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7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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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의 건축 파괴술.’
드낙은 제법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현대인답게 상상력만큼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풍부했다. 그건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 재능이었다.
작정하고 논다면 평생을 놀아도 부족한 것이 현대였다. 그 파편을 맛본 드낙 또한 상상력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병목현상이 일어날 거다. 이 주변에 하중이 높아지면 근처 건물이 무너지게 하면 된다.”
드낙이 제법 웃음기를 머금은 상태로 드워프들에게 말했다. 삼거리였지만 성벽으로부터 직선로는 넓었지만, 중앙으로 도달하는 길은 점점 좁아졌다. 삼거리의 광장 같은 곳에서 잔뜩 모여서 대기할 게 분명했다.
‘이런 곳에 확실하게 인력을 투입해야지.’
“어떻게 말인가?”
“뭐, 축성 기술 같은 걸로 안 돼?”
드낙의 말에 드워프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니, 땅이 꺼지는 거랑 축성 기술이랑 뭔 상관임? 거기에 하중이 어느 정도 도달되려면 지하에 장치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데?”
“아. 그런가?”
기대감이 서려 있던 말투가 푹 꺾이자 드워프들이 괜히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면서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못한다는 건 아냐!”
“가능해?”
“가능하긴 하지.”
“좋아, 좋아. 역시 드워프야.”
드낙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함정에 대해 다양한 주문을 했다. 벽을 통과하는 〈진흙 해골〉에 대한 카운터 함정도 준비하는 면모를 보였다.
마신장은 덩치가 덩치였기에 사실 장애물로 막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성벽이 무너지면 막을 수가 없었다.
세리안은 드워프들에게 전술을 가르쳤다. 간단한 전술이어야만 했는데, 생각보다 드워프들의 전술 두뇌가 멍청했고, 그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마신장이 휘두르는 할버드도 잘 막아내는 130~160cm의 드워프들이다. 총포를 주력으로 쓰는 하프 드워프와 달랐다.
전술과 전략이 발전할 수가 없는 종족이었다. 그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엘프가 아니었다면 성벽조차도 없이 살았을지도 몰랐다.
“아니, 튀어나와있잖아. 안 보임? 좌우정렬!”
“좌우정렬!”
드워프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뒷걸음질 쳤다.
“앞으로 10보 진격!”
“앞으로 10보!”
열 걸음을 가면서도 서로 보폭이 달랐고, 시작하는 발도 달랐다.
“왼발 먼저! 방패를 쥔 방향의 발을 먼저 앞으로 움직여라! 서로 보폭을 맞춰라!”
앞으로 가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드워프들이 많았다. 인간과는 달랐고, 드워프라는 종족이 가지는 전술 능력치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제식을 배워도 못 배우고 졸업하는 극소수의 훈련병이 이곳에서는 절대적 다수였다.
‘드워프식 전술을 개발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일자진조차도 어려운데 그걸 몇 열로 만들어서 운용한다? 차라리 강아지가 사람 말을 하는게 더 빠를지도 몰랐다.
짝짝!
세리안이 손뼉을 치며 드워프들을 가까이 오게 만들었다.
“5인 1조로 뭉쳐봐라.”
그 정도는 껌이었다. 세리안은 그냥 〈숲 전술〉을 개조해서 드워프에게 접목하기로 했다. 나무가 무성하고, 땅의 높낮이가 차이가 나는 숲에서는 점 전술이 평균적이었다. 숲에서 점 전술을 쓰는 게 싫다면 벌목을 하고, 흙을 메우고, 포대를 겹쳐놓아서 진형을 만들어야 했다.
“5명은 1조가 된다. 그 조는 항상 뭉쳐 다녀야 할 것이다. 각자 로테이션을 돌린다. 2명은 앞에 서고, 2명은 도약하고, 1명은 뒤를 봐준다.”
“그 뒤에는 앞에 섰던 드워프 2명 중 1명이 뒤를 봐준다. 나머지 1명은 도약하는 곳으로 향한다. 서로 체력이나 피해 정도를 보고 요량껏 하면 된다. 자기 의견을 먼저 내세워라.”
개개인의 판단에 전술을 맡겼다.
“훈련은 항상 실전과도 같아야 한다! 바로 전투 현장이 될 곳에서 훈련하겠다. 다른 드워프가 훈련하는 걸 보고 그 눈에 똑똑히 새겨넣어라.”
1인칭의 세상을 살아가는 드워프에게 3인칭의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땅! 땅! 땅!
〈단단한 철〉은 거침없이 망치질을 시작했다. 리듬을 타며 다릿심이 허리를 타고 어깨를 지나 그대로 손으로 옮겨져서 거침없이 내려쳐 졌다.
그저 박자를 맞추는 게 아니었다. 전신의 근육을 사용해서 망치질을 하는 건 이류 대장장이의 소양과 같았고, 일류가 되어서도 사용하는 기법이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갔지만, 결코 눈을 감는 법이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붉은 루비〉가 루비를 세공하고 있었다. 반지 내부에 있는 엄지손톱만 한 루비에 멋진 화염 문양이 새겨졌다. 그 화염 문양이 완성된 루비의 내부에는 진짜 화염이 회전하고 있었다.
〈드워프의 손길〉은 드워프마다 제각각이었고, 변화무쌍했으며 같기도 하지만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또 달랐다. 그 정도로 개체마다 다른 손길을 지니고 있었다.
마수들의 행군이 끝나고, 수성전이 시작되었다. 척 봐도 영광로를 데우며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는 드워프 지상 요새였다. 관심이 안 끌릴 수가 없었다. 대량의 숯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게으른 마신장이 관리하던 지상 요새였기에 대부분의 물자가 남아있었고, 위험해 보이는 건 그냥 성벽 밖에 버렸으므로 주워다가 쓰면 그만이었다. 아쉬운 것은 화약이 없다는 점이었다.
“허접한 종. 족.아! 죽음이 왔다!”
이 차원계에 침입한 마신장 중 서열 2위인 〈바르디(Bardi)〉가 거침없이 고함을 내질렀다. 속도의 마신장이라 불릴 정도로 재빠른 것이 그였다. 속도로 치면 발라쿠보다도 빨랐고, 덩치 또한 7.8m에 달했다.
모인 300마리의 마신장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아니었다. 보통 마신장이 6m라는 걸 생각했을 때 마신의 영토가 되어버린 곳에서 마신장들의 그릇은 효율적으로 힘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6m 미만인 마신장이 없을 정도였다.
평균 6m인 종족이 6m 미만이 거의 없다는 건 실로 황당한 경우였다.
그걸 내려다보는 드워프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척을 했다. 사실 뭐 던질 것도 별로 없었다. 성 내부에 함정을 설치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드낙은 성벽 위에 올라와서 사위를 훑어보기 바빴다. 바로 지휘관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놈이다.’
눈치 빠른 드낙은 어렵지 않게 바르디를 찾을 수 있었다. 이리저리 명령을 하는 건 물론이고, 같은 마신장임에도 마신장을 이리저리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곳에서 마신장들이 편제를 이루어서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마수가 워낙 많으니, 사방으로 후려칠 생각이네.”
공격로를 몇 개로 설정해서 때리는 공성이 아니라 그냥 전방위를 무식하게 후려치는 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드낙에게 세리안이 조언했다.
“마신장의 마법이 몇 곳에 집중될 거야. 다른 성벽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곳이 마수들의 진입로로 바뀔 테니까, 참고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드낙은 대답을 하긴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데 방향을 가늠하는 건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한 번에 수십 가지 요소를 머릿속에서 계속 쥐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는데 적의 공격로까지 생각하며 움직인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하는데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과 같았다.
멀티테스킹의 이단아가 바로 드낙이었다.
‘확인하고 싶으면 지붕 위로 올라가서 확인하면 되겠지.’
드낙은 마신장 바르디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자신감을 느끼고 있어 보였는데,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보다 덩치 큰 마신장을 찍어누르기 때문에 아주 재미날 것이다.
‘성벽을 넘고 들어오는 순간, 넌 죽는다.’
이미 마신장의 시체를 통해서 검증까지 마쳐놓은 상태였다.
“쿠워어어어!”
온갖 기괴한 형태를 지닌 마수들이 진격했다.
“공격 개시!”
“와아아.”
드워프들이 맥없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리저리 깃발을 들고 달리는 드워프 덕분에 제법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마신장의 마법을 사용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준비가 미흡했다. 물론 시각적으로 형편없어 보이는 저항이었지, 생각보다 많은 마수가 돌, 나무 따위에 머리통이 함몰되고, 어깨가 내려앉고, 등이 꽂혔다.
‘이놈들, 형편없구나!’
용암이 흘러내리는 드워프의 지하 요새를 경험한 바르디의 눈에는 실로 형편없이 보였다. 곧장 고함을 터트려서 마신장까지 진격시켰다. 성벽을 무너뜨리고 남은 건 학살뿐이다.
그의 적을 할버드로 찍고, 날아가는 드워프에게 달려드는 마수에 둘러싸여 지치게 만든 뒤에 죽을 것이다.
“후퇴 깃발을 내걸어라!”
드낙이 고함을 지르며 바르디와 마신장이 제대로 전진하자 냉큼 도망을 쳤다. 드워프들이 수십 미터 되는 성벽에서 도망쳤다.
마신장들이 지닌 성벽에 대한 이미지는 빨리 무너뜨리면 무너뜨릴수록 좋았기 때문에 단번에 성벽 한쪽이 무너졌다. 동서남북, 4갈래로 나누어진 마신장들이었기에 무너진 성벽은 총 4곳이었고, 그곳으로 마수들이 마구잡이로 몰려들어 갔다.
자연스럽게 병목현상이 일어났고, 마신장들도 일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쪽에 자리를 잡은 드낙은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갔다. 내부에는 새것처럼 보이는 기둥이 하나 있었고, 그 외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드낙은 투창기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길었고, 층수로 따지면 2층이지만 3층과 같은 높이였다.
지붕을 자르고, 새로 높이만 높인 비계나 다름없었다.
그곳에는 투창이 쌓여있는 상자가 가득했다. 길이만 2m에 달하는 투창은 실로 흉악스러웠다. 전투 통짜였는데, 망치 가문원들이 집의 자재를 강철로 변환시키고 만들어준 것이었다.
드낙이 투창기를 만지작거렸다. 뭉툭 튀어나온 나무 작대기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가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투창을 맨손으로 던지는 놈은 병신 중의 상병신이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스피어 스로워(Spear Thrower)의 역사는 사냥에 있었다. 열병기를 통해서 인간이 진정으로 야수들을 자신의 영토에서 밀어내기 전까지 애용된 사냥 무기이기도 했다.
투창기는 투창 받침대와 같았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힘으로 밀어서 던지는 종류의 투척 보조대였다. 뭉툭 튀어나온 곳에 창자루의 끝 부분을 대면 끝이다.
실로 없어 보이는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맨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3배 정도 멀리 날아가게 해주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맨손으로 100m를 던지는 것도 힘든데 최대 300m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당연히 무게가 5kg가 넘으니 맞는 놈은 그냥 끝난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 유효 사거리는 100m이며, 이는 활의 유효사거리인 50~100m와 같았다.
‘명중률이 낮지만, 마신장의 덩치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생각이지.’
저런 거대한 과녘을 상대로 못 맞춘다? 사냥꾼을 접어야 한다.
“후우우.”
드낙이 심호흡을 했다. 마수가 지나가는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드낙의 존재감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인기척 하나 없었다.
‘악마의 힘.’
육체 그 자체를 초월의 힘으로 사용하는 정신 나간 종족이 바로 악마였다. 드낙에게 그 피가 절반 있었다. 그 피는 빠르게 드낙의 육체를 변이시켰다. 어깨가 넓어지고, 오른팔이 길어졌다.
더 큰 원심력. 더 큰 기반을 만들었으며 척추가 바짝 조여지더니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압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척추가 강철검처럼 제련되어갔다.
한 발을 디디는 행동에서 나오는 힘도 있어야 했기에 하체 또한 굵어졌다. 마라토너의 다리가 아니라 오직 단 한 번의 동작을 위해서만 필요한 근육의 형태가 새로 짜였다.
그 모든 행동에는 3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투창을 투창기에 받쳤다. 창의 끝이 뭉툭 튀어나온 것에서 멈추고, 드낙이 어깨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하며 무너진 성벽을 주시했다. 탁 트인 곳이었지만 그 누구도 드낙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은폐 마법조차도 쓰지 않았음에도 관측되지 않았다. 살짝 튀어나온 지붕의 잔해에 그림자가 져서 드낙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 위치에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서 있는 것이 소름이었다.
마신장들이 고함을 지르며 할버드로 반폐허가 되거나 멀쩡한 집을 밀어버리며 진격했다. 그 여파에 마수들도 피해를 입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셀 수도 없는 마수들이 성 밖에 있었다.
‘왔다.’
드낙이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성벽을 껑충 뛰어오르며 신나게 내달리는 바르디를 볼 수 있었다. 〈속도의 바르디〉라고 불릴 정도로 재빠른 모습이었다. 그는 할버드의 무게를 이용해서 추진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휘이익!
할버드의 무게 때문에 도약했음에도 기이하게 방향이 바뀌었다. 무게가 실리자마자 확실하게 방향이 틀어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확인한 드낙이 그제야 한 발을 내디뎠다.
“......!”
이를 악물고, 호흡을 중단하고 전신의 근육에 집중했다. 눈은 오로지 떨어지며 적발을 휘날리는 바르디에게 향하고 있었다.
꽈아악.
몸 안쪽에서 근육이 커지며 탱탱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악마의 힘에 의해서 변형된 육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되는 기형적인 몸이었다.
대낮에 이루어진 마수들의 공격 속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뭔가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바르디의 눈에 잠깐 들어왔다.
눈이 깜빡여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코앞에 있었다.
푹.
그 어떤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손뼉을 쳐주며 투창의 뽀족한 부분을 막아줄 뼈층조차도 0.1초도 못 막아주었다. 그대로 이마의 정중앙이 꿰뚫리며 대뇌를 지나갔다.
쿠화아아아악!
뒤늦게 거친 바람 소리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귀로 들려왔지만 빠르게 멀어져갔다.
‘아.’
바르디의 눈알이 사방을 빠르게 훑었지만 빠르게 느려졌다.
쿵!
바르디의 뒤통수가 지면에 먼저 닿았고, 몸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할버드가 그 옆에 깊게 박혔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드낙이 눈을 깜빡였다. 저항도 못했다는게 황당했다.
‘되네?’
시체를 통해서 시험했지만 설마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을지는 몰랐다. 〈초월의 힘〉에 실로 대단한 저항력을 지닌 마신장이고, 동체 시력도 빨랐지만, 반인반마가 작정하고 쏘는 투창에는 무력했다.
주르륵.
어깨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피부가 찢어지고, 주변에 피멍이 들었지만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드낙은 곧바로 투창기에 두 번째 투창을 받쳤다. 그의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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