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7 <-- 드워프 산맥 -->
구름 위로 튀어 오른 블러디 만티코어에 탑승하고 있는 드낙이 마법을 사용했다. 드워프 산맥으로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마신장과 그 마수들 때문이었다.
‘너무 덩치가 크다.’
와이번과 만티코어의 덩치는 너무 컸고, 소수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이라고 다 좋은 게 아냐.’
게릴라에 정말 쓰기가 어려웠다. 힘과 덩치가 강해도 대군을 이끌지 않는 이상은 쥐새끼처럼 다녀야 했는데 그게 어려웠다.
그 결과 구름 위까지 날아올라서 오래 비행을 해야 했다. 무식하게 날아다니는 탱크로 비유할 수 있는 게 만티코어였고, 악마의 힘으로 개조까지 했기 때문에 지구력이 대단해서 장거리 비행이 가능했다.
‘여기서 정찰 마법을 쓰면 되겠지.’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고 확실히 드워프 산맥에 도착했음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드워프 산맥의 웅장함은 그런 구름 위에도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수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마신장이 방심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는 효율성을 위해서라고 변명하겠지만, 드낙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하 종족인 드워프를 노리고 있었기에 정상에 마수들이 한 마리도 없었다. 구름 때문에 멀리 정찰을 할 수 없기도 해서 여러모로 드낙이 드워프 산맥에서 마법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만들었다.
정찰 마법을 통해서 드낙의 앞에 물컹거리는 물이 흔들리고 물결치며 드워프 산맥을 비추었다. 드낙이 눈을 감고, 정찰 마법과 정신을 공명했다.
멀미가 조금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풍경과 정보가 들어왔다.
‘어?!’
산맥을 보자마자 덜컥하고 겁이 났다. 〈마수 약탈자〉, 〈긴목 마수개〉로 이루어진 척후대를 피하고, 은신을 위해서 산맥을 보지 않고, 날았기 때문에 이제야 깜짝 놀랐다.
정찰 마법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통해서 드워프 산맥의 모습이 절로 들어왔다. 산맥의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가득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마저 들 정도로 큰 시각적 변화가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산맥이 검은 포자 같은 것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이내 드낙이 냉정을 되찾았다.
‘대규모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드워프 제국은 건재하다.’
후퇴했거나, 지하에서 투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외에 드낙의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저놈들은···새로운 마수인데.’
〈검은 포자 가오리〉의 모습을 드낙이 포착해냈다. 피부가 검은색이라서 겨우 찾아냈는데, 땅을 진창으로 만들고, 검은 포자를 항문에서 내뿜으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다니고 있었다.
‘지상을 마수가 살기 좋게 테라포밍을 하는 것 같은데.’
검은 보급로를 참고해서 만든 마수 같았다.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잉어 같은 길이에서 바다 가오리처럼 큰 놈도 있었다.
“끽! 끼이익!”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오징어처럼 온몸을 말면서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돌연사는 검은 포자 가오리 마수의 수명과 생명력이 아주 저급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돌연사한 포자 가오리 마수의 항문에서 오물이 쏟아져 내라면서 새끼 검은 포자 가오리가 수백 마리가 쏟아져나왔다.
‘더럽다.’
드낙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두개골 마수 나무〉가 그다음에 관심을 받았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영장류의 두개골을 열매처럼 맺고 있었다. 그건 사람, 침팬지, 고릴라처럼 크기도 달랐고 형태도 조금 달랐다.
뿌륵, 뿌르르륵!
뿌리에서 공기 소리가 나오기도 했고, 바들바들 떨면서 주변 포자를 뿌리가 흡수시켰다. 특히 포자 말고도 진창이 된 진흙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먹는 모습이 가장 확실하게 보였다.
콰직!
야생 오우거가 열매처럼 열린 두개골 열매를 한 손으로 따먹었다.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는데, 피처럼 붉었고 육즙에서 뭔가 찌꺼기 같은 것이 들어가 있었다.
그 기괴한 열매를 먹으며 다니는 야생 오우거의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 그들의 크기는 최소 4m에서 최대 7m까지 다양했다.
야생 오우거는 슬금슬금 바닥을 기어가는 검은 포자 가오리를 보더니 그대로 발로 밟아 죽였다. 그리고는 먹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걸어가면서 엉덩이에서 똥이 후두둑 떨어졌다.
야생 동물, 그 자체였다.
야생 오우거는 나무에 바위를 묶은 돌도끼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법 공을 들인 야생 오우거는 간석기를, 그게 아닌 야생 오우거는 뗀석기나 그냥 바위를 통째로 묶어서 둔기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크륵.”
“흐.”
두개골 나무 마수에게서 열매를 손에 쥐면서 먹던 야생 오우거가 코를 훌쩍였다. 그 소리에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또 다른 야생 오우거가 보였다.
‘싸우나?’
정찰 마법으로 이를 보고 있는 드낙이 생각하자마자 야생 오우거 두 마리가 뜬금없이 분노하며 땅을 내려치고, 나무에 머리를 박거나 씩씩거리면서 고슴도치같이 굵은 적색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했다.
두피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분노 조절 장애네.’
드낙이 헛웃음을 지었다. 약간,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것 같기도 했다. 웃어서는 안 되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크아아아!”
“쿼어어어엉!”
돌도끼를 들고 야생 오우거 두 마리가 서로를 향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퍽! 퍽!
수비하는 오우거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쥔 무기로 후려패기 바빴다. 당연히 체급이 큰놈이 이길 수밖에 없었는데, 체급이 약한 오우거의 무릎이 꺾이자마자 발로 머리를 걷어차며 쓰러뜨리더니 이내 돌도끼로 골통을 부숴버리고 그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미친 몬스터잖아.’
드낙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산맥 중턱이나 지키기 쉬운 곳에 건설되어있는 버려진 드워프 지상 요새였다.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곳이었다.
전투의 흔적은 있었지만, 그리 대단하지 못했고 그것조차도 조금 오래되어있어서 마신장과 싸운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시각적으로만 볼 수 있었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는 못했다.
‘굳이 갈 필요도 없긴 한데.’
몇 가지 드낙의 욕망을 톡톡 건드리는 것들이 보였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하지만 갑자기 드낙의 정찰 마법이 취소되었다. 뚝 하고 끊겼다.
‘강력한 상쇄.’
오우거의 머리카락이 만들어내는 상쇄였다. 중요한 곳이 드워프 지상 요새에 있을 게 분명했다.
구름을 타고 다시 이동해서 먼 곳에 내린 드낙은 땅을 파서 모습을 숨기고 있는 모비딕과 세리안에게 도착했다.
“어땠어?”
“지상은 이미 마수들에게 지배당했어.”
드낙은 간단하게 있는 것들을 말해주었다. 가오리 마수 외에는 지상에 다른 마수들의 모습은 없었고, 오직 야생 오우거만 살고 있었다. 아마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듯했다.
“드워프가 만든 입구가 없는 게 이상하긴 한데···”
세리안이 고민했다.
“짚이는 곳은 있어.”
드낙이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잠입하려면 모비딕과 블러디 만티코어는 놔두고 가야 했다. 특히 모비딕의 경우에는 지상에서 싸우면 그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침투는 소형 크기를 지닌 드낙과 세리안이 해야 했다.
‘정찰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게 맞다.’
모비딕은 데려갈 수 없고, 블러디 만티코어만 데려갈 생각을 가졌다.
‘아마, 드워프 지상 요새에 지하로 가는 입구가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마수로 지켜지고 있을지가 가장 문제인데···’
수준을 보고, 직접 땅을 파서 지하 세계에 도달해야 할지도 몰랐다.
13일에 걸쳐서 도보로 이동했다.
드워프 산맥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요새에 잠입할 계획을 세웠다.
“넌 남아.”
“왜?”
“존재감이 너무 커.”
드낙에게 있어서 세리안의 존재감은 잠입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강철이 흐르는 강으로 어깨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놈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드낙은 멈칫했다. 지상 요새에서 느껴지는 피와 시체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맡아졌다. 바람을 타고 맡아지는 농후한 피냄새는 저곳에서 인신공양(人身御供)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많은 생명체가 죽어서 풍겨오는 피냄새였다.
“······”
주문을 읊으며 마법을 조금 침투시켜보았다. 작은 흙의 골램이 만들어져서 내부로 향했고 이내 연결이 뚝 끊겼다. 곧 검은색의 중갑옷을 입고, 붉은빛이 감도는 양손 도끼를 짊어진 마신장(魔神將)이 나와서 주변을 훑었다.
‘놈이 아니다.’
다른 마신장의 존재를 본 드낙이 소문의 그 마신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척 봐도 체격이 작아서였다. 성벽이 25m가 넘는 드워프 지상 요새에 비하면 6m짜리 마신장은 왜소하게 보일 정도였다.
‘초월적인 힘을 지니면 바로 파악된다.’
드낙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발각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마법 같은 힘인가 아니면, 은총과 권능인가.’
뽕.
나무로 된 병의 뚜껑을 개봉한 드낙이 조용히 일어나서 있는 힘껏 던졌다. 오우거의 힘이 깃든 드낙의 머리카락을 녹인 액체가 든 나무병이었다.
마법이나 주술처럼 잘 짜여진 체계화된 힘이라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들켰고, 주변에 소란이 일어났다.
‘포기해야겠다.’
드낙이 깔끔하게 포기했다. 마법도 주술도 아닌 마신 성현의 보호를 받는 곳이었다. 그의 보신주의를 생각하면 몸을 빼는 게 옳았다.
몸을 돌려서 딱 3걸음을 걷다가 멈춰 섰다.
‘저기를 파악하면 큰 정보를 드워프들에게 줄 수 있고, 자연스럽게 내 위상과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드워프 세상에 명예도, 명성도, 공을 세우지도, 혈연, 지연, 학연도 없는 드낙이 드워프 제국에서 영향력을 휘두르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동부왕이지만 드워프 세계에서는 연고지 없는 부랑자나 다름없었다.
3억으로 1억을 버는 금수저가 될 수 없는 게 지금 상황이었다.
‘드워프들이 못한걸 해야 한다.’
드낙이 손을 비비며 긴장감을 줄였다. 그리고 전신갑주를 벗었다. 또한 척추에 있는 주력을 밖으로 배출하고, 마력 또한 내보냈다. 그리고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 몸의 기질을 변화시켰다.
그의 피부에 검붉은 돌기가 돋아났다. 인간에서 살짝 벗어난 형질을 얻었고 마신의 권능과 은총을 살짝 비켜나갈 수 있었다.
드워프 지상 요새의 성벽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적혈대검으로 땅을 팠다. 하지만 이내 구덩이에서 다시 머리를 빼꼼 내밀 수밖에 없었다.
‘미친, 밑에는 돌로 가득 막아놨네.’
엄청난 양의 자갈과 크고 작은 돌들이 지하를 가득 메워져 있었다. 기반을 다질 때 깊게까지 돌을 채워놓고, 성벽을 쌓아올린 것이다. 성벽이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기에 감히 돌을 뽑거나 파헤치지 못했다.
힘으로 성벽을 기어 올라가서 냉큼 안으로 주르륵 미끄러져서 땅에 톡하고 내려앉았다.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은 드워프 지상 요새의 내부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있었고, 무너져 있었다.
폐허가 된 곳에는 야생 오우거들의 훼손된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머리만 있거나, 손가락 혹은 뜯어먹힌 팔뚝 등이 눈에 들어왔다. 썩어서 부패한 것도 많았으며, 그 어떤 관심도 받고 있지 않았다.
야생 오우거의 높은 가치를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드낙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산군이라 불리며 산 하나에 한 마리씩 사는 야생 오우거의 개체 수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게 현재 드워프 산맥의 현실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을 꼭 해야겠어.’
적어도 수백 마리의 야생 오우거가 죽어있었다. 드낙은 부패한 살덩이 속에서 뼈를 꺼냈다. 오우거의 이빨에 의해서 단번에 뜯긴 뼈였다.
포식의 흔적.
드낙이 곳곳을 누볐다. 수많은 야생 오우거의 시체를 뒤지며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왜 투쟁했는지를 파악해나갔다.
그의 손길이 한 야생 오우거 시체를 더듬었다. 목에서 그 손길이 멈추었다.
‘이 녀석은 멍청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굵직한 뼈가 목에 걸려있는 게 느껴졌다. 출혈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을 터였다. 드낙이 단검을 꺼내서 힘으로 가죽을 뜯어냈다. 단검의 날은 오우거의 가죽을 쉽게 뚫지 못했기에 완력으로 쥐어뜯었다.
벗기자마자 썩은 냄새와 고름 냄새가 풀풀 풍겼다.
부패의 정도를 확인한 드낙은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내출혈로 죽지 않았어. 고름이 생기고, 부패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죽었다.’
정신 나간 오우거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야생 오우거 다섯이 서로 뒤엉켜서 죽은 곳도 있었다.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지만 왜 그런 싸움을 했는지가 중요했다.
‘마신장을 생산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오우거끼리 서로 먹어서 생산하는 건가?’
그러기에는 이런 구조물을 쓸 이유가 없었다. 밖에서도 얼마든지 야생 오우거는 서로 싸우고 골통을 부수며 동족 포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곳에 너무 많은 오우거가 모여서 특히나 싸움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폐허에 올라간 드낙의 눈이 좁아졌다.
‘밖에서는 못 봤는데. 안으로 들어오니까 보인다.’
우뚝 솟아오른 오벨리스크가 내성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높이는 성벽도 뚫을 정도였지만 괴이하게도 밖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드낙이 조심스럽게 오벨리스크로 향했다. 지나칠 정도로 새까만 색에 짙은 녹색으로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했는데 실로 불길해 보였다.
‘뭐야, 이건.’
푹찍!
“끽.”
꾸물거리는 검은 포자 가오리가 폐허에서 포자를 툭툭 뱉어내는걸 본 드낙이 발로 가오리의 머리통을 짓밟아 터트리며 신속하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