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0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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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쥐는 남부왕국의 북부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두툼 참모진〉을 만나는 일이었다.
배불뚝 리전은 최정예 핏빛쥐를 가장 먼저 운용한 전투적인 리전이었다. 당연히, 전투력은 흠잡을 데 없이 성공했고, 일정 궤도에 가장 먼저 올라섰다. 때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창설된 것이 〈두툼 참모진〉이었다.
지하의 습도를 잡기 위해서 대산 너머에 있는 고블린 지하도시에서 구매한 석탄들이 화덕 옆에 잔뜩 쌓여있었다. 돌로 된 화덕은 오랫동안 불이 지펴져서 달구어진 상태였기에 습도를 빠르게 날려버리고 있었다.
동굴의 벽면에는 돌을 깎아서 만든 책장과 책들이 잔뜩 있었고, 높은 사다리도 구석진 곳에 몇 개나 배치되어있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다른 종족들의 것을 가져온 것들이고, 이를 종합하여 쓴 핏빛쥐들의 책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장서관은 배불뚝 리전의 가장 심처에 있었고, 그 위치는 매우 은밀하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장서관을 지나자마자 확 공간이 확장되며,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원형 회의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긴 옷을 입고 있는 큰뿔 검은쥐 참모들이 잔뜩 있었는데, 대장쥐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일어나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중앙에 앉자마자 대장쥐가 주둥이를 쪼물딱거리며 말했다.
“북부인부터 시작하지.”
“예. 북부 가문들은 다시 한 번 부흥하기 위해서 오크들과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음? 엄청난 결단인데...오크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렸지?”
“북부인은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지하 연합’이 오크들의 마음을 이미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고블린으로 교역을 시작한 지하 연합의 상업과 경제력은 실로 오크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경제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생기는 압도적인 시너지와 성장력은 대전사와 주술사들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걸 보고도 다른 종족과 교역을 하지 않는 놈은 적어도 오크 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족장 도네투스〉의 죽음 이후에 오크들은 다시 부락 사회로 돌아갔기 때문에 종족 경쟁 체제에 돌입한 상태였다.
다른 부락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성장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특히나 지하 연합이 제공하는 잉여 식량은 으뜸 품목 중에 하나였다.
“황무지 전쟁으로 식량이 내년까지 겨우 버틸텐데?”
“저희 리전은 끄떡없습니다.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고, 개발한 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니, 조금 줄이도록 하는 게 좋겠다.”
“예. 그렇게 전파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장쥐는 그 말을 끝으로 고민에 빠졌다. 생각보다 북부인들의 적응력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북부는 영지로 분열되고, 가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북부 대영주가 생겼습니다.”
“북부 대영주?”
“예.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창조주로부터 버림 받은 게 북부인들 아닙니까? 그 여파는 생각보다 대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뺨 한 번 맞았다고 주저앉을 놈들이 아니었다. 북부인들의 민족성은 맞아도 일어서는 불패의 복서와 다름없었다. K.O 당했다고 그대로 입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질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작에 북부에서 도망쳤을 터였다.
“오크 대침공 당시 가장 피해가 작았던 킹슬레이 가문의 가주, 〈반 킹슬레이(Ban Kingslay) 공작〉은 남부 왕국으로부터 받은 작위 대신에 북부 대영주의 직함을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없던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군.”
“그덕에 오크 교역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북부의 평야를 지배한 오크들과 대화합의 장을 이루는 등, 동분서주하며 어떻게든 메디오 지방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장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북부는 다시 일어선 것이나 다름없겠어. 전쟁의 피해를 모두 수복한 건 아니겠지만, 활력이 엄청나겠는데.”
“맞습니다. 발품 파는 보부상부터 남부에서 도망쳐온 상인 그룹까지 북부는 지금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자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북부인들에게 해야 할 일은 없다. 계속 동태를 살피며 창조주께서 정보를 원하실 때 내어주면 그만이다.”
“예!”
어차피 북부. 상업을 통해서 바짝 성장세를 키우고 있지만, 기반을 다시 세우고, 회복하는 데에는 3년 내지는 10년이 걸릴 터였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남부의 도망자들이 동부가 아닌 북부도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오크 쪽의 동향도 다 파악하고 있겠지?”
“예. 하지만 별것 없습니다. 오크 대침공에서 대족장을 잃은 것들 아닙니까?”
1천 명의 참모진들이 웃음 소리를 내며 오크들을 얕잡아보았다. 오크의 강인한 종족성은 자연스럽게 핏빛쥐들에게 열등감을 줬고 이렇게 비틀린 형태로 내뱉어졌다.
쿵!
깜짝!
대장쥐가 큰 책상을 손으로 내려치자 순식간에 웃음소리가 싹 사라졌다.
“지하에 처박혀있더니, 없던 자긍심도 생겼더냐? 1:1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못 이기는 게 오크들이다. 이제 좀 세력이 커지니까 그들이 무섭지도 않은 것이냐? 방심하지 마라!”
“하, 하지만 위원장님. 그 대단했던 마신장 발라쿠조차도 죽인 것이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창조주가 아닙니까? 사실 더는 이런 것도 무의미한 것 아닙니까. 저희는 신을 가졌고 이제 그 신은 비상하여 태양을 가릴 만큼 대단해졌습니다.”
그 말에 대장쥐가 킬킬거리며 비웃었다.
“넓은 턱쥐. 이 젊은 참모야. 내가 준 보고서를 읽고 느낀 것은 고작 우리들의 신에 대한 무한한 찬양과 자긍심뿐인 것인가.”
“예. 이제는 개인의 영역이 사라지고, 사회 또한 필요가 없습니다. 유일신을 받들어 이 세계를 나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이놈을 추천한 놈이 누구였지? 일어나라!”
젊은 참모, 넓은 턱쥐와 그를 추천했던 닳은 귀가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보고서에는 내 모든 것을 적어두었다.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두툼 참모진에게 완벽하게 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걸 읽고 난 감상이 고작 우리들의 신에 대한 찬양과 필멸자가 가지는 절망감뿐인가?”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장쥐가 책상 위로 올라가 손을 번쩍 올렸다. 고개를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자신이 가려 뽑고, 참모들의 추천을 받아 새로 뽑은 이들로 가득했다.
“들어라! 우리 배불뚝 리전은 처음부터 강인했으며, 지금까지도 핏빛쥐 종족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적응하고 진화해야 한다!”
대장쥐의 앞니가 툭 튀어나왔고, 양쪽 볼이 호빵처럼 불룩해졌다. 화가 잔뜩 나면서 야생쥐처럼 양볼이 두툼해진 것이다. 그 분노의 눈초리는 넓은 턱쥐와 닳은 귀로 향했다.
“신이 대단하니까, 더는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그런 절망감과 그런 주저함이라면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 가장 첫 번째로 나의 참모가 되어서 지하 농장을 관리하고 개혁했던 큰눈의 글쥐를 보라! 머리털이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될 정도로 오로지 노력했다. 그의 남은 털은 죄다 백색으로 변해버렸다.”
큰눈의 글쥐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가 한 것은 그저 핏빛쥐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노력한 것이기 뿐이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서였다. 이를 대장쥐가 엄청난 업적처럼 여기니 털이 다 빠진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저 소심한 핏빛쥐도 발악을 할 줄 아는데, 가장 젊은 참모가 신에 대해 찬양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다니, 그를 두툼 참모진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게 너무나도 후회된다.”
양팔을 내린 대장쥐가 이어서 말했다.
“자신의 힘도 아니고, 마신의 힘을 사용해서 제대로 된 반신급의 싸움도 아니었다. 100합을 싸우지도 못하고 자멸해버린 발라쿠를 토벌했다. 거기에 그놈은 똑같은 체급에서는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속이 텅 빈 전사였다...”
대장쥐는 넓은 턱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전투가 제대로 된 반신급의 싸움이라고 보느냐?”
“아닙니다.”
“내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었을 터다. 발라쿠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마왕 같은 존재였지만, 동급의 상대에게는 삼초지적도 못 가는 기형적인 전력을 지닌 자라고.”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걸 기억하는데 왜 그런 소리를 했는가?”
“실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도 개인의 영역을 초월한 것뿐이다. 그분이 홀로 뿔뿔이 십만 명을 상대해야 한다면 하루 만에 다 죽일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하다! 언제나 한계는 명확하다! 시간은 유한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은 언제나 제한되어있다! 방심하지 마라! 이제 우리는 다른 이들을 낮게 볼 정도로 위에 올라섰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올려다봐야 한다!”
“예!”
“지금 당장 척후대를 보내라. 오크들의 동향을 살펴라, 그들을 결코 가볍게 보려고 하지 마라. 지금 그들은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
“......”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대장쥐가 실로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 북부인에 대해서는 이토록 잘 알면서, 그들보다 더 대단하고, 우월한 종족인 오크들에 대해서는 숙지조차도 하고 있지 않았다.
분명 우월한 종족을 뒷말로 씹으며 하찮게 대하여 스트레스를 풀었을 터였다.
‘두툼 참모진도 개편해야겠다. 오래 놔두니까, 서로 너무 엮어버렸어.’
그 날도 대장쥐는 천 명이나 되는 두툼 참모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알아서 뭉쳐서 활동하다가 때에 맞춰서 이 회의소에서 정보를 나누기로 했다.
그 누구도 그에 반대하지 못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오크들을 무시한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
“붐차카! 붐! 차붐! 차카붐!”
오크들이 너도나도 축제를 준비했다. 오늘은 지금 세대의 오크들에게 있어서 처음 있는 〈붐차카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붐차카의 뜻은 〈터질 듯한 허벅지를 위한〉이라는 뜻이었다.
보통은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오크와 경쟁했던 과거에 존재했던 축제였다. 잉여 식량이 실로 대단히 많았던 시절에는 오크 또한 〈뚱돼지 오크〉가 될 수 있었다.
숨만 쉬어도 지방이 근육으로 변하는 게 오크였다.
그들이 뚱돼지가 되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붐차카 축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산맥에서 뛰어다니는 오크가 어떻게 뚱돼지가 된단 말인가? 허벅지를 비교할 수도 키울 수도 없었다.
‘그것도 이제는 과거지.’
북부의 평야를 획득한 오크들은 드디어 붐차카 축제를 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오크들의 신인 〈녹색 도끼〉를 위한 축제라기보다는 오크들을 위한 축제였다.
원 없이 먹고 마시는 축제이기도 했고, 가장 뚱뚱한 오크를 그 축제의 주인공으로 삼고, 거대한 토템을 세워서 기념하게 된다. 이름까지 새겨지기 때문에 축제가 일어나기 전까지 모든 오크가 바짝 식량을 구하고 먹기 바빴다.
진작에 포기한 오크들은 붐차카 노래를 부르며 녹색 도끼를 찬양하는 춤을 췄다.
“왔다! 고블린 흑주다!”
고블린 상단이 도착하자마자 오크들이 너도나도 몰려왔다. 오크 종족에게 가장 큰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고블린 흑주였다. 흑색의 술은 강한 도수와 동시에 포도의 건더기가 있었으며 식초의 맛과 달기도 단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 술이었다.
칼로리도 대단히 높으면서 갈증도 해결할 수 있어서 최고의 인기 주류였다. 여기에 버섯이나 다양한 약재를 담그는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가능해서 술을 수집하고 재우기 위해서 구하는 오크들도 많았다.
“1병에 은엄지 하나요! 열병에 금엄지 하나요!”
고블린 상인들은 자신들의 엄지만 한 은과 금을 받아 챙겼다. 같이 따라온 고블린 주술사들은 조각한 토템의 윗부분을 움푹하게 그릇처럼 만들어서 얼음을 생성해서 같이 팔기도 했다.
순식간에 가져온 것들은 모두 팔렸고, 지하 연합의 고블린들이 땀을 닦았다.
“엄청난 열기야.”
“역시 동쪽의 속굽이 부락인데. 이제는 부락이라고도 부를 수가 없겠어. 하나의 국가다.”
평야에 자리 잡은 〈황소굽이 도시〉만해도 오크 인구수가 5만은 넘었다. 지하 연합부터 인간 상단까지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8만~13만의 인구가 도시에 있는 셈이었다. 오크의 종족 값을 생각했을 때 이미 속굽이 국가나 다름없었다.
“정보를 획득하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모이자고.”
지하 연합은 당연히 핏빛쥐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기에 이 고블린들 또한 정보꾼들이었다. 고블린들은 소비 생활을 하며 오크 장사치들에게서 정보를 빠르게 획득했다.
서로 안면을 익혔기 때문에 거침없었다.
숙박하고 있는 곳의 10인실에 모인 고블린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붐차카 축제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니.”
두려움이 절로 일어났다. 1만 명의 오크 주술사들이 녹색 도끼에게 주력을 바치는 것이 붐차카 축제의 마무리였다. 그 여파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주술사들의 예언만 해도 대단한데...”
고블린 정보꾼이 속삭이며 말했다.
오크들의 신 녹색 도끼는 터프해서 오크가 투쟁 끝에 죽고 나서 그 영혼만 가져가는 상남자다운 신이지만, 오크가 오직 업(業)의 수급처로 사용되며 학살당할 때 스스로 빙의하여 강림할 정도로 오크를 사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크 주술사들은 자신의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예언을 보는 게 가능했다.
사투 끝에 죽은 오크를 강인하게 잡아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며, 덧없이 죽어가는 오크들을 보호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바로 녹색 도끼였다.
신의 보정을 받는 예언인데 1만 명의 오크 주술사들이 녹색 도끼에게 주력과 기도를 바친다면...
“오크 종족의 사활을 건 대예언이 시작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절로 두려움이 일어났다. 엄청난 변수일게 뻔했지만,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다. 대장쥐는 멀리 있었고, 축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보름 동안 오크들은 붐차카 춤과 노래를 부르며 녹색 도끼를 기릴 것이고, 그 이로운 기운은 계속 쌓여나갈 것이고 이는 축제의 마지막에 만 명의 주술사가 화려하게 사용할 터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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