란히 마신에게로 옮겨갔을 공산이 컸다.
마수 십만으로 상대가 주춤하게 하고, 마수 백만 마리의 업을 전송한다. 가죽만 남기고, 뼈와 살 그리고 피까지 모조리 업으로 전환했다.
‘나쁘지 않아.’
드낙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魔王) 발라쿠〉의 죽음이 생각보다 미노타우로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듯했다. 아무런 무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고, 제단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전투력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설계된 마수인 듯했다. 〈소환되는 마수〉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드낙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만지작거렸다. 업이 느껴졌고, 동시에 마신의 힘 또한 느껴졌다. 마력-〉마법처럼 힘을 변환시키지 않아도 마신의 힘은 그 자체로 변형되고 변환된 힘이었기에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이것 또한 녹여서 장비로 만들어야겠지.’
마신은 암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제법 업을 쌓은 개체의 경우에는 반드시 자신의 힘을 새겨넣어 처치해놓았다.
전차원계를 침공하는 놈다운 짓거리였다.
미노타우로스의 쌍뿔을 회수하는 것이 검은 돔에서 드낙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는 지하 6층으로 올라가며 지하 7층에 있는 부패한 가죽을 향해서 불기둥 광역 마법을 두 번 사용했다.
‘깔끔하게 타버려라.’
한 층이 불꽃으로 가득 차올랐다. 구멍을 기어 올라간 드낙은 대기하고 있는 세리안을 볼 수 있었다. 다른 병사들 또한 주변을 수색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어?”
“미노타우로스의 뿔만 2개 챙겼어.”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꾹 참았다. 완벽하게 당했다는 걸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다.
“이런 제기랄!”
물론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드낙이 발로 성벽의 일부분이었던 돌을 걷어찼다. 반쯤 남아있던 창고의 벽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드낙은 머리를 헝클면서 다시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로 검은 돔을 나가버렸다.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소식을 접한 남부왕 아라온은 허둥거렸다.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공적을 못 세웠으니, 서부를 대놓고 요구하거나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드낙이 어물쩍 그냥 동부로 돌아갈 리도 없었는데, 무주공산인 땅을 그냥 놔두면 당연히 서부와 맞대고 있는 플래티넘과 킹슬레이가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없으니, 이 땅의 가치는 낮긴 하지만...’
욕심 하면 드낙이었다. 금화로 가득 찬 창고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었고, 실제로 그런 창고에서 누워서 뒹군 적이 있는 드낙이었다.
‘용병을 고용한 대금으로 퉁치기 좋지만...’
아라온은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서부는 플래티넘의 것이 아닌가. 다시 수복해도 그 땅은 내 땅이니. 딱히 동부왕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마신장을 토벌해서 서부의 평화를 가져온 건 드낙이었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로 만들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마신장 토벌을 한 대가로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그 선물을 받는다면, 서부는 플래티넘의 것으로 만들 근거가 잡힌다.’
짜증난다고 다 죽이는 스타일이 아닌 게 드낙이었다. 충분히 쑤셔볼 만했다.
“당장 양피지를 가져와라! 금과 은으로 치장한 것을 가져와라!”
“예!”
병사가 바쁘게 움직였다. 아라온은 마신장 토벌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드낙에게 수많은 선물을 내어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용병 대금과 함께 서부를 얻을 것이다.
용병들은 웃음꽃을 한가득 피워내기 바빴다.
“이야. 완전 꿀이네. 꿀.”
“아직 동부왕 의뢰 안 해본 병신이 있나?”
그 말에 한 용병이 두 팔을 짝 벌리더니 그대로 엉덩이를 쑥 빼내며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없지이이잉!”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드낙의 귀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을 뿐 반마의 종족이기 때문이다.
‘하우, 저 얄미운 녀석들. 그냥 다 죽여버릴 수도 없고.’
힘 좀 있다고 남죽이고 다니는 놈은 그냥 미치광이 살인마일 뿐이었다. 다만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검은 돔을 그나마 쓸만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안 하고서는 밤에 자면서도 벌떡 일어날 게 틀림없다.”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아, 그때 그렇게 할걸.’이라고 후회하며 밤에 일어나 소주 한 병 들이키는 사람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재활용해야 한다.’
드낙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용병들을 고생시키겠다는 마음의 탈출구는 그들을 노동시키겠다는 마인드로 변질되어갔다.
‘돈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물론 그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니었고, 애초에 갚을 생각도 없었다. 남부에 입힌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은데 아라온이 감히 그딴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고 여겼다. 또한 자신의 무력을 가늠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언제나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마신장을 토벌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아무런 것도 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대령했소. 받아주시오.”
금궤 짝부터, 양피지마다 다양한 이권들이 적혀져 있었다. 특히 북부에서는 얻기가 힘든 소금 사업장의 지분을 준다는 것도 적혀져 있었다. 남부의 끝자락에 있는 바다에서 나오는 소금이었다.
“아유. 뭘 이런걸 다...”
드낙의 광대가 승천했다. 앞으로 다양한 문화를 자리 잡게 만들려면 많은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세리안이 제지하고는 속닥거렸다. 그녀 또한 귀족이었고, 선후관계를 살짝 바꾼 개 짓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공짜는 없는 법이지.’
세리안의 귓속말로 아라온의 마음을 간파한 드낙은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이런 선물을 크게 제공하는 것 자체가 드낙에게 그 어떤 은혜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였다.
“감사히 받겠다.”
드낙은 그걸 알면서도 받아 챙겼다. 세리안이 당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지만, 이어지는 드낙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떠야 하는 건 아라온이었다.
“서부에서 손 떼라. 오늘부터 철수해서 남부로 돌아가라.”
“그, 그게 무슨? 서부에서 손을 떼라니...?”
“말 그대로의 의미다. 남부왕, 그 위치에서 살고 싶으면 그 어떤 말도 하지 말고 돌아가라.”
드낙의 조곤조곤한 말 속에 깃든 분노와 경멸을 느낀 아라온은 그저 깨갱거리며 쥐새끼처럼 고개 숙인 채 군막을 나서야 했다.
‘안 그래도 기분 나쁜데, 미친놈이...벌써부터 자기 먹을 떡부터 생각하고 자빠졌어?’
“서부...너 가질래?”
드낙이 세리안에게 물었다. 전부터 마음을 잡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내가 왜?”
“아니, 너 영지를 원했으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영지민 없는 영지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
“있을 것 같은데...”
“난 아니야.”
드낙이 콧김을 내뿜으며 고민했다.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받을 상 제대로 받고 싶어하는 듯했다.
“서부에 있으면 만나기 힘들잖아.”
“그래?"
드낙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교통 시스템부터 발라버려야 함을 또 한 번 깨달았다.
‘흠. 결국 또 지하 연합을 끌어들여야 하나.’
인간에게 주기는 싫었다. 사회 초창기에 너무 털린 게 많아서였다. 또한 지하 연합에게 주는 첫 지상 영토이기도 했다. 인간들의 반발이 심하겠지만, 어차피 그들을 지배하는 기득권층은 드낙에게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머리 깨지기 싫으면 굽히겠지.’
이제 더는 그들의 불만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한 게 드낙이었다. 전선의 경우에는 그냥 나눠서 진격시키면 그만이었다. 종족연합은 그냥 연합보다 끔찍할 정도로 규합력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은 더하지.’
대업을 논하기 전에 항상 외척부터 조지고 시작하는 역사의 공통된 속성을 몰라도 알 수 있는 게 인간의 이기심이었다.
“반발이 엄청날 텐데.”
“사람도 없는 땅에 무슨 반발. 그리고 어차피 남부는 지하 연합의 종족들을 볼 수도 없어. 굳이 서부 땅에 오겠어? 와봤자 잡혀서 그 끝이 안 좋겠지.”
귀족들의 계략에 돈을 쥐고 서부로 향하는 인간들까지 드낙은 챙겨줄 마음이 없었다. 또한 서부를 다른 이들에게 주는 것보다 핏빛쥐에게 줄려고 하는 까닭은 〈텅 빈 검은 돔〉의 존재 때문이었다.
‘백만의 마수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
주력이나 마력을 이용한다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검은돔의 벽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검은 돔은 발라쿠가 조성한 것이기에 마신의 힘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마도 건축물〉에 해당했다.
그 구조를 연구한다면 마도 건축술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모방하면서 수많은 것들을 빠르게 발달시킬 수 있어서였다.
드낙은 단순히 검은 돔의 웅장함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보다 자신을 믿고 따르고 신으로까지 추앙하면서 지금에 와서는 공생관계나 다름없는 핏빛쥐에게 주는 게 더욱 옳았다.
‘어차피 테라가 완성되면 난 이 행성을 떠나야 한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하는 게 드낙이었다. 중립신은 결코 테라에 그가 남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최대한 기술을 획득하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기반을 다져야 했다.
그렇게 서부는 지하 연합의 손에 들어갔다. 국경지는 인간에게 자주 보이는 고블린들과 크놀들이 맡게될 터였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핏빛쥐들이 자세히 의논하여 알아서 드낙의 입맛에 맞게 서부의 형세를 만들어나갈 터였다.
남부 왕국은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했다.
아라온이 드낙의 심기를 크게 건드려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들이 철수 준비를 할 때, 세리안이 드낙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킨 후작을 내 밑으로 두고 싶은데, 네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어떻게?”
드낙 또한 인본주의적인 전술을 내세운 킨 후작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변경백의 영지를 그에게 관리를 맡길 생각이야. 하지만 그러려면 네가 말했던 발언을 철회해야 해. 그래도 괜찮겠어?”
“지금 같은 난세에 말 바꾸는 게 뭐가 어렵다고.”
어차피 세리안에게 영지를 줘야 했다. 남부와 동부의 경계지를 그녀가 선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골치 아픈 곳처럼 보여서였다. 반면 세리안은 눈을 반짝였다. 그럴듯한 구실을 통해서 쉽게 변경백의 영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 멈춰라.”
드낙이 다시 아라온을 불러세웠다. 작은 희망을 품고 다시 드낙에게 온 아라온에게 드낙이 말했다.
“주인 없는 땅으로 만들었던 변경백의 영지를 다시 내 영토로 만들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어라.”
“아니! 왕과 왕의 말을 어찌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것이오? 거기다가 그냥 이렇게 통보하듯이 한다면...”
드낙이 손사래를 치면서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남부왕, 정말로 그렇게 계속 나올 것인가? 들어가는 게 좋을텐데.”
그에게는 남부에 존재하는 관리들의 수만큼 남부를 쪼갤 힘이 있었다. 더는 인간의 정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
그 사이에 세리안은 킨 후작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이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그는 가신과 함께 자신의 고향을 다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세리안은 중앙 정치에 힘쓰고 싶었기에 영지를 받아도 이를 다스리는 데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거기에 그이의 아이도 낳아야 하고.’
세리안의 눈 속에 존재하는 불길이 화려하게 타올랐다. 드낙의 혈통은 누구나 탐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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