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5 <-- 검은 돔의 마수 군단 -->
대장쥐는 첫 번째 뿔과 네 번째 뿔의 힘을 통해서 강력한 지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첫 번째 뿔은 핏빛쥐의 탄생과 함께 얻은 지성의 힘이었고, 네 번째 뿔은 〈튀어나온 뒷머리혹〉이었다. 생각하는 뇌세포가 가득 담겨 있었고, 제2의 대뇌라고 해도 무방했다. 동시에 핏빛쥐가 검은 뿔 검은쥐로 진화하면서 뿔의 힘 또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털 때문에 가려져 있었지만, 툭 튀어나온 뒷머리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며 그 단점이 사라졌다.
핏빛쥐라는 종족이 지닌 제한된 그릇이 검은쥐가 되면서 넓어지고, 깊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능력 또한 날개를 단 것처럼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쉬운 말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누구나 멀리 보고 싶어 했지만, 그곳에 닿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드워프 산맥으로 향하셨다. 최종 목표는 마신장 토벌에 있다. 이를 돕기 위해서는 마수 지원군이 검은 보급로를 통해서 드워프 산맥에 도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검은 보급로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했다. 고로, 전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동시에 검은 보급로 또한 계속 파괴되어야 했다.
하프 드워프들은 화약을 제공하고, 그 화약을 고블린에게 건네줄 것이고, 핏빛쥐가 이를 받아들여 야무지게 사용해야 했다.
‘먼 곳에서 싸우고, 먼 곳에서 검은 보급로를 파괴한다. 전면전은 없지만, 전투는 일어날 것이며,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한 채 검은 보급로가 파괴하는 걸 지켜보게 만들어야 한다. 그 두 가지 상황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드낙의 먹어서 응원하자 전략은 검은 보급로의 파괴를 반드시 수행할 수 있지만, 마수 군단의 지원을 막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대장쥐가 나서야 했다. 싸우고, 쟁취해내야 하는 문제였다.
물론 그런데도 큰 규모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급하게 온 배불뚝 리전은 회전(會戰)은 가능하지만 대회전(大會戰)은 불가능했다. 완벽한 승리는 가능하지만, 반반 가는 불안한 전투는 수행할 수 없었다.
‘다른 핏빛쥐 리전에게 공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대장쥐의 코가 꿈실꿈실거리며 앞니가 쏙쏙 모습을 드러냈다.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토실토실한 살이 움직이며 코 옆에 달린 긴 털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별동대를 섬멸하고, 검은 보급로를 확실하게 제거해나가며 마수 군단의 결단을 기다린다.’
이대로 5만의 병력이라도 마신장에게 보낼지, 검은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움을 할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리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을 봤을 때 마수 군단은 결국 핏빛쥐의 끝없는 머릿수와 끝없는 전쟁을 하며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전쟁의 끝까지 생각한 대장쥐가 몸을 일으켰다.
“시작해보자. 큰뿔 검은쥐의 첫 싸움을. 우리의 진화가 이룩해낸 힘을 저 간악한 모독자들에게 보여주자!”
뜨-낙!
깊은 지하에서 살아서 존재하는 신에 대한 칭송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기도와 같았고, 드낙에게 업을 주었다. 승려가 기도하며 업을 닦아 씻어내듯이 찬양과 칭송 또한 드낙에게 작은 업을 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배불뚝 리전이 전투에 임하며, 사전 준비를 시작했다.
먼 곳에 떨어진 검은 보급로를 자신들의 요새로 만들었다. 지하에서 시작해서 시체를 먹어치우며, 빈 공간에 흙과 돌을 채웠다. 최소 8m에서 최대 30m의 높이를 지닌 시체의 산으로 만들어진 검은 보급로의 내부에 길을 놓고, 계단을 만들었다.
입구를 뚫고, 밖에 있는 마수의 다리나 몬스터의 아가리를 끌고 와서 틀어막았다.
이러한 작업은 검은 돔의 마수 군단 별동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1만8천에 달하는 큰뿔 검은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하를 통해서 몰래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북부에 자리를 단단히 잡고 있는 배불뚝 리전이 고작 1만8천밖에 오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 최대한 빨리 황무지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크아아아아!”
〈검은 돔의 수레 괴수(Wagon Monster of Black Dome)〉가 한껏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땅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밭을 가는 황소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는데, 얕은 굴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숫자가 500마리에 달했다.
쿵, 쿵!
〈검은 돔의 빛나는 사격 공룡(Shooting Dinosaur of Black Dome)〉이 수레 괴수가 지나간 길을 조금 더 깊게 파고, 조금 더 움직이더니 이내 다시 한 번 깊게 한 곳을 파며 다시 지나갔다.
그 숫자가 500마리였다.
방령 4천 마리는 중대형 마수를 보호하고 있었고, 그중에서 오직 100마리만 따로 뿔뿔이 떨어져서 조용히 지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밌는 것은 검은 보급로의 내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그 맹점을 짚은 대장쥐는 검은 보급로에 길을 뚫어놓은 상태로 자신의 병력을 불러왔다. 덩치가 커도 정예 중의 정예. 속도를 줄임으로써 천천히 소리 없이 뭉치고, 재규합했다.
‘벼락처럼 덮쳐야 한다.’
먼 곳까지 온 방령과 중대형 마수들 5천 군세. 그들을 최단시간 내에 잡아먹어야 했다. 네크로맨서인 레플리카 엘리자베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물론 대장쥐는 그녀의 존재를 몰랐지만, 이렇게까지 별동대를 거침없이 움직이는 놈들의 통신 체계는 특출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별동대는 한 지점에 주둔했고, 본격적으로 깊은 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오면서 자연스럽게 얕은 굴을 수색했으니, 이제 며칠을 주둔하며 깊은 굴을 찾을 것이다. 그걸 놔둔다면 배불뚝 리전이 뚫어놓은 전략적 지하굴에 도착할 터였다.
“야전(夜戰)을 건다. 중앙은 밀집대형, 좌우익은 은밀하게 산개 대형을 펼쳐라. 후방부터 가장 먼저 차단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야전은 언데드와 마수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시간대였지만, 그건 정예인 핏빛쥐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원거리는 큰 페널티가 붙기 때문에 검은 돔의 마수 군단이 더 손해가 컸다.
기습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복잡한 전술조차도 척이면 척 알아듣는 게 배불뚝 리전의 정예들이었다. 대장쥐와 함께 세월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쩍.
말라붙은 시체가 열렸다. 안쪽에 입구가 있었기에 바람이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시체가 다른 시체에 비해서 말라붙은 것이다. 북부의 순찰자들이라면 단번에 간파했겠지만 언데드는 아니었다.
검은 보급로의 곳곳에 만들어지고 은폐된 입구가 열렸고, 한 번에 수백 마리의 배불뚝 리전의 큰뿔 검은쥐들이 쏟아져나왔다. 작은 점들의 움직임은 이내 물결로 변해갔고, 득실거리므로 번져갔다.
어둠 속에서도 그 물결은 적들에게 자연히 보였고, 강렬한 군기 때문에 피부로 느껴졌다.
중앙 밀집대형을 이룬 큰뿔 검은쥐들은 시작부터 원거리 사격을 시작했다. 양손에 할버드를 쥐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핏빛쥐 시절 3~4각수였던 정예 중 정예였다. 온갖 원거리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길쭉한 화염창이 되어서 큰뿔 검은쥐의 뿔에서 모여서 하늘로 쏘아졌고, 딱딱하게 굳었음에도 빠르게 회전하는 돌덩이가 사람 머리통만 해져서 높이 올라갔다.
이는 핏빛쥐의 낮은 그릇이 만들어낸 장점이기도 했다. 온갖 다양성과 다수 마법에 비해서는 형편없지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종족(種族)이 진화하면서 작은 불똥은 화염창이 되었고, 주먹만한 회전돌은 사람 머리통만 하게 커졌다.
오색찬란한 힘의 폭격이 중앙에 밀집한 큰뿔 검은 쥐들에게서 토해졌다. 그 현란한 빛깔은 마수 별동대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큰뿔 검은쥐들의 공격에 방패가 없는 방령들과 수레 괴수, 빛나는 사격 공룡이 피해를 사정없이 입었다.
“크아악! 컹!”
고통에 울부짖던 빛나는 사격 공룡의 머리통에 정확하게 사람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부딪치며 튕겨 나갔다. 단말마를 지르며 그대로 고개가 땅으로 처박혔다. 그 목을 짓밟으며 수레 괴수가 화염에 휩싸인 채 날뛰며 지나가더니 이내 옆으로 기울어져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마수는 마수였다. 그런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일제히 적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캬아아아아!”
〈검은 돔의 수레 괴수(Wagon Monster of Black Dome)〉과 〈검은 돔의 빛나는 사격 공룡(Shooting Dinosaur of Black Dome)〉, 총 1, 000마리가 거칠게 포효하며 검은 보급로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투구구궁!
두개골이 반쯤 깨졌음에도 다시 일어난 수레 괴수의 엄청난 몸집에서 마구잡이로 쏴지는 수레바퀴가 수많은 궤적을 그렸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기에 아주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었고, 바닥에 부딪혀도 회전력 때문에 몇 번이고 퉁겨지며 몇 마리를 더욱 흉악하게 죽일 수 있어 보였다.
퉁! 퉁! 퉁!
한쪽 다리가 무너진 빛나는 사격 공룡의 입에서 쏴지는 〈타격 구체(tagyeog guche)〉는 조명탄처럼 빛이 나오는 구체였다. 물리력도 포함되어있었기에 하늘로 솟구쳐오르며 주변 지형을 밝힘과 동시에 떨어져 내라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쿠에에에엑!”
목표물이 타격 구체의 빛에 의해서 보이면 곧바로 아가리에서 〈화염 기름(hwayeom gileum)〉이 쏟아져나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 기름에 불이 알아서 들러붙었다.
“우리의 은총! 우리의 힘! 우리가 부여받은 권능을 펼쳐라!”
선두에선 대장쥐가 외쳤다. 적들의 원거리 수단은 모두 중앙으로 진격하고 있는 큰뿔 검은 쥐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사격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방어적인 힘들이 뿔을 통해서 쏟아져나왔다.
넓게 펼쳐지는 검은 물줄기는 속력을 줄이게 하며, 타오르는 화염 기름과 부딪치며 상쇄를 일으켰다. 타격 구체는 돌덩이에 맞으며 튕겨 나갔다.
수레바퀴가 화염창에 관통당하더니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불시착하는 제트기와 같았다.
흙으로 빚어진 기둥이 길게 쌓아올려지며 풍선처럼 끝이 부풀어 오르며 허공에 장애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쿵! 구르르! 쿵! 구르르!
그렇게 뿔의 힘을 사용하면서 핏빛쥐의 상위 종족이 된 큰뿔 검은 쥐들은 진격을 시작했다. 허공에 초월의 힘들이 부딪치며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쾅!
그 사이에 수레가 운 좋게 살아남아 검은쥐를 후려쳤다. 밀집 진형을 갖추고 있어서 피할 수도 없었다. 할버드를 들고, 어깨에 단단히 걸쳤다. 직격당한 검은쥐의 뱃살이 출렁거리고, 입에서 핏물이 왈칵 나왔다.
어마어마한 충격량이었다. 하지만 결코 무릎이 꿇려지지 않았다. 충격 때문에 고함도 내지 못한 채 으그르륵거리면서 감내하고, 인내했고 이내 다시 앞으로 진격했다.
다른 핏빛쥐 리전에게서는 볼 수 없는 터프함이 배불뚝 리전에게는 있었다. 덩치 또한 이제는 180cm가 넘었다. 평범한 핏빛쥐가 110~160cm의 신장을 지닌 것을 고려한다면 어마어마한 우월성이었다.
물론 소형을 노리고 제작된 대형 마수인 수레 괴수의 수레에는 버텼지만, 타격 구체에는 두세 마리가 뒤엉켜서 피떡이 되었다.
척! 척!
중대형 마수들의 공격을 뿔의 힘으로 막고, 상쇄하며 진격하는 배불뚝 리전이 400보에 들어선 것을 빛나는 사격 공룡이 쏜 타격 구체의 빛으로 확인한 〈검은돔의 방령(方領 of Black Dome)〉들이 맥궁(貊弓)의 시위를 당겼다.
차라락!
찰갑이 소리를 냈고, 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의 구름이 중앙 검은쥐들을 덮쳤다.
중갑옷을 입고 있어도 사이사이 틈에 화살이 박히거나, 퉁겨지면서 투구를 한 대 치고 지나가며 불꽃을 토해냈다. 하지만 다친 검은쥐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큰 뿔 검은쥐〉로 진화하면서 나타난 검은 뿔의 능력인 〈강인한 검은털〉 덕분이었다. 중형급 적을 죽일 수 있는 타격 구체에 피떡이 되어도 죽지 않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크아아아아!”
“찌이이이익!”
“뜨낙! 뜨나아아악!”
근접전이 펼쳐질 정도로 중앙 검은쥐들이 적의 방령들과 가까워지자 온갖 소리를 내질렀다. 양손에 쥔 할버드가 절로 들어 올려졌다.
스르릉!
방령들 또한 맥궁을 등에 짊어지고, 환도를 빼 들었다. 검신의 길이로 따지면 중병기인 할버드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 때문에 방령들은 진형을 잡기보다는 한 걸음씩 물러나며 중대형 마수들의 원거리 공격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걸 노렸다.
원거리 사격 중보병 정예와 양손 중보병 정예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위로 수레바퀴가 회전하며 지나가며 큰뿔 검은쥐의 투구와 부딪치더니 옆으로 꺾이며 땅으로 떨어져 내려 다른 검은쥐의 손을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피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상황 속에서 할버드와 환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