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66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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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마신장, 리고는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말해주었다.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가장 먼저 신뢰의 의미로 정보를 건네주었다.
“마수의 진격속도는 빠르다.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맥을 뒤덮은 마수의 그림자를 봤을 터다.”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을 거 아냐.”
드낙이 실로 불안한 투로 말했다. 〈폭포 용광로 성채〉는 아직도 건재하다고 엄한 망치가 말하고 있지만, 그걸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로 리고의 정보도 100% 신뢰해서는 안 되었다.
“드워프의 지상 요새는 공략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지하 요새는 다르지. 내가 말하는 것은 넓게 퍼져가며 산맥 지하에 차곡차곡 마수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리고의 말에 세리안이 드낙에게 속삭였다. 착 가라앉은 여성의 목소리가 드낙의 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남자의 본성이 꿈틀거렸다.
“마신의 직속 마수 군단을 이곳에 불러올 생각인 거야.”
“그건 검은 돔의 마수 군단과 다른 놈들이겠지.”
야수 기사, 그라돈 토치라이트의 군사학서는 아직도 드낙의 모든 전투 상황을 짚어내고 고려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검은 돔의 마수 군단(geom-eun dom-ui masugundan)〉은 원거리가 많은 군단으로 모루를 담당하는 정예 보병조차도 백제 정예 병사인 방령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맥궁과 찰갑, 부무장으로 환도를 쓰는 자들이었다.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싸우는데 특화된 이들이나 다름없었다.
‘지하에서는 끽소리도 못 내고 뒈질 병력 구성이다.’
아무리 웅장한 드워프의 통로라도 한계는 존재했고, 드워프 거주지에 들어서면 드낙도 허리를 굽혀서 들어가거나 한쪽 무릎을 꿇고 질질 기어가야 했다.
‘어떤 놈들이 올지...’
그는 검은 돔의 마수군단을 떠올렸다.
‘결코 싸울 수 없었던 놈들이었지. 오히려 스스로 빠져줘서 길이 열렸다.’
운이 좋았다. 동시에 핏빛쥐들의 대대적인 출정이 가능했기에 피해갈 수 있었다. 황무지에는 지성종족이 매우 드물었고, 하프 드워프는 지하에서 살아갔기에 능숙하게 숨어서 마수 군단을 괴롭힐 수 있었다.
‘개같은 마수군단.’
드낙은 감히 싸울 수 없었던 군단이 검은 돔의 마수군단이었다. 불리하면 빠지는 놈들의 수비적인 태세는 실로 간악하고, 치사했으며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짓거리였다.
만약 드낙이 쫓아가서 회전을 걸었다면 〈니가와 전법〉에 휘말려 싸우지도 못하고 연합군이 패주했을 공산이 매우 컸다.
끝없는 일백야수와 몬스터와의 항쟁이 일어나는 북부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남부인들은 조총의 총포 소리만 들어도 지휘력이 낮다면 패주할 정도였기 때문에, 소중대형 마수들의 원거리 일제사격이 만들어내는 화력은 모루를 담당할 용병들을 한 방에 패주 시킬 수 있을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돔의 마수군단이 지닌 기울어진 특징을 생각하면 지하에 특화된 마수 군단이 올 것이 분명하다. 리고! 짚이는 게 없는가?”
리고는 이들이 검은 돔의 마수 군단과 마주했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냉큼 대답했다. 정보를 말하는 데 있어서 결코 주저하면 안 되었다.
“몇 가지가 있지. 가장 유력한 것은 〈쌍신의 마수군단〉이다.”
“좀 더 말해봐.”
드낙이 흥미를 느끼자 리고가 쌍신의 마수 군단에 대해서 자세히 말했다.
“호구...아니, 피의 신 아토라신과 마신 성현이 함께 조직한 마수 군단이다. 그 마수 군단을 이끄는 자는 피의 신 아토라신의 사도(使徒) 철혈(鐵血)이라는 자다. 여신이 가장 신뢰하는 챔피언이지.”
“철혈.”
이름부터 간지와 가오가 넘쳐 보였다.
“병력 구성은?”
세리안의 물음에 리고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수와 피의 신도들로 이루어졌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매번 소환될 때마다 그 구성이 다르다더군.”
그 변칙성을 드낙이 날카롭게 포착했다.
“지형 상황, 싸워야 하는 곳에 따라서 입맛대로 끌고 온다는 소리네.”
가히 만능의 마수 군단이라고해도 무방했다. 단점이라면 두 명의 신으로부터 힘을 받기 때문에 이 세계로 불러들이려면 업이나 힘이 많이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마신과 피의 신은 서로 동맹 관계인가?”
드낙의 말에 리고가 클클 웃었다.
“두 사람은 부부신이다. 그 때문에 많은 차원계가 난리도 아니지.”
“왜?‘
“피의 신 아토라신은 자신의 종교를 퍼뜨리는데 혈안이 된 여신이다. 그 덕에 온갖 곳에 쓸데없이 힘을 뿌리고, 쏟아붓고 있지. 거기에 마신이 도와주기까지 하니, 전차원계의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드낙이 반신에 턱걸이하며 신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면, 세리안은 무인답게 철혈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 세계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자여서였다.
“철혈이라는 자는 어떤 챔피언이지?”
“모든 차원을 이 잡듯이 뒤져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최강의 인간이다. 그가 아토라신의 사도가 되기 전에는 한 차원의 종족 전쟁에서 인간을 승리로 이끌 정도로 대단했지.”
리고는 실로 그 업적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오우거에게 있어서 개미 같은 인간 따위가 종족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한없이 낮은 확률의 가능성을 뚫었기에 믿기 힘들었다.
드낙 또한 인정했다. 자신의 경우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기 때문이다. 인간을 반쯤 버렸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활약할 수 있었다.
“한번 싸워보고 싶은데.”
세리안이 호승심을 드러냈다. 약간 들뜬 기색은 그녀와 살을 섞은 드낙밖에 모를 정도였기에 리고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드낙이 단번에 잘라냈다. 그런데도 세리안은 알았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 철혈이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잘라내지 않을 심산으로 보였다. 그리고 귀족에게 있어서는 말은 곧 자신의 명예와 같았기에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워프들은 잘 버티고 있나?”
리고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난 격전지로 가지 않고, 바로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모른다.”
그 애매함.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뜻이었다.
‘변수를 만들려면 지금뿐이다.’
“마수들을 데리고, 드워프들이 잠든 곳을 뚫어내서 그들을 깨워야 한다.”
드낙이 강한 어조로 말했고, 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은 또한 리고가 마수들을 데리고 오기 전에 마법을 잠깐 전수해주었다. 마력이 많은 오우거였고, 음흉한 리고였기에 함정 마법진에 대해서 간략한 기본 지식만을 전수해주었다.
‘이것만으로도 크게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은 정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함정 마법진 같은 것을 통해서 상대를 손쉽게 죽이는 것이라고 알게 될 터였다.
짝!
드낙의 기본 지식 전수에 리고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큰 깨달음을 얻은 철학자처럼 유레카를 외치듯이 박수를 쳤다.
리고가 지식욕에 눈이 멀어있는 사이에 드낙은 그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장치가 녹이 슬고, 빛을 잃을 때. 그때 드낙은 다시 선택해야 했다.
저 음흉한 오우거를 죽일지, 다시 한 번 신뢰 관계를 구축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나 같은 놈이다. 될 수 있으면 쓰고 버리는 게 좋다.’
동족혐오처럼 드낙은 리고를 신뢰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마수들을 통해서 무너진 길을 뚫는다! 망치! 정말로 호쾌한 해결방법이다!”
엄한 망치가 곳곳에 망치 소리를 냈다. 어디서든 쓸 수 있는 게 망치 가문의 망치라는 단어였다.
“여길 빠져나가서 쉬자.”
드낙 일행은 적당한 곳에 다시 굴을 파고,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드낙은 세리안이 지닌 작은 피로감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서 치유 마법을 사용해주었다.
“치유 마법 걸어줄까?”
드낙의 말에 엄한 망치는 상남자처럼 손을 팍 한 번 스윽 허공을 그어버리며 말했다.
“아니. 드워프가 이 정도로 지칠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는 망치 가문의 일원! 지상 요새를 수호하는 전사 계급이다!”
드낙의 반말을 엄한 망치는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있는 인간이었다. 간소한 식사를 하면서 드낙이 그에게 물었다.
“전사 계급과 대장장이 계급의 차이가 정확하게 어떻게 되지?”
“전사 계급은 물질을 변화시키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많은 공을 들여야 하지만 뼈를 강철이나 금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지. 반면 대장장이 계급은 손에서 돌을 뽑아내거나 보석을 토해낼 수 있다.”
“물질의 창조...”
‘나무를 황금으로 만들 수도 있고, 금을 그냥 허공에서 만들 정도니까. 황금으로 된 궁전을 만들 수 있을 수도 있겠는데.’
드낙이 흐르는 침을 닦았다. 세리안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괜히 딴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피해서였다.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세리안과 엄한 망치 그리고 드낙은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네 이놈!”
세파리아스가 눈을 뜬 드낙을 향해서 롱소드를 휘둘렀다. 드낙은 머리를 까딱하고 피했지만 발에 정강이가 걷어차였다.
“캭!”
드낙이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금방 눈을 떴기 때문에 차마 하단 공격을 파악하지 못해서였다.
“멍청하긴. 내가 왜 버젓이 상단을 노렸겠느냐? 아직도 멀었군!”
“왜 때려?”
“날 모욕했지 않느냐!”
“적혈대검에 저주가 깃들게 만들었다잖아!”
세파리아스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똥쟁이들의 말을 나보다 더 신뢰하느냐!”
“적혈대검이라는 증거가 있으니까. 물론 변론할 시간은 줄게.”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퉁명스럽게 자신을 변호했다.
“황무지를 건너 드워프 제국으로 흘러들어 가 대장장이 계급의 드워프 몇 놈을 노예로 삼았을 뿐이다.”
“이런 씨. 내 말이 맞잖아.”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전투에서 패배한 놈들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내 마음이다. 그리고 난 포로 대부분을 풀어주는 자비를 보여줬다. 그들의 대표자가 나에게 얼마나 감사하다고 말했는지...그걸 네놈이 봤어야 했는데.”
드낙은 그 말에 날카롭게 대답했다.
“내가 바보로 보이냐? 딱 봐도 모두 데려갈 수 없으니까, 풀어주고 실력 있는 놈만 잡아채 간 거겠지.”
“약자는 먹힌다. 이 세상의 절대법칙이다.”
그 말에 드낙인 손사래를 쳤다.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인간 사회가 어찌 될지 뻔했기 때문이다.
‘결코 발전할 수 없다.’
피해가 생기는 전쟁은 가능하다면 해서는 안 되었다. 끝없이 사회, 과학, 기술, 마법 등 발전할 수 있는 걸 꾸준히 발전하고 잃지 말아야 인간이 높은 곳에 설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인류가 낳은 최강의 인간임에는 분명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을 발전시키게 하지 못하는 주범이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그러한 것이다.
“이야기가 끝났나?”
중립신이 끼어들었다.
“사과해라. 난 임산부는 죽이지 않는다.”
“응. 미안~.”
드낙의 경박함에 세파리아스가 부들거리며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얽혀도 짜증만 날 뿐이었다.
“드낙, 마신장을 휘하로 길들여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그 정도 힘과 지능이 있으면 너의 챔피언으로 삼아도 될 것 같은데, 아닌가?”
“오우거는 챔피언으로 삼을 수 없다. 그들 종족이 지닌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이에 드낙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우거 정도면 능히 테라를 지키는 카드로 한 장 준비하는 건 나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립신이 이 행성에 스며들며 융합한다면 더더욱 모든 경우의 수를 짚어둬야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에 중립신이 말을 이어나갔다.
“종족값이 높다. 반신급만 되어도 오우거는 신을 죽일 수 있고, 자기보다 높은 업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조차도 피떡으로 만들 수 있다. 거기에 리고라는 마신장은 지능도 높은 오우거다.”
오우거가 대단해도 너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마신처럼 전차원계를 그냥 마구잡이로 침공하는 신이라면 오우거를 기용할 수 있었지만 중립신은 아니었다.
“테라라는 보금자리에 두기에는 크다.”
그제서야 드낙이 고개글 끄덕였다.
‘너무 강해서 경계를 받는 필멸자라.’
오우거라는 종족에 대한 아이러니를 본 드낙은 왠지 즐거워졌다. 그렇게 강한 종족이 강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동질감도 느꼈다. 약해서 선택받지 못하는 인간이나, 강해서 선택받지 못하는 오우거나, 결론은 같았다.
‘나도 중립신이 그 지경이 아니었다면 선택받지 못했겠지.’
나약했던 중립신이었기에 나약한 인간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럼, 내가 가져가도 되냐?”
“뭐?”
“놈이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면 신성력도 가지지 못할테고, 그럼 마법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내 부하로 삼겠다고.”
중립신은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거 마법사 리고〉라는 변수는 드낙이 가지게 될 세력의 변수가 될 여지가 컸다. 그 변수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될 수 있었다.
“상관없다.”
중립신의 말에 드낙이 씨익 웃었다.
‘나같은 놈과 함께 하려면, 그 욕망을 채워주면 될 뿐이다.’
선택받지 못하는 놈을 선택하는 것도 재밌어보였다. 드낙은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고 싶어했고, 오우거를 휘하에 두는 것만큼 좋은 과시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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