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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61화 (660/1,239)

0661 <-- 드워프 산맥 -->

차갑게 식은 세리안의 눈초리는 드워프인 엄한 망치가 읽을 것 같았지만, 드낙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착 가라앉은 적발부터 분위기 자체가 얼음 같은 게 그녀였기 때문에 첫인상으로 그걸 깨닫는 자는 적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례할까?’

세리안은 이어지는 드낙의 세파리아스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엄한 망치 또한 오랜만에 실컷 이야기를 떠들었다.

둔한 드워프였지만, 드낙이 보여주는 열정이 그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나중에 반드시 이 빚을 갚게 하겠다.’

다시 눈을 뜬 세리안의 녹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감성을 짓누르고, 이성이 최대한으로 모든 것을 지배했고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망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용맹한 인간, 너에게는 적혈대검의 저주가 깃들지 않는 것 같으니, 계속 써도 될 것 같다.”

“예.”

드낙은 이를 수렴했다. 불운 또한 업이었다. 평범한 필멸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독이지만, 반인반마에 중립신으로부터 여러 능력을 검은 문을 통해서 획득한 드낙에게는 벌의 독처럼 약으로 쓰이는 독이었다.

“마신장이 소유하고 있는 저 오벨리스크는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겁니까?”

“아. 인간은 마신의 영토에 대해서 몰랐었지.”

엄한 망치가 파묻힌 벽을 손으로 짚었다가 다시 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벨리스크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손가락 하나를 추켜세우며 무지에 대해서 나무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행동하는 건 매우 위험하지. 마치 제국의 31번째 왕 시절, 만용을 부렸던 똑똑한 백금을 보는 듯하군.”

자기만 아는 비유를 갖다 쓰는 걸 본 드낙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주 재수 없는 화법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듣고 싶지 않았다.

세리안은 기상천외한 화법에 바로 제지했다. 소방관처럼 용감하게 불 끄기에 나섰다. 신나서 드워프 역사에 대해서 떠들려는 엄한 망치를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그만해라. 왜 자꾸 모르는 비유를 쓰는 거냐?”

“그래서 더더욱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해! 만용을 부렸던 똑똑한 백금이 어떤 자였느냐면···”

“······”

세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을 하는 엄한 망치가 굉장히 기분 좋아 보여서였다. 앞으로 드워프와의 관계를 위해서 이 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제기랄.’

물론 속으로 욕을 내뱉는 건 참지 않았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겨우 마신의 영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드낙은 순식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내서 제법 멀쩡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어디서든 집중력이 좋은 세리안은 입술을 하두 깨물어서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엄청난 교훈도 아니고, 상투적인 교훈을 위해서 30분을 내리 까먹었으니, 멘탈이 흔들릴 정도였다.

“마신의 오벨리스크는 그가 이 차원계에 자신의 영토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마수가 활동하기 좋은 건 물론이고, 그 주변에서 얻어지는 것들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마신에게로 향하게 되지.”

업을 운송하기 위한 운송수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드낙이 의문을 표시했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사기적인 효능 아닙니까? 마신의 힘이 소모 없이 이곳에 강림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나? 쌍방통행이 아니고, 일방통행이네. 이 세상의 힘이 마신에게로 향하는 게 소모 없이 향할 수 있고, 반대는 성립하지 않지.”

그제야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장으로 승격한 야생 오우거 주변으로 차원 균열 현상을 봤기 때문이다. 아득히 먼 곳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과 반대로 오우거에게 주어진 힘은 적었다.

물론 그마저도 인간의 기준에서는 태산과도 같았다.

‘마신이라는 놈은 생각보다 더 악독한 놈일지도.’

자신의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마수들을 생각하기보다는 업의 수급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오우거 신단은 뭡니까?”

“마신장을 만드는 곳이지. 야생 오우거 3마리를 산채로 엮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마신장 여럿이서 힘을 합쳐서 만들어야 하지.”

“제가 그걸 두 곳이나 부수고 빠져나왔는데, 큰 피해라고 보십니까?”

“안 부수는 것보단 낫지.”

썩 좋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신장의 신단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만.”

자연스럽게 드낙이 그 개수를 물었고, 엄한 망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지상의 수호를 맡은 가문이 128개고, 그 개수만큼 지상 요새가 존재하니 못해도 380개는 넘겠지.”

“허미.”

드낙이 독특한 추임새를 냈다. 드워프 산맥의 거대한 크기만큼 오우거 신단과 오벨리스크는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만큼 엄청난 숫자의 마신장이 지하로 침공을 시작했을 터였다.

“그걸 드워프 제국은 막고 있습니까?”

“전제를 달리해야지. 어리석은 인간아, 마신장이 왜 그렇게까지 많은 숫자의 신단과 오벨리스크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드워프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드낙이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드워프 제국이 X됐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대화로 보면 마신장이 오히려 위기에 몰린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부터라도 신단과 제단을 부순다면 희망이 있습니까?”

“가능하지. 하지만 소란을 피워서 지하에 있던 마수들이 다시 올라올 것이 분명해.”

그 말에 드낙이 웃어 보였다.

“저에게 블랙 스케일 와이번과 블러디 만티코어가 있습니다. 그 정도 대형 괴물이라면 능히 승산이 있습니다.”

드워프 엄한 망치는 이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에 드낙이 대형 괴물을 타고 오겠다고 말했다. 엄한 망치가 냉큼 손사래를 쳤다.

“산맥에 퍼져있는 마신장들을 죄다 모을 생각이냐! 절대 안 된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웃음 소리를 냈다. 하지만 웃음기를 싹 지우며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대형 괴물 2마리가 저에게 있습니다.”

“음. 알겠다. 하지만 마신장이 모이면 답이 없다.”

“동의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엄한 망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장의 침공은 아마, 〈폭포 용광로 성채〉가 잘 막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드낙의 반문에 엄한 망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치부를 인간에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국은 서서히 몰락하고 있다. 서로 간 교류도 하지 않게 될 정도로 차게 식어버렸지. 잠에 빠져드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망치 지상 요새도 마신장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고작 두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거대한 성벽.

끝도 모르게 솟아있는 첨탑, 수많은 병기는 써보지도 못하고 망치 가문의 지상 요새는 함락되었다.

“그 정도입니까?”

“제국 내부는 모르지. 아무튼, 외부를 지키는 드워프의 상태는 이 정도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뭡니까?”

“〈망치와 거푸집〉에 잠들어있는 망치 가문의 드워프들을 깨우는 것이다.”

“깨운다고 일어납니까?”

“모르지. 인간인 자네는 생각보다 광대 같은 면모도 있어 보이니, 그 열정을 받으면 일어날지도 몰라.”

드낙은 조금 고민하더니 물었다.

“몇 명이 그곳에 잠들어있습니까?”

“50명부터 시작한 가문이지만 이제는 8천 명 정도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

“8천!”

드낙이 기염을 토해냈다. 그 정도라면 능히 지상에서의 일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도 드워프들은 잠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달은 엄한 망치가 밥에 재를 뿌리듯이 말했다.

“그렇게 큰 희망을 품지는 말게. 마수들이 지하를 이 잡듯이 뒤지며 드워프가 잠든 곳을 찾고 있으니. 발각된 곳도 있겠지.”

“아···”

드낙이 이내 납득했다. 그건 마신의 오벨리스크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업을 마신에게로 보내는데 그 어떤 소모도 없게 한 이유. 잠든 대량의 드워프를 획득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오벨리스크를 지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얼마나 당했는지가 중요한데···’

드낙은 쓴맛을 느꼈다. 제멋대로인 마신장의 성향을 생각하면 단독활동하는 놈들도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많은 범위에서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을 게 뻔했다.

“서둘러 망치와 거푸집으로 향합시다.”

“그러자고.”

드낙의 예의 바른 모습에 엄한 망치는 선뜻 나섰다. 파묻힌 곳에 손을 다시 올리며 단번에 흙이 달구어지며 녹아내렸다.

“입구가 좁습니다.”

“아차.”

엄한 망치가 입구를 크게 만들고, 통로도 크게 만들며 빠르게 무너진 곳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가 뚫어놓은 곳을 더 넓혀야 했다.

“왜 그렇게 덩치가 커?”

엄한 망치가 툴툴거렸지만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느린데, 큰 통로 없습니까?”

“마수를 만날 수 있는데, 괜찮겠나?”

“상관없습니다. 빨리빨리 가죠.”

“그러지.”

엄한 망치는 단번에 방향을 틀었다. 드워프들이 미리 만들어둔 웅장한 길을 쓰면 더 빨리 갈 수 있어서였다. 물론 은폐된 곳이 망치와 거푸집이었기에 그곳에서는 다시 힘을 써서 뚫어야 했지만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신의 영토에서도 빠져나온 인간이니, 전투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이미 드낙의 무력은 어느 정도 인정이 된 상태였다. 물론 직접 보지 않아서 엄한 망치는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피부로 느껴야지만 깨닫는 것이 있는 법이다.

물컹, 물컹!

흙이 출렁거리며 좌우로 뻗어 나갔다. 그곳에서 엄한 망치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서 거침없이 몸을 빼냈다. 그 뒤로 드낙과 세리안이 이어서 빠져나왔다.

“와.”

드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분명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통로는 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다. 도금한 석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렸었고, 끝도 없이 통로의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곳곳에서 마수들의 흔적이 보였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런 드낙이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았다.

후욱!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진흙 해골〉이 떨어졌다. 벽을 통과할 수 있고, 슬라임 계열이었기에 천장에 들러붙을 수도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머리 위에 눈동자가 있지 않았기에 기습하기에는 머리 위가 가장 좋았다.

특히나 이동속도가 느린 슬라임 계열의 마수인 진흙해골은 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형태만 보면 특수 보병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둔기든 날붙이에든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병과의 1:1 싸움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장점이 발휘될 수 없었다.

암살자의 재능을 지닌 드낙의 적혈대검이 그대로 휘둘러져서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진흙 해골을 반으로 쩍 갈랐다. 슬라임 내부에 있는 두개골과 이미 부숴진 갈비뼈가 대검에 의해서 양단되었다.

철퍽!

단 한 방에 슬라임이 힘을 잃고 터져버린 계란처럼 흐물해졌다.

“감이 대단하군!”

엄한 망치가 놀라워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진흙 해골의 시체에 있는 뼈를 수거했다. 엄한 망치는 특히나 물질 변화에 재능을 가진 드워프였고, 자잘한 잡템을 강철 따위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세리안은 그 사이에 기둥을 바라보았다.

기둥에서 툭 튀어나온 조각이 있었는데, 망치를 쥔 드워프가 팔을 번쩍 위로 향하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그 조각상의 위로는 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기둥마다 그 형상이 달랐고, 투구를 쓰거나 벗은 예도 있었다. 가만히 자리 잡은 조각상은 마치 무덤처럼 연도가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그가 행한 업적이 적혀져 있었다.

“이 자는 우렁찬 바위라는 드워프지.”

세리안이 관심을 보이자 어느새 다가온 엄한 망치가 그의 업적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를 보였는데, 단순히 우렁찬 바위라는 드워프가 무인의 삶을 살아서였다.

그리고 그 석상을 마치 핥아먹듯이 검은 것을 토해내고 다니는 가오리 마수가 나타났다. 전투할 수 없는 놈이었기에 누구도 겁내지 않았다.

“놈!”

엄한 망치가 장갑을 낀 손으로 가오리를 떼어내고, 망치로 때려죽였다.

“끔찍한 마수놈.”

실로 경멸하는 모습에 드낙이 호기심을 느끼고 물었다.

“왜 그렇게 가오리 마수를 싫어합니까?”

“이놈 때문에 마수들의 상황이 확 변했기 때문이다.”

마수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놈이 가오리 마수였다. 이는, 흑마법사들이 만든 검은 보급로를 통해서 마신장 발라쿠가 새로이 만든 마수이기도 했다. 힘을 소비해서 만들어야 했으므로 검은 보급로 같은 것을 보고 겪지 못한 마신장은 쓸 수 없었다.

그 시간에 미궁을 꾸미는데 쓰는 게 이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엄한 망치는 망치로 흩어지는 새끼 가오리를 죽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드낙과 세리안 또한 발로 밞아 새끼 가오리 마수를 죽였다.

“보통의 마신장은 던전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마신장이 강해야 마수가 적게 죽기 때문이었다. 맹장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에 다른 곳으로 침공을 가는 식이었다.

“침공을 안 가는 마신장도 있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다. 그런 놈들은 마신의 왼팔이라 불리는 미노타우르스를 소환해서 던전을 미궁으로 만들어버리지.”

검은 돔이 그러한 케이스였다. 지하 깊은 곳에 미노타우르스가 미궁을 지금도 계속 확장하고 있을 터였다.

“미궁을 개미집처럼 조금씩 확장해서 세력을 확장하거나 던전에서 힘을 키워서 작은 지역을 침공하는 게 마신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지만, 이번은 완전히 다르지.”

극단적 수비인 미궁 사업의 반대말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쉿.”

그때 드낙이 몸을 낮추며 말했고, 진흙 해골의 기습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을 봤기 때문에 엄한 망치 또한 몸을 숙였다. 세리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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