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60화 (659/1,239)

0660 <-- 드워프 산맥 -->

드워프 산맥에서도 외곽에 존재하는 드워프 지상 요새 한 곳을 반쯤 털어먹은 드낙은 서둘러 신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쪽이다! 용맹한 인간!”

드워프 언어가 드낙의 귀에 들어왔다. 그들의 언어는 악센트가 거의 없고, 물이 흐르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언어였다.

‘자장가 같은 언어다.’

드낙은 손은 흔들며 드워프에게로 향했다. 지상으로부터 파여있는 반지하 같은 지형으로 드워프가 사라졌고, 드낙 또한 그곳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수직으로 나 있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돌로 된 사다리를 잡고, 끝도 없이 내려가야 했다.

‘마수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때 수직형 입구는 좋은 판단이다.’

평범하게 걸어서 경사진 통로였다면 마수들에게 금방 들켰을 것이다. 노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특히나 드워프 제국을 침공하고 있는 마신장이었기에 마수가 파놓은 굴과 연결될 공산이 컸다.

이를 막으려면 대각선보다는 직각으로 그냥 내리꽂듯이 통로를 놓는 게 나았다.

‘좁다.’

드낙은 갑갑함을 느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패닉으로 식은땀이 차오를 정도로 온몸이 조금조금 밖에 못 움직였고, 자신이 뿜어내는 열기로 자신의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특히 굴에서 삐져나오는 습기는 후끈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근처에 수원이 있는 곳에 드워프 생존자가 자리를 잡았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분기가 내려가는 굴에서 느껴졌다.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드워프가 돌로 된 사다리를 양손으로 잡으며 슥슥 비벼대었다. 사다리가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갔다.

“뭘 한 겁니까? 초월의 힘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아, 이것은 드워프의 손길이라는 힘이다. 바위처럼 단단한 드워프에게서 사용되는 힘이기에 밖으로 전혀 보이지 않지.”

“오오···”

드낙이 감탄을 내뱉었다. 마법이든 주술이든 허무하게 소비되는 힘이 존재했다. 마법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마력은 푸른빛으로 다른 이에게 보이고, 주력 또한 빛을 뿜어내며 쓸데없는 곳에 힘이 소모된다.

반면 드워프의 힘은 보이지 않는다. 노출되지 않으며, 빛조차 없었다. 단단한 드워프의 그릇에서 단 한 줌의 힘조차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았다.

‘바위 속에 갇힌 힘.’

굳건하고, 우직하며, 결코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없다. 실로 바위와 비교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드워프의 손길이 정확히 무엇이길래 저 긴 사다리를 가루로 만들었습니까?”

“모든 물질에 관여하는 힘이라고만 알고 있어라. 드워프의 말을 하는 인간아!”

“예.”

드워프는 강철 글러브를 낀 손을 주억거리면서 바닥에 앉았다. 드낙 또한 적당히 자리를 보고 앉았다.

“마신의 영토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살아남다니, 대단하다!”

“과찬이십니다. 전 그저 드워프 제국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서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드낙의 말에 드워프가 투구를 벗으며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망치! 제국이 인간의 힘을 필요한 적은 그 어느 때도 없다.”

드낙은 순식간에 태세변환을 하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드워프 제국이 아무리 마신장에게 위협받고 있다고 아무에게나 힘을 빌리겠습니까?”

“으음! 하지만 고양이 손을 빌린 적이 있었지.”

“······”

드낙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직한 드워프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건 제국의 다섯 번째 왕 시절! 검은 보석이라 불리는 드워프 제분장이 11번째 봉우리에서 살았는데 하루는!”

“?!”

갑작스럽게 옛날 일을 거론하는 드워프의 모습에 드낙이 움찔했다. 그 이야기는 장장 30분에 걸쳐서 말해졌다.

웅장함을 좋아하는 드워프다운 면모와 동시에 거주지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둔감함을 생각해서 길이 좁고, 서로 뚝뚝 떨어져 산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떠드는 사이에 드낙은 드워프의 면모를 자세히 살피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딴생각을 가졌다.

‘키는 작다.’

140~145cm 남짓해 보이는 키였다. 아마 입고 있는 전신갑옷을 벗으면 키가 더 작을지도 몰랐다. 모든 드워프가 140대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똥똥한 몸집.’

통나무가 절로 생각났고, 팔다리가 굵직굵직했다. 특히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손목과 어깨 아래의 팔뚝의 굵기가 일정하다는 점이었다. 실로 완력이 대단할 것 같았다. 가히 고릴라와 견줄 수 있을지도 몰랐고, 엘프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그것조차도 능가할지도 몰랐다. 이곳은 판타지 세상이기 때문이다.

‘마신장의 존재처럼 판타지 세상은 파워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

단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광역 마법을 토해내는 마신장은 인간을 절망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런 오우거를 적발도 없이 잡는 불파겐이 얼마나 미친 가문인지.’

적발이 없는 불파겐이 처음으로 붉은 적발을 얻기 위해서 오우거를 사냥했을 때, 만든 것이 오거 야크트였다. 그것을 알아야지만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었고, 후에 적발의 혈통을 잃었을 때도 적발을 얻을 수 있게끔 그 어떤 수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비전이 오거 야크트였다.

스스로 마신장의 입 속에 들어가 마신장의 마법능력을 파괴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정신 나간 비전인 희생적인 도약은 특히나 인간에게 얼마나 마신장이 강력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강조할 때를 제외하면 물처럼 흘러가는 드워프의 자장가 같은 말을 들으며 순식간에 생각의 산을 오른 드낙이 정신을 차리고 드워프의 이모저모를 훑어봤다.

‘미친 장갑 두께다.’

척 봐도 두꺼운 장갑을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했다. 적어도 100mm 내외는 될 것 같았다. 소형 종족 중에서도 이 정도 장갑을 쓴다는건 미친 짓이었다. 가히 탱크의 전면 장갑과 비교를 해야 할 판이었다. 박호훈은 육군을 전역했지만 탱크의 전면장갑을 외우기보다는 걸그룹의 가사를 외우는 걸 좋아했으므로 정확한 건 알지 못했다.

현대 세상을 살아가면서 최저임금은 기억해도 뒤꽁무니만 몇 번 따라가 보는 탱크의 장갑 따위를 기억하는 건 밀리터리 마니아나 현직으로 종사하는 자들뿐이었다.

“그래서 물레방아를 찧어줄 드워프는 단 한 명도 없었지. 그런데 아뿔사, 망치!”

드워프가 이마를 탁 치며 외쳤다. 딴에는 대화 속에서 환기하는 기회를 이야기 곳곳에 배치했다고 했지만 드낙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인간이 봤다면 드낙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거친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입에 집어넣어 헐게 만들었을 터였다.

‘미친!’

반면 드낙은 전혀 다른 곳에서 그 감탄사에 리액션을 쳐주듯이 몸을 들썩였다. 그 모습에 드워프는 흡족해했지만 드낙은 드워프의 팔뚝에 시선이 가있었다.

‘빈틈이 전혀 없고, 통짜 강철이 그냥 구부러지잖아? 신축성 있는 강철이라니?’

빈틈이 전혀 없는 게 드워프의 전신갑주였다.

‘무슨 동화에서 봤던 깡통 로봇이랑 비슷한데.’

온갖 음각, 양각 조각을 통해서 입체감을 줬기에 전혀 몰랐단 바였다. 또한 골반과 가슴, 어깨 등에 금색으로 된 부분 갑옷을 추가로 덧대고 있었기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등에는 소형 대포 같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앉아도 키가 큰 드낙은 천장을 향해있는 대포 구멍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 머리통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대신 드워프의 키만큼 총열 부분이 짧았다.

은실로 엮은 굵은 허리띠에는 망치 두 자루가 걸려있었다.

“그렇게 해서 제분장은 결국 자신의 오만함을 씻어내고 동료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었고, 결국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팔게 되었지.”

“···? 결론이 뭡니까?”

“망치! 멍청한 인간! 힘들면 하찮은 이들에게 손을 빌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하고, 남에게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항상 돈을 준비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워프가 몸을 일으키며 망치를 두 자루 양손에 쥐며 오른손에 쥔 망치로 드낙을 겨누며 말했다.

“홀로 마신의 영토를 담금질하고 나온 인간아, 망치 가문의 엄한 망치인 내가 묻겠다. 이곳에 도달하여 무엇을 찾고, 뭘 얻으려고 하는 것이냐?”

드낙은 그 말 속에 담긴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경계심, 약간의 분노.’

인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일까? 실로 위협스럽고, 잔뜩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드낙은 굴을 훑었다.

짧고 몽땅한 드워프에게 시선이 빼앗겨 있었지만, 곳곳에 빛을 토해내는 보석이 박혀 있었으며 모든 곳이 막혀있었고 출입구가 없었다. 그중 양쪽은 파묻힌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은 드낙 정도는 되어야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물질을 다루는 힘을 지닌 드워프의 손길을 만나 자연스럽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이라면, 그걸 돌파할 지혜가 나한테 있을 리가 없다.’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고, 공부를 싫어하는 게 드낙이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기보다는 게임이나 노래방에서 시간 보내는 게 좋았던 인간이 그였다. 이곳에 와서 생각보다 큰 스케일에 놀라며 세상 노력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건 꼬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상태였기에 달릴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인간은 결코 대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며, 상황이 바뀌면 언제나 말이 바뀌는 존재였다.

‘여기서는 인연을 써먹는다.’

편법과 편한 길을 좋아하는 드낙은 냉큼 등에 메고 있던 적혈대검을 꺼내서 그 손잡이를 드워프에게 건네고, 자신은 검날을 잡았다.

“어떤 검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이, 이것은!”

드워프가 매우 놀랐다. 손을 떨며 적혈대검을 잡았다.

“입자 하나하나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철 입자 하나하나가 이미 모두 작품이고, 하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모든 작품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으며 하나의 거대한 목적의 흐름 속에서 함께하고 있다.”

키가 작은 드워프였음에도 대검을 만지고 들어 올리는데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말하면서 5초 이상 손잡이를 잡고 있는 순간 드워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검면을 잡았다.

“무서운 것은 걸작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저주검이라는 것이다.”

“예? 저주가 깃든 검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손잡이를 잡고 최소 5초, 그 이상 잡는다면 불운이 깃들고, 사용자에게로 스며들어 간다. 그것은 업으로 만들어지고, 독이든 잔이 되어버린다. 사용자는 평지를 걸어가도 고꾸라져 피를 토하다가 죽을 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드워프가 그 말을 하면서 적혈대검을 툭하고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대검에서 검은 귀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드워프의 손길을 통해서 진짜 모습을 내보였다.

“와씨.”

드낙이 기겁했다. 그걸 본 드워프가 의문을 가졌다.

“왜 살아있는 거지?”

“중립신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이 불운의 업을 자주 가져가셨나 보군. 평생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해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다.”

“예···”

그 말을 들으며 짧게 대답한 드낙은 그 불운의 업조차 자원으로 여긴 중립신을 떠올렸다.

‘진짜 악독한 구두쇠다.’

동시에 드낙은 대검의 주인을 욕했다. 눈치 빠르게 드워프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어쩐지. 이 대검의 주인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사악하고 악독한 영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시체를 쌓아 산을 만들고, 그 피가 강을 이루는 건 물론이며 임신한 여자를 횃대에 걸어 태아를 지져 죽이는 악독한 자였습니다.”

드낙은 아무렇게나 말을 지껄였다.

“아. 역시! 아주 악독한 인간이었구먼, 분명 드워프를 협박하고 고문해서 만든 대검이 틀림없다..”

“힘이 아주 대단하여 기사 수백 명을 홀로 죽일 정도로 대단했는데, 그 비밀은 이 대검에 있었습니다.”

드낙은 내친김에 세파리아스의 무력을 드워프의 공로로 휙 돌렸다.

“그렇지. 그렇지. 인간이 수백 명을 죽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 대검이라면 능히 가능하다.”

“그는 결국 죽었고, 이 대검은 흐르고 흘러서 저에게까지 닿았습니다.”

드워프가 이를 의심했다.

“이렇게 대단한 검은 쉽게 얻을 수가 없었을 텐데.”

“중립신의 안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세상의 위기를 헤치려고 여행 중입니다.”

“그런가.”

그때 통로 위에서 소음이 흘러나왔다. 드낙이 주문을 읊으며 빛가루를 위로 쏘아 보냈다. 세리안이었다.

“제 동료입니다. 대포를 내리셔도 됩니다.”

“정말 무식한 동료구먼. 확인도 안 하고 그냥 내려오다니, 내가 좀 도와줘야 하나?”

“예. 세리안···브릴리언트라고, 아주 전투력이 높은 인간입니다. 별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흙먼지가 묻었지만 세리안은 능숙하게 속도를 줄이며 착지했다.

“세리안 브릴리언트! 왜 그렇게 소란을 피워? 깜짝 놀랐잖아. 이쪽은 엄한 망치라는 드워프다, 인사해.”

세리안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반갑다. 세리안···”

드낙이 눈총을 계속 쐈다. 그녀는 눈을 감더니 이어 말했다.

“세리안이다. 그냥 세리안이라고 불러.”

“이 인간은 조금 건방지군. 엄한 망치다.”

“존경을 받고 싶다면 행동으로 보여라.”

“알았다. 건방진 인간.”

“알았으면 됐다. 대우받고 싶어하는 드워프.”

드워프는 그런 말을 들어도 당황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매우 옅었다. 물론 드낙은 그조차도 잡아낼 수 있었기에 세리안을 닦달했다. 드워프의 손길이 지닌 힘과 적혈대검에 숨겨진 저주 그리고 그 힘을 알고 있었기에 드워프들과 반드시 친해지고 싶었다.

‘죽여서 내가 얻으면 내가 일해야 하잖아. 그건 아니지.’

그런 드낙의 닦달에도 세리안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드낙을 한 번 노려보고 말았다. 감히 불파겐의 성씨를 말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생사결을 했을 정도의 무례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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