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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05화 (704/1,239)

강철의 전사 70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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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

곤히 잠자면서도 귀가 팔랑거리는 마수의 목을 타고 그림자가 휘감겼다. 숨을 내뱉고, 다시 들이쉴 타이밍에 그림자가 붉은 구렁이같이 긴 팔로 변하며 단번에 목이 졸려졌다.

“각.”

소리를 낼 숨이 조금밖에 없었기에 단말마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강한 반응이 아니었다. 목뼈가 뿌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중형 마수의 굵은 목을 조를 정도로 긴 팔로 변형해있는 드낙은 손쉽게 마수들을 사냥해나갔다.

‘마수 천국이 따로 없다.’

마수들이 지배한 땅은 실로 마수들에게 좋았다. 많은 마수가 방심하고 있었고, 그 방심은 곧 암살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주둥이가 하마처럼 매우 큰 이 마수들은 흙을 먹고 살기 때문에 사냥하지도 않았다.

미노타우로스가 임명한 곳에서 살며 흙만 먹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훌륭한 첨병이었다.

‘문제는 방심한다는 거지.’

먹고 살기 좋은데 왜 적을 찾으려고 사주경계를 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후방에 있는 군부대에서 빠릿빠릿함을 요구하는 것과 같았다.

‘중형 마수의 내구력과 생명력을 생각한다면, 기습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림도 없지!’

최소 셋에서 최대 열 마리까지 모여있는 하마 마수였지만 드낙의 조용한 칼날에는 무미건조하게 죽어야했다.

그림자의 힘을 사용하면서 피를 많이 소모했다고 생각하면 은밀 기동을 해서 다가가면 그만이었다.

강철과도 같은 체력이 드낙에게는 있었다. 인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드낙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후로도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부자가, 유력가가 자신의 재물과 권력을 스스로 손에서 놓는 경우는 없었다.

그 중독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꾸두둑...

피조차도 내지 않는 드낙의 암살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주변 지형을 이용하여 낮에 쉽게 접근하고, 밤에는 평야를 위주로 돌아다녔다. 위험하다 싶으면 그림자로 변하기도 했다.

수풀을 앞세워서 조금씩 천천히 움직여서 노출된 지역을 지나고, 새들의 환영을 만들어내서 하늘로 눈이 옮겨지게 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현혹하고 속인 다음에는 접근해서 목을 조이면 그만이었다. 아나콘다 같은 팔은 이를 가능케 했다.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1만여 마리의 중형 마수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률 100%의 암살행이었다.

그 과정은 실로 담백했기 때문에 말해봤자 입이 아플 정도였다.

*

“이거 참, 일이 이렇게 되다니. 황당합니다.”

드낙의 시험 때문에 했던 회의와는 다르게 그저 진격해서 검은 돔까지 그냥 행군하는 게 전부가 되어버렸다. 킨 후작이 허탈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인본주의를 내세워도 맥없는 전쟁만큼 따분한 것이 없었다. 그는 능력이 있었고, 공적을 원했다. 이를 드낙이 차단해버렸으니. 그 마음이 텅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실로 인간 같지 않은 자다. 어째서 저런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는지...”

아라온은 질색하며 대꾸했다.

“반역자 세파리아스는 동부왕의 탄생을 위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흥.”

감당이 안 되어서 엘프들에게서 받은 전신갑주를 통해서도 수백의 기사가 죽어 나자빠졌다. 제국 또한 중앙집권을 이루면서 마도 사회로 갔기 때문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막기 위한 엘프들의 음험한 수법은 실로 다양했다.

세파리아스의 사후 이후에 모든 엘프 전신갑주를 회수해 갔지만 그때 자리 잡은 전신 갑주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남부 마법 사회의 과제로 남았다.

지성 종족에게 신문물을 보여주는 건 이처럼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아라온은 코웃음을 치며 엘프가 개입해서 죽일 정도로 대단했던 인간을 깎아내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동부왕이 세파리아스의 안배로 탄생했다고? 비약이 심하다! 킨 후작.”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폐하! 하마 마수의 시체를 운반해왔습니다.”

“어떻더냐?”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몸에 독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마수 특징상 부패도 이루어지지 않아 내장조차도 신선합니다.”

아라온이 눈을 빛냈다.

전의 전술토의에서조차도 보급 소모를 걱정했던 게 남부왕이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식량이 소모되는지 알고 있어서였고, 체구가 3m에 달하는 중형 마수는 먹음직스러운 것이었다.

독이 든 복어조차도 먹는 게 인간인데, 마수라고 안 먹을 이유가 없었다. 문어의 생김새를 보고도 그걸 먹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보여주는 환경 적응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흠흠.”

코로 맡아지는 바비큐 냄새. 고기가 타면서 만들어내는 그 군침이 도는 향기에 아라온이 걸음을 빨리했다. 해체된 내장은 한 곳에 쌓아두고, 흙으로 덮는 중이었다.

보급로는 계속해서 사람이 오가기 때문에 부패한 내장이 공기에 노출되면 위험했다. 물론 현실은 냄새가 심했기에 귀족들이 싫어하는 것이었다. 위생이 아니라, 아라온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었다.

소금을 뿌리고, 단번에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육즙이 상당했고, 살 사이에 느껴지는 단단하고 질긴 근육을 씹는 맛은 일품이었다.

“됐다. 이거다. 주변에 있는 마수들의 시체를 회수해와라.”

마리당 수백 인분은 그냥 가볍게 넘어서고, 삶으면 천 명은 먹을 수 있는 수프가 만들어진다. 푹 삶아서 뼈를 씹어먹을 수 있게 만든다면 식량 사정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만큼 많은 보급을 아낄 수 있을 터였다.

“이 뭐하는 짓인가?”

“불청객이 왔군.”

아라온이 짜증을 냈다. 세리안이 드워프 외골격 갑주를 입은 채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양옆으로 모비딕과 블러디 만티코어가 어슬렁거리며 따라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병사들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쫄아버린 것이다. 남부 병사들의 기개가 얼마나 볼품없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북부의 경우에는 병사가 아니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마브로스 리꼬〉를 잡으려고 야밤에 뛰쳐나올 정도로 무식할 정도였는데, 남부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모품으로 사라질 것들이...’

세리안의 분노하는 기색에 너도나도 물러섰다. 그 모습은 마치 파도를 헤쳐나가는 고래 와도 같았다. 막을 수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아라온도 킨 후작도 가만히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남부왕은 몸을 일으켰다.

“무슨 소린가? 뭐가 어쨌다고?”

“하루바삐 검은 돔으로 가야 하는데, 갑자기 왜 마수를 수거하는 것이오.”

“허허. 당연히 보급에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지. 보고도 모르는가?”

드낙이 사라지자 아라온은 거침없이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그간 세리안에게 수없이 대화를 해봤지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년은 생각하는 오우거다.’

함께하면 할수록 아주 X 같은 년이었다. 마이웨이의 끝판왕이었고 그녀를 제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녀가 인정한 자뿐이었다. 드낙이 사라진 이상 세리안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세리안은 월권행위를 일삼았고, 그 덕에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세리안 또한 변명거리는 있었다. 드낙이 요구한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똑똑해서 설전에서 한 번 이긴 적이 없었다. 거기에 무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문무겸비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부왕께서 명령한 일을 이렇게 망가뜨리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지는 않을텐데...”

“협박하는 건가?”

대놓고 당당하게 나서니 세리안으로서는 강하게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이목이 매우 집중되어있어서였다.

“알아서 하시오.”

세리안이 물러났다. 드낙의 권세를 등에 업고 있음에도 저렇게 나온다면 자신이 할 게 없었다. 피를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죽인 아라온이다. 그의 이미지는 많이 망가져 있어서 남부를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형 마수로 분류되는 하마 마수를 통해서 보급 소모에 재미를 본 남부군대는 예상보다 10일이나 늦어서 검은 돔의 인근에 도착하여 드낙과 만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그 말에 세리안은 가감 없이 말했다. 이를 지켜보는 아라온은 표정을 구겨야 했다. 드낙이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아라온은 변명했다.

“장기전으로 갈 소지가 있을 수 있어서 보급을 현지에서 획득한 만큼 다른 보급을 쌓아둘 수 있었소.”

합리적인 이유를 들먹거렸다. 반면 드낙은 한 번 피식거릴 뿐이었다. 이미 남부를 X 되게 할 준비가 다 되어있어서였다.

‘서부의 한 쪼가리를 받으면 무슨 기분일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았다.

“검은 돔의 규모는 전과 비교했을 때보다 커진 상태다.”

드낙은 쓸데 없는 싸움을 뒤로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라온은 특히나 이를 반겼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드낙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귀찮은 걸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쉽게 넘겼다.

그만큼 그들에게 드낙은 다루기 쉬운 자로 여겨졌다.

‘그런 때가 있었지.’

곁눈질로 아라온을 바라보는 드낙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준비하라! 검은 돔으로 들어가면, 멈춰서는 안 된다! 미궁의 미노타우로스에게 시간을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별다른 작전 따위는 없었다. 공성 무기를 들고가서 닥치는 대로 미궁을 부수고, 미노타우로스를 찾아서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병사를 통솔하는 일은 남부의 몫이었다.

“세리안. 넌 나와 함께 간다.”

날개를 못 펼치는 모비딕은 의미가 없었으므로 블러디 만티코어만 따라나섰다.

검은 돔의 코앞까지 도달한 드낙은 그 크기에 감탄했다. 광역시 하나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미궁이 만들어졌을 때, 쳤야하는게 맞구나. 때를 놓쳤어.’

후회가 절로 밀려왔다. 마신의 왼팔에게 시간을 준 것만큼 거지 같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서 검은 돔을 처리했다면, 발라쿠는 더 성장했을 터였다.

어디를 선택하든지 양자택일만이 가능했다.

‘아니지. 핏빛쥐들의 총력전을 가동했다면...’

그만큼 많은 핏빛쥐가 죽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선택지라는 걸 깨닫고는 드낙은 생각을 접었다. 늦은 채로 생각해봤자 결국 IF에 불과했다.

“공성병기가 많네.”

“대놓고 목적이 검은 돔 파괴니까.”

드낙의 말에 세리안이 대꾸했다. 그녀는 붉은 머리카락을 말아서 갑옷 속에 넣고, 투구를 썼다.

검은 돔의 입구는 거대했다. 족히 30m가 넘었고, 폭은 높이의 배는 되어 보였다. 이미 열려 있었기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오직 어둠뿐이었다.

‘가루..?’

미립자 같은 가루가 입구를 통해서 스멀스멀 바람과 함께 날아왔다. 내부에 대기가 존재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마수 생태계〉를 엿볼 큰 기회로 여겨졌다.

검은 가루를 손으로 만져서 비벼보았다. 습기가 높아서 물기가 느껴졌고, 독은 없어 보였다.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그 어떤 냄새도 없었다. 그저 해가 없어 보이는 가루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굵기가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천으로도 호흡기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어 보였다.

체내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몰랐기에 필요한 처치를 준비하는데 또 3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드낙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지상층에서는 길을 잃어버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 뒤를 블러디 만티코어에 올라타서 장창을 쥐고 있는 세리안이 따라갔다.

“폐허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네.”

명암이 다르지만 하나같이 검고 회색인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 위에는 거무튀튀한 빛을 내는 구체들이 여럿 존재했고, 규칙적으로 궤도를 만들어 공전하고 있었다.

퍼석.

“아!”

식물을 만지자마자 단번에 부러졌다. 그리고 예의 그 검은 가루가 튀어나왔다. 드낙은 그제야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정신없이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다녔다.

푸서석...!

도중에 모이는 식물들은 드낙이 거칠게 달려가는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부서져 내려 검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마수의 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에 몸집을 키우고, 그대로 땅을 팠다.

쿠구구궁!

큰 소리를 내며 땅이 무너져내렸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미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높은 벽이 드낙의 시야를 메웠다. 벽은 천장과 맞닿아있어서 밧줄을 통해서 넘어갈 수도 없었다.

미궁의 층수는 지하 7층까지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마수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최하층에 도달한 드낙은 떨어져 내라면서 이곳이 최하층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질퍽!

늪 같은 곳이었고, 흐물거리는 막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썩은 내가 진동을 했고 손으로 건져 올리면 마수의 가죽이 후두두 끊어지며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부패했는지 그 질긴 가죽이 해파리처럼 얇아져 있었다.

그 늪은 마수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늪이었다.

‘피도 없고, 오직 가죽뿐이다.’

생가죽이었기에 빠르게 부패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신체 부위도 보이지 않았다. 마수의 가죽이 남았다면, 뼈라도 있어야 했는데 뼈라고 여길 만한 흔적도 없었다.

중앙에 있는 제단으로 드낙이 걸음을 옮겼다. 크기를 불려서 5m에 달하는 몸을 지니고 있음에도 허벅지까지 늪이 올라와 있었다.

철퍽. 철퍽.

제단은 원형으로 된 계단으로 외곽이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왕좌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 앉아있는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을 드낙이 마주했다.

눈이 텅 비어있었고, 미라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이미 죽었다.’

드낙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서 단기간에 남부의 인간과 가축을 빨아들인 마신의 종자들은 그 업과 자신의 생명을 그냥 마신에게 맡겨버렸다는 것을.

‘싸우지 않고 이기고 돌아갔다.’

마신의 왼팔다운 단타치기였다.

‘부패의 정도, 바람은 불지 않고, 차단된 공간 속. 온도는 후덥지근하다.’

밑에 지열이 느껴졌다. 온천수인듯했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기간을 되짚어나갔다.

‘마신장 발라쿠가 죽자마자 행동에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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