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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93화 (692/1,239)

강철의 전사 69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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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을 아낄 수 있는 상황이 분명 있었지만, 드낙은 고려조차도 하지 않고 떠나가고 나서야 그 배에 타지 않는걸 조금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제는 지나간 일을 훌훌 털고,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성숙해있었다.

검게 변질된 드낙의 피부가 서서히 인간의 색으로 돌아왔다. 악마의 날개 또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뼈 같은 관절은 너무 흉측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에 맞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힘〉을 사용해야지만 그렇게 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힘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드낙은 더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성 요소를 몸에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악마와 인간은 엄연히 다른 종족이다.’

위든 아래든 소용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더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만, 악마 게페락스가 획득했던 변모의 힘을 통해서 인간인 척을 할 수 있었다.

‘소모되는 건 당연히 나의 피다.’

변모의 힘은 악마의 힘이었다. 당연히, 피가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마가 되면서 확실하게 피의 힘이 강해졌다.’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가로막혀있던 피의 수준이 끝도 없이 치솟았다. 그 덕에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피를 소모해도 걱정이 없었다. 물론 장기간 계속 유지한다면 결국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장기간 유지한다면 마법이나 주술로 피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효율은 크게 낮다.’

예전이라면 한 방울을 만드는 데 소모되는 마력이 1이라고 치면 이제는 50 혹은 100 정도가 필요했다.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없는 건 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그렇게 감각적으로 가늠할 뿐이었다.

“마시지 말고, 묻히지도 마라!”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마신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몇몇 핏빛쥐가 피의 호수에 관심이 가는 걸 본 드낙이 외쳤다. 발라쿠의 호수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였다. 평범한 오우거도 아닌 발라쿠의 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마셔도 미쳐버릴 것이다.

핏빛쥐들이 고개를 숙이며 호수에서 멀어졌다.

그런 드낙을 바라보는 세리안의 눈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강함을 보라. 지금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다.’

악마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보였지만 금방 인간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거부감을 크게 내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면, 세리안은 드낙을 인간으로 여길 것이다.

동시에 그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호승심도 사라졌다. 25m의 마왕과 동격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상대의 강함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게 그녀였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비틀린 애착에 가까웠다.

‘저 사람이 끝에 도달한 모습은 어떨까.’

세리안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쫓았던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드낙을 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똑같은 천재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지만 결국 세파리아스는 되지 못한 세리안에게는 전투력에 대한 망가진 갈망이 존재했다.

당연히 인간이라는 종족이 만들어낸 변수 중 최고값을 지니고 태어난 세파리아스와 드낙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하지만 세리안에게는 똑같이 여겨졌다.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종족적 차이는 그녀에게는 무의미했다. 특히나 드낙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거부감이 낮아졌다.

“굉장하던데. 마왕과 대등하게 싸우다니.”

죽어서 호수를 남긴 발라쿠였다. 그 위업은 상상조차도 하기 힘들 정도로 드높았다. 세리안은 걱정해주기보다는 그 위업을 추켜올렸다. 드낙은 괜히 미소가 입에 걸렸다.

“뜨낙! 뜨낙! 뜨낙!”

쿵! 쿵! 쿵!

잡담을 나눌 사이도 없이 핏빛쥐들이 드낙을 찬양했다. 그의 이름을 드높였고, 무기로 땅을 찍었다. 드워프들 또한 빠르게 드낙에게 다가왔다. 붉은 마수는 마신장 발라쿠가 죽자마자 혼비백산해서 사방팔방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야생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씨를 말려야 하지만, 그전에 검은 돔도 토벌해야 한다.’

드낙에게는 일의 우선순위가 확실하게 머릿속에 잡혀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마신이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걷잡을 수 없다.’

마신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마신장 오우거는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 마신장이 힘을 모아서 만든 미궁에 자리 잡은 마신의 왼팔인 미노타우르스는 오죽하겠는가?

‘복수의 마수 군단이 이 차원계를 습격할지도 모르지.’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만큼 발라쿠가 보여준 모습은 드낙을 큰 위기감을 느끼게 하였다. 놈은 손쉽게 죽었지만, 그가 보여준 행적은 무시무시했다. 만약 드낙이 반마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피해를 봤을 터였다.

“대단합니다! 그 마왕을 잡다니!”

“하늘을 뒤덮은 불길을 보셨습니까?”

“하지만 악마의 모습은 좀...”

칭찬하고 잔뜩 상기한 드워프도 있는가 하면, 드낙이 보여준 악마의 형상을 경계하는 드워프도 있었다. 물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있어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내면보다 중요한 것이 외면이었다. 철학이 꽃피웠고, 누구보다 정신을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조차도 외모가 좋지 않으면 큰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저 잘생겼다는 이유로 대단한 철학자처럼 활동한 자들도 많았다.

그만큼 외면은 매우 중요했다.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에 악마의 모습에 대해서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였지만 드낙은 그러지 않았다.

“모두 들어주시오! 수많은 이들이 나의 모습을 봤을터요. 하지만 그건 악마 게페락스를 토벌하고 그 업이 나에게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소.”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오?”

드워프의 말에 드낙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인반마일 뿐이오. 악마처럼 다른 차원계를 침공하기보다는 살림 잘 꾸려서 낚시나 하는 삶을 추구할 뿐이오.”

드워프들이 작게 웃었다. 드낙의 이빨은 실로 탁월했다. 자신이 미래에 위협이 되지 않고 인간의 삶을 산다고 말했다. 몸은 달라졌고 종족도 변했지만 그 정신과 마음만은 여전함을 어필했다.

‘악마와 반마반인은 다르지. 반마반인과 반인반마도 또 다르다.’

어감의 차이는 마음을 변화시킨다.

드낙은 그렇게 자신이 악마가 아님을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 그 누구도 반론하지 못했는데, 그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고 마왕 발라쿠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전후 처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다리가 날아간 드워프를 드낙이 마법과 주술을 통해서 치료했다. 핏빛쥐들의 피해도 컸다. 그들 또한 치료하는 데 힘을 섰다. 자신의 피를 소모해서라도 마력과 주력을 생성시켰다.

5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전투의 여파를 진정시키는 데 허비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자 치료에 있었다. 핏빛쥐 리전은 빠르게 황무지를 벗어나는 데 집중했는데, 식량의 소비를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검은 보급로가 남아있었다면 오래 머물 수 있었겠지만...’

이것 또한 아쉬움이었다. 이번 전투를 위해서 소모한 자원은 적어도 내후년까지는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식량 생산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그간 모았던 잉여 식량이 전부 바닥난 수준이었다.

어디 공격하라고 하면 뚝딱 공격가는 전략 게임이 아니었다. 또 승리하고 난 뒤가 더 문제인 것이 전쟁이었다.

뿔뿔히 흩어지는 핏빛쥐 리전과는 다르게 드워프들은 드낙과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 논의의 시작은 서로가 겪은 일들을 서로 칭찬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앞으로 쭉 함께 해야 하지 않겠나?”

“당연한 말이오. 우리 드워프들은 결코 은혜를 잊지 않소.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소. 세상 어느 필멸자가 죽어서 피의 호수를 남기는가?”

황무지에 드워프 요새를 건설하고, 교역을 나누기로 했다. 이는 국가적 사업이었고 사사로운 자가 낄 수 없었다. 폐쇄적인 드워프 제국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었다. 자유시장은 드워프들에게 금기나 다름없었다.

“커흠! 그대의 일은 몇 번을 거론해도 부족하오. 그만큼 드워프 제국에게 큰 도움이 되었소. 〈신의 봉화〉는 완전히 활성화되었고, 이제 수많은 드워프들이 깨어나게 될 것이오. 특히 세리안 공이 전해준 카드 놀이는 우리 드워프 제국을 다시 한 번 비상하게 할 것이오.”

“별말씀을. 그것보다 지금 나의 나라는 큰 문제를 겪고 있는데 드워프의 힘을 좀 빌리고 싶소.”

“어렵지 않은 일이오. 말해보시오.”

드낙은 곧바로 드워프들의 이주를 거론했다. 당연히 반려되었고 결국 수정안을 내놓아야 했다.

“전사 계급 가문 하나. 대장장이 계급 하나가 모두 동부에 자리 잡아 오크와 제국 그리고 엘프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다라...”

드워프들이 혼잣말을 하며 고민에 빠졌다. 드낙이 대놓고 가문 2개의 이주를 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실로 잘 먹혀들어갔다. 수많은 가문 중에 딱 2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언제나 재미난 법이고, 선택하기 쉬운 선택지였다.

“혹시 골라줄 수 있겠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드워프들다웠다.

“전사 가문으로는 망치 가문을, 대장장이 가문으로는 날개 가문을 원하오. 그들의 용맹함과 뛰어남은 실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소. 인간들에게 드워프의 업적을 보여주고 싶소.”

사탕을 달달하게 발라서 말했다.

드워프들은 총 7천 명이 이주하게 되었다. 다시 비상하기 시작한 드워프 제국의 역량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에 불과했다. 이 세상에서 기병 500기 양성에도 눈살을 찌푸리며 갑론을박하는 건 남부 왕국뿐이었다.

“피의 호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드워프가 운을 뗐다. 자신들이 하나를 내주었으니, 드낙에게 은근히 기대하는 말이었다. 물론 드낙은 피의 호수를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남은 못 먹지만 자신은 취할 수 있었다.

“드워프나 지하 연합이나 저 거대한 오우거의 업을 처리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소.”

“반인반마인 동부왕은 가능하다는 것이오? 아무리 동수를 이뤘다고 하나 일시적으로 싸워 단기전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이지 않소?”

드워프는 드낙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고, 격에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걱정했다. 하지만 드낙은 달랐다.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반마가 된 드낙이었다. 능히 발라쿠의 업을 힘으로 취할 수 있을 터였다.

저벅, 저벅.

드낙은 곧바로 피의 호수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구경했다. 그중에 세리안도 있었다. 드낙은 거침없이 발을 들이밀었다.

‘느껴진다. 흉포한 기세가.’

뇌가 미쳐버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덤비는 광전사의 기질이었다. 그것을 접촉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드낙은 더욱 몸을 들이밀었다. 호수는 생각보다 대단히 깊었고, 그 양도 많았으며 농도도 짙었다.

그 속에서 마신의 힘이 느껴졌다. 그건 마수 창조의 힘이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업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건 권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권능 또한 힘을 가공해서 만드는 것인데, 마신의 힘은 가공되지 않았음에도 그런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드낙에게 접촉하면서 스파크를 냈다.

“큭!”

드낙이 크게 몸을 들썩였다. 마신의 힘은 정말 소량이었지만, 그런데도 반발력이 엄청났다. 애초에 힘 자체가 지닌 속성이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허둥지둥 드낙이 피의 호수를 빠져나왔다.

‘큰 소리를 그렇게 떵떵 쳤는데...’

드낙이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신의 힘은 평범한 힘이 아니었다. 이미 변질된 힘이고, 권능이나 다름없었으며 고로 다른 이가 쓸 수가 없는 힘이었다. 그 힘이 극소량 포함된 발라쿠의 업은 못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왜? 안 될 것 같소?”

“이것참...”

마신이 진수성찬에 잿밥을 뿌린 격이었다. 동시에 실로 간악한 신이기도 했다. 분명 이런 일을 감안하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힘의 근본을 송두리째 고친게 틀림없어 보였다.

드낙이 아는 지식으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

그가 아무 말도 못하자 드워프들이 손을 걷어붙였다.

“하하하! 이번에는 우리가 나설 차례군!”

“저 업은 건드리면 안 되는 업이다.”

드낙이 그렇게 말했지만 드워프들이 콧김을 뿜었다. 그리고 실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누가 먹는다고 그랬소? 무기와 방어구로 만들면 그만이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마신의 힘은 걸러내면 되지 않소.”

그 말에 드낙이 냉큼 물었다.

“혹시 마왕의 업만 따로 좀 어떻게 안 될까?”

“그렇게 속 편하게 인생을 살면 안 되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만 했다. 피의 호수를 통해서 무구를 만든다면, 발라쿠의 업은 포기해야 했다.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도 한 번 실험이라도...”

드낙이 구질구질하게 굴었지만 드워프들은 끄떡도 안 했다. 해봤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한 피를 다루는 일이었기에 수많은 드워프 대장장이 가문이 협력을 해야 했다.

그들은 의논 끝에 〈마왕의 합금괴〉를 설계했다. 제련을 통해서 마신의 힘을 따로 떼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합금괴였다. 괴로 만들면 그 부분만 떼어내면 발라쿠의 업만 들어간 괴를 추출할 수 있었다.

이를 마왕의 합금괴라 하는 건 실로 그럴듯했고, 이름값도 있어 보였다. 동시에 발라쿠의 업과 다양한 드워프 대장장이들의 〈드워프 손길〉이 뒤섞이는 괴랄한 무기와 방어구가 탄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적혈대검과 같은 마검이 된단 소리인가?”

드낙의 말에 드워프 장인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뭘로 보고!”

그 외침에 드낙이 깨갱 하듯이 물러났다. 적혈대검 때문에 한 번 물어봤는데 본전도 못 챙겼다. 세파리아스가 칼로 목에 겨눈 채 만든 게 적혈대검이었다. 적혈대검은 마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제품이오. 한 번 확인해보시오.”

드워프 장인이 시제품을 보여주었다. 드낙의 눈이 반짝 빛났다.

블랙하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의 척추를 바짝 세울 정도로 멋들어진 올블랙의 무기와 방어구가 드낙의 앞에 놓여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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