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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62화 (661/1,239)

0662 <-- 드워프 산맥 -->

마신장(魔神將) 리고(Ligo).

겁쟁이 리고라고 불리는 오우거였다.

그는 마신장으로 오르는 것부터 남달랐는데, 음흉함으로 체력을 보존하며, 싸움이 끝난 마신장 중에서도 동귀어진이나 크게 다친 오우거만을 노렸다.

그 외에는 피로 진창이 된 땅을 파서 숨어있는 걸 즐겼다. 숨어있는 것도 모르고 야생 오우거가 지나가면 바위를 깎아 만든 송곳으로 발목이나 오금을 찔렀다.

아주 사악한 야생 오우거였던 그는 결국 마신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 운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마신 성현이 그에게 준 힘은 하찮았고, 그는 그저 4m짜리 오우거에 불과했다. 맹장(猛將)으로 사용되는 마신장과 리고의 성향은 맞지 않았고, 그건 끔찍한 대가로 이어졌다.

인간이 오크와 산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리를 내는 중갑옷은 족쇄가 되었고, 자기 키보다 큰 할버드는 어둠 속의 횃불처럼 숨길 수 없었다.

‘제기랄.’

오우거의 분노를 가졌음에도 마신의 은총과 권능으로 지성을 획득한 다른 마신장과는 다르게 리고는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었다. 애초에 다른 오우거보다 지성이 좋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미비했다.

“크아아아!”

거칠게 포효하며 주먹으로 가슴 방어구를 치며 할버드를 한 손으로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마신장의 위협에 리고는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해야했다. 야생 오우거의 신분으로 산을 올라가서 정상을 찍었지만 다시 내려가야했다.

‘여기서 내가 그대로 떨어질 줄 아느냐, 난 올라설 것이다.’

체격은 작았지만 리고는 야망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오우거 세계에서 키가 작았기에 야망이라도 커야만 했다. 자격지심, 열등감은 그러한 것이었다. 남들이 가진 것을 못 가졌기에 다른 것을 키우고, 드높여야 했다.

똑같은 것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으니, 특별한 것을 찾아야 했다.

현대에서도 자주 보이는 경우였다. 그것은 개성으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타인을 위한 광대놀음에 지나지 않았다.

리고 또한 마신장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리고를 움직이게 하였다. 〈겁쟁이 마신장〉은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나 같은 마신장이 더 있을 게 분명하다.’

그는 홀로 포자 산맥을 돌아다니며 오벨리스크가 지어진 드워프 지상 요새를 훑으며 동료를 찾았다.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예외적인 마신장이었으며 그렇기에 마신으로부터도 큰 힘을 하사받지 못했다.

드워프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오우거다운 면모를 지닌 발라쿠는 마신으로부터 깊은 지성과 이성을 부여받았으며 육체적인 힘 또한 그릇이 터질 정도로 하사받았다. 리고는

발라쿠와 정반대였다.

무분별하게 건설된 오우거 신단이 만들어낸 이레귤러에 불과했다.

불규칙하고 고르지 않은 그의 탄생은 직접 손으로 빚어낸 수공예품처럼 엉성했다.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칼처럼 일정한 공산제품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리고는 큰 절망감에 빠져들며 자신의 몸을 숨겼다.

지하로 숨어들어 갔다. 다른 마신장들은 폭포 용광로 성채의 대전투에 참가했지만, 리고는 도망쳤다. 다른 마신장과의 경합에서 승리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음흉함과 사악함으로 유지되던 자존심도 꺾여서였다.

그럼에도 리고는 일말의 야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 야망은 도망치는 리고의 상황에 스며들어서 새로운 야망으로 변해갔다.

‘이곳에 나만의 미궁을 만든다.’

힘을 키워서 마수 생태계를 만들고, 마신의 왼팔이라 불리는 미노타우르스를 소환하여 미궁을 제작할 생각을 가졌다. 그 마경 속에서 길 잃은 자들을 죽이고 계속 성장하여 자신을 하찮게 여긴 이들에게 모두 복수할 생각을 지녔다.

그 복수 대상에는 자신에게 무구를 내려주고, 마법을 내어준 마신 성현도 들어가 있었다. 덩치와 성향에 따라서 내어주는 힘에 차등을 두고 있어서였다.

다른 놈들은 스테이크를 먹는데 자신은 맨밥을 먹었다고 여겼다.

겁쟁이 마신장 리고는 마법을 부려서 자신을 지하의 그림자에 녹아들게 하고, 발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지하로 검버섯처럼 퍼져나가는 마수 생태계에서 마수들을 끌어모았다.

이 과정에서도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대형 마수로 분류되는 〈백골 전갈〉이 리고의 아래로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최소 5m가 넘는 백골 전갈은 관절마다 눈이 달라붙어 있고, 100개의 머리통을 탄환으로 사용하며 장거리 투척이 가능한 마수였다.

특히 자연 마수 생태계에서 원거리 대형 마수는 드물었기 때문에 반드시 휘하로 끌어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콰직!

얼굴이 반쯤 무너진 백골 전갈이 버둥거리며 끝까지 발악했다. 결국 리고는 할버드의 면으로 후려패던 것을 멈추고 백골 전갈을 죽였다.

맞아서 굴복하는 건 마수라고 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그렇기에 마수는 지성 종족의 카운터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피해가 커도 후퇴하지 않았다. 불퇴(不退)의 속성은 지성종족에게 매우 위협적인 성질이었다.

‘이거 쇠사슬 괴인도 내 밑으로 못 들어오나?’

리고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건 두려움이었고, 자신의 자존감이 부서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촤라락! 꽈아아악!

드워프가 만든 웅장한 통로에서 쇠사슬 괴인이 긴 목 마수개를 목 졸라 죽이고, 능숙하게 왼손으로 혀를 뽑아서 입으로 가져가 씹어먹었다.

둔중해보일 정도로 덩치가 크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쇠사슬 괴인이었지만 쇠사슬을 다루는 솜씨는 굉장했다. 몸(肉)을 단련시킨 삼류 무인은 삼초지적도 안 되고, 기(技)의 탑을 쌓아올린 이류 무인은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굴복해라, 마신의 하수인아.”

리고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자마자 쇠사슬 괴인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리고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겁쟁이 마신장 리고는 소형 마수들을 규합시키며 빠르게 포자 산맥의 외곽으로 도망쳤다.

다른 마신장과 마주칠 것을 두려워하여 마법을 통해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런 리고의 움직임, 기세를 드낙이 읽었고, 숨을 죽였다.

지하에서의 전투는 누가 먼저 상대를 간파하느냐가 승세의 반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기습은 현실에서 통하기만 한다면 강력한 전술 행동이 될 수 있었다.

“싸운다.”

드낙은 순식간에 판단했다. 특히나 세파리아스의 찌꺼기에 오래 노출된만큼 맹장기질이 드글드글 끓어올랐다. 가진 무력 또한 높았기에 절로 맹장스러운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건 싸워야지. 마신장의 키를 봐. 다른 놈보다 현저하게 약한 놈이야. 거기에 가는 방향은 외곽으로 빠지고 있지. 나중에 큰 변수로 커질 놈이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이기도 하고.”

세리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어도 할 줄 알았던 세리안이었기에 제국어보다 능숙한 드워프어가 튀어나왔다.

후일을 도모하는 놈만큼 위협적인 놈도 없었다. 시간과 준비가 만나면 그 결과물은 열에 셋은 큰 결과물이 될 수 있었다.

“방향?”

드낙이 세리안의 전술 조언을 듣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였기에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드낙과는 다르게 세리안은 내려올 때부터 지상과 연관 지어서 방향을 끝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매우 힘든 일이고, 집중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평범한 인간은 결코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동서남북을 탁 잡아내는 사람들처럼 특별한 감각이 없으면 끝없는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지하에서 어떻게 그런 걸 알지?’

황당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우리 셋이서 뭘 하자고? 상대는 못 해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데.”

반면 엄한 망치는 주저했다. 마신장 하나도 버거웠고, 지상 요새에서 드낙이 소란을 피운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 마신장을 때려죽인 것은 몰랐다. 드낙 또한 나중에 확 충격을 줘서 자신을 다르게 보게 하기 위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저런 무리도 해결하지 못하면, 드워프가 잠든 곳도 점령하지 못해.”

그 말에 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엄한 망치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막싸움 아닌가?”

그 말에도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세파리아스에게서 물이 든 드낙은 물론이고, 세리안은 말해봤자 입만 아팠다.

“마신장부터 죽여야 해.”

드낙이 가장 굵은 가지를 만들었고, 세리안이 이를 받아들였다.

“간단하게 가자. 네가 마신장을 처리해. 난 왼쪽으로 가다가 네가 마신장을 치는 순간 중앙으로 난입할게. 그리고 이쪽 겁쟁이 드워프는 여기서 대기하고.”

“뭣?!”

엄한 망치가 크게 들썩거렸다. 세리안의 도발에 둔하기 짝이 없는 드워프가 몸을 크게 들썩여야 했다. 하지만 엄한 망치의 반응을 보기도 전에 드낙이 마법을 사용해서 벽을 타고 천장으로 향했다.

세리안은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였다. 몸을 최대한 숙였지만 포복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엄한 망치는 고개를 드낙과 세리안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등에 짊어진 소형 대포를 투구에 척 올렸다.

마법을 통해서 천장에 들러붙은 드낙은 적혈대검을 오른손으로 쥐고, 조용히 키가 작은 마신장이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

‘놈이 알아차렸다.’

마신장의 걸음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움직이는 세리안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건 실로 오우거답지 않았다.

‘경계심이 많은 놈이다.’

그렇다면, 도망칠 가능성도 컸다.

“가라!”

체격이 작은 마신장이 마수들을 먼저 보냈다. 비교적 체격이 가볍고, 무장도 변변찮은 마수 약탈자들이 벽을 타거나 껑충 뛰어오르며 통로를 내달렸다. 반면 쇠사슬 괴인은 뒤뚱거리며 앞으로 설설설 가볍게 달렸다.

‘여기서 판단해야 한다.’

마수 수백이 통로를 달리며 드낙을 지나치기 전에 그는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답은 벌써 나와 있었다. 세리안이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님을 알았기에 드낙은 바퀴벌레처럼 천장을 타고 움직였다.

“사방을 밝히는 불(sabang-eul balghineun bul)!”

마신장이 주위를 밝혔다. 횃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빛을 지닌 손톱만 한 마법불빛이 퍼져나갔다. 드낙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고, 그 어떤 윤곽도 나오지 않은 채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불빛이 지나갔다.

미세한 조명의 변화조차도 감지할 수 있는 암살자의 천부적인 재능이 일순 보였다가 사라졌다. 드낙은 그런 재능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이를 본 자가 있다면 입을 벌린 채 입을 삼킬 정도로 대단한 한 수였다.

〈암살자 처형인〉조차도 혀를 내두르며 암살자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할 터였다.

드낙은 그대로 마신장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직전 드낙의 적발로 인해서 마신장의 위에 있던 방어막이 벗겨졌다. 철두철미하게 항상 방어막을 펼쳐놓고 있는 마신장은 처음이었다.

홱!

겁쟁이 마신장 리고의 머리가 올려졌다. 자연스럽게 할버드가 위를 막았지만, 드낙은 할버드의 위쪽을 대검으로 내려쳤다. 강한 반발력이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후속타로 발을 할버드 아래쪽을 내려쳤다.

단번에 할버드 아래쪽이 아래로 향하면서 면이 선으로 변했고, 드낙이 훅 내려가졌다.

카가가각!

적혈대검이 마신장의 할버드를 긁어내며 큰 소리를 냈다. 아래로 떨어져 내린 드낙을 향해 리고가 소리를 내질렀다.

“화염구(hwayeomgu)!”

그 어떤 주문도 없이 단번에 마법이 완성됐다. 드낙의 전신을 뒤덮을 정도의 화염구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며 드낙을 덮쳤다.

단번에 화염구가 사그라지면서 드낙이 마신장의 볼을 대검으로 가르고, 발로 아랫니를 부수며 혀를 잘라냈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쿠헉!”

단 두 합.

할버드의 부딪침과 화염구 공격을 모두 압도적으로 승리한 드낙에의해서 리고는 허망하게 마법 능력을 잃었다.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드낙은 마신장의 행동을 면밀히 보고 행동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크아아악!”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리고가 할버드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이미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드낙은 리고의 거친 기침에 몸을 맡기지 않고, 우직하게 버티고 있었다.

부서진 이빨에 발을 집어넣고, 잇몸 속에 단단히 발을 박아넣고 있었다. 대검은 위쪽 이빨을 강하게 밀고 있었기에 씹어 먹힐 위험은 전혀 없었다.

오우거의 치악력은 덩치에 비해서 크지 못했고, 이미 볼이 잘리고 이빨이 부서졌으며 그 안에 있는 신경계에 드낙의 발이 짓누르고 있으니 제대로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쯔거어억!

드낙의 하중을 견디지못하고 아래턱이 떨어져나갔다. 잘려진 볼살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고통스러워서 악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아니, 악 소리 이외에 다른 발음을 할 수 없었다.

그 덜렁거리는 아래턱에 매달린 드낙이 강하게 잇몸을 짓눌렀다.

"그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마신장이 제대로 이성을 잃자 드낙이 타이밍을 맞추며 그대로 적혈대검을 휘둘렀다.

푹.

드낙은 목을 향해서 대검을 찔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성대가 있을 법한 곳에도 뼈층이 존재해서였고, 덜렁거리는 아래턱에 매달려 있었기에 제대로 힘이 나오지 않았다.

‘마법 능력을 파괴했으니, 내려가야겠다.’

드낙은 쩍하고 늘어져 덜렁거리는 아래턱에서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추락하며 단번에 리고의 무릎을 내려쳤다. 추락하는 속력에 대검의 원심력까지 합쳐진 드낙의 괴물 같은 근력은 단번에 무릎에 대검이 박히게 하였다.

“걱.”

단말마를 지르며 리고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뒤로 넘어갔다.

쿠웅!

육중한 몸이 눕히며 그대로 기절했다. 덜렁거리는 아래턱에 꼴사납게 흙먼지가 뒤엉켰다.

이성이 마비되어도 본성으로 끝없이 싸우는 광전사인 마신장이 기절을 하자 드낙이 혀를 찼다.

“이런 놈까지 마신장으로 격을 올릴 정도로 드워프가 대단한 건가? 어처구니가 없네.”

이 마신장을 만드는데 소모된 업을 생각하니 아까워서 미칠 것 같을 지경이었다. 드낙은 진짜로 기절했는지 눈을 까보고 그다음에 마수들과 싸우는 두 사람에게로 향하면서 레우치터를 뽑아냈다.

주력을 강하게 부여하며 명령했다.

“저놈이 일어나면 바로 나한테 알려줘.”

레우치터가 드낙의 몸을 한 바퀴 돌며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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