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9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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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안의 제안에 드낙이 큰 흥미를 느꼈다. 동부에 데려갈 드워프 가문의 숫자는 한정되어있었고, 그들이 생산하는 물품의 양도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수준 또한 높아서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는 것도 있었다.
‘인간 전체의 수준을 높이지는 못하지.’
그러려면 반백 년은 걸릴 터였다. 동부군 10만에 제대로 된 보급을 하는 데에만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물론 이 또한 현재하는 예상일 뿐이었다. 1년마다 동부의 성장세는 무시무시했고, 몰락한 남부에서 넘어오는 인구수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남부의 기득권층은 길게이를 통해서 동부에서 영향력을 손에 쥐기 시작하면서 남부의 인구를 빠르게 빼내 오고 있는 상태였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에는 현재 동부는 기득권층이 합심해서 피라미드형 세습 내지는 권력 구도를 굳히는 데 노력하고 있었기에 게제라스 말고는 시민들에게서 잠깐 관심이 멀어져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하프 드워프들이 열병기를 지급한다면, 단기간 내에 좋은 무기를 획득할 수 있다.’
산 가득 배치된 대포! 그것만으로도 능히 〈제국전쟁〉에서 효력을 발휘할 터였다. 갈 길은 멀지만 계속해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하프 드워프 이주 정책은 실로 미래를 환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였다.
“당장 하자.”
드낙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수원이 존재하는 거점마다 최소 3천에서 최대 1만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하프 드워프들이었다. 그중에서 10%만 떼와도 수만 명을 이주시킬 수 있을 터였다.
‘동부의 식량 사정이 지금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른다.’
만약에 내년 가을까지 감당이 안 되면 대산 너머의 야수들이나 몬스터를 사냥해서 식량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잉여 식량이 많아야지만 지성 종족은 강성해질 수 있다.’
진리 중 진리였다.
“계획을 세워야지. 데려갈 하프 드워프들의 수준 또한 중요해.”
“그건 그렇지.”
들떠있는 드낙을 세리안이 잡았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안 가려고 할 거야.”
병신, 개병신이 아닌 이상 기득권층이 자신의 영향력이 뿌리내린 이 땅에서 다른 땅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유동 가능한 자원을 하고 있지 않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다.
“카리스마가 상당하고, 인망이 두터우면서도 기득권층에게서는 욕먹는 하프 드워프를 찾아야 해. 그가 지도자가 되어서 이주 하프 드워프들을 관리하는 게 가장 베스트야.”
종족이 다르면 자연스럽게 차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탕이 달라서 자신도 모르게 무례를 저지를 수 있었고, 엉뚱한 곳에서 사이가 틀어질 공산도 컸다. 동시에 다른 종족에게 지배당하고 관리당하는 것만큼 불만이 쌓이는 일도 없었다.
‘대량 이주도 아무렇게나 할 수 없구나.’
기술자들, 화약 제조자들을 이주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불만도 낮아야 하고, 그들이 황무지의 삶보다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노동으로 혹사시킨다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살기 팍팍하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지.’
마법과 기사가 살아있는 시대에도 이는 똑같았다. 결과는 안 좋게 끝나더라도 결국, 사람의 분노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놈을 어떻게 찾지...”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지배당하는걸 느끼지 못하게 최소화를 해야겠지.”
세리안은 당연하게 그들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게 당연함을 굳혔다. 지도자가 없으니,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았는데, 실로 간악한 짓거리였다. 새로운 집단이 생기면 언제나 새로운 지도자가 생기는 법이었지만, 이를 드낙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프 드워프들은 강한 종족이다.’
마수, 지하 연합, 드워프 때문에 가려졌을 뿐이다. 남부 왕국의 파워 게임을 종식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게 동부로 흘러들어오면? 동부의 판도는 다시 한 번 더 개판이 될 것이 명백했다.
‘안정되기도 전에 또 폭풍이라니.’
거기에 다른 종족이. 감히...
인간의 자존심이 우뚝 섰다. 다른 이들과 경합하기 전에 세리안은 인간이었다. 드워프는 경쟁할 맛도 안 날 정도로 차이가 났고, 드워프들이 애초에 둔해서 싸울 맛도 안 났다면 하프 드워프는 달랐다.
호승심을 불러일으키기 부족함이 없는 상대였다.
‘동부는 언제 파탄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 세상의 권력 구도, 사회 변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상태였다. 왕이나 귀족이 흥하고 망해도 그놈이 그놈이 되는 것뿐이었다. 동부는 상당히 예외적인 행보를 걷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종족이 끼어들면 큰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대산 너머를 주면 되겠네. 드워프랑 묶어서 자치권을 형성하게 하면 굳이 지도자가 없어도 될 듯하다.”
세리안이 움찔했다. 하지만 다른 소리를 하기에는 정론 중의 정론이었다. 기존 영토와도 부딪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광산에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지만, 대산 너머의 영토를 생각한다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하프 드워프들의 수준에 따라서 결정을 해봐야겠는데.”
드낙은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 핏빛쥐 정보원을 불렀다. 조련술의 업과 반마의 인식범위의 상승 덕분에 업을 다루는 것이 가능한 지금, 드낙에게 있어서 핏빛쥐는 또 하나의 신체부위나 다름없었다.
육체가 소모되며 초월의 힘이 발생하며 자연스럽게 검은 불꽃이 드낙의 몸 내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근처에 있는 핏빛쥐에게 흘러들어가 사념파를 보냈다.
‘와라. 정보가 필요하다.’
이곳은 황무지였지만 지하에 있는 수원을 중심으로 거점을 이루고 있는 하프 드워프들과 공생하고 있는 핏빛쥐 분대가 존재했다.
“뜨낙!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잘 와주었다. 내가 궁금한 것이 있다.”
드낙은 하프 드워프들의 계층별 수준을 물었다. 핏빛쥐 정보원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최하층민은 가장 혹사당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새들의 분뇨를 관리할 줄 알고, 가장 고된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대중없이 불려 나가서 새벽부터 잠이 들기까지 일만 하는 자들입니다.”
드낙은 하프 드워프 사회가 분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한 마디로 최하층민 하나가 화약을 제조하는 재료를 제작할 수 있는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하층민들은 위험한 일에 동원됩니다. 무기를 쥐고, 곳곳을 순찰하며 싸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장총인 〈검은 불사조(Black Phoenix)〉를 다루는데 탁월한 솜씨를 지녔습니다.”
하층민들은 목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이들 또한 삶은 팍팍했다. 모든 자원이 기득권 사회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중산층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했다.
“중산층은 대장장이들입니다. 그들은 총과 대포 그리고 화약을 완성하는 자들입니다. 가장 대우받지만, 항상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기득권층이 놀고먹기 때문입니다.”
‘호리병 형식의 사회 구조다.’
가장 후려쳐서 넘어뜨리기 좋은 구조였다.
‘식량을 생산하는 노동에 종사하는 최하층민들은 필요가 없다.’
화약을 제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하층민들이 드낙의 대상층이었다. 동시에 총을 다룰 수 있는 하층민도 표적이 될 만했다. 무엇보다 대장장이들의 사회 불만을 살살 긁어주는 게 중요해 보였다.
단번에 계획이 세워졌다. 음흉함과 간사함이면 드낙도 보통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대장장이들부터 포섭해야겠어.”
“기득권층은 가만히 안 있을걸.”
“한 번에 물살처럼 휘몰아치기에는 거점들이 너무 흩어져 있다.”
“검은 돔 때문이라도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데.”
드낙이 고민했다. 최대한 그들을 모두 업어가고 싶어서였는데, 이는 곧 동부의 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반면 세리안은 아직도 존재하는 장애물을 언급했다.
“흠. 드워프들에게 맡겨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마음이 기울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드낙에게 있었다.
‘하나는 하프 드워프들을 이주하는데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일 처리가 빨라질 터였다. 하지만 단점은 그만큼 드낙의 시간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검은 돔을 치기 위해서 남부 왕국의 병력을 또 빌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드워프들도 도와준다고 했지만, 전쟁에서 또 드워프들의 숫자를 줄일 수는 없는 법이지.’
죽기도 힘들었지만, 탄생 자체가 어려운 것이 드워프들이었다. 깊은 지하에서 결정의 형태로 성장하다가 이내 자아를 깨달아 드워프가 되기 때문이다. 광석 종족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드낙이 굳이 남부 왕국의 병력을 동원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인간은 지성 종족 중에서도 인구 회복 속도가 빠른 축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검은 돔부터 빨리 처리하는 것.’
혹시나 모를 역공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이건 드낙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전략적, 전술적 역량이 충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
“시간으로 따지면 이미 역공을 준비하고도 남지...”
세리안은 거짓을 입에 논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충분한 시간이 그들에게 쥐어졌으니까. 검은 보급로의 파괴가 완전히 이루어지기도 전에 후퇴를 감행했어. 이미 플랜 B를 구축하고 있을 거야.”
“지금 가도 늦었다는 거네.”
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늦게 가면 늦게 갈수록 미궁은 더 강해져. 무조건 늦게 가는 것도 능사가 아니야.”
드낙은 고민 끝에 결국 큰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하프 드워프들은 드워프와는 다르게 재료를 직접 생산해서 화약을 제조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적정 수준까지 규모를 높이면 드워프들의 화약 생산량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전력의 압도적 증가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프 드워프들부터 정리한다. 대신 세리안. 너가 일왕자에게 가서 병력을 한 번 더 빌려라. 용병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총력전이다. 검은 돔은 남부에게도 해가 되니까 도와줄 거다.”
“알았어.”
세리안이 몸을 돌렸다. 드낙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서부에 관한 이야기는 마음껏 해. 어차피 내가 결정하니까.”
“나보고 욕먹으라는 거야? 뭘 해줄 건데?”
“뭘 원하는데?”
“영토.”
그녀의 즉답을 들은 드낙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있는 보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가를 주지 않으면 사람을 부릴 수 없다. 월급 없이 일하는 직장인은 개호구일 뿐이었으며, 돈을 받지 않으면 꿈이라도 먹고 사는 게 인간이었다.
“좋아. 나중에 논의해보자고. 영토는 반드시 줄게.”
“좋았어.”
드낙의 거침없는 말에 세리안이 드낙을 껴안았다. 드낙의 손이 자연스럽게 세리안의 허리를 감쌌다.
철컹.
철소리가 절로 났다. 드워프의 마왕 외골격 갑옷을 입고 있어서였다. 드낙이 웃음을 빵 터트렸다.
*
드낙은 가장 먼저 지하 계곡의 거점에 살고 있었던 대장장이들과 만남을 몰래 가졌다.
그림자로 변해서 툭 튀어나오는 드낙을 간파할 수 있는 하프 드워프는 사냥과 전투를 통해서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자들뿐이었고, 평생 철을 만지고, 철소리를 크게 들으며 사는 대장장이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다.
툭툭.
“일어나라. 브랜딧(Brandt).”
드낙의 악마 기질 때문에 잠결에 느껴지는 섬뜩함을 느낀 브랜딧이 앓는 소리를 내다가 ‘헉!’ 거리며 일어났다.
“누, 누구시오?”
어둠 속이었기에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드낙이 주문을 읊어서 별빛을 주변에 뿌리며 말했다.
“동부왕이다.”
“여, 여긴 어쩐 일로...”
절로 브랜딧이 위축되었다. 그만큼 드낙의 명성은 하프 드워프들 사이에서는 대단했다. ‘지하 연합’부터 ‘거대화’에 ‘광역 마법’까지 하나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혹시 꿀과 젖이 흐르는 땅, 동부로 갈 생각이 없나?”
“남부 왕국의 동부 말씀이십니까?”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바로 폭탄을 펑펑 터트렸다.
“드워프와 같은 구역에 따로 나뉘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세금은 1할에 불과할 것이고, 이 또한 사정 봐서 달라질 수 있다. 자치권도 내어준다. 지도자는 하프 드워프들의 손에 의해서 선출될 것이다.”
“예? 저, 정말 그런 조건입니까?”
믿을 수 없는 표정에 드낙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주었다.
“화약과 열병기. 그것만 내 손에 쥐여주면 된다. 노동 시간도 8시간이면 끝이다. 지금처럼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안 해도 된다.”
“으음...”
너무 좋은 조건이라서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브랜딧 대장장이에게 드낙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많은 부를 쌓아놓은 기득권층은 절대로 이주를 하려고 하지 않겠지...그럼 자연스럽게 누가 지도자가 될 공산이 클까...”
중산층, 대장장이인 브랜딧의 고개가 번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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