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8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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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드낙은 깊은 후회에 휩싸였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암살자의 재능. 사냥꾼의 실력. 반인반마의 힘을 비롯한 검은 꿈의 능력들.
마신장을 한 방에 보냈던 전력.
그것을 맹신했다. 도주로를 만들었지만, 그림자 기사에게 막혔고, 마신장 발라쿠 때문에 오른팔을 잃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 결과 수십만의 지하 연합이 죽임당했고, 11인의 위원회에 속하는 위원장이 죽음을 맞이했다.
기술자들의 모임이기도 한 작은 벌 리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투했고, 위대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죽음은 드낙이라는 한 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내가 그럴 가치가 있을까.’
마음 속에 납덩이가 턱하고 얹어졌다. 그들의 죽음은 드낙의 마음을 짓누르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으며, 자연스럽게 그 죄책감은 마신장 발라쿠를 향하는 분노로 변해갔다.
죄책감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기에, 그 죄책감을 분노로, 다른 자에게로 옮기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놈을 죽인다.’
그림자 기사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드낙이 벽에 주저앉아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단번에 검은 꿈에 접속했다. 중립신이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죽일 힘을 내놔라. 그 어떤 업이라도 감수하겠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나도, 놀랐다. 평범한 마신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런 〈비수〉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발라쿠의 독단검. 〈그림자 백인백골 기사〉. 놈이 보여준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까드득.
드낙이 이빨을 갈았다. 발라쿠에게 한 방을 먹였지만, 그 대가가 뼈아팠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는 그림자 기사도 죽이지 못했다. 그게 천추의 한이었다.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너무나도 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핏빛쥐에게 드낙이 지닌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당연했다. 아낌없는 충성과 끝없는 추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대가 없는 사랑은 드낙이 싫어도 핏빛쥐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림자 기사는 죽었고, 확실하게 너의 업이 되었다. 드낙.”
그때, 중립신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어떻게? 내가 도망칠 때만 해도 건재했는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넌 아직 신이 아니므로 업을 완벽하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네가 죽인 마신장의 업은 확실하게 너에게 쌓여있다. 자연스럽게 그 영향은 적발에게도 적용되어있다.”
“그림자 기사는 그릇이 붕괴하였고, 그 힘을 다하였다.”
“발라쿠가 놈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척 봐도 보통 힘을 부여한 게 아닌데.”
“발라쿠는 지성이 무너졌다. 그를 돌보지 않고, 다른 걸 꾸미고 있으니 방심하지 마라.”
“반신급을 방해할 정도의 힘을 지닌 부하를 치료하지 않았다...”
그 말에 중립신은 원래라면 말하지 않았을 것까지 말해주었다. 그만큼 드낙의 분노와 증오는 대단했다. 복수를 꿈꾸는 사내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큼 그와 관계를 높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좋은 기회였다.
“놈이 죽었다면...”
“그림자 기사의 힘. 〈그림자 힘〉을 너에게 줄 수 있지. 이건 악마의 힘과도 궁합이 좋다.”
중립신이 손을 뒤집자 검은 문이 연기를 가득 뿜으며 모습을 드러내며 쩍하고 열렸다. 드낙은 단번에 환상을 경험했다.
‘〈그림자의 힘〉.’
그림자가 연기로, 장막으로, 검으로. 자신의 몸조차도 그림자로 변할 수 있는 강력한 힘. 드낙이 가지면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여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힘이었다.
마력으로도, 주력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림자를 힘으로 다루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인 〈그림자 백인백골 기사〉만이 다루는 힘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인간은 사용할 수 없고, 오크도, 오우거도, 트롤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악마 게페락스의 육체 변형의 힘은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물론 효율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림자를 다루기 위해 태어난 그림자 기사와는 확연히 다른 육체 구성을 지닌 게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힘을 사용하려면 악마의 힘을 소비해야 한다. 이는 피와 살을 소모하는 것과 같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그림자로 변해서 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힘인 것은 분명했다. 악마 중에서도 변모의 힘을 지닌 게페락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사용할 수 없었을 터였다.
“얼마야?”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낙이 가격을 물었다.
“무료다. 힘을 받아먹어라, 드낙. 이대로라면 넌 마신장 발라쿠에게 죽는다.”
중립신의 말에 드낙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말하는 것이기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으며, 공짜로 능력을 주는 것도 실로 무시무시하게 체감되어왔다.
“이렇게 할 정도로 강대한 대적자라고?”
“나도 목격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마신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의 힘으로 놈을 훑어보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놈은, 마신의 챔피언인가?”
“모르지. 중요한 건 놈이 종족값이 가장 높은 필멸자이며, 마신의 선택을 받아 마신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놈을 반드시 죽여야 하지.”
“맞다.”
서로의 이해는 일치하고 있었다. 검은 꿈을 통해서 중립신은 드낙이 획득한 업에 간섭해서 능력을 짜내고, 드낙은 자신의 업을 중립신에게 내어주며 능력을 획득한다. 오늘이 있기 전부터 두 사람은 계속 협력하고 있었다.
‘중립신이 공짜로 능력을 나에게 주다니.’
처음부터 중립신은 드낙에게 업을 요구했다. 상대를 죽여야지만 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중립신은 결코 허투루 드낙에게 능력을 주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냉철하게 판단하여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그 반대로 이득을 얻으면서 드낙과 함께했다.
공짜로 능력을 주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드낙은 그렇게 그림자의 힘을 공짜로 얻어냈다.
‘이 힘으로 반드시 놈을 죽이겠다.’
그가 이를 갈았다. 수십만의 지하 연합이 땅에 흘린 피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
드낙은 그림자가 되었다. 악마의 힘은 그림자의 힘보다 우위였지만, 드낙은 그림자 기사보다 그림자에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 복합적인 요소 속에서 그는 빠르게 후방에 있는 드워프들과 접촉했다.
“무슨 일이야? 그건 또 무슨 힘이고?”
세리안이 가장 먼저 드낙을 알아차렸다. 그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드낙은 그에 짧게 대답하고, 곧바로 사정을 말했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기를...”
그녀는 드낙의 기색을 느끼며 지하 연합의 분투를 기렸다. 또한 드낙을 껴안아주며 위로하듯이 접촉을 했다.
“마신장 발라쿠에게 피해를 크게 줬다. 놈의 부하 중에서 가장 강력한 놈이 죽었고, 발라쿠는 지금 마법을 쓰지 못한다. 지금을 노려야 한다.”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 참이야. 불가능해.”
세리안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박을 통해서 드워프들의 삶에 대한 열정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다.
“가능해.”
‘모든 시간적 제한을 없앤다.’
드낙이 흉한 기세를 절로 드러냈다.
이 세계의 지성종족이 지닌 가장 큰 단점은 교통수단의 부재였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드워프들을 옮길 생각을 가졌다. 적어도 보름 내에 마신장과 2차전을 할 생각이었다.
“제국 수도를 친다.”
전후방에 있는 드워프들을 하나로 규합하고, 드워프 제국 수도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곳의 넓은 공간을 발라쿠가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놈이 회복하기 전을 노려야 해.”
그의 분노를 느꼈음에도 세리안은 제2안을 내놓았다. 그와는 정반대되는 일이었다.
“오우거가 그렇게 간단히 죽을까. 중립신이 발라쿠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며. 그렇다면 지금 가진 것으로 싸우면 안 돼.”
“그러다가 놈이 회복하면?”
“그냥 회복하는게 아닌거지. 내 생각에는 중립신이 그렇게까지 언급한 이유가 있다고 봐. 좀 더 확실하게 놈을 처리해야 해.”
드낙의 기가 한 풀 꺾였다. 세리안의 재능이 자신보다 높아서 그녀의 말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자존심? 재능 없는 자는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자존심을 꺾을 수 있었다.
무릎 한 번 꿇으면 3억을 준다면, 구두까지 핥고, 바짓가랑이를 지나가며 헉헉거릴 사람이 수두룩 빽빽했다. 드낙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검은 꿈의 능력을 움켜쥐고 내달릴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다.
“말해봐.”
세리안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성숙하고 매력적인 붉은 체리색의 입술의 색감이 도드라졌다.
“더 발전된 수단으로 놈을 쳐야 해. 한 번 당한 건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해. 그 방법이 따로 있을까?”
“투창을 더 무겁게 만든다면...”
“방식은 똑같잖아. 막힐 가능성이 있지만, 타격은 줄 수 있겠지.”
극강철 투창 55kg을 300kg으로 만든다면 발라쿠를 곤란하게 할 수 있을 터였다.
“다른 건?”
“초월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나 혼자서는 힘들지.”
“그건 나도 생각해볼게. 일단 내 생각은 신의 봉화로 마신장을 지상으로 유인하는 거야.”
드낙이 단번에 세리안의 노림수를 파악했다.
“모비딕과 블러디 만티코어를 쓰자는거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탱크와 비견되는 만티코어라면 능히 발라쿠에게서 오래 버틸 수 있을 터였다. 특히나 악마의 힘이 깃든 만티코어라면 가능했다.
“그 사이에 핏빛쥐들을 데려와. 검은 돔의 마수군단은 검은 돔이 있는 곳으로 빠졌고, 황무지의 검은 보급로는 모조리 먹어치웠을 테니까.”
“핏빛쥐들과의 연합전쟁이라.”
엄청난 대전투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모든 것,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싸워야 했다.
드낙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확실하게 놈을 정면에서 고꾸라뜨릴 생각이었다. 마법을 못 쓰는 마신장따위 몸이 회복되어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을 꾸미고 있기에 더 확실한 방법을 선택할 뿐이었다.
“해보자.”
“좋았어.”
드낙은 세리안에게 필수적인 정보들을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도망치고 있는 드워프들은 신의 봉화와 함께 특정 지점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세리안이 그곳으로 향해서 그들을 데리고 와야 했다.
동시에 드낙은 겁쟁이 마신장 리고와 접촉해서 지상을 정복하도록 명령하고, 황무지로 향해서 다른 핏빛쥐 리전들을 데리고 와야 했기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전사 계급 드워프들은 리고가 점령한 영토를 지켜라! 그곳에 지하 연합의 주술사들이 마신장의 마력 충격파를 방어할 토템을 세울 것이다!”
세리안은 능숙하게 그들을 조율하고, 해야 할 일을 배당했다. 전사 계급 드워프들은 수비를 맡았고, 리고는 공격을 맡았다. 지하 연합은 방어용 토템을 설치하고, 대장장이 드워프들은 용광로에서 무기와 방어구를 생산했다.
디테일하게 지형을 바꾸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해자였다.
“마수를 상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이다! 최대한 깊게 파야 하고, 내부에는 쉽게 적을 관통시킬 긴 대형 송곳을 설치하라! 시체가 몇 개가 쌓여도 계속 효과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성벽 또한 새로 쌓아졌다. 지하 연합은 그렇게 죽었음에도 꾸역꾸역 쏟아져나와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힘을 보탰다.
‘소름이 끼친다.’
인간인 세리안은 지하 연합의 끝없는 역량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드낙이 인간인 이상, 그는 인간의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본능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쏴아아아악!
그림자가 황무지를 내달렸다. 드낙의 몸으로는 그림자 장막을 통한 공간이동은 그림자 기사가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큰 힘을 소비하기 때문에 이렇게 무식하게 이동하는 방법이 최고였다.
시속 600km의 속력으로 드낙이 황무지를 질주했다. 모두 그림자로 몸을 변형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반인반마의 몸이었다면 오래 달리면 지쳤을 테지만, 그림자는 아니었다.
쑤우우욱!
그림자가 땅을 통과해 지하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뚝!
그림자가 덩어리째로 변하며 지하에 아직도 남아있는 마수들과 싸우는 대장쥐와 그 친위대에게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그림자 덩어리에서 그림자 무기가 수없이 쏟아져나오며 정확하게 주변 소형 마수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헉.”
찰나의 순간 놀라는 이들이었지만, 정예는 정예였다. 단번에 고블린들이 만든 주술이 터져 나오고, 크놀이 만든 투척물이 화염을 뿜어내며 던져졌고 거리를 벌리며 무기가 공간을 점유하며 드낙을 포위하듯이 겨누어졌다.
단번에 원형진 그것도 약간 퍼져있어서 피해를 최소화 활 수 있는 진형을 갖추었다. 대장쥐는 당연히 뒤로 가는 큰뿔 검은쥐들과는 다르게 앞으로 나갔다. 훌륭한 리더였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삐져나오는 것을 참았다.
이들 앞에서 수십만 명의 핏빛쥐가 한 곳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창조주를 뵙습니다!”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내가, 내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는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말하는데 울먹거림이 느껴졌고, 대장쥐와 그의 친위대 800마리가 깜짝 놀라며 감히 드낙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신이 눈물을 훔치다니? 엄청난 일이 생겨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대장쥐는 처음으로 핏빛쥐 세력을 함께 일구며 사소한 것을 논하며 미래를 약속하며 가장 먼저 가장 형편없는 핏빛쥐들을 이끌겠다고 대담한 결정을 선택했던 〈뛰어나고 똑똑한 핏빛쥐(Outstanding and smart Blood Rat)〉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아! 이토록 허무하게 내 가장 친했던 이가 가는구나.’
대장쥐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핏빛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을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어 했던 핏빛쥐였으며, 그들이 지닌 오물을 스스로의 몸에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핏빛쥐가 가장 먼저 대장쥐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기술직을 선택한 위대한 핏빛쥐의 죽음에 대장쥐는 드낙의 앞에서 가장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 누구도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만큼 전투의 일인자인 대장쥐에게 있어서 시스템적으로 도움을 주던 뛰어나고 똑똑한 핏빛쥐의 죽음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누가 그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으흐흐흐흑.
구슬픈 소리가 지하 동굴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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