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68화 (667/1,239)

강철의 전사 66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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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장 발라쿠는 단번에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빠르게 조건들을 훑었다.

신중함이 돋보였다.

복수를 꿈꾸면서도 오랫동안 숨어 살았던 마신장이 발라쿠였다. 덩치가 컸음에도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굴속에 숨을 줄 알았다.

그건 발라쿠가 가진 야망 때문에 가능했다. 야망이 클수록 그때를 생각하며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야망 때문에 성질을 죽이며 살아오며 신중함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겁쟁이 마신장 리고처럼 일단 도망치고 보는 마신장도 아니었다.

황무지의 외곽에 자신의 미궁을 만드는 데 성공한 마신장이었다. 공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싸울 땐 싸우는 마신장이었다.

실력도 받쳐주고, 덩치도 제법 되었다. 그릇을 부술 정도로 답답한 시기를 뛰어넘을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또한, 과감하게 흑마법사들을 받아들여 동쪽으로 진격하는 면모도 보였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다양한 능력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곧 드워프들의 한계가 찾아온다.’

성채를 끼고 있어서 마수들의 피해만 있었지만, 드워프들은 초월의 힘을 빠르게 소모하고 있었다. 그게 바닥을 보이는 순간, 발라쿠가 직접 나서서 성문을 부술 것이다.

그 거대한 덩치는 걸어 다니는 공성 병기나 다름없었다. 포격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오면 단번에 성채는 함락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증원군이 필요하다. 고로, 증원군이 계속 이곳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후방의 안전이 필수적이다.’

작은 전조라고 할 수 있었다. 가볍게 여길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전조현상 불과하지. 하지만 위협적인 것은 확실하다.’

오우거 신단을 파괴했다는 것 자체가 위협적인 행위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위협도는 매우 높은 행위였다. 작은 도시의 발전소를 파괴하고, 시청을 무너뜨린 것과 같았다. 죽은 이는 적었지만 그런 큰 시설이 타격받으면 사회가 들썩인다.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붕괴한 그릇은 〈검은 돔〉의 완성을 통한 공으로 마신에 의해서 완벽하게 수복되었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의 전쟁을 일으킨 마신장을 가만히 놔둘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여기까지 와서 실패한다면 죽음뿐이었다.

‘양면전선이 형성되면 전세가 뒤엎어질 수 있다.’

양쪽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장기전으로 향한다면 발라쿠가 참전하지 않는 쪽이 무너질 공산이 컸다. 그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했다. 특히 현재 전황에는 역린이 존재했다.

‘쐐기꼴로 진행하고 있어서 잠자는 드워프들을 많이 죽이지 못했다.’

중앙집권형태의 드워프 제국을 상대하면서 중요 거점만 털어버리는 전략 외 다른 걸 선택할 수 없었다. 그 역린을 상대는 무조건 건드릴 것이다. 쿡 찌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게 분명했다.

‘과감하게 병력의 절반을 후방으로 돌려서 작지만 위협적인 적을 처단한다.’

경쟁자의 아이가 맹독을 지닌 뱀을 잡은 모습을 본 정적처럼, 반드시 일찍 죽여야 했다.

“〈바르디(Bardi)〉를 불러라. 병력을 절반 떼어내 후방의 위협을 없애도록 전해라.”

“예!”

그림자 백인백골기사가 모습을 숨기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상황은 완벽하게 돌아가야 한다.’

발라쿠는 그런 여유가 존재했다. 포자로 뒤덮인 드워프 산맥 전역에서 만들어지고 생산되는 마신장부터 이미 승세는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상에서 지하로 뻗어 나가는 마수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마수들 또한 비정상적으로 많은 생산량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만큼 검은 포자 가오리가 만들어낸 생태계에서는 식량이 많았다.

발라쿠 다음으로 덩치가 큰 바르디가 드워프 전선에서 빠졌다. 마신장들이 썰물처럼 반토막이 났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중간 혹은 후방에서 마법으로 포격만 방어하는 마신장들은 워낙 많이 살아남아 있어서였다.

*

드낙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더 완벽한 가지치기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야수 기사의 군사학서를 토대로 만들었지만, 머리 하나보다는 여러 개가 좋았다. 세리안의 경우에는 그런 짜잘한 전략을 싫어했으므로 좋은 의견을 받지도 못했다.

“다들 의견을 하나씩 말해봐.”

검은 꿈에서 의견을 종합한 드낙은 흡족하게 완성물을 바라보았다.

‘드워프의 역량이 충분히 높아져야하기 때문에 가지치기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전략의 기본 주춧돌이 되는 근거는 드워프의 전투력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그 공백 기간을 리고와 마수를 통한 지하 소규모 전쟁이 계획으로 잡혀 있었다. 생태계를 무장한 리고와 마수를 통해서 파괴하여 후방 역량을 감소시키는 게릴라 전술이었다.

그 사이에 드낙은 잠자는 드워프를 꿈을 통해서 깨우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육체의 힘으로 마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 동반되어야 할 것은 구리나 철 따위의 가느다란 선을 통해서 〈꿈 주술 마법진〉과 연결시켜 장거리에서도 마력과 주력을 보충시킬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대장장이 계급에 속하는 드워프 가문을 깨워서 지상 전쟁을 선포한다.’

못해도 1만의 드워프를 깨우고, 무장을 갖춘 뒤에 지상으로 향해서 마신장 생산 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거기까지 도착한다면, 상대는 양면 전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뒤로 빠지며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

양면전선은 무조건 장기전으로 가야지만 효력이 곱절이 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여기까지가 드낙의 가지치기 전략이었다.

“완벽하다.”

드낙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가 이내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세파리아스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검은 꿈에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팔아!”

......

“장인 어른?”

“헛소리! 내가 널 인정할 것 같으냐?”

프라이드가 높은 만큼 작은 도발에도 쉽게 넘어가는 게 세팔이였다. 물론 규모가 크거나 중요한 시점에서는 이런 하찮은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높은 프라이드와 높은 지능이 같이 있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넌 뭐, 가지치기 전략에 대해서 고쳐야 할 점이라던가 한마디 할 생각 없어?”

“없다.”

“왜?”

“전제부터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드낙은 머리가 띵해왔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폭군. 무림에서는 살인멸구를 좋아하는 마교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게 세파리아스였지만, 귀족답게 어렸을 때부터 손에 물집이 잡히고, 끝없는 교육에 몸담은 자였다.

그가 하는 소리는 감정적인 것을 제외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들을 가치가 있었고, 어느 정도 기준이 잡혀있었다.

“갑자기 무슨 띵한 소리야?”

경박하고 천박한 드낙의 말투에 세파리아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전쟁은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네 전략은 애초에 잘못되었다.”

그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되고, 이해되었기에 기어오르는 발바룽이 감탄을 내질렀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 안타까운 드낙은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봐.”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드낙이 턱짓하며 상관인 척 굴자 세파리아스의 목에 핏대가 살짝 솟았다가 사라졌다.

“네가 완벽할 때쯤이면, 적은 더 완벽해진다는 소리다. 서로의 역량을 먼저 살펴봐라.”

산맥을 지배하고, 지하까지 마수 생태계를 꾸린 마신 세력. 그에 비해서 드낙은 8천의 드워프와 수백 남짓의 마수를 조종하는 마신장 하나뿐이다. 그 마신장도 체격이 아주 낮았다.

‘듣고 보니 그렇네.’

“그걸 왜 이제 말해줘?”

“크게 얻어맞아야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매년 시험을 여럿 치면서도 항상 똑같이 되풀이되는 실수와 잘못된 습관들! 그건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았다. 다행이라면 드낙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적을 쳐도 똑같은 거 아니냐? 상대는 얻어맞으면서도 준비를 마칠 수 있잖아.”

그 말에도 세파리아스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무얼 걱정하는 거냐? 드워프가 공멸하든 말든 하등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을 죽이면 그만이다. 놈과 일전(一戰)을 벌일 수 있는 상황까지만 가면 된다.”

“시체를 쌓아올려서라도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넌 강해진다. 그걸 명심하고, 싸움에 임한다면 능히 승리를 거머쥘 찬스가 온다.”

‘무식하게 전투를 이어나가라는 소리네.’

실로 맹장(猛將)같은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들렸다.

‘내가 알게 뭐야?’

드워프 전력을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건 현대인 특유의 정예병 폴인러브 때문이었다. 일단 비싼 놈은 킵해두고, 더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드낙에게는 있었다.

이미 덩치가 한참 커진, 마신의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도박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써야 하는 드워프들은 죄다 잠자고 있었다.

‘말을 번복하는 것이긴 해도, 세파리아스의 의견을 들어서 설득은 가능하다.’

전쟁은 상대적이다.

그 한 마디는 드워프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지상의 거대하고 광활한 산맥을 지배한 마수를 상대로 만전의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싸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가볍게 떠오르는 발상으로 툭 튀어나온 드낙의 가지치기 전략은 실로 형편없었다.

전략 전술을 알아도 천재적이지 못한 두뇌에서 나오는 것은 실수가 툭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나 그렇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였다.

검은 꿈에서 깬 드낙은 곧장 드워프들을 불렀다. 그 모습에 세리안이 재미난 것을 본 것처럼 싱글거렸다.

“결국, 내 말대로 하네. 무조건 빨리 박살 내는 게 최고라니까.”

“후우.”

드낙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열세인 상황에서는 뭐가 되었든 간에 상대가 좀 빈틈이 있다 싶으면 죽창을 냅다 꽂아버리는 게 가장 좋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10년이든 30년이든 버티면서 기회를 봐야 했다.

그가 후자를 선택할 리가 없었다. 제국과 엘프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불러? 대장간도 아직 미완성이고 장비도 이제 겨우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드워프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전략을 엎고,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야 할 것 같아서.”

“그, 가지치기 전략이었던가? 나름 괜찮던데. 드워프가 모두 모이고 힘을 모아서 후려친다면 마신의 세력 따위 한 주먹감이지!”

제국에 대한 우월감이 절로 보였다. 엘프조차도 드워프와는 상종을 안 할 정도였으니. 그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실수를 해버렸다.

‘너무 드워프의 강힘을 믿고 있었다. 상대는 마신장임에도...’

이것은 화약이다.

이것은 물질 변화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니 눈이 홀리고, 귀가 팔랑거릴 수밖에 없었다. 검을 휘두르고 활 쏘는 애가 기관총과 외골격 중갑 갑옷을 봤으니 눈이 돌아갈 만했다.

특히 일반 전신갑주가 2mm~5mm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 수십 배에 달하는 드워프 중갑 갑옷은 혁신이나 다름없었다. 그 구조는 중갑 갑옷에 외골격 장갑처럼 추가로 덧붙이는 식이었기에 불편함도 없었고, 오히려 체격이 커지는 감각을 부여했다.

물질 성질 변화를 통해서 운용하는데 특별한 불편함도 없이 장점만 획득 가능했다.

“전쟁인 상대적이다. 이 대전제를 먼저 두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마신장과 드워프를 비교하면 우리가 우위지.”

드낙이 눈을 2번 깜빡거렸다. 시작부터 막혔기 때문이다.

“아니...”

“어어, 지금 그 발언 아주 조심해야 할 거야.”

엄한 망치가 드워프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려고 하는 기색을 느끼자마자 한 소리 했다.

‘이런 미친?’

가히 세파리아스급의 프라이드에 드낙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상대의 상황을 봐봐. 지상의 산맥에서 마신장이 쏟아져나오고 있잖아.”

물론 과장된 표현이었다. 드낙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마수 생태계는 어떻고? 그게 감당이 될 것 같아? 우린 이제 대장간 세우고, 철을 생산하는 대장장이 계급도 없는데?”

“에이...그래도 드워프 자존심이 있는데. 우리가 열세라고 말하기는 좀...”

“자존심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니라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라니까?”

“화약만 얻으면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신장의 마법이라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지 않나.”

드낙이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우리 화약이 더 먼저 떨어지지! 하루에 십여 마리씩 마신장이 생산되는데! 걔들은 며칠 지나고 죽어 나자빠져? 계속 유지되고 쌓이잖아! 단순 산수만으로도 우리가 불리하지...않을까?”

드낙이 마지막 가서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며 억지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씁...하, 그래도 난 좀 인간의 의견에 반댄데...”

높은 망치가 고개를 살짝 틀며 말했다.

세리안은 드워프들을 미친놈 보듯이 보더니 이내 드낙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귓속말로 조언해주었다.

“미친놈들이야. 정상이 아니야. 그냥 불파겐 가문식대로 밀어붙여. 그래야 말을 들을 놈들이야.”

드낙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엄지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화답해주었다.

‘너희 가문도 미친놈들이야...’

한쪽에는 프라이드가 뇌를 지배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호쾌한 유혈사태에 뇌가 절어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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