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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58화 (657/1,239)

0658 <-- 드워프 산맥 -->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실로 웅장했고, 강력한 위압감을 드낙에게 보여주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위압감에 군침을 흘리며 드낙은 똥파리처럼 오벨리스크에 접근했다. 그만큼 중요도가 높아 보였다.

‘어느 정도의 중요함인지 파악하는 게 가장 먼저다.’

오벨리스크의 은폐도는 최상급이었다. 단순히 만티코어만 숨기려고 해도 그 소모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이 드낙이었다. 그런데 드워프 성벽보다 높은 오벨리스크를 초월의 힘으로 은폐했다?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마법을 통해서 오벨리스크가 오가는 힘을 조사한다면 수많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터. 이를 이용하면 마신장의 현재 전력까지도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은밀한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검은 꿈의 능력으로 그릇을 채우고, 반인반마의 격을 소유한 드낙은 반신의 반열에 오른 자였다. 자연히 마신장이라는 거대한 수족을 부리는 마신의 시스템을 보고 싶었다.

그 비밀을 얻는다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멈칫.

희희낙락하며, 기대심을 가진 드낙이 멈춰 섰다. 섬뜩함이 그를 멈추게 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시각적으로 보이는 정보가 그를 멈추게 하였다.

할버드를 어깨에 걸친 놈.

할버드를 바닥에 두고 나뭇가지를 씹는 놈.

바위를 부수거나 긁으며 소일거리를 하는 놈.

다양한 행동을 보이는 마신장이 10마리가 넘었고, 그들이 오벨리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

드낙이 경악하며 주변을 훑었다. 완벽한 평야였기에 들어갈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최악의 지형이었다. 억지로 만든 흔적이 다분했다.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큰 원의 안에 들어간 채로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며 오벨리스크를 수호하고 있었다.

그 원의 밖에는 3개의 원이 따로 떨어져 나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마신의 제단〉으로 보이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로 만든 계단 위에 세워진 제단은 오우거의 시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3구의 오우거가 박제되듯이 온전한 모습을 지닌 채 서로 뒤엉켜서 토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마신장과 야생 오우거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할버드와 중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야생 오우거의 시체로 만든 것임을 파악했다.

‘오우거의 신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목적성이 뚜렷했다. 그리고 오우거의 신단에 피칠갑을 한 야생 오우거가 딱 올라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심장을 스스로의 힘을 꺼냈다.

‘맙소사.’

동시에 거무튀튀한 초월의 힘이 들끓으며 심장을 향해서 움직였고 이내 손아귀로 심장을 잡아채는 듯한 형상을 만들었다. 그 검은 힘은 이내 심장과 몸과 연결이 되었고, 주변에 차원 균열 현상이 일어났다.

‘아.’

드낙은 아찔함을 느꼈다.

아득히 먼 거리에서 차원을 뚫으며 한순간에 도착하는 거대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힘의 소모가 대단할 것을 생각했음에도 차원 균열 속에서 느껴지는 힘은 대단히 많았다.

‘이것이 마신이 이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

공들여서 만든 제단이다. 오우거에게만 간섭하고, 오우거를 향해서 움직이는 제단의 특성 또한 확 눈에 잘 들어왔다. 아마, 다른 마수가 그릇을 달라고 해도 마신과 대화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해서도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왜 저렇게까지 힘을 버리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이해도 할 수 없었지만 드낙은 그 버리는 행위에서도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자신을 공양하지만 꼭 자기공양만 하는게 아니다.’

또 하나 알아낸 것은 저건 그냥 마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마신 성현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을 보여주고 마신 또한 다시 오우거를 살려주며 서로 상호 관계를 돈독히 한다.

서로 사업하는 사람이 가장 친해지는 순간은 서로가 진짜 돈을 이득으로 쥐었을 때였다. 첫 수익이 날 때야말로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다를 바가 없다.’

오우거는 마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죽음의 맹세를 보여주고, 마신은 오우거를 마신장으로 만든다.

차원 균열 속에서 심장을 제 손으로 뽑은 오우거는 치유되었고, 나무 도끼를 버리고 할버드와 전신갑주를 하사받았다.

마신장 한 마리가 더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지하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까지 확인한 드낙이 냉철하게 판단했다.

‘오벨리스크가 문제가 아니다. 저 제단부터 반드시 부숴야 한다.’

크게 은폐되어서 매우 중요할 것처럼 보이는 오벨리스크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우거의 신단이었다. 마신의 제단 중 하나로 마신장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아마 오벨리스크는 제단의 유지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 터다.’

둘 중 하나만 파괴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벨리스크는 15마리가 넘는 마신장이 근접해서 지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오우거의 신단을 파괴하는 게 더 수월해 보였다.

‘단점이라면 얼마든지 야생 오우거의 시체를 수급하여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만드는데 많은 힘이 들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뭘 파괴하든 리스크는 존재했다. 특히나 드낙은 홀몸이었으므로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없었다.

‘단기전을 노린다면 오우거의 신단을 노리고, 장기전을 노린다면 오벨리스크를 노려야 한다.’

후퇴, 포기, 뒤로 미루기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오벨리스크와 오우거의 신단은 중요도가 높았다. 제3자가 봐도 누구나 저것부터 파괴하면 마신장에게 큰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다고 말을 높일 수 있었다.

‘원거리는 불가능.’

드낙은 자연스럽게 타격 수단을 고려했다. 오벨리스크는 당연히 근접 수호하고 있는 마신장들 때문에 원거리 타격이 불가능했다. 천대가 넘는 중대형 투석기의 질량 타격이라면 할 수 있었지만, 초월의 힘으로 원거리 타격은 무용지물이었다.

오우거의 혈통이 가지는 상쇄의 힘 때문이었다. 오우거의 제단 또한 오우거의 시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원거리 타격은 사용할 수 없었다.

사용해도 큰 피해를 줄 수 없었고, 파괴도 못할게 뻔했다.

머리가 아파지자 드낙은 다른 산을 오르기도 했다.

‘핏빛쥐들도 마신장처럼 만들 수 있을까?’

드낙이 지닌 피를 일반 핏빛쥐들에게 먹인다면, 그들의 그릇을 키울 수 있었고 이는 곧 오우거를 마신장으로 만드는 과정과 비슷했다. 물론 종족값의 차이가 워낙 심했으므로 총량을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일 터였다.

“후우!”

드낙이 한숨 쉬며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중요한 걸 파괴한다면, 내 존재를 마신장에게 스스로 보고하는 꼴이다.’

대책이 세워질 위험이 있었다. 그냥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15m짜리 마신장을 토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그게 사라질 수 있었다.

드낙을 경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수법이 잘 안 통할 확률이 있었다.

‘그것을 감수하고 파괴할 이유가 있나?’

드워프를 돕는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지만, 드낙에게는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실로 이기적인 판단이었지만, 자기 자신이 중요한 드낙에게는 당연한 고민이었고, 고민의 결과였다.

‘최초의 마신장이 다른 마신장들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이유.’

드낙은 마신장 입장에서도 고민했다. 답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신장을 많이 찍어내면 전투에서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

압도적인 우위를 지닐 수 있었다. 소수로 묶어서 지하로 보내든, 하나로 뭉쳐서 대전투를 벌이든 어느 쪽이든 마신장이 많으면 장땡이었다. 단순한 만큼 어느 곳에든지 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철저한 침공 준비 단계다.’

드낙은 공포스럽고, 두려웠다.

수백, 수천이 넘는 마신장이 주문을 읊을 필요가 없는 마법을 쓰며 진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그 광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도망밖에 없었다.

혹은 지하 곳곳에서 사방팔방 활약하는 소수의 마신장과 그들을 지키는 마수들의 대군이 생각났다. 아무리 동분서주해도 개인인 드낙은 그들의 확장력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제단을 파괴하고, 시선을 끌면서 마신장을 죽이고 때를 봐서 오벨리스크도 파괴한다.’

지상에서 혼란을 가중하고, 마신장들의 관심이 오벨리스크에서 의문의 적에게로 옮겨졌을 때, 오벨리스크를 노리기로 했다.

오우거 신단을 제거하는 일은 단순무식하게 이루어졌다.

드낙은 자신의 재능을 믿었고, 바닥에 엎드렸다.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오벨리스크까지는 가지 못해도 오우거의 신단으로 근접할 수 있어 보였다. 그만큼 드낙의 존재감은 옅었고, 은밀했다.

“크르르···”

갓 마신장이 된 오우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으르렁거렸다. 왠지 쎄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살짝 흘러 지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드낙을 찾지는 못했다.

코앞에서 기어갔음에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죽일까?’

드낙이 순간 고민했다. 저렇게 무방비한 오우거라니, 죽이면 업도 든든하게 나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꾹 참았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최종 목적은 오벨리스크의 파괴. 두 번째 우선순위는 오우거 신단. 가장 마지막이 마신장의 목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몇 번 곱씹고 다시 움직였다.

악마 게페락스의 변모하는 힘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마신 성현의 은총과 권능이 깃든 구역에서도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멀리 있는 만큼 빈틈이 많았다.

쭈우욱.

오우거 신단에 도착한 드낙의 손에서부터 쭉 늘어진 피부가 적혈 대검의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의 땅에는 피가 많았기에 적혈 대검이 땅에 닿는 것만으로도 붉은빛이 대검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훅!

드낙이 그대로 도약했다. 전신갑주 하나 입지 않았으며, 악마의 힘으로 피부의 색을 변화시키며 보호색을 띤 드낙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오벨리스크는 열다섯이 넘는 마신장이 지키고 있었지만, 오우거의 신단은 아니었다.

콰자자작!

어깨부터 시작해서 갈비뼈를 가르며 골반을 으깬 적혈 대검은 회수되면서 척추를 한 번 더 부쉈다. 단 2번 만에 그대로 오우거의 신단이 무너져내렸고, 그 소음에 마신장들이 즉각 반응했다.

“덮쳐지는 바람!”

“속박의 늪!”

“보이는 적!”

한국어에 드낙이 크게 어깨를 움찔했지만, 곳곳에서 발생하는 초월의 힘에 척추가 바르르 떨 정도로 힘을 사용해서 몸을 움직였다. 바람이 그를 상처 내고, 땅이 진창이 되고, 깊어졌으며, 그의 몸 주변이 반짝거렸다.

반짝거림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신장들은 적의 위치를 한 번 포착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해 마법을 재조정할 수 있었다.

폭음과 굉음 속에서 드낙의 몸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마신장들의 첫 번째 실수였다.

‘어리석다고는 할 수 없지.’

몸집이 소형인 주제에 마신장의 즉발 마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실제로 드낙의 몸은 악마 게페락스의 힘으로 내구력을 강화했음에도 뚫리고, 짓이겨지고, 날아가 버렸다.

증폭된 트롤의 재생력으로 생을 도모했다.

‘평범한 놈이었다면 이미 다섯 번은 죽었을 정도의 화력이지.’

마신장을 생산하는 오우거의 신단을 파괴한 드낙은 드워프 지상 요새의 폐허 속으로 몸을 숨겼고, 오벨리스크를 지키던 마신장 20마리 중 절반이 수색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근처 지하에서 지상의 소란을 느낀 마신장들이 다시 올라오게 하기도 했다.

“어딨는 거냐! 벌레 같은 놈아! 마신의 위대한 건축물을 부수고 멀쩡히 살아갈 생각을 했느냐!”

온갖 언어가 토해져 졌다. 드낙은 그 중에 제국어, 남부어, 드워프어,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검은 보급로의 일 이후 드워프어도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드낙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마신장을 폐허 속에 숨어서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흙의 골램을 일으켜 세웠다.

쿠구구구!

흙이 일으켜 세워지면서 소음을 냈고, 그 소음을 이용해서 폐허 속에서 일어났다. 마신장의 관심은 주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흙의 골램 8기로 향했다.

“크오오오!”

단번에 발로 만들어지고 있는 골램을 발로 헤집고, 땅을 짚으면서 할버드를 거세게 휘두르며 셋을 휘감았다. 나머지 다섯을 향해서 마신장이 입에서 마법을 영창했다.

“바위로 박살!”

능숙한 한국어에 허공에서 바위가 다섯 개 생성되며 골램의 머리를 찍어눌렀다. 또한 입이 쩍 열려있는 마신장의 입속으로 드낙이 도약해서 쏘옥 들어갔다.

적혈대검을 휘둘러서 그 혀를 베어냈다.

〈오거 야크트〉의 첫 번째 단계인 마법 능력 파괴였으며, 희생적인 도약이라 블리는 비전이기도 했다. 몬스터를 몰이하거나 주변 병사, 용병, 민병대를 이용하여 마신장이 마법을 사용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혀를 깊게 베어냄으로써 마신장이 마법을 영창하지 못하게 하는 게 주효한 목적이었다.

“케엑! 콜록!”

거센 기침에 드낙이 튕겨 나갔다.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드낙은 피를 콸콸콸 입에서 쏟아내는 마신장을 향해 돌진했다.

불파겐의 기사였다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체력을 소진시킴과 동시에 조급하게 만들어 오거 야크트의 두 번째 단계인 이동 불능 상태 혹은 체력 소진의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드낙은 이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전면전을 노렸다.

“크아아아!”

마신장이 포효했다. 뭐라고 지껄이려고 했지만 완전히 잘린 혓바닥은 그저 울부짖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거대한 할버드가 휘둘러지며 땅을 파헤치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거대한 바람이 흙먼지를 동반하며 드낙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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