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6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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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제가 필요하다.’
둔감한 드워프들의 의욕 저하는 종족 특성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성제가 필요했다.
당연히 히로뽕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이나 카페인(Caffeine)
니코틴(Nicotine) 등을 드낙이 만들 수 있을 리 없었다.
현대 화학의 ㅎ자도 모르는 게 박호훈이었다. 원소 기호를 말하라고 하면 철! 구리! 라고 외칠 수는 있지만, 기호는 어버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결국 판타지 세상의 화학 지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흰여우 새린의 중급 연금술〉.
마력을 딱 담아서 쓰는 마력 연금술에 턱걸이를 딱 하는 수준의 연금술이었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딜 가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이런 지하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마법진과 토템이 마력과 주력을 채워놓고, 드낙은 지하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 단 2개만 선택했다.
하나는 〈고약한 벌레잡이 뿌리〉라고 불리는 살충제였다.
‘곤충에게는 죽음의 독이지만 우리에게는 각성제지.’
피부 흡수가 빨라서 먹거나 태워서 흡입하기보다는 손바닥같이 흡수가 잘 되는 부위에 바르는 게 옳은 사용 방법이었다.
기호에 따라서 그냥 갈아버린 것을 손에 묻히기도 하지만, 보관이 힘들어서 바짝 말라 가루로 만들고, 물이나 전분과 함께 잘 섞어서 손에 묻혀서 사용하는 게 정석이었다.
매우 빠른 작용을 하는데, 단 5초에서 10초 만에 각성 효과가 일어나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고, 강점이었다. 반면 1시간 이내로 효과가 사라지며, 성분 또한 3시간 내외로 몸에서 사라진다.
‘가장 큰 단점은 중독되기가 쉽다.’
성분은 빠르게 사라지지만, 엄청난 즉효성은 빠르게 뇌세포를 미치게 하고 해당 물질을 계속 원하게 만든다.
그다음은 〈바스락 지하버섯〉이었다. 바짝 말라 있는 버섯이다.
중추신경을 흥분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고, 각성 상태와 기분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효과가 일정 수준으로 오르는 데에 2시간은 지나야 하는 느린 작용물질이었다. 동시에 느리게 체내에서 배출되는 편이었다. 효과 지속시간 또한 3~5시간으로 매우 긴 편이었다.
하나는 발라야 했고, 하나는 차로 우려내거나 씹어서 먹어야 했다.
‘두 가지를 적절히 쓴다면, 드워프 제국은 다시 한 번 비상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드워프들에게는 이게 정상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몸이 둔감하기 때문이기에 반드시 마력 공정을 거쳐서 생산을 해야 했다.
물질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선까지만 허용되는 것이었다. 대체로 광물 같은 것들이었다.
식물은 직접 키워야 하고, 순수한 마력 공정은 〈드워프의 손길〉에 강제되어 벗어날 수 없는 드워프들의 힘(力)과는 전혀 달랐다.
‘드워프 종족이 지닌 육체적 벽을 뚫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식적인 연금술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약의 효력을 보정하기 위해서 마력이 사용되지만, 드워프 전용 물약은 마력으로 드워프의 방어 체계를 뚫고 물약의 효력이 적용되어야 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지. 강력한 송곳이 필요하다.’
드워프의 육체에 부여된 종족값을 뚫을 송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송곳은 효율성이 매우 높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드낙 혼자서 만들 수 없었다.
“거대한 저주 시설?”
드낙은 깨어있는 전사 계급의 드워프들에게 제안했다.
“항상 정신이 맑고, 감각이 어느 정도 보장되며, 적당히 기분도 좋아지는 약을 드워프에게 투여하기 위해서는 초월의 힘을 통해서 드워프의 신체 방위 체계를 뚫고, 효력이 스며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불가능한 건 아닌데...가능할지는 모르겠는걸. 대장장이 계급이라면 가능할지도.”
“음.”
드낙은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대장장이 계급이어야지만 가능한 일인 듯했다. 못해도 적혈 대검을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대장장이 드워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제대로 확 감을 잡고 말하는 전투 계급의 드워프들의 말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냥 죽일까?’
드워프 전투 가문인 망치 가문이 단기간 내에 전투력을 바짝 높일 수 없음을 알게 된 드낙은 음흉한 생각을 가졌다.
모조리 죽여서 업으로 먹어치우는 마음이 불쑥 생겨났다. 간사한 인간의 사악한 생각이었다. 동시에 강력한 생존 본능이기도 했다.
‘8천에 달하는 드워프 전사들을 내 손으로 죽인다면.’
단번에 이 육체에 스며들어있는 악마의 힘을 드높일 수 있을 터였다. 또한 드워프 전사의 능력을 획득할 수 있어 보였다. 육체를 변하게 하는 악마의 힘은 커지면 커질수록 드낙의 그릇을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독불장군(獨不將軍), 독고다이. 말만 그럴듯했다. 규모의 힘에 찍어 눌러져 환상에 찌든 사상에 불과했다.
개체 하나는 결국 한계가 존재했다. 현재 드낙의 경우에는 반신(半神)급이 한계였다. 신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업이 충분히 쌓여야 했는데 그게 상당히 아득한 수준이었다. 고로, 이렇게 발품 팔면서 현지에 살아가는 종족들을 규합하고 관계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무림일통을 꿈꾸는 마교가 집단인 것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이 국가를 이루는 것도 이와 같았다. 한 손으로는 결코 열 손을 못 이긴다.
오크의 도끼가 병사들의 장창 여러 자루에 막히고, 기사에게 멱이 따이는 것처럼.
트롤이 연전연승을 거듭하다 나무창에 찔려 심장에서 뿜어내는 피가 한 줌도 안 남게 되는 것처럼.
집단 속에 존재하는 초월자와 강력한 실력자들을 마주한 드낙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딴생각하는 드낙은 실로 긴 고민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냥 만들어 보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엄한 망치의 말에 드낙은 절로 손사래를 쳤다. 여기서 상당한 규모의 공정 시설을 만들었다가 실패하면 시간과 노력을 통째로 버릴 수밖에 없어서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대장장이 가문〉도 일주일은 가야 한다면서? 너무 멀어.”
드낙의 말에 높은 망치가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여기 있는 드워프들 죄다 깨워도 쓸 무기와 방어구가 없다. 어찌 되었든 대장간을 만들기는 해야 한다. 겸사겸사 대장간을 만드는 김에 같이 만들면 그만이지.”
썩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드워프 지상 요새에 무구가 남아있을까?”
“퍽이나! 지성(知性)을 지닌 마신장이 가만히 둘 것 같나? 처리하거나 재활용했을 것이다.”
전사 계급의 물성으로 바꾼 강철은 한계가 있었다. 무식하게 두껍게 만들어도 특수한 드워프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신기하고 강력한 능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피를 묻히면 절삭력이 높아지는 적혈대검처럼 특수한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장장이 계급이 필요했다.
“그럼 당분간은 평범한 철제 무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8천의 전사 계급 드워프를 얻어도 큰 이득이 없었다.
‘압도적인 교환비로 가지치기 전략으로 포자 산맥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일이 틀어지는구나.’
절로 쓴맛이 느껴졌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다행이라면 〈망치〉에 대해서는 우리 망치 가문의 일원들 또한 특수한 능력을 부여할 수 있지.”
“어떤 능력인데?”
드낙은 그렇게 물으면서 〈전사 계급〉 중에서도 가문이 제법 높은 드워프는 특별한 능력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요한 정보였다.
“더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지?”
“실력 좋은 망치 가문원이 만들면 드워프 한 명이 함께 휘두르는 것과 같다.”
“여기 잠든 드워프 중에 대장장이 실력이 좋은 드워프가 있나?”
“높은 망치가 있지! 그 외에도 100명은 될 거다.”
드낙이 박수를 한 번 딱 쳤다. 하늘이 무너져도 도망칠 구멍은 있는 법이다.
“그럼 여기에 대장간을 차리자. 내가 부탁한 건 안 만들어도 돼. 만든다면 확실해야 한다.”
엄한 망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간은 어느 정도 약속되어있다.’
드낙이 만든 꿈을 경험한 드워프들은 어느 정도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거나 무기력하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마수들은 바위를 캐고, 망치와 거푸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가져다 놓았고, 이를 드워프들이 다시 옮겼다. 비효율적이었지만 드워프들은 이곳에 마수들의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마신장 리고는 주변에 사는 마수들을 포섭하며 덩치를 키웠다. 드낙 일행에게 마수가 죄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세리안은 드낙을 두들겨 패면서 기(技)와 심(心)을 숙련시키는데 공을 들였다. 육(肉)을 단련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인간을 초월한 능력치를 지녀서였다. 반면 기술은 아직도 이류 중반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심은 중립신과 협상을 치르면서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많았다.
수틀리면 도망친다는 마음가짐이 바탕에 깔렸었기에 무인의 마음을 심고, 싹 틔우고, 꽃잎을 만개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게 드낙이었다. 다행이라면 세파리아스의 찌꺼기가 장기간 드낙의 마음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두 가지의 다른 마음가짐이 공존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마신장과 마수들이 입을 장비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대장간에서 조금이라도 생산활동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드낙이 폭탄선언을 했다. 드워프들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신이 이곳에 눈길을 가지게 되면 마수들이 적으로 변할 텐데!”
“마신은 그럴 신이 아니다. 도박이지만,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축내고 있는데, 리고가 더 많은 군세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다른 마신장을 죽일 수 있어야 해.”
드낙의 음흉한 계략 중 하나였다. 전차원계에 아무렇게나 찍찍 싸고 다니고 있는 것이 마신이었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거고 성공하면 성공하는 거라고 여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한 곳에 눈을 두어서 하나하나 결정하기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낙은 중립신을 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신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해볼 만 하다.”
드낙의 거듭된 설득에 드워프들은 마신장 리고와 쇠사슬 괴인에 대한 장비만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는 곧 리고가 드낙을 조금 더 믿게 하였다. 또한 함께하면 이득인 관계로 여겨지게 되었다. 단순 협박 상대가 아니라, 주고받는 거래 상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른다. 진짜로 영토를 줄지도.’
은근 기대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드낙을 신뢰하지 않았다.
*
부글, 꿀럭!
끓어오르는 용암에서 거품이 터져나갔다. 60m가 넘는 거대한 성벽에서 용암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드워프 대장장이 계급에 속하는 〈불타는 가문〉이 지키고 있는 〈폭포 용광로 성채〉는 용암이 흐르는 성채였다.
콰과과광!
성벽 곳곳에 자리 잡혀있는 구멍에서 대포가 쏟아져나왔다. 내부에는 시한폭탄이 내장되어있었고, 묵직하고 굵은 대포로 상대를 박살 낸 뒤에 땅에 떨어지고 십여 초 뒤에 폭발하며 광역 피해를 주는 〈위대한 천벌〉이라는 무기였다.
굵은 대포알은 중대형에게 효과적이며, 일정 시간 뒤에 폭발하여 철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기에 소형에게도 효과적이었다. 또한 마수 외의 지성종족에게도 큰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대포알이 떨어진 공간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진형을 갖추는 것도 힘들고, 점령한 땅에서조차도 드워프에게 족족 공간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1개의 대포가 3개 이상의 이점을 보여줄 수 있었다.
성채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드넓은 해자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검게 탄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용암은 시체를 지나 땅을 타고 흘렀다.
“크아아!”
휴식 시간 없이 계속해서 마수가 성채를 두들기고, 타고 오르고, 성문을 후려쳤다. 지하에 존재하는 이 거대한 공간은 제국의 중심부로 향하는 〈중앙 도로〉였다. 드워프 제국이 중앙 집권 국가임을 말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사방을 가리는 방패(sabang-eul galineun bangpae)!”
마신장들은 멀리서 마신의 은총과 권능을 통한 마법으로 드워프들이 쏘는 포탄을 막는 데 힘을 사용했다.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없었지만 7할의 포격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 정도로 마신장이 많았다.
그 끝없는 전투 속에서 마신장(魔神將) 발라쿠(Balaku)는 가장 후방으로 향했다.
새로 들어온 소식 때문이었다.
정보 체계가 엉망이었지만, 아주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의 부관이 정보력을 한 단계 올려주고 있었다.
“오우거 신단이 두 개가 파괴되었고, 마신장이 여럿 죽고 십여 명이 전투불능에 빠졌다고?”
〈백인백골기사〉의 보고에 발라쿠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검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에 롱소드, 숏소드와 방패 그리고 등에 짊어지고 있는 보통 대검보다 짧은 클레이모어를 무장으로 사용하는 이 〈그림자 백인백골기사〉는 발라쿠의 부관이기도 했다.
그림자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곳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발라쿠에게 중간에서 낚아채서 줄 수 있었다.
‘후방에서 문제가 생겼다.’
대규모 역습의 전조 현상처럼 여겨졌다. 발라쿠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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