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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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의 병력은 딱 10만이었다. 그중 병사가 3만이고, 용병이 7만이었다. 저번에 있었던 공돈 때문에 많은 용병이 기분 좋게 나섰다. 악마에게 당하고도 아직도 10만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게 남부의 대지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을 보조하는 보급 징집병의 숫자만 20만에 달했고, 그들 모두 고아거나 연고지가 없는 자들이었다. 부랑자나 범죄자들도 속해있었는데, 죄를 탕감할 수 있어서였다. 또한 보급하는 이들이 먹는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 이들을 이용하는 것도 있었다.
남부가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는 북부가 플래티넘 왕가에 세금을 바치지 않고 있었기에 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군 편제였다. 소수 정예로 보급을 찌르면 후퇴할 수밖에 없는 군 편제였지만, 상대는 검은 돔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대형 군막에서 지휘봉을 쥔 드낙이 서부땅을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마수들의 본대는 검은 돔에 있는 게 확실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부에 마수들이 없는 건 아니오.”
이어지는 세리안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장이 무력을 관장하고, 마신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전차원계를 돌아다니며 업을 수급한다면, 미궁의 미노타우로스는 그의 왼팔을 자처하며 지력을 관장하는 존재였다. 당연히 그들이 점령한 서부를 그냥 두고 있지 않았다.
“서부 전역에 야생 마수들처럼 마수들이 흩뿌려져 있는데 그들과 접촉하면 공격도 하지 않고, 검은 돔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게 큰 특징 중 하나다.”
“야생 마수처럼 흩뿌려져 있지만, 실상은 미노타우로스의 명령을 받는 마수들이라...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소.”
남부왕이 절로 끙끙 앓았다.
인간의 보급로는 제한되어있었다. 도로를 벗어나면 채 5일 거리를 나아가는데도 보급 거점을 세워서 못해도 3일을 식량을 축적하고 나서야 가능했고, 도로가 넓지 못하면 보름을 나아가지 못했다.
전투 지역에서의 보급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군대를 수십 개로 나누어서 분산시켜야 할 때도 있었다. 이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지휘관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진형이었다.
그런 말에 킨 후작이 발언했다. 남부왕이 자리에 있었기에 절로 깍듯했다.
“서부의 도로는 생각보다 그 형태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또한, 폐허가 되었다고 해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성채와 마을들이 있을 겁니다. 거점을 새로이 만들지 않아도 되고, 무너졌지만 방어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니. 충분히 보급 거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파괴된 성채와 무너진 마을은 전략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보이긴 한데...”
드낙이 그럴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채와 마을을 정리하면 보급 물품을 쌓아놓을 수 있고, 주변에 퍼진 마수를 처리할 수 있었다.
“만약 보급 거점을 통해서 검은 돔으로 향하는 지역에 있는 마수들을 토벌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드낙이 킨 후작을 겨냥하며 물었다.
“검은 돔으로 소식을 전하러 가는 마수들을 잡기 위해서는 보병들이 몰래 일정 위치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그중에서 몇몇 쓸만한 지형이 있지만, 그곳에 있는 마수들을 먼저 몰래 죽여야 하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이는 동부왕께서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규모의 힘으로 마수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검은 돔으로 향하는 길을 크게 차단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형을 먼저 봐야 하고, 그곳에 병사를 배치해야 했다.
드낙이 콕 짚어준 검은 돔이 있는 곳의 서남쪽에 있는 협곡을 가리켰다. 〈오십협곡〉이라 불리는 거대한 협곡이었고, 그 길이만 해도 15km가 넘었다. 검은 돔으로 향하려는 마수들을 막기 좋았다.
“협곡을 올라서 넘어가는 마수들을 처리하는 게 주요합니다. 협곡을 벗어나 좌우에서 병사들이 방벽을 통해서 협곡을 안 오르려는 마수 또한 대비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나쁘지 않은 지형이었다. 하지만 서쪽에 치우쳐있어서 남부에서 시작된 보급 동선이 조금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 길어져도 얼마나 많은 식량이 거덜 나는데!’
당연히 아라온 플래티넘은 분노가 확 치솟았다. 무조건 정남쪽에서 대각선으로 반듯하게 치고 가는 게 좋았는데, 원을 그리듯이 보급로를 그렸기 때문이다.
“보급선이 길어지는데, 직선로를 구성해야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칸 후작. 그게 더 보급이 빠르고, 진격속도도 높아지지 않겠나.”
대놓고 보급에 소모되는 돈이 걱정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에 칸 후작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병사들의 피해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은엄폐를 하면서 가면 될 일이지 않나.”
“그것 또한 체력을 소비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우리 남부군은 병력 7할이 용병입니다. 죽는 이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단순히 다리를 만드는데도 사고는 일어난다. 하물며 직선 도로를 따라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숲과 언덕을 지나야 하기 때문인데, 자연스럽게 마수와 만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평야 쪽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밤에 움직인다면, 마수들은 결코 저희를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또 근접해있다면 미리 기사들을 통해서 대처할 수 있습니다.”
“평야는 되고, 숲이나 언덕을 관통하는 도로는 안 된다?”
“시야 때문입니다.”
그 말에 아라온이 웃었다.
“누가 그걸 모르는가? 그래도 가능은 하지 않는가.”
사람 목숨 하나보다는 보급 10일 치를 더 아끼는 게 중요했다. 그게 소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남의 목숨은 남의 것이지만, 재물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킨 후작이 지휘관으로서의 가치 중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내세워서 병사들의 인명 피해를 걱정했다면, 아라온은 보급의 효율성을 중시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드낙은 킨 후작에게 호감을 느꼈다.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영웅이 충무공 이순신이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가 민초에 깊게 공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거대한 기름이 해안을 덮쳤을 때, 자기 일도 아니면서 국민적 행동이 일어나는 이례적인 곳의 민족으로 살아온 대가는 시민들의 삶과 고통에 지나칠 정도로 공감한다는 점이었다.
그 속에서 드낙이 지닌 이기심이 활동하고 있었고, 이처럼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이기심보다는 멋진 모습이 더 당기는 법이었다.
‘어차피 내 보급도 아니잖아?’
군대 동원을 통한 이득을 서부의 땅 1할을 떼어주는 것에 끝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나머지 9할은 대리자를 두고 세금만 알차게 빨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적임자는 당연히 세리안이었다.
‘원래는 변경백의 영지를 줄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그 눈이 칸 후작에게로 향했다.
남부를 시험한 드낙은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직선로를 선택한다.”
칸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되는 인명피해는 못해도 천이 넘을 것이었다. 아무리 잘해도 천이었고, 경상자의 숫자는 수천이 될 터였다. 운이 나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좋은 길이 있음에도 시간을 아끼자고 사람을 갈아 넣다니.’
공을 탐해서 병사를 혹독하게 지휘하는 자들은 결코 대업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세파리아스가 그러했다. 그 가혹한 지휘는 백전백승의 불패신화를 만들었지만, 그 끝은 죽음이었다.
‘결국 불파겐은 불파겐인가.’
군사학서는 곧 전쟁역사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그 실망하는 눈치에 세리안의 눈썹이 화난 표정으로 되었지만, 상대를 도발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나설 곳, 안 나설 곳을 딱 정해놓고 이곳에 온 상태였다.
‘킨 후작은 재능이 있다.’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서는 곳곳에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건 이 시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미 칸 후작은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럽게 드낙이 그를 포섭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때문에 후작의 무례한 눈빛에도 가만히 있었다.
“마수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최단기간 내에 검은 돔으로 가면 그만이다.”
“동부왕! 어떻게 그 많은 마수들을 처리할 생각이오?”
아라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 한 명이, 그런 대국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 기대를 드낙은 망치로 깨부쉈다.
“도로 주변 3km 주변에 있는 마수를 모조리 죽이겠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죽을 거다.”
그 자신만만한 말에 아라온과 킨 후작은 자신들이 시험받았다는 걸 느꼈다. 전략적 역량을 한 번 떠본 것이다.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려고 나댄 것이 자신들을 노출 시킨 것에 불과했다.
‘허. 내가 서부땅에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아라온이 깊게 자책했다. 땅 욕심에 눈이 멀어서 공적을 내세우려고 발언을 바쁘게 해버렸다. 스타트를 저쪽에서 끊었으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최대한 주도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완벽하게 당했다.’
킨 후작 또한 혀가 얼얼했다. 변경백 칸과는 다르게 전쟁이 일어나자 가문을 인솔하여 대피한 것이 킨이었다. 이인자였기에 당연히 빠져야 했다. 둘 다 죽으면 가문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서였다.
새삼 드낙을 다르게 보았다. 엉큼한 구석이 있었고, 확실히 성공한 지배자의 면모가 보였다.
“그 어떤 문제 없이 도로를 관통한다면, 며칠이나 걸리는가?”
“한 달하고 보름입니다.”
“많이 늦는데.”
“그게 최선입니다.”
병력의 수준은 곧 행군의 속도를 결정한다. 킨 후작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했다. 서로 합이 맞아야지 승리할 수 있는 게 전쟁이라고 불리는 변수 덩어리의 정체였다.
“세리안, 너는 만약을 대비해서 이들과 함께해라.”
“예. 알겠습니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었기에 세리안은 드낙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드낙은 모비딕과 블러디 만티코어를 그녀에게 붙여주고 그대로 그림자로 변하여 사라졌다.
마법과 레우치터 그리고 그림자의 힘으로 행군 구역을 청소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업도 얻을 수 있지.’
부수입도 짭짤했다. 특히 업이 어느 정도로 쌓여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기에 더욱 재미난 것이 사냥이었고, 뭔가를 죽이는 것이었다. 〈검은 꿈〉을 통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중립신의 〈사냥꾼〉으로 양성되었다.
사냥을 즐기는 드낙의 운명은 이미 검은 꿈의 선택을 받았을 때부터 결정되어있었다.
*
“아니 이게 말이 돼?”
마신장의 힘을 잃었지만, 원체 똑똑하게 태어난 리고가 투정을 부렸다. 그의 주변에는 토템으로 깎은 나무들이 가득했다. 그 외에도 많은 고블린 주술사 수련생들이 토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딱히 수업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주술사란 직업은 애초에 남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끝도 없는 학문과 같아서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 하는데 뒤에 놈을 가르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오직 성장을 포기한 주술사나, 곧 죽을 때가 다 된 주술사만 후학 양성에 힘을 쓸 뿐이다.
늙으면 당연히 활동 시간이 줄어드는 게 당연지사였고, 해보지 않은 일도 해보고 싶은 터라 취미가 많아서 또 후학을 양성하는 게 어렵기도 했다. 뭔가를 남기려는 자들은 달랐지만, 대게 취미가 많은 주술사 선생이 많았다.
“이거 못하는 놈은 너뿐이다.”
덩치 차이가 5배 이상은 났지만 늙은 고블린 주술사는 리고를 거침없이 대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주술에 대한 열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템의 위력 삼 요소는 크기, 정교함 그리고 주력이다. 너는 두 가지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정교하지는 못하다.”
“손이 큰데 어쩌라는 거야.”
주술 지팡이가 리고의 무릎을 쳤다. 다리가 들썩거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본능적 반응이 일어난 것뿐이었다.
“기술은 갈고 닦으면 된다. 다른 주술사들은 가진 주력이 없어서 천일이고, 만일이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주력을 그릇에 담으려고 노력해도 허사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너는 아니잖느냐!”
“빌어먹을.”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기에 리고가 할 수 있는 일은 욕뿐이었다.
“뭐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조각칼을 움직여. 다양한 형태의 조각칼을 너를 위해서 내가 이곳저곳 빌어서 만들어왔는데도 짜증만 낼 셈이라면 다른 곳으로 가라!”
발춤을 추면서 나무 지팡이가 널브러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칼을 쿡쿡 누르자 조각칼이 덜덜 떨면서 스스로 땅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누가 안 한데?”
“짜증을 내지 말란 소리다! 발딱발이!”
“예! 스승님!”
토템을 깎던 고블린 하나가 냉큼 다가왔다. 이 중에서 가장 토템을 잘 만드는 고블린 예비 주술사였다. 주력이 텅텅 빈 토템을 다른 주술사들이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예 토템 기술자가 되려고 주술에 공들이는 걸 포기한 고블린 주술사이기도 했다.
이는 주술업이 분업을 하기 시작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만큼 주술 경제가 커지고 있었고, 수요가 넘쳐났다.
“주력을 담아서 토템을 팔면 이득 아니냐?”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다. 켁!”
돈을 좀 만져서 건방진 것이 발딱발이였다. 목공예를 통해서 빌어먹던 놈을 주워다가 주술을 가르친 은인에게 하는 소리가 경박했다.
“리고한테 주력을 받는 대신에 좀 가르쳐줘라. 난 내 버섯 농장 때문에 가봐야 한다. 이번에 큰놈을 모셔왔거든.”
“아니, 이렇게 떠넘기시면...”
“잘 부탁한다! 발딱발이!”
리고의 큰 음성이 발딱발이의 목소리가 파묻혔다. 스승님에게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어도 리고에게는 찍소리 못하는 게 발딱발이였다.
그 모습을 핏빛쥐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리고 프로젝트〉는 11인의 위원회의 결정으로 현재 진행 중이었다. 목표는 리고의 전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큰 전투에 써먹겠다는 단순한 프로젝트였지만 그 과정은 실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핏빛쥐는 살이 푸둥푸둥 쪄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핏빛쥐가 〈배불뚝 리전〉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은털이 아니었기에 배불뚝 리전에 직접 소속된 핏빛쥐는 아니었다.
‘리고의 배우자도 찾지 못했는데, 저렇게 주술 실력이 빠르게 늘어나면 안 될 텐데. 서둘러 보고해야겠다.’
핏빛쥐 인력을 가장 적게 사용하면서 넓은 반경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배불뚝 리전의 큰뿔 검은쥐들은 리고의 배우자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똑똑한 오우거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리고라는 개체가 있으므로 능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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