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99화 (698/1,239)

강철의 전사 69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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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안은 곧바로 아라온과 만나지는 못했다. 아라온이 동부왕의 사자를 대우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전으로 중앙 정치에 임하고 있는 관리들을 모으고, 자신 또한 치장했다.

남부왕으로서 위엄을 보여야 했다. 아직 남부 왕국의 플래티넘 왕가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고양이들끼리도 서로 덩치가 크게 보이려고 털을 바짝바짝 세우는 데 공을 들이는데 인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음.”

세리안은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새콤한 맛은 강하지 않았고, 끝에는 단맛이 혀를 차분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똑똑똑.

“들어와라.”

그녀가 거침없이 반말을 사용했다. 드낙의 사자가 지니는 위상을 톡톡히 남부에 보여주며 그들에게 시대가 변했음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대전으로 모시려고 찾아왔습니다. 호위 기사 게리아라고 합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턱짓했다. 게리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몸을 돌려 앞장섰다.

‘인내심이 좀 있는 기사를 보냈네.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투구를 옆구리에 낀 세리안이 턱을 매만졌다.

철컥!

복도에 나열해있는 근위병 10명이 딱딱 맞춰서 움직이며 전후방으로 움직여서 그녀를 호위했다. 쥐고 있는 할버드의 도끼날은 벽 쪽으로 향하도록 돌려놓았다.

“동부왕, 드낙 불파겐의 사자. 세리안 불파겐이오!”

대전의 높은 문이 열렸고, 대기하고 있던 성량이 좋은 자가 배에 힘을 주며 턱을 살짝 위로 올리며 두성을 사용해서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모든 이들이 세리안을 위해서 일어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부왕의 사자를 위해서 예의를 차렸다. 그 모습에 세리안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작정하고 대비했나...’

확실하게 깽판을 칠 생각으로 왔지만, 역시 백금 왕가다웠다. 시국이 진정되자마자 정치력부터 회복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리 신하들에게 언질을 줘놓은 것이 분명했다. 물론 언질을 줘도 제어가 안 되는 관리도 분명 있을 터였다.

세리안이 주욱 살폈다. 예전의 중앙 정치와는 달랐다. 10명 내외의 중앙 대신으로 이루어진 중앙 정치 체계를 지닌 것이 남부왕국이었는데, 지금은 2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

서로 잠깐 침묵이 나돌자 세리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하는가? 동부왕의 사자가 왔는데, 신하되는 남부왕은 상석에서 내려와서 예를 차리지 않고?”

“무, 무슨 소리냐! 동부의 잡것들이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다니!”

“으음...”

웅성웅성!

세리안의 발언에 단박에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 반응들은 왼쪽과 오른쪽이 전혀 달랐다. 한쪽은 머리에 새똥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고, 다른 쪽은 쉽게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동부 사정에 밝은 자인가 보군.’

드낙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똑같이 불구덩이 속으로 달린다면, 진짜 용암으로 들어가는 게 드낙의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만, 경쟁을 하거나, 서로 손뼉을 부딪치다 보면 ‘어? 열받네?’가 되어버리는 게 드낙이었고, 끝에 가서는 감성적으로 일이 마무리 되는 게 다반사였다.

그의 사자를 건드린다면 결코 좋은 꼴을 볼 수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너무 신중한데.’

이곳은 왕이 있는 자리였다. 자신의 신하가 자신이 모욕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는다? 감정적으로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성적인 왕이라도 그 앙금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만, 조용히 좀 하라!”

“남부 왕국 전체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를 어찌 참습니까?”

아라온이 그 말에도 관리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세리안을 보며 말했다.

“동부왕의 사자라고 해도 너무 건방지다. 동부왕은 내가 남부왕에 오르는 것을 도와줬지만, 난 동부왕의 밑에 있는 게 아니다.”

“하하하하!”

그 말에 세리안이 쾌활하게 웃었다.

“고블린이 자기 살 땅을 인간에게 약속받고, 다른 고블린들을 모아서 대장이 되고 보니 딴 마음이 드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동부왕이 없었다면 〈산그림자 성(Mountain Shadow Castle)〉에서 어찌 되었을 것 같은가.”

“지금 전쟁을 다시 하자는 건가! 대체 뭘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냐!”

아라온이 부들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역린을 세리안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악마 준동 당시 백금 왕가의 혈통은 하나같이 오욕을 뒤집어썼다. 우세를 점했던 폼포스 2왕자가 드낙의 변심 하나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드낙의 힘을 이용해서 폼포스 2왕자파를 죽였지만, 그 명예는 곤두박질쳤다. 그가 남부왕에 즉위하자마자 2번의 반란이 있었기에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동부왕으로부터 시작된 권력이니, 동부왕의 신하임을 인정하고 그의 사자에게 예를 갖추는 것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왕이 어찌 왕의 사자에게 예를 갖추느냐?”

“똑같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만 같다고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내 이를 동부왕께 전해야겠다. 그것을 원하는 것인가?”

“으!”

아라온 남부왕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끔찍한 두통이 그를 덮쳤다. 그가 선별한 22명의 대신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너도나도 의견을 냈다.

“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왕이시여!”

“남부인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민족의 결단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반대편의 대신들은 다르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했다. 여기서 세리안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작 킨.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이름에 세리안이 그제야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남부왕국의 정치 형국에 대해서는 모른 채로 그냥 힘으로 찍어누르려고 왔기에 무지했던 것을 알아차렸다.

‘변경백 칸의 일족이로군.’

변경백 칸이 허망하게 죽고, 드낙은 그들 일족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부에 이미 아라온을 세워두었는데, 칸의 일족까지 세워두기에는 흘러넘치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들 영토는 자유영토가 되었기도 했다.

‘견제하는 구도인가. 나쁘지 않다.’

힘있는 불파겐이라면 절대하지 않을 일이었다. 중앙 정치 세력을 둘로 만든 듯했다. 하나는 신흥이며, 밖에서 유입된 칸의 혈족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이들을 뽑아서 남부 왕국의 재건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반대편은 옛날 충성파를 유지한다.

힘이 없는 가문의 생존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력이 대체 가능해지면서 무력이 없는 가문이 왕가가 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현실을 보면서 권위를 잃지 마십시오.”

칸 후작은 그저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진리가 있었다. 이미 드낙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득을 본 것이 아라온 남부왕이다. 그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동시에 아라온은 남부왕이었다. 그에 맞는 위엄과 권위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왕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답변을 똑같이 들은 세리안은 크게 아쉬워했다.

‘저런 깊은 생각을 지닌 이를 얻다니, 이것은 큰 실수다.’

특히나 조용하면서도 파동을 일으키는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자여서 더욱 아쉬웠다. 깨달은 아라온이 말했다.

“동부왕에게 입은 은혜가 많다. 그가 원하는 일이 있다면, 응당 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똑같은 왕이라도 다르지만, 나 또한 왕이니, 사자에게 예를 차리는 것은 남부 왕국은 왕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예를 차릴 것은 동부왕이지, 그의 권위를 빌린 그대가 아니다.”

세리안은 즉답했다.

“실로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중앙대신들은 왜 나에게 예를 차리지 않았나?”

후작 킨이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실로 변화무쌍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앳되어 보이는 것을 보니, 20살도 안 되어 보였다.

“킨 후작이라고 합니다. 마신장 토벌을 위해 서부로 향한 동부왕의 뜻을 알리려고 여기까지 온 세리안 사자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후작이 스타트를 끊자마자 곳곳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왕 대신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다. 거리낌이 없었다. 세리안은 동부가 남부보다 윗줄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는 피를 뿌리는 걸 싫어하니까.’

상황에 따라서 살생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확실하게 딱딱 다른 것이 드낙이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동부왕은 토벌에 성공했는가?”

가장 궁금한 것을 남부왕이 물었다. 세리안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 산맥까지가서 놈을 잡았다. 그는 죽어서 피의 호수를 남길 정도로 강대한 존재였다.”

“이는 세계적으로 큰 위업이다. 만인이 이를 알도록 조치하겠다. 동부왕이 돌아가는 길, 자신의 위업을 입에 담으며 그를 칭송하는 자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세리안은 그런 아첨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실로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남부 왕국의 서부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마신장의 영향력이 남아있다.”

그 말을 잠자코 듣던 대신 중 하나가 물었다.

“동부왕의 사자여. 왜 아직도 남부왕께 무례를 저지르는 것인가? 저분은 왕이시다. 그에 맞춰서 예를 지켜라.”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의 왕은 오직 동부왕 뿐이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남부왕께서는 동부왕을 추켜세워주었다! 거기에 왕도 아닌 자가 왕에게 무례를 저지르다니? 이게 동부왕이 원하는 태도인가!”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세리안은 남부의 족속들에게 굴복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불파겐의 백금패를 들어 올렸다.

“착각하지마라! 내 이름은 세리안 불파겐이다! 어중이떠중이 사자가 아니다.”

“이것까지 참을 수는 없습니다! 왕이시여!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가서 저 사자를 죽이고, 제발로 동부왕을 찾아가서 죽겠습니다!”

단번에 대전이 다시 한 번 시끄러워졌다. 죽음으로 건드릴 수 없는 순직자가 되어서 남부왕의 충성을 얻어서 혼란스러운 정치 형국에서 한 자리를 단단하게 굳혀서 앉을 자들로 넘쳐났다.

젊은 패기가 있는 칸의 혈족이 특히나 열성적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그저 쇼에 지나지 않았다. 충성심 경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하라! 더 이상의 싸움은 서로 의미가 없다. 계속 말하라, 동부왕의 사자.”

아라온이 토벌이 끝난 드낙의 귀환을 두려워하여 말했다. 세리안이 고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참에 아예 남부와 동부의 위아래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남부왕이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하는 모습이 절로 보였고, 중앙 대신 22명의 눈에 담겼다. 그만큼 동부왕이 가지는 무력을 한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만족할까.’

세리안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충분히 격의 차이를 보여주고 나서야 세리안은 생산적인 일에 노력했다. 이 정도로 족한 것은 드낙의 성향을 알아서였다.

‘원래라면 시작부터 몇 놈 죽이고 시작하고 싶지만. 나도 성격이 많이 죽었구나.’

드낙이 설정한 현재 불파겐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걸로 앞으로 남부는 자기 주제를 알고 더 조심하겠지.’

세리안은 드낙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있었다. 그가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지녔을 때부터 생긴 마음이었다.

“서부에는 아직도 검은 돔이라는 미궁이 존재한다. 그곳을 치기 위해서 동부왕은 군대를 원하신다. 이는 남부왕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일 터다.”

꿀꺽.

지켜보던 중앙 대신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들이 많았다. 인간들이 한 번 쫓겼기 때문에 다시 수복한다면, 그냥 새롭게 그 땅주인을 뽑을 터였다.

22명의 중앙 대신 가문들의 새로운 힘이나 다름없었다. 플래티넘 왕가는 외척의 싹을 잘랐기 때문에 혈족이라고해도 아라온과 길게이 뿐이었고, 아라온은 이제 겨우 1명의 딸을 가졌을 뿐이었다.

‘군침 돋을 수밖에 없지.’

“동부왕이 나에게 서부를 준다고 그렇게 말했던가?”

“그렇다. 내 확실히 들었다. 또한 용병들을 사용한 대금이 있지 않은가? 그걸 쉽게 갚을 방법이 있는데 굳이 황금 1천 궤를 내려서 갚을 리 만무하지.”

그 말에 아라온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멀고, 마수 때문에 박살 난 땅이 서부였다. 쥐어봤자 멀어서 관리도 힘들고 차라리 수만 명의 용병을 고용한 대금과 퉁치는게 현명했다.

‘나쁘지 않다.’

전에 있던 기싸움이 싹 사라졌다. 순식간에 대전에서 큰 축제가 벌어졌다.

전쟁은 언제나 인류의 힘을 약화시켰지만 반대로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는 강력한 기회나 다름없었다.

‘동부왕이 참전하니, 승전은 이미 떼놓은 당상이다!’

당연히 남부 왕국은 전원 참전을 찬성했다. 밑에 사람? 시민? 오로지 전쟁에서 얻을 영토와 고통받는 이들이 내놓을 집과 농지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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