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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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의 가장 큰 경제 상업 조직인 〈상단 연합〉에 무리 없이 들어가 그대로 천단주가 된 파이살 천단주는 연신 땀을 뻘뻘 흘렸다.
‘또 왔네. 내가 동네북인가?’
남부 출신에 상단 연합 중책을 맡은 천단주가 있다? 이실레아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민족이라는 건 그만큼 큰 족쇄였다. 평생을 노력해도 한순간의 위기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이 민족 변절자들이었다.
민족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조차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게 남부 왕국이었다.
“음.”
그의 앞에는 이실레아 브릴리언트가 조용히 데워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유흥을 안 즐기기로 유명할 정도로 검소한 데다가, 못하는 재능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그녀는 손에 뭐 좀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두려운 자였다.
‘도렌 은행장과 중앙에서 합쳤을 때... 그때가 너무나도 그립다...’
도렌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의부증은 유명했다. 도렌은 너무 순정남이었고, 그 때문에 이실레아는 지나칠 정도로 도렌을 끼고 도는 구석도 있었는데 드낙이 신뢰성을 빌미로 신혼 때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당연히 도렌이 광산에서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서 은행장이 되어서 서로 중앙에서 한집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깨가 쏟아졌다.
몰락했지만, 요리 1가지 정도는 자기가 직접 해서 도렌에게 줄 정도였다.
‘그때는 조용했는데.’
자연스럽게 애까지 출산하게 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애를 낳자마자 이실레아는 다시 본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도렌과 지내면서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되어서였다.
“......”
“......”
약속을 잡고, 찾아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이실레아를 훔쳐보며 파이살 천단주는 배가 살살 아파져 옴을 느꼈다. 이실레아는 결코 자신의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관리하는 건 동부의 전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녀와 함께 사업하지 않는 자는 결코 동부에서 돈벌이할 수 없고, 오히려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자신의 손에 쥔 것만 소모하게 된다.
모든 이들이 중앙 사령관이라고 그녀를 부르기보다는 재상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와 유일하게 친하지 않으면서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건 게제라스 뿐일 정도로 흑과 백이 명백하게 나누어진 강철의 재상이었다.
“저...무슨 이유로 약속을 잡으셨는지...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도 참 급하오.”
그녀가 약속하고 왔으면서 하는 말은 정반대였다. 손님과 주인이 바뀌었지만 파이살 천단주는 감히 딴소리를 하지 못하고 진지한 표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땀이라도 닦고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예? 예!”
그가 서둘러 땀을 닦았다. 겨드랑이까지 축축해져 있었다. 하도 귀족들에게 처맞고 다녀서 트라우마가 단단히 박혀있었다. 사병을 아래에 둘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용병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길목을 막고 있는 정예병 10명을 잡지도 못하는 존재들이 용병들이었다. 거기에 기사라도 1명 있으면, 중후반 타이밍에 100명의 용병이 10명에게서 도망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숫자가 많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남부와는 달리 동부는 북부인들이 지배계층의 7할이 넘었다. 나머지 3할은 길게이를 통해서 출세한 자들이다.
‘신전의 경우는 필요 없고.’
상단연합에게 있어서 신전은 권력을 쥘 줄도 모르는 잡것들이었다. 권력을 휘두르기보다는 굶어 죽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버러지들이다. 상인과 가장 맞지 않았다. 돈이라면 자식이 아파도 뛰쳐나가는 게 상인들이었다.
돈 버는 맛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인생을 통째로 갈아버릴 정도로 중독성이 대단했다.
이실레아는 그가 땀을 닦자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자네들 덕분에 철값이 올라서 난리도 아니오. 장원 기사든, 중앙 수도에 복무하는 기사든, 모든 이들이 나한테 와서 청원을 넣고 있는 상황이오.”
드낙의 무력 부흥 정책 중 하나인 상업종사자들의 무력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철값의 폭등을 야기시켰다. 동부의 지하자원은 처참할 수준이었기에 당연히 철이 나지 않았다.
‘장원 기사가 무슨...그치들은 순혈 북부 가문 쪽에 붙어있는데.’
강철 때문에 외부에 기대야 했고, 그 덕에 특히나 외척들. 북부가 큰 재미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길게이는 무주공산으로 낙인찍힌 변경백의 영지를 정상화하고, 거꾸로 뒤집어서 자신이 지배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어서 도와줄 수 없었다.
이실레아의 입장에서는 이미 동부에서 내친 것들이 동부에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었다. 제법 많은 귀족이 이를 원하고 있었고, 그녀는 움직여야 했다.
중앙 사령관이라는 직함으로 불리기보다는 ‘재상’이라고 불리는 게 그녀였다. 그만큼 엄청난 청탁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저희 상단 연합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남쪽의 질 좋은 철을 대량으로 끌고 오면 상황이 달라지고, 시세가 금방 내려갈 터인데...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들리오.”
“어휴휴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재상님!”
“중앙 사령관이네.”
“예! 중앙 사령관님! 저희는 그저 모든 귀족과 서로 잘 어울리고, 좀 잘 지냈으면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귀족 파벌을 가려서 이득을 보다뇨! 절대 아닙니다!”
정신없이 손사래를 쳐대었다. 이실레아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서 강철을 끌고 올 수 있겠군. 한쪽이 더 가져가고 있지 않나? 그렇게 균형을 원하면 반대편으로 달음질을 해야하지 않겠소?”
“헤, 헤헤헤.”
대답은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파이살 천단주의 모습은 실로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참.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그냥...”
이실레아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일어났다. 파이살이 냉큼 대답했다.
“상단 연합이 움직여서 철을 잔뜩 가져오겠습니다!”
“아마 길게이 남부 사령관과 잘 이야기해야 할 것이오.”
‘니미.’
이미 거기까지 알아봤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실레아는 상단 연합을 다리처럼 이용해서 길게이에게서 철을 동부 깊숙이 찔러넣을 생각으로 보였다. 길게이는 썩 좋아하지 않겠지만, 남부의 물품은 밑도 끝도 없이 동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청난 소비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 현재의 동부였다. 드낙이 너무 살기 좋게 만들고 갔기 때문이다. 핏빛쥐들의 정보력을 이용해서 심각한 부정을 저지르는 놈들을 가차 없이 광산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진지한 소리로 콩알 한쪽만 훔쳐도 광산에서 흙을 5일이라도 만지고 오는 게 현재 동부의 상황이었다. 그만큼 모든 자원을 빠르게 소모하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의 주머니가 알차게 꽉 차 있어서였다.
그런 시장을 길게이는 상단 연합의 줄을 통해서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길게이는 남부와 동부의 중개교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는 중이었다.
그가 쥐죽은 듯이 중앙 정치에서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맛있는 건 혼자 먹어야 진짜 맛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행동 지침까지 정해주자 파이살 천단주는 감사를 표했다. 이미 길게이에게 언질이 갔을 수도 있었다. 사령관까지 올라가면 이제는 서로 적으로 대하며 내실을 다지면서도 몸을 돌려 서로 으쌰으쌰하며 다른 경쟁자를 쳐내는 게 정석이기 때문이다.
3등이 없는 사회 구축 구현!
이것 또한 이실레아와 길게이의 연합이었다. 물론 이실레아의 경우에는 그런 목표를 내거는 조직들과도 사업을 같이하고 있었다. 길게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실레아는 자신의 동부 영향력을 통해서 거미줄처럼 서로를 엮어놨기 때문이다.
혼자 죽지 않겠다는 의지는 아슬아슬하고 복잡한 조직 관계도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은 브릴리언트 가문이 있었다.
“고맙다면 건초값을 좀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건초값을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외척들과 지역 유지들이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누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라고 했던가? 그저 싸게 웃터 가문에 넘기라는 소리야. 장원 기사와 지역 유지들의 싸움이 서서히 시작되려고 하지 않나?”
‘거기에 불을 붙일 생각이구나!’
실로 간악했다. 그냥 싸게 건초를 주는 것만으로도 웃터 가문의 장원 기사들은 그 건초를 동부의 평야에 뿌릴 것이고, 이는 곧 외척에게서 몰래 푸쉬를 받는 지역 유지들의 입에 달구어진 숯을 쑤셔 넣는 것과 같았다.
“그걸 그들도 깨닫지 않겠습니까?”
“그럼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나중에 뭐라고 하면 내가 그랬다고 하게.”
“예...”
‘말로 하면 뭐하나. 증거가 없는데.’
브릴리언트 가문이 그 싼 건초를 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동부 최대 목장 중 한 곳 아닌가. 일석이조 이상의 일을 이실레아는 주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상단 연합 요즘 자주 내 심기를 건드리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오체를 쓰다가 순식간에 강고하게 나갔다. 여기에는 그 어떤 타협도 없다는 뜻이었다.
“예? 그게 무슨...”
“개인 은행 말이다. 창고로 써도 화폐를 보관하면 은행 아닌가. 사사로이 상인끼리 돈거래도 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어.”
“그게 무슨 잘못이...됩니까?”
상업을 장려하는 것이 드낙의 땅이 지닌 이점 중 하나였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물고기를 싼값에 살 수 있게 만들려고 발악했던 게제라스 법관의 법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그 덕에 거의 제한이 없는 게 드낙의 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돈거래가 잘못인가?’
“잘못이지. 동부 은행장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금이 든 궤짝이 오가는 거래를 하니까. 시민들의 돈거래는 너무 소소해. 이래서야 그이가 크게 성장할 수가 없다.”
파이살 상단주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완전 미친년 아닌가?’
“그럼 동부 은행을 동해서 큰 거래를 하라는 소리입니까?”
“서로 큰돈이 오가는데 신뢰성 있는 기관이 끼어 있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거라면 저희들 또한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다만 비용이..."
“이번년도 거래 수준을 보고, 내년에 수수료 조정을 하게 만들어.”
“예? 직접 말씀을 안 드리는 겁니까?”
이실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이가 알면 싫어할 게 분명해.”
씀씀이가 작아서 받는 봉급의 9할을 어려운 사람이나 자신의 부모 혹은 다양한 공공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게 도렌이었다. 광산을 관리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돕는 걸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느 조직에 들어서도 탈 없이 지낼 사람이 도렌이었다. 평범하지만, 그는 항상 앉는 자리만큼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빛나지 않는 보석이었다. 빛은 나지 않았지만, 보석은 보석인 법이다.
도렌 앞에서는 새하얀 꽃과 같은 것이 이실레아였지만 외조 하나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했다.
“이 말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말고, 자네가 추진하게. 대신에 몇 년 내로 오크 교역을 상단 연합에게 옮겨주지.”
그 말에 파이살 천단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엄청난 꿀이었다. 먹다가 배가 터져도 모를 터였다.
“하, 하지만 민심이 대단히 흉흉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귀족 위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게 상인들의 손까지 내려가게 되면...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오크 나무맛을 보고는 못 구해서 안달이면서 겉으로만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거다. 오크들의 약재는 또 어떻고? 없어서 못 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오크들은 싫어해도 오크의 상품은 싫어할 수가 없다.”
나무의 재질, 내구도까지도 강철처럼 높이는 오크들의 약재술! 비싼 물약보다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구매하기 쉬울 정도로 값이 싼 것도 많았다.
“무대는 내가 세워준다. 그게 내년이다. 지금까지 내 청탁을 잘 들어주었으니, 나도 크게 상단 연합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세금으로 한 번 맞았으니, 그 흘리는 눈물 정도는 닦아줘야 하지 않겠느냐?”
“현명하십니다.”
다른 귀족들은 단물만 빼먹고 때리지 않은 걸 감사하게 여기라는 마인드였지만 이실레아는 달랐다. 또한 오크 교역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한 번에 역전시킬 계획이 있는 듯했다.
그것을 끝으로 이실레아는 일어났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파이살 상단주는 허둥지둥 신전으로 향했다. 그녀가 맡긴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했다.
항상 모든 걸 나눠주고, 개발하고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는 신전은 굶주려있는 조직이었고, 상단 연합과 조합이 좋았다.
“어머, 파이살 상단주 아니십니까?”
도중에 브릴리언트 가문의 인장을 크게 가슴에 새겨서 입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영애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냉큼 고개를 숙였다.
“엘리세 브릴리언트님이 아니십니까. 오늘도 레이시아 왕비님과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처지가 서로 비슷해서요. 취미도 맞고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게 레이시아였다. 브릴리언트 가문 또한 레이시아 전담을 한 명에게 맡겼는데 그게 엘리세 브릴리언트였다.
드낙에게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레이시아 왕비는 친해져야 할 인물 0순위였다. 브릴리언트 가문은 그녀가 독에 당하기 전에 멀쩡했던 눈으로 배웠던 그림을 취미로 가지고 있으며 결혼을 3년 내로 한 신혼. 거기에 기사와 결혼해서 남편이 자주 집을 비우는 가문원을 레이시아에게 붙였다.
이실레아는 엘리세를 통해서 레이시아가 원하는 것을 종종 들어주기도 했다.
나중을 위한 포석이었고, 그럴 역량이 브릴리언트 가문에는 있었다. 재상 노릇을 게제라스 대신에 하면서 막대한 자원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레이시아 왕비님. 파이살 천단주가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세요.”
파이살은 고개를 숙인 채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책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시력을 되찾고 책에 빠져있는 레이시아의 현재 상태가 코로 맡아졌다. 그녀는 직접 다가와서 그를 방문을 특히나 반겼다.
많은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지만 동시에 신전에게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게 상단 연합이었다. 이를 통해서 화폐가 계속 돌고 또 돌고 있었다.
“전보다 혈색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대가 보낸 오크 약재가 실로 대단했어요.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레이시아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귀족들의 손아귀에서 신전을 보호하고 있는 레이시아의 모습은 가냘팠지만 꺾이지 않는 작은 기세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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