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79편
<-- 드워프 제국 -->
드낙은 당연히 극강철Great steel을 탐냈다. 크기 대비 밀도가 높다는 것은 구부러지거나 짓눌려서 밀리는 등의 형질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강철보다 밀도가 높은 강철은 냉병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재료였다.
“투창을 하나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좀...”
그레이트 스틸은 오직 〈단단한 철〉,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이었다. 그가 1300여 년을 노력하여 얻어낸 것이었기에 다른 드워프는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그에 미치지는 못했다.
“투창 한 자루로도 감지덕지하지.”
드낙은 냉큼 수락했다. 자존심이 닳고 닳아서 걸레짝이 될 정도로 심하게 갑질을 당하며 살았던 박호훈이었다. 상대가 배려했으니, 한 걸음 더 뻗대지 않았다.
물론, 그냥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 이 마법진의 문양을 음각(陰刻)시켜줬으면 하는데...”
〈극강철 투창〉에 마법을 집어넣을 생각을 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극강철 투창에 마법을 부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투창에 따로 용접을해서 가시처럼 양옆으로 툭 튀어나오는 강철괴를 따로 부착해야만했다.
그곳에 마법을 부여해서 마치 극강철 투창에 마법을 부여한 것처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필요한 마법은...'
특히나 필요한 건 〈추적 마법〉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마법사에게 알려주는 마법이었다. 중요 인물을 경호할 때 필수적인 마법이기도 했다.
〈회수 마법〉 같은 건 큰 마력이 필요하고, 마법진도 작다고 할 수 없었기에 투창에 쓸 수는 없었다. 마법 밧줄 같은 거로 연결해서 비슷하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뚜렷했고, 회수 마법이 걸린 마법 단검은 사용자를 공격하는 형식이기도 했다.
미치광이 같은 마법 물품은 특히 동부에서 생산돼서 남부 왕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불파겐 마탑〉에서 초보 수준의 마법사를 양육시켜서 사회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다른 건 필요 없고?”
단단한 철은 드낙에게 추가할 것이 없는지 물었다. 마신장의 시체로 언덕을 만든 〈시체 언덕의 드낙〉이었다. 그는 드워프 제국을 구원할 인간 영웅이었으므로 할 때 확실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럼...”
드낙은 바람 마법까지 추가했다. 음각 마법이었기에 딱히 손잡이 부분을 비울 이유가 없었다. 안쪽으로 움푹 파여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마력을 담는 연금술로 채울 생각이었다.
〈극강철 투창〉은 빠르게 제작되었다. 재료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오랜 공정이 필요 없었다. 추적 마법으로는 〈사냥꾼의 인장〉을 새겼다. 육감을 통해서 투창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마법사가 제대로 노리지 않으면 간파할 수 없었다.
바람 마법은 〈강력한 돌풍〉을 새겨넣었다. 투창이 날아가는데 역풍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순풍의 효과를 높여줄 것이다.
투창의 길이는 235cm로 평범한 투창보다 30cm 남짓 더 길 뿐이었다. 다만 길이에 비해서 무게가 엄청났다. 보통 투창이 5kg 내외라면 드낙의 투창은 55kg으로 10배에 달했다.
‘걸리면 뒤지는 거야.’
드낙은 투창의 움푹 파인 곳에 마력으로 반짝반짝 빛이나는 액체를 세심하게 부으면서 웃음기를 머금었다. 드워프들에게 이 투창은 〈드낙 투창〉이라고 불렸다.
그 외에도 본격적으로 장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루비〉의 주도로 만들어지는 화염 반지. 〈단단한 철〉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극강철 방패.
망치 가문의 경우에는 망치의 형태를 어깨, 팔뚝이 접히는 곳, 무릎에 튀어나오는 곳에 집어넣은 〈망치 갑옷〉을 만들었다. 돌격해서 부딪칠 때 충격력이 더해지면서 상대는 비현실적으로 붕 띄워지거나 날아갈 것이다.
소형 대포 또한 제작됐다. 대장장이 계급의 가문인 날개 가문이 대포를 만들고, 망치 가문은 포탄을 만들었다. 망치 형태를 지닌 포탄이었다. 당연히 폭발력 보다는 충격량에 집중된 포탄이었다.
〈숯〉과 〈화약〉의 확보도 날개 가문이 도맡았다. 대포에 사용되는 화약은 인간 성인의 엄지손가락만큼 굵직굵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드낙은 세리안과 전략을 고민하고, 그다음에 몇몇 드워프를 불러서 통보하는 식으로 원탁 회의를 주도해나갔다.
“포자가 덮인 드워프 산맥을 모두 정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반드시 드워프 제국의 수도로 향해야 한다.”
둘이서 이미 의견을 나누었기에 공통된 의견을 말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는건 드낙이나 세리안이나 똑같았다. 그리고 드워프에게도 잘 맞았다. 금방 열정이 사그라지는 드워프는 시작부터 자극적인 걸 집어넣어 줘야 했다.
“하지만 마신장의 후방을 박살 낸다면 큰 이득 아닌가.”
이에 세리안이 답했다.
“상대 마수를 근 십만 가까이 죽였고, 마신장도 300마리를 참살했다. 더는 후방에서 얻을 건 없다. 그리고 그들의 증원군 규모가 비이상적이다. 전방은 어느 정도겠냐?”
높은 망치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다섯 명의 다른 드워프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시기적으로 생각하면 오우거 재단이 무너졌다는 작은 소란을 듣고 보낸 증원군이다. 그런데도 마수 군대를 봐라.”
“제국의 상황은 심각하게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수도에 도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너도나도 불길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는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실체를 지닌 걱정거리는 드워프들을 움직이게 하였다.
“폭풍처럼 휘몰아쳐야 할 것이다. 난 못해도 3개월 안에 드워프와 마신장 본대가 싸우는 전장터에 닿았으면 한다.”
드워프의 무지막지한 육체 능력을 믿었기에 생각할 수 있었다. 기차도 아니고, 두 다리로 움직여서 3개월 안에 드워프 제국의 수도로 향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지만, 드낙은 진정으로 그래야만 이변을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악마 게페락스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렸다.’
자신이 동부에서 한 휴가는 생각하지 않고, 드낙은 악마 토벌 때를 욕했다. 특히나 남부의 지배계급을 어느 정도 유지해서 남부 역량을 빠르게 궤도로 올리는 데 신경을 쓴 것이 아쉬웠다.
‘그냥 놔둬도 괜찮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드낙과 세리안의 〈3개월 진격〉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드워프들 또한 이번에 마주한 마수들의 엄청난 군세를 봤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지원군을 후방으로 보낼 정도면 전방은 그 3배는 달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걸 옮길 망치 드워프 전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나와 함께 빠르게 수도로 향한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를 파(破)했다. 드낙은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겁쟁이 마신장 리고를 찾았다. 그는 실로 영악하게 멀지 않은 곳에서 마수들을 영입하고, 근처에 던전을 세웠다.
드낙과 드워프의 덕을 제대로 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근처에는 마신장이 한 마리도 없었고, 야생 오우거조차도 드낙에게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잘 먹고 잘사나 보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동굴의 어둠 속에서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워프 갑주를 입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고는 중형 마수의 두개골을 쩍 갈라내고 안의 뇌수를 손가락으로 핥아 먹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왜 뒤에서 튀어나오는 것인가!”
역정을 냈다. 이에 드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날 알아채는지 궁금해서.”
확실하게 힘의 차이를 보여주기보다는 이렇게 뒤를 잡는 게 더 위협적이었다.
“무슨 용무냐?”
“일해야지. 그것보다 아직도 마신장의 힘을 가지고 있군.”
드낙은 실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신장 300마리가 단시간에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마신이 이 차원계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정상인데 그러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리고는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마법을 배우고 있어서 크게 걱정을 안 하는 표정이었다. 사라지면 사라지는 거고, 아니면 말고란 식이었다.
“마신장의 힘을 잃으면 마수들의 통제가 안 되니까.”
“음.”
그 말에 리고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내세울 가치가 하나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드낙이 짚으니 절로 움츠러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마수들을 죽여나가야 할 것이다. 마신장은 못 죽여도, 야생 오우거는 반드시 죽이고, 특히 검은 포자를 토해내는 가오리는 필수로 죽여야 한다.”
“알고 있다.”
드낙이 다시 한 번 리고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드낙은 자신의 피를 리고가 마시게 만들었다.
“트롤, 오우거, 악마. 다양한 힘이 깃든 피다. 마셔라.”
리고는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를 지배하는 건 단기간에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종족의 범위를 넘어선 〈조련술의 업〉이 리고를 잠식하게 될 터였다.
‘오우거의 그릇을 믿는다.’
마신장의 힘이 사라지면 이는 더 가속화될 터였다. 업무를 마친 드낙은 핏빛쥐로부터 황무지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정보 격차는 보름 이상이었다.
“잘 하고 있네. 그렇게 계속 드워프 산맥에 마수 군단이 오지 못하게 검은 보급로를 파괴해라.”
드낙은 전선 고착화를 명령했다.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검은 돔을 파괴할 생각을 가졌다.
“뜨낙!”
핏빛쥐 정보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서둘러 사라졌다.
*
드낙은 세리안이 드워프와 대련하는 것을 구경했다.
행군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닌 드워프와 전투를 경험하지 못해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세리안은 서로 의견이 잘 맞았다. 성욕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지니고 있는 게 세리안이었다.
엘프의 녹안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보이지는 않지만, 끝없이 쌓여서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풀어야 하는 종류의 스트레스였다.
특히나, 세리안의 폭력적인 기운은 둔감한 드워프도 자주 느낄 정도로 날카로웠다.
싸우자고 대놓고 말하는 것 같은 기질 때문에 드워프 중 몇몇은 건방지다고 여기기도 했다. 길 가는 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주먹감자를 먹이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칼들고 자신의 목을 긋는 놈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련용 무기 같은 건 없었고, 그냥 실전용 무기를 들고 있었다. 세리안은 강철이 흐르는 강을 지니고 있었고, 드워프는 망치 가문의 망치를 쥐고 있었다.
“망치! 망치!”
불타는 쌍망치가 서로 부딪치며 파공성을 냈다.
‘한 방만 맞아도 무릎이 박살이 나겠지.’
그런 상황 속에서 세리안이 투구 속에서 미소 지었다. 짜릿함이 그녀의 척추를 바짝 세웠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드워프에게 전해졌다. 그 송곳 같은 전의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공격은 당연히 세리안이 먼저였다. 외골격 같은 드워프 갑옷을 입고 있어도 리치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쉬익.
평범한 베기. 그것을 드워프는 손쉽게 막았다. 체격이 차이가 나도 드워프의 근력이 인간보다 못할 리가 없었다. 마법 아티팩트를 통해서 강화되었음에도 힘 싸움에서 밀렸다. 정상적이지 않은 근력 수준이었다.
땅!
“웃.”
분명 공격을 막았지만 롱소드가 휘어지며 그대로 드워프의 투구를 꿀밤 때리듯이 때렸다. 세리안이 작게 웃었다. 드워프가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감히 비웃어?”
“뭐하냐, 〈가락 망치〉! 달려들어!”
“달려라, 달려라! 저세상 끝까지! 드워프의 힘을 보여줘라!”
그 말에 호응하듯 가락 망치가 쌍망치를 머리 위로 벌떡 올리며 달려갔다. 세리안의 롱소드가 거침없이 드워프를 때렸지만, 돌진을 막을 정도로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서로 거리가 점차적으로 가까워졌고, 이내 드워프가 기회를 잡고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이이이!”
세리안은 그런 돌격에 호응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허공에 도약하며 순식간에 피해냈다. 아슬하게 공중을 지나가는 세리안을 망치가 또 한 번 스쳤다.
“잽싸군! 하지만 어림도 없다!”
드워프가 냉큼 몸을 돌려서 다시 덤볐다. 회피력과 기술이 뛰어난 세리안에게 유효타 하나 먹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드워프의 실력이 낮은 건 아니었다. 드워프만의 무술이 있었고, 불파겐이 이상할 정도로 무력이 높은 것일 뿐이었다.
‘어디가든지 다 먹히겠는데, 저게 안 되네.’
지근거리에서의 망치 투척까지 방패 없이 피해내는 세리안을 보며 드낙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소리 없이 감탄했다. 특히나 드워프가 힘이 대단해서 속력은 인간의 반응 속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그걸 그저 〈수싸움〉으로 회피해낸 것이 세리안이었다. 본능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캐치해낸 것도 그녀였다. 본능과 이성이 하나 되어 드워프를 관측하고 있으니, 이길 수가 없었다.
바라보고 있는 드워프가 큼지막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거침없이 처맞고 있는 가락 망치 때문이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연타를 자꾸 처맞으니 실로 꼴사나웠고, 너무나도 굴욕적이었다. 구경하던 드워프가 결국 대련 중단을 선언했다.
“왜 막아? 나 아직 멀쩡하다니까!”
둔감함 때문에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가락 망치가 콧김을 내뿜었다. 반면 드워프들은 달랐다.
“그만하면 됐어! 망치 가문다운 우직함을 보여줬다.”
“맞다. 맞다.”
세리안은 투구를 벗었다. 상쾌한 표정이 드러났다. 드낙이 툭 하고 내뱉었다.
“표정 관리 좀 해라.”
“응? 그렇게 티가 나나.”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리안이 손으로 입과 볼을 주물럭거리며 무표정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스트레스가 좀 풀려?”
“때리는 맛은 있는데, 반응이 적어. 새벽 훈련을 그냥 대련으로 바꾸면 안 돼?”
드낙은 칼같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나도 대련에서는 기술력과 눈치싸움이 더 큰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조건 속에서 싸우면 세리안과 드낙은 백중세를 유지했다.
서로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큰 제약이었다. 강자에게 가장 힘든 것이 대련이었다. 반면 약자에게는 아주 재미난 것이 대련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딪쳐도 상대 가능하고, 승률도 나쁘지 않았기에 최고의 자극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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