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80화 (679/1,239)

강철의 전사 6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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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장(魔神將) 발라쿠.

16m를 넘어서 20m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가 성문을 부수고, 그대로 안으로 진입했다.

“발사아아악!”

드워프들이 준비하고 있던 대포를 일제히 발포했다. 둔감한 드워프조차도 악을 내지를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쿠콰과광!

천지가 요동을 쳤다. 공기가 떨리고, 사람 머리통보다 큰 대포알이 거대한 표적인 발라쿠를 노렸다. 그 개수는 수백에 달했고, 열병기가 지닌 하나하나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그것을 감당하는 발라쿠 또한 전력을 다했다.

“이글거리는 화염! 터져나가는 충격! 멸망의 빗줄기!”

발라쿠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신의 은총이며 권능이기도 했다. 그 어떤 주문도 없이, 그대로 마법이 발현되었다.

화아악!

활화산처럼 발라쿠를 중심으로 화염이 모든 것을 덮으며 반원의 형태로 땅과 하늘로 뻗어 나갔다. 대포알이 이에 휩쓸리며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형태를 잃은 대포알은 이어지는 초광범위 충격에 사방팔방 궤도가 휘어졌다.

휘이익! 콰가과강!

빗나간 대포알이 날카로운 물줄기의 형태로 칼날처럼 쑥 성벽에 박히거나, 심각하게 달구어진 채로 마수의 얼굴을 뒤덮었다.

“키아아아악!”

거대해지고 거대해진 마신장의 그릇으로 만들어진 마법 불꽃은 단번에 대포알의 형태를 무너뜨렸기에 그 이상의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단숨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피해를 보고, 지옥도가 펼쳐졌다. 뜨거운 화염에 달구어진 대기에 화점이 낮은 나무 같은 것들은 알아서 타올랐다. 지하 세계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쏴아아아!

하늘에서 철냄새를 풍기는 녹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녹물은 평범한 녹물이 아니었다.

치이이익! 화르륵!

대포를 이루고 있는 강철과 만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이내 불타오르며 철이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화학반응 덕분에 철이 녹을 화점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녹았다. 그리고 화려하게 타올랐다.

녹색이 뒤섞긴 주홍빛의 화염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 비는 마신 성현이 내려준 지식으로 만든 것이기도 했다.

화학이라 명명된 과학은 마법이라고 말해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철제 문화〉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물러서지 말지어다! 마신놈의 하찮은 종자들이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것을 막아라!”

화염에 뒤덮인 채로 덩치가 다른 드워프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드워프 전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소란 때문에 깨어난 드워프 4만2천 명이 일시에 목소리를 드높였다.

제국을 수호하자!

우리야말로 이 세계의! 지성 종족의! 주춧돌이다!

등에 메고 있던 대포를 머리 위에 얹고, 타오르는 숯을 대포 옆에 삐쭉 튀어나온 구멍 속에 집어넣었다. 단번에 대포가 발사됐다. 녹물이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폭발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것이 드워프제 화약이었다.

금방 대포도 녹아내려서 쓸 수가 없었지만 초탄을 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어. 림. 없. 다!”

마신장 발라쿠가 도약하며 그대로 땅에 내려앉았다. 흙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지축이 흔들리며 건물이 붕괴했다. 밟힌 드워프는 그대로 피떡이 되었다. 몸이 짓눌려서 내부에 있는 내장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컵.

실낱같은 숨이 토해지며 쥐새끼보다도 작은 소리를 냈다. 발라쿠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미를 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멸의 일격!”

발라쿠가 양손에 쥔 할버드가 휘두르며 또 다른 마법을 발현했다. 매우 짙은 검보라색의 기운이 할버드의 날에 기생충처럼 들러붙었다.

콰아아악!

땅을 긁으며 드워프를 박살 냈다. 닿기만 해도 전신의 충격에 몸을 가눌 수 없었고, 튕겨 나가면서도 온몸의 세포가, 육신이 곤죽이 된 반죽처럼 망가졌다.

끝없는 싸움이 될 것 같았던 마수와 드워프간의 대결은 발라쿠의 있을 수 없는 스펙으로 모든 것이 빠르게 붕괴했다.

“끝없는 화염 숨결!”

화아아아악!

발라쿠의 거대한 입에서 화염이 토해졌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길이는 5km에 달했고, 부채꼴의 너비는 최대 7km에 달하였다.

물론 엄청난 범위 공격이었지만 피해는 적었다. 하지만 마법 불꽃이 전신에 들러붙은 드워프들은 계속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녹물과 화염이 만나며 수증기가 잔뜩 피어올라 왔다.

키아아아아!

그 엉망진창인 전투 환경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울룩불룩 움직이며 짐승 소리를 냈다. 평범한 수준의 멘탈이라면 그저 두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고, 신의 이름을 외우며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다다닥!

“폭포 용광로 가문이 여기에 있다!”

수증기, 녹물의 탄내, 마법 불꽃이 만들어내는 고열, 마수의 울부짖음과 발라쿠 외의 마신장이 토해내는 수많은 마법들 사이로 불타는 혜성처럼 타오르는 드워프들이 셀 수도 없이 몰려와 발라쿠에게 충돌했다.

“하! 하! 하!”

그의 웃음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손아귀에 쥔 드워프 대여섯이 통째로 허공으로 던져져 벽에 처박혔다. 버둥거리더니 이내 벽에서 흘러내려서 추락했다.

“내가 바로 이 세계의 새로운 신이다!”

이미 〈검은 돔〉 수준의 공양을 했을 때부터 그는 평범한 마신장이 아닌 상태였고, 검은 돔 수준의 공양을 했을 때 그는 가히 반신의 경지에 닿았다.

열병기로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드워프 홀로 잡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본래라면 소설 속의 마왕(魔王)처럼 전종족이 연합해서 회전(會戰)을 통해서 싸워 이겨야 했다.

사기를 위해서 왕족까지 그 피부가 녹아 닳아 지워질 때까지 전선에 서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 발라쿠라는 존재였다.

매캐한 연기가 폭포 용광로 성채를 가득 메웠다. 발라쿠는 계속 앞으로 전진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죽어가는 드워프들을 향해서 그들을 더욱 절망으로 빠뜨렸다. 그게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들어라! 죽어 나자빠져서 업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는 중립신을 따르는 버러지 같은 놈들아! 너희들의 신은 힘이 없기에 너희들을 깨우고 있는 것뿐이다! 대신 싸워줄 필멸자를 찾아서 벌벌 떨고 있을 뿐이다!”

“그 자랑스러운 신의 봉화에서 나오는 하찮은 허세를 진정으로 믿는 것이냐?”

“아니다, 이 악마야! 너의 그 간악한 혀를 뽑아주마!”

무너져가는 첨탑에서 드워프 하나가 용기있게 마신장에게 도약했지만 그의 허리에도 닿지 못했고, 발라쿠가 내려치는 왼주먹에 얻어맞고 그대로 땅에 충돌했다. 드워프의 입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발라쿠가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깃든 흉험함에 드워프가 각혈하는 입을 꽉 다물었다. 대범하게 나섰다.

“멸망의 때가 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너의 신은...너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푸직.

발라쿠의 묵직한 발에 드워프가 곤죽이 되었다. 전신이 단번에 파괴되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뜯고 먹어치워라! 드워프를 죽이는 유일한 길이다!”

발라쿠의 외침에 마수들과 마신장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이대로 끝까지 간다. 드워프 제국의 수도에 존재하는 신의 봉화를 무너뜨린다.’

그것을 무너뜨리면 드워프에게 남은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잠자는 드워프를 죽이고 그 피를 마실 생각에 발라쿠는 웃음을 지었다.

‘세계의 서부는 마신의 것이다.’

드워프 제국을 모두 점령하고, 던전과 미궁으로 만들며 마신의 영토로 변환시킨다면, 이 세계는 검게 물들게 할 수 있었다.

*

드워프 8천 군세는 곧장 〈제국 중앙 도로〉를 관통했다. 딱히 먹을게 필요 없는 드워프들이었기에 보급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병력을 샛길로 돌린다고?”

“그렇다. 이 근처에 〈높은 석상 대장장이 가문〉이 있다. 그들 또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터. 마수의 냄새를 맡고 몇몇이 깨어나 있을게 분명하다. 그들을 도와야 한다.”

드낙이 이마를 짚었다. 한숨을 내쉬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가 세운 전략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앙 도로〉를 이용해도 수도로 향하는 데는 1개월하고도 보름이 더 걸린다. 그런데 무슨 샛길을 가자고 하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들의 가치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하다. 중대형 대포 제작술은 다른 대장장이 가문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세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날개 가문의 대장장이를 〈꿈 주술 마법진〉을 통해서 깨우는데도 부족한 것이 지금 실정인데, 그들을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몇몇이 마수의 기색 때문에 정신 차렸다고 해도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샛길로 향하면 못해도 왕복 5일이 걸릴 텐데, 그걸 감수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실로 냉혹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론이기도 했다.

이 세계는 모든 것이 교통이 문제였다. 엘프도 교통 인프라를 깔기보다는 날아다닐 정도였으니, 드워프는 오죽할까.

‘증기기관차를 만들면 조금 변할지도 모르지.’

물론 그게 지나갈 쇠길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철은 이곳에서 제법 단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증기기관차의 구조 따위 알 수 없었다.

“못해도 절반은 빠져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해. 제국은 이미 멸망했을지도 몰라.”

마신장의 후방 지원군이 불러온 여파가 드워프의 마음에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원군의 군세가 그 정도라면 본대는 더 어마어마할 것이다.

‘결코,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할 여건을 만들어야 해.’

종족 유지를 위한 욕심. 그건 모든 종족이 지닌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멸망 당하고 싶은 종족이 있을 리가 없었다.

‘힘이 약하면 무너질 뿐이다.’

힘이 필요했다. 이 세계는 그러했다. 약자는 머리채가 잡히고, 일을 못한다고 팔이 잘려도 아무런 소리를 할 수 없다. 그저 웅크린 채 눈물만 흘릴 뿐이다. 특히나 기술, 제련, 광물을 비롯한 다양한 자원과 관련된 힘을 지닌 드워프는 역사 초기 엘프에게 많은 피해를 봤다. 어린 드워프건 늙은 드워프건 납치해버리는 것이다. 오직 드워프의 우월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얼마 못 가서 잠들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납치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그때를 기억하고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세력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플라잉 엘프가 순식간에 저공비행을 하며 마법 올가미를 이용해서 목줄을 채우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광경은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공포였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엘프는 마도 사회를 이룩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워프는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종족이 약소 종족이 될 위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상 요새의 생산 물건을 가져오고, 지상 요새를 지키는데 각각 병력 1천씩 총 2천이 빠져있으니 6천 중 3천이 샛길로 빠져나가겠다는 것인데, 3천으로 적의 후속 부대와 만나면 어쩔 셈이냐? 특별한 계책이라도 있는가?”

“있다. 바로 너다.”

드낙의 말에 드워프가 단번에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듣자마자 드낙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리안이 허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하지만 웃음기를 완전히 씻기지는 못했다.

운구기일(運九技一).

중립신이 아무리 발악해도 지금 이 시대를 놓치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었다. 그만큼 운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의 챔피언이었던 드낙은 사정없이 힘든 곳으로 끌려가야 했다.

왕이 되었는데 전쟁터만 전전하며 딱딱한 빵과 멀건 스프를 먹으며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떵떵거리며 능력 자랑하고 부인도 많이 얻고, 즐기고 싶은 거 즐기다가 평온하게 넋 놓기도 하는 삶은 꿈도 못 꿨다. 그 속에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워프들의 칭찬은 드낙을 웃게 만들었다.

“큼. 아무리 나를 믿어도 무리 같은데. 중앙 도로는 마신장도 싸울 수 있는 전투 요건을 가지고 있다.”

“투창 한 방에 죽이던데.”

“드워프의 피해는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

마신장들도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을 게 분명했다. 지상 요새에서 드워프를 빨리 처리하지 않은 이유는 드낙의 투창술 때문이었다. 마신장들을 매우 당황시켰고, 드워프보다는 드낙의 투창을 막는데 마력을 많이 소모했다.

동시에 잔뜩 뭉쳐있기보다는 조를 짜서 흩어지다가 더 산개한 것도 큰 효과가 있었다. 마신장 300마리가 한 명, 한 명 확실하게 치기에는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피해가 분산되었다.

“지상과 지하는 공간도 크게 차이가 나. 너무 좁아.”

“하지만 어둡기도 어둡지.”

드낙이 턱을 매만졌다.

‘판단하기 애매하다.’

‘3천의 드워프가 약한가? 아니다. 하지만 6천보다는 약하다.’

그의 시선이 절로 세리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확답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해주었다.

“이렇게까지 중앙도로를 달리는데 중간 혹은 대규모의 병력과 마주친 적이 없어. 상대가 수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야. 후방이 이렇게 조용한 이유는 생각보다 전방이 재미를 보고 있을 수 있어.”

드워프의 패배. 그로 인한 거침없는 마수들의 진격은 자연스럽게 후방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럴만했다.

“그건 곧 우리가 아무리 앞서 나가도 늦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모르지. 이 지역에서 세력 구도를 보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건 분명해.”

세리안의 말에 드낙이 눈을 좁혔다. 전투광인 세리안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뜻은 아무리 달려가 봤자 재수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소리였다.

‘보험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 정도로 심각해?”

“나도 이 정도로 우릴 막기 위한 적들이 없으니까, 좀 불안하긴 하지.”

“왜 이제 그걸 말해?”

“계속 고민했으니까. 말하다보니 판단이 다시 서서.”

드낙이 입을 다물었다.

‘이판사판 개사판이 아니면 활로가 없다는 뜻이다.’

그의 잔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발라쿠나 마신이나 중립신이나 생각하지 못할 생각을 가졌다. 그게 그의 장점이기도 했다.

“나 혼자서라도 수도에 가서 잠자는 드워프들을 깨운다면?”

“자살행위야...”

세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강철로 만들어진 항공모함을 향해 전투기를 처박아서 자국만 남기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암 걸릴 확률이 100%라면, 당연히 보험을 한 개만 두어서는 안 된다.’

쌍보험을 들어야 했다. 후방에 보험을 두기로 했다면, 전방에도 보험을 둬야 했다. 실로 황당한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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