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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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동안 〈황소굽이 도시〉에서 열린 붐차카 축제는 밤낮을 따로 가리지 않았다.
남녀가 서로 마음만 맞으면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러 가기도 하고 술 취한 이들이 목청껏 녹색 도끼를 찬양했다. 그분의 사랑을 그 큰 입에 담았다.
다양한 먹거리부터 온갖 전통적인 놀이에 생포한 붉은 털의 일백야수의 목을 단칼에 자르는 전사를 가려 뽑는 등의 행사도 있었다.
야만적이지만 그렇기에 솔직하다.
가장 오크의 본성을 볼 수 있는 축제였다. 먹고, 즐기고, 사냥하고, 힘을 논한다. 붐차카 축제는 오크 종족의 가장 으뜸가는 가치를 추켜올리는 축제이기도 했다. 주술사들 또한 열심히 축제에 참가했다.
“으음. 느껴진다. 그분의 시선이...”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녹색 도끼의 시선을 느끼는 주술사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주술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또한 술을 좋아하고, 나태하던 주술사는 벌벌 떨면서 단식을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도 했다.
정말로 녹색 도끼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싼 꿀을 홀라당 먹고 엄마와 마주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큰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신의 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필멸자의 마음이었다.
작은 잘못, 나태한 모습, 술독에 빠져서 사는 생활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크들에게 있어서 녹색 도끼는 부모와 같았다. 아기였을 때 잠들 때면 녹색 도끼가 꿈에서 그들을 하나하나 보듬어주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많은 종족이 오크에 대한 녹색 도끼의 자비를 잘 몰랐다. 오크가 죽어도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상남자다운 오크들의 투쟁에 대해서 녹색 도끼는 개입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자신 또한 그 투쟁에 뛰어들 때가 있었다.
그분의 시선이 느껴지니 절로 마음이 정갈해져서, 그 마음은 녹색 도끼에게 줄 힘을 드높이게 하였다.
마음이 하나가 되고, 그 마음은 모두 녹색 도끼에게로 향했다. 이는 곧 〈힘〉, 그 자체가 되었다.
“크흠.”
대전사들이 자리에 앉았다.
곧 대예언이 시작되기 때문에 예언에 취한 대전사가 난동을 부릴 수 있으므로 철창 속에 들어가야 했다. 무기 또한 쥘 수 없었다.
“젠장, 내가 짐승도 아니고.”
대신 대전사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들의 의자를 크게 만들었다. 자신이 잡은 몬스터나 야수 중에서 가장 때깔이 좋은 놈을 의자에 걸쳐놓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중앙에 앉았는데, 철창 속에 들어가야 했다.
이는 마음이 뱀같고, 속굽이 부락의 대전사인 규르소모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대전사들이 〈동쪽의 규르소모스〉를 훔쳐봤다. 현재 오크 중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지닌 곳이었다.
오크 대침공 때 힘을 아꼈기 때문이다. 다른 오크 부락과 다르게 토치라이트 가문의 성채를 점령하지 않고, 평야만 낼름 먹은 것이 속굽이 부락이었다. 전쟁 이후 그들의 성장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곧 대예언이 시작될 것이다! 위험한 물건을 결코 손에 집고 있으면 안 된다!”
주술사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나무 지팡이로 말을 안 듣는 오크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며 돌아다녔다.
“늙은이 말도 안 듣고! 왜 허리춤에 단검을 들고 있는 거냐!”
“켁! 제, 제가 사냥꾼이라서...”
등이 굽은 늙은 주술사조차도 매우 열성적이었다. 오크 사냥꾼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소란이 줄어들고, 침묵에 도시에 내려앉았다. 오크들은 거부좌를 틀고,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어린 오크들 또한 예외는 없었는데 그들은 특정한 곳에 모여서 관리를 받았다. 그 숫자는 5만 명이 넘었는데, 도시의 규모에 비해서 어린 오크들이 많은 까닭은 다른 부락에서 어린이들을 엄청나게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였다.
사아아....
주술사 1만 명이 큰 향로를 피우고, 그 향로 위에 철로 된 줄을 연결하여 좌로 흔들고 한 걸음, 우로 흔들고 한 걸음을 지나다니며 도시 곳곳을 누볐다.
“우우우으으으아아아아으이이이이이이....”
웅을거리는 소리를 깊이 낼 때만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고, 향로를 흔들었고 숨을 들이켤 때는 걸음을 멈추고 향로 또한 손으로 집어서 땅에 놓았다.
그 모든 행위는 주술 행위였다.
고블린들이 발춤을 추면서 주술의 위력을 높이듯이 오크 주술사 또한 주술 행위를 통해서 주술의 위력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나 1만 명의 주술사들이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기에 위력은 곱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토템으로 둘러싸인 네거리 한곳마다 주술사 100명이 자리 잡았다. 무거운 연기는 자욱하게 바닥에 깔렸다. 하늘의 해가 중천에 뜨자 주술사들이 정신력을 집중하고, 주력을 쏟아 보냈다.
토템이 밝은 녹색빛과 갈색빛가루로 가득 찼고, 이내 너무나도 진한 녹색으로 변해가며 점점 빛이 모여들어 토템의 흉악한 녹색 도끼의 얼굴에 집중되더니, 이내 그 눈동자로 응축되었다.
번쩍!
거대한 녹색 섬광이 도시를 잠식했다.
녹색 도끼는 힘의 토씨 하나도 자신이 가지지 않았다. 이 차원계에 있는 오크들이 모은 모든 힘을 그대로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찰나의 순간, 오크들은 대예언을 경험할 수 있었다. 평범한 예언과는 격부터 달랐다.
휘오오오오!
오크 전사 〈케미세레(khemeesele, 큰강철)〉의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에 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여름이었음에도 불어오는 바람은 실로 차가웠다. 눈앞 1m조차도 보기 힘든 눈보라가 그를 덮치고 있었다.
“으어어엉! 엄마아아아!”
산길에는 오크들의 피난민들이 가득했다. 시야 거리가 1m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아가 된 오크 어린이들의 곡소리가 퍼져나갔다. 자연스럽게 케미세레는 어린 오크를 팔뚝으로 감싸서 들어 올렸다.
“이놈! 콧물이 다 얼지 않았느냐! 나랑 같이 가자!”
그가 척척 걸음을 옮겼다. 푸른 나뭇잎은 눈에 뒤덮였고, 비옥한 산의 토양은 꽁꽁 얼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 어린이를 내려둘 수밖에 없었다. 산언덕의 나무가 무너지는 게 보여서였다.
‘적이다.’
“전사들이여! 모여라! 나 산언덕의 도끼, 케미세레가 여기 있다!!”
제법 이름있는 케미세레의 말에 오크 전사들 다섯이 모였다. 하나는 팔이 잘려져 있어서 약재를 치덕치덕 바르고, 붕대로 감고 있었다. 이 피난 무리에 주술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싸울 수 있겠나?”
“흐흐! 녹색 도끼께서 내 투쟁을 지켜보실 것이다. 그분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짝!
케미세레가 손뼉을 쳤다. 그리고 자신의 양손도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적의 숫자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방을 보기 힘든 눈보라가 펼쳐지고 있다. 적어도 난 30놈의 멱을 따고 녹색 도끼의 앞에 가서 자랑을 할 생각이다.”
“그럼 난 인간 50마리다.”
“킬킬킬.”
여기저기 다치고, 발가락은 동상으로 괴사하고 있음에도 오크 전사 여섯은 허세를 부렸다. 큰 강철이라고 이름 지어진 케미세레가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이 중에서 가장 체력이 남아있었다.
다른 전사들은 좌우로 퍼졌다. 힘을 합쳐서 싸우는 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8개의 문신이 꿈틀거렸다. 걸으면서 작게 유지되고 있던 몸의 열기가 샘물처럼 다시 한 번 솟아 나왔다.
“아얄타아아아!!!”
거친 눈보라의 소음 속에서 케미세레는 적을 기습할 수 있었다. 단번에 인간 병사의 투구가 날아갔다.
물컹, 물컹! 부르르!
“!!!”
인간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케미세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물컹거리는 푸른 슬라임이 인간의 목에서 튀어나와서 꿀렁거리고 있어서였다.
‘이게 대체...!’
푸화아아악!
제국 영혼 병사의 갑옷에서 액체로 된 화염이 쏟아져나와서 근접해있던 케미세레를 덮쳤다. 회피했지만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다.
“그아아아악!”
끔찍한 화상의 고통 속에서 케미세레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양손에 쥔 도끼를 휘둘렀다. 그 두 눈이 그 무엇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음에도 마지막 한숨을 내뱉기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헉!”
〈죽음을 경험하는 대예언〉을 겪은 케미세레가 깨어나자마자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부좌를 틀고 있던 양다리가 꼬였다.
“웨애애액!”
그대로 위액을 토해냈다. 전신이 저릿저릿했고, 탈력감이 실로 대단했다.
모든 오크 전사들은 그렇게 죽음을 경험하는 대예언을 겪었다. 하나같이 눈보라 속에서 적과 만났고, 들러붙은 불에 시각을 상실한 채 죽어갔다.
〈대전사(大戰士)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번성했던 황소굽이 도시는 적에게 점령당해서 사정없이 파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 구경은 거기까지다. 대전사.”
그를 부르는 오크 전사의 말에 규르소모스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몸을 돌렸다. 하찮은 인간들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를 받아줄까?”
“동쪽의 인간은 우리와 가장 친했고, 많은 도움을 줬다. 결코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규르소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크워어어어어!”
거대한 짐승 소리가 울려 퍼지며 구름에서 검은 강철로 만들어진 그리핀을 탄 용기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가히 1만은 넘어 보였다.
“전사들을 모아라! 녹색 도끼가 우리를 기다리신다!”
“아얄타아아!!!”
버팔로를 탄 규르소모스가 도끼를 번쩍 들어 올렸다. 피난민을 돕던 전사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흩어져있던 전사들을 규르소모스가 규합했다. 그 숫자는 고작 1천에 불과했는데, 〈눈보라 산맥 전투〉에서 9할이 넘는 오크 전사가 죽었기 때문이다.
‘어?’
규르소모스는 자신의 엄지 손가락이 사라져있는 걸 도끼에 힘을 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은 1천의 전사 또한 신체 훼손이 매우 심했는데, 눈보라의 동상 속에서 계속 싸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라! 속굽이 부락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아! 우리는 녹색 도끼의 아들이며, 가장 용맹한 종족이다! 구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들로 가득한 이 전쟁터야말로 우리들의 용맹함을 보여줄 때다!”
그가 주먹을 흔들어대었다.
“이 용맹함은 인간들에게 없는 것이니, 오늘의 이 전투는 내일의 오크들이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과 같다!”
와아아아아!
오크 전사들의 기세가 대단히 높아졌다. 규르소모스는 오크나무로 만든 활을 들어 올렸다. 1천의 화살은 단번에 강철로 이루어진 그리핀들에게 백발백중했지만 그 어떤 피해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는 있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마지막 숨결을 내뱉기까지! 용감히 싸우리라!!!”
모여있는 오크들에게 그대로 강철 그리핀 용기사들이 내려앉았다. 굉음이 일어났고, 흙먼지가 규르소모스를 덮쳤다.
“크으아아악!”
3m나 되는 강철 거체의 무게는 수 톤에 달했다. 규르소모스는 이를 버텨냈지만 다른 오크들은 짓눌린 채 용기사가 쥔 대형검에 목이 잘리고, 머리가 찍혀서 단 한 수에 죽어 나자빠졌다.
“아얄타아아!”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규르소모스가 홀로 난동을 부렸다. 발로 강철 그리핀의 부리를 돌려차고, 목 아래에서 그리핀의 앞가슴에 등을 대고, 양손 도끼를 휘둘러댔다.
피칠갑이 될 정도로 싸웠다. 부리에 쪼여서 뼈가 다 드러났고, 대장이 주르륵 흘러 덜렁거렸다. 그걸 왼손으로 받친 채 규르소모스가 기어코 무릎을 꿇었다.
규르소모스에게 영혼 용기사의 대형검이 내려쳐졌다. 그 대형검을 휘두르는 용기사의 등자에는 어린 오크들의 머리통이 줄줄이 엮어져서 마치 장식품처럼 걸려있었다.
“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
전신의 힘을 소모해서 이를 가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저 깊은 후회만이 남았다.
‘처음으로 대족장에 오른 도네투스가 닦아놓은 산길을 보고도 오르지 않는 우리 오크들의 개인주의가 이토록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댕겅!
대형검에 새겨진 마법진이 시퍼렇게 빛나며 그 어떤 힘으로도 단칼에 자르기 힘든 오크의 목을 한 번에 잘라냈다. 규르소모스의 시야가 흔들거리며 바닥에 팽개쳐졌다.
“으아아아아아!!! 내 부족! 나의 동족! 우리의 미래가아아!!!”
눈을 뜬 규르소모스는 이글거리는 분노 속에서 포효를 내질렀다.
녹색 도끼가 보여준 피의 대예언은 10만이 넘는 오크들의 눈에 그 날 각인되었고, 이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서 오크 사회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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