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9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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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아주 단단히 미쳤다!’
마왕(魔王) 발라쿠가 벌떡 일어났다.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움직였다. 그것도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서 흐르는 피가 콸콸거리며 쏟아져 내렸다. 그 피를 마수들이 바글거리며 피의 웅덩이를 마시기 바빴다.
‘정신이 나갔구나. 내 힘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겠지.’
발라쿠는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했다.
‘확실하다. 중립신의 파동이다.’
중립신이 신의 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신의 힘을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드워프를 직접적으로 깨우게 하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관측 시스템을 지닌 종족들은 죄다 알아차리는 힘의 파동이었다.
중립신이 지닌 독특한 힘의 파장.
다른 인신과는 다르게 오직 단 하나의 권능만을 가졌으며 다른 이의 신격을 탐하지 않은 대신 중의 대신. 악신과 선신의 중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중립의 신. 그가 지닌 파동은 독특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중립신이 드낙을 내세운게 아니었다.
‘이건 기회다.’
발라쿠가 자신했다. 놀랐긴 하지만,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부활하지 않은 중립신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회복하지 않는 육신을 도려내는 일이었다. 수준에 따라서는 살을 베고, 뼈를 깎거나 심장을 스스로 쩍 갈라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 위기를 이겨낸다면 중립신은 더는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발라쿠가 검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중립신의 힘이 깃들어져 드워프 산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신의 봉화를 파괴한다면 큰 피해를 부활하지 않은 신에게 줄 수 있을 터였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원래 머리에 또 다른 머리가 하나 추가되어있을 뿐인데도, 25m까지 커진 상태였고, 모든 면에서 성장했다. 특히나 마법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이미 늦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창이 자신의 뇌에 들어갔을 때,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비수에 놀라서 도망친 순간, 모든 것은 끝났다.
‘몸도 회복되었고, 마수들 또한 준비를 마쳤다.’
후방은 차단되었기에 마수 지원군은 없었다. 발라쿠와 함께하던 마수들은 대부분이 드낙의 광역 마법 2번에 박살이 났고, 중경상을 입은 마수 3만 마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콸콸콸.
“치유(chiyu).”
발라쿠가 손아귀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간단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손아귀는 단번에 치료되었다. 더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마신의 은총은 트윈 헤드 오우거가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느껴진다. 대마신 성현의 강대함이.’
생명체 중에서도 손꼽히는 종족값을 지닌 오우거가 마신장으로 활동했고, 큰 위기 속에서 트윈 헤드 오우거로 진화했다. 거기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발라쿠는 대마신 성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에는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는데, 대해(大海)라고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자신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자격을 갖춘 것이다.
‘이 세계에서 승리하고, 준비를 단단히 한다면 대마신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한다면 드디어 자격을 얻는 셈이었다.
“가자, 지상으로. 세상의 멸망이 도래했음을 보여주자.”
“쿠워어어어어어!”
발라쿠의 피를 받아마신 〈붉은 마수(Red beast)〉들이 울부짖었다. 소형이었던 마수조차도 대형으로 변해있었고, 그들의 피부는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드래곤처럼 생겼지만, 비늘은 없었지만, 오우거의 털이 수북하게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마수 3만 마리 전원이 발라쿠의 피를 받아먹어서 성장한 상태였으며 아룡임에도 이족 보행이 가능하고, 앞발도 두툼하고 길었다. 호랑이처럼 휘두르기에도 적합한 앞발이었다.
또한 꼬리와 날개가 존재했기 때문에 비행마저 가능한 것이 붉은 마수였다.
숫자가 적은 상태로 일전을 벌일 수 있다는 걸 고려해서 발라쿠는 진작에 준비해놓은 상태였고, 드낙 또한 승부수를 걸었다. 서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서로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발라쿠는 모습을 드러냈다. 드낙과 중립신의 노림수에 걸러 넘어가 주었다.
‘자신이 없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되면서 자신에게 뿌려지는 마신의 존재조차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발라쿠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콰아아앙!
“도망쳐도 죽는다! 싸워도 죽는다! 그저 죽을 뿐이다!!”
발라쿠가 지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몸으로 부수고, 입에서 마력 충격파를 토해내서 단번에 뚫어내며 포효했다. 말 하나하나가 힘이 되어 주변에 있는 생명체의 정신력을 깎아 먹었다.
“크으윽.”
“으, 으으.”
드워프들은 이런 정신공격에 특히나 취약했지만, 중립신의 영향력을 뿜어내는 〈신의 봉화〉 덕분에 정신을 잃는 자는 없었다. 이 또한 중립신의 안배였다.
드낙이 그리는 지상 회전이 성립하려면 드워프의 정신력을 돋아줘야 할 수단이 필요했다. 당연히 드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마신장이 나타났다!”
댕댕댕댕!
규칙적이고 맑은 종소리가 퍼져나갔다. 종 만드는 기술이 엄청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드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동력을 맡게 된 핏빛쥐 범죄자들도 살기 위해서 버둥거렸다.
그들은 단순 노동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는 악도 선도 없었다. 오직 마신장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만큼 마왕 발라쿠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말은 저주가 되어서 드워프들의 정신을 흔들었다. 그곳에서 핏빛쥐들이 영향받지 않는 이유는 살아 숨 쉬는 창조주 드낙의 영향력을 받고 있어서였다.
“대포 발사 준비!”
“투석기 발사 준비이잇!”
마신장의 세력과 최후의 보루의 거리는 3km밖에 되지 않았고,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가장 먼저 발라쿠의 가슴에 박힌 것은 드낙의 투창이었다.
“컥!”
발라쿠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드낙이 자신의 신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파괴력만을 설정해서 던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보호하는 극점 방어막도 없는 부분이 가슴팍이었다. 내구력은 더 튼튼했기 때문에 관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박혀서 오는 고통이 더 컸다.
치이이익!
피가 수증기가 되어서 상처에서 삐져나왔다. 매캐한 검은 연기를 동반하고 있음은 당연했다. 칼날 용광로의 특성이 가미된 극강철 투창이었다. 내부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개새끼가.”
드낙이 천박하게 욕을 입에 담았다.
‘끝도 없이 성장하네. 미친놈인가?’
한층 더 덩치가 커진 발라쿠의 전신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괴할 정도로 굵고 길어진 오른팔을 순식간에 원래대로 만들었다. 그 주변의 핏줄이 터져나갔지만 하등 상관하지 않았다.
“치유. 흐흐, 또 성장했구나. 하지만 늦었다. 넌 날 죽일 수 없다.”
발라쿠는 투창을 단숨에 뽑아내며 말했다. 놈도 성장했지만, 자신이 더 성장한 상태였다. 10의 성장과 100의 성장만큼 서로 간의 격차는 심했다.
드워프들은 바로 투석기와 대포를 날렸다. 무식하게 노동력으로 가져온 투척물과 손에서 만든 굵직굵직한 대포용 화약이 불을 뿜었다.
“하. 하. 하! 어리석다! 언제나 변하는 게 없구나! 너희 드워프라는 놈들은!”
제국의 영광이라는 허울에 죽어간 자신의 부모를 발라쿠는 떠올렸다.
‘이건 그 업이다.’
콰오오오오!
발라쿠가 쩌렁쩌렁 소리를 내지르며 그 입에서 마력 충격파를 쏘아 보냈다. 날아가던 투사체는 역풍을 맞은 낙엽처럼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대포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땅에 처박히거나 하늘 높이 날아갔다.
“날아올라라! 붉은 마수들아! 놈들을 덮쳐라!”
“크워어억!”
그 사이에 대형 비행 마수인 붉은 마수들은 하늘 높이 솟구쳐오르며 구름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드낙이 움직였다. 대형 마수에 비행까지 하는 붉은 마수는 만티코어처럼 위협적인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 레우치터! 구름 위로 올라가서 마수들을 사냥해라. 떨어져 내리기 전에 최대한 많이 숫자를 줄여야 한다!”
“알았다!”
그림자 레우치터가 단번에 허공으로 솟구쳐올라갔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가속도였지만 그림자였기에 가능했다.
“블러디 만티코어!”
“컹!”
드낙의 말에 단번에 공중 탱크나 다름없는 블러디 만티코어가 허리를 낮췄다. 단번에 올라탄 드낙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발라쿠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
“노오오옴! 벼락!”
동시에 발라쿠의 머리에 들러붙어 있는 또 다른 머리가 외쳤고, 단번에 하늘을 뒤덮었다.
후두두두둑!
하늘을 지나가는 철새 무리가 이에 영향을 받으면서 소나기처럼 땅으로 추락했다.
일순간의 벼락. 그곳에 관통당한 블러디 만티코어였지만 날개 곳곳이 들러붙어 있는 드낙의 머리카락이 이를 상쇄시켰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막아낼 수는 없었고,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 쳤다.
“블러디 만티코어! 넌 몸을 추스르고 붉은 마수들을 처리하러 가라!”
‘트윈 헤드! 놈,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본래는 마력 충격파를 상쇄하기 위해서 덕지덕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였지만 이럴 때도 효과적이었다. 드낙은 곧바로 그림자로 변해서 발라쿠를 향해서 움직였다. 반면 발라쿠는 드낙이 추락하자 곧바로 다른 놈들을 노렸다.
“후아아악!”
마력 충격파가 발라쿠의 입에서 토해졌고, 성벽 한쪽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날려보냈다. 그 여파에 드워프 수백이 휘말렸다.
쿵!
발라쿠가 왼발로 땅을 찍었다.
“지진!”
또 다른 머리가 말했고, 그것은 마법이 되어 땅을 솟아오르게 하였다. 투석기가 대포가 엎어지고, 뒤로 넘어가거나 앞으로 고꾸라졌다. 끝없는 지하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드워프도 있었다.
“나를 잡앗!”
“젠장! 믿고 있었다고! 타오르는 망치!”
드워프가 몇 명이나 밧줄처럼 엮어져서 갑자기 솟아오르며 절벽이 된 곳에 늘어졌다. 무기를 절벽에 박아서 발레리나처럼 발을 꼿꼿이 들어서 버티는 드워프도 있었다.
대혼란이 일어났다. 〈최후의 보루〉의 원거리 수단이 완전히 박살이 났고, 산이 하나 만들어졌다. 아주 거친 산이었고, 진형이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크아아아!”
단번에 하늘에서 붉은 마수들이 떨어져 내려왔다. 그 숫자는 3만에서 2만 9천으로 줄어들어 있었는데, 그림자 레우치터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래도 많다!’
그걸 보며 드낙이 갈등했다.
‘발라쿠와 일기토를 해야 할까. 저 붉은 대형 비행 마수를 잡는 걸 도와야 할까.’
갈등은 길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발라쿠의 광역 주문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또한 놈을 죽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드낙에게는 아직 쓸 수 있는 카드가 한 장 더 남아있었다.
드낙이 잠깐의 망설임 끝에 발라쿠에게로 계속 향했고, 세리안은 모비딕을 타며 지형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는 단신 드워프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새빨간 눈동자가 깜빡였다.
잔뜩 충혈된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전날에도 분명 눈물을 쏟아냈을 게 틀림없는 몰골을 한 대장쥐가 콧물을 훔쳤다. 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날보다 달아오른 상태였다.
“주술 불화살을 쏴라! 신호를 보내고, 피의 복수 전략을 시행한다!”
“찍찍!”
산 하나에서 불화살이 쏘아지며 불똥을 사방팔방 보냈고, 이것은 다른 산으로 번져나갔다. 〈최후의 보루〉를 중심으로 인근 15km 인근에 존재하는 모든 산에서 신호를 받았다는 주술 불화살이 쏘아졌다.
그 숫자는 넓은 산의 개수 때문에 실로 형편없이 보였지만 그 숲에 숨어있는 핏빛쥐들의 숫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10개의 리전. 100만의 핏빛쥐 그리고 30만의 크놀과 30만의 고블린들이 동원되었다. 핏빛쥐들은 그간 발전해온 모든 기반이 무너져도 이번 전쟁을 위해서 싸우기를 결의했다.
분열된 리전.
독립을 원하는 위원장들과 조금씩 머리가 커지며 대장쥐를 안 좋게 보는 위원장들.
그 속에서도 대장쥐의 카리스마는 빛이 났다. 또한 그가 흘리는 눈물은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다.
대장쥐가 누구인가. 11인의 위원을 이끌었던 자였다. 가장 전투에 어울리는 자였고, 초기 핏빛쥐 때부터 배불뚝 정예들을 이끌었다.
누구보다도 영광스러운 업적을 쌓았던 자가 다른 위원장들과 싸우는 걸 두려워하여 밑바닥에 자리를 편 도망자라고 하찮게 불리는 뛰어나고 똑똑한 핏빛쥐를 위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해주겠지.’
그런 마음마저 생겨났다. 그게 다른 9개의 리전을 강력하게 움직이게 하였다.
몸을 사려서 오직 자신들의 리전이 이득을 챙기는 것이 아닌, 핏빛쥐 공동의 명예를 위해 무기를 들어 올리고 총력전을 똑같이 선포했다.
그렇게 해주었다.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어도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기대심도 생겨났다.
그렇게 이런 황무지에 160만의 병력이 집결했고, 하루에 엄청난 양의 식량이 공으로 소비되었다. 그런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도 핏빛쥐들은 참전을 결정했다.
“크아아아아!”
160만 마리의 지하 연합이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내비쳤다. 미리 작업해둔 나무가 무너지고 단번에 공성 무기를 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숨어있던 지하 연합 160만 군세가 모습을 드러내며 10만대에 달하는 공성 병기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붉은 마수들을 겨냥했다.
사방팔방에서 돌과 공성 쇠뇌가 발사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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