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4 <-- 검은 돔의 마수 군단 -->
검은 돔의 마수 군단은 적들이 튀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자신들이 3종족 연합군에게 미련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정찰 병력 또한 최소로 했기 때문에 3일이나 늦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깜빡 속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도망줄을 놓는 모습을 보여준 대가는 늦은 정보력이었다.
‘이게 무슨 경우지?’
푸른 피부를 지닌 언데드, 레플리카 이시연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는 1개의 큰 언덕과 10개의 작은 언덕을 잘 이용해서 진형을 꾸렸고, 알게 모르게 음흉한 진형마저 장거리에 두고 있었다. 그 음흉함은 실로 구렁이 같았고 이시연으로부터 경계심을 잔뜩 올리게 하였다.
그런 실력 있는 지휘관이 황무지에서 10만 대군을 거리낌 없이 포기하고 도망쳤다.
가히 군대 해산이 일어났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결과가 그녀에게 들어왔다.
‘인간이고, 하프 드워프고, 고블린이고 싹 사라졌다.’
지하를 통해서 후퇴했을 것이지만, 지하는 10만 대군을 수용할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아예 전투를 포기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레플리카 이시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대군 10만 이상이다. 그것도 황무지에서 일으켜서 한 지역에 모였다.’
무조건 성과를 내야 했다. 하루 먹는 양만 해도 엄청날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준비한 무기와 방어구에 쏟아진 노력만 해도 천금을 호가할 것이다.
성과 없이 후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결단력이 필요했는데, 3종족 연합에게 그런 결단력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면, 그 결단력을 만들 정도로 기발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무엇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종족의 흐트러진 결정권을 하나로 뭉칠 정도의 전략. 10만의 군대가 성과 없이 해산될 정도로 대단한 전술이란 무엇인가.
“방령들은 들어라! 검은 보급로를 비롯해서 인근 황무지를 이 잡듯이 뒤져야 할 것이다! 중대형 마수들은 검은 보급로 주변 땅을 깊게 파헤쳐라!”
그녀는 곧바로 정찰에 힘을 쏟아부었다. 보름을 정찰했지만 인간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남부 용병들은 지하굴을 통해서 도망쳤으며, 특히 싸우지 않고 돈만 받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잠조차 아껴가며 도망줄을 놓았다.
휴가를 받은 군인처럼 밥이고 잠이고 나발이고 최대한 집으로 향하는 데 노력했다. 여기에는 제식조차 불필요했기에 빠른 놈은 빨리 갈 수 있어서 더욱 경쟁이 붙었다.
낙오가 된 용병들은 방령들에게 따라잡혔지만, 언데드 정예보다는 지하 종족이 땅에 관련된 능력치가 한 줄 우위였다.
“쉿!”
횃불을 든 고블린 척후병이 숨을 죽였다. 자연히 낙오된 용병들 또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삼십분이 흘러도 가만히 있었다. 벌레가 볼에 들러붙어서 쪼물쪼물 움직이며 간지럽혔지만, 재채기 하나 내지 않았다.
“천천히 움직여도 된다.”
고블린 척후병의 능숙한 남부언어를 들으며 용병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를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반나절을 대기했다. 오줌도 찔끔찔끔 싸면서 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이런 지하 종족들의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인간과 고블린은 성공적으로 방령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과를 하나 얻지 못한 레플리카 이시연은 그들이 장기전을 노리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미리 파놨던 곳도 매몰시키고, 검은 보급로를 노리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우리보고 마신장에게로 가라고 길을 터준 것이지만, 그 실상에는 싸우지 않고 검은 보급로를 파괴했다는 의도가 깃들어있다.’
대기, 잔류, 주둔의 필요성을 느꼈다.
‘전장은 지하가 될 것이고, 이는 우리 군단에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중대형을 쓰려면 굴을 깊고, 넓게 파야 하고, 지지대 또한 필요했다. 굴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좁은 굴을 파서 방령들로만 이루어진 전투를 이어나간다면 가랑비처럼 피해가 누적될 터였다.
‘골치 아프네.’
하프 드워프는 인간의 우월인자를 통해서 키가 2.5m에 달했지만, 드워프는 그러지 못했다.
드워프 제국은 작은 체구를 지닌 드워프들답게 그 열등감으로 인해서 거주지를 제외하고는 웅장하므로 중대형 마수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었지만, 황무지의 지하는 아니었다.
일정 높이 이상의 지하굴을 대부분 매몰시켰기 때문에 스스로 파서 내려가야 했다.
결국 그녀가 원한 것은 검은 보급로를 어디에서든지 노리고 있을 굴을 찾는 것이었다. 한 달에 걸쳐서 주둔지에서 30km까지 얕은 굴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악! 대체 어디까지 도망친 거야! 완전 미친놈 아냐!”
얼마나 큰 손해를 보는 길인데, 그걸 선택한 놈의 면상을 보고 싶어졌다. 분명 드래곤 나이트 아니면 만티코어 나이트 중에 한 놈일 것이 분명했다.
흩뿌려서 넓게 찾을 수도 없었는데, 숫자가 적으면 검은 보급로를 식량으로 삼고 있는 몬스터에게 공격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드워프 산맥으로 갈 수 없었다. 검은 돔에서 이후에 올 마수 군단은 〈타락의 무장한 삼위일체(Armed Trinity of the fallen)〉가 빠져 있는 지휘관이 없는 마수 군단이기 때문이었다.
*
탁, 타닷!
고블린 주술사가 발춤을 췄다. 주술은 지팡이 그리고 입으로 하는 주문을 사용하는데 이는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 나아가 한 가지 주문 방법을 더 추가한 것이 주술이었다.
바로 발춤이다. 그 덕에 주력은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주문을 중첩하여 주술을 쓸 수 있었다. 회복하기 힘든 만큼 주력을 알뜰하게 쓰기 위함이었다.
검은 돔의 마수군단 주둔지로부터 52km 떨어진 곳.
지상으로부터 150m 낮은 깊은 지하에는 고블린들로 가득했다.
검은 보급로로부터도 3km 떨어진 곳이었다.
지독하고 지독할 정도로 숨어들어 갔다. 물론 시체를 가져오는 거점은 검은 보급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깊이도 깊지 않았다.
이곳은 검은 보급로에 있는 시체를 가져와서 가공하는 〈검은 지하 작업소〉였다. 여기가 들키면 드낙의 먹어서 응원하자 전략은 파훼 될 것이다.
완전히 박살이 날 터였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 숨었다.
운이 아니고서야 발견할 수 없었다.
“스바챠타~! 쓔드, 힛하!”
양손을 쫙 편 상태에서 얇은 지팡이를 양손 사이에 두고 비비며 돌리며 주술사들이 부패한 마수, 몬스터 시체를 정화해나갔다.
정화된 시체는 구석으로 옮겨져서 뼈와 고기로 분리됐다. 그 과정에서 부패가 제대로 안 된 부분은 다시 주술사가 발춤을 추며 주문을 읊는 곳으로 바구니에 담겨서 옮겨졌다.
촤악! 촤악!
뼈와 고기는 흐르는 지하수에서 세척하며, 피를 씻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철저하게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뼈와 고기를 가져오는 고블린, 세척하는 고블린, 세척된 것을 바구니에 담는 고블린, 뼈과 고기를 따로 분리하여 수레에 담는 고블린과 그 수레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고블린까지.
과정 하나하나에 분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공장에서 알바를 해본 드낙의 현대인 지식은 실로 우월했다.
고기를 실은 수레는 아래로 향했고, 뼈의 절반은 사방팔방에 있는 운반 거점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뼈는 큰 솥에 담겨서 지하수와 함께 끓여졌다. 수십 시간을 끓여야 하기 때문에 황무지에 있는 정령에게 주력을 주고 온종일 끓이고 있었다.
단단한 뼈가 무를 정도로 오래 끓여진 구수한 뼈탕에서 뼈를 건져내어 건조했다. 마른 뼈는 간식으로 보급됐고, 끓여진 구수한 뼈국물은 작업장 곳곳으로 옮겨져서 누구나 마시거나 가죽통에 담아갈 수 있었다.
지하 150m에 자리 잡은 1층에서 혼잡하게 뼈가 끓여지는 이유는 습기 때문이었다. 2층에서 끓일 수가 없었고, 지상에서 끓일 수가 없었다.
“캬하!”
물의 무게보다 더 많은 뼈가 솥에 들어가서 끓여졌기 때문에 매우 진한 국물을 마신 고블린들이 다시 수레를 끌어서 아래로 내려갔다.
“천천히! 조심조심!”
호들갑을 떨면서 내리막길을 지나가야 했다. 2층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매우 높은 수준의 습기 때문에 내리막길은 수분이 가득 담겨 있어서 곳곳에 돌이 박혀 있었다.
돌에는 흠집이 많이 나 있었는데,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한 수레가 2층으로 향하는 데 걸린 시간은 최소 10분에서 최대 30분으로 매우 느렸다. 그만큼 미끄러웠다.
2층에 대기하고 있던 핏빛쥐들이 내리막길을 지나서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고블린들로부터 수레를 받았다.
“고생했다!”
“수고해!”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핏빛쥐는 서둘러 수레를 끌었다. 긴 굴로 이루어진 복도에는 수많은 토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다닥다닥 있었는데, 그 토굴의 입구마다 핏빛쥐가 2마리씩 배치되어있었다.
“여기! 여기!”
대기하던 핏빛쥐 중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치는 곳에 수레가 멈춰 섰다. 내부에는 빨랫줄처럼 철사가 널려져 있었다. 토굴로 들어간 2명의 핏빛쥐에게 수레를 끌던 핏빛쥐 4마리가 고기를 건네줬다.
최대한 길게 잘라낸 고기가 철사에 널렸다. 뜨거운 고열로 건조되기 시작했다. 토굴 곳곳에 있는 구멍은 높은 온도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며, 습기를 옮겼다.
“헉헉! 꿀꺽, 꿀꺽!”
뼈국물을 마시며 수레를 다시 끌기 시작하는 핏빛쥐들이 지나가고, 모든 고기를 철사에 넌 핏빛쥐 2명은 벽에 기대거나 앉으며 혁대에서 무를 정도로 끓인 다음에 다시 건조한 뼈를 꺼내서 오도독 씹었다.
땀을 쫙 뺀 다음에 마시는 뼈국물과 뼈를 씹을 때는 가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충분히 건조된 고기는 3층으로 향했다.
화르르르!
그곳에는 6층으로 이루어진 그릴이 끝도 없이 배치되어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나무숯이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연기와 열기에 의해서 훈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짝 말라지며 내부의 세균이 죽었고, 겉에 연기가 스며들며 세균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최소 3시간에서 최대 6시간 훈제된 고기는 곧바로 바짝 말라붙어서 가루가 된 나뭇잎이 묻혀서 가죽 포대에 들어갔다.
먼 곳까지 수송되는 육류는 남부왕국에 있는 핏빛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줄 수 있었다. 동시에 황무지의 긴 거리를 관통하는 검은 보급로에 쌓인 셀 수도 없이 많은 시체들은 핏빛쥐들의 식량 사정을 단번에 끝도 없이 높였다.
“찍찍.”
이 소리를 듣고 3달 거리를 단 3주 만에 돌파한 핏빛쥐의 정예 중의 정예.
토실토실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
다른 핏빛쥐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우월한 신장.
활처럼 허리를 휘어 머리를 꼿꼿이 들어 올린 기이한 제식.
전투에 있어서는 최강의 핏빛쥐.
북부의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이 검은 보급로에 도착했다. 본래에는 와서는 안 될 곳이었지만, 검은 보급로에서 만든 훈제 고기가 그들이 이 황무지 지하까지 올 수 있게 만들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활처럼 허리를 휜 대장쥐가 뼈를 오도독, 오도독 씹었다.
“들어라!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창조주께서 핏빛쥐를 위해서, 핏빛쥐의 발전을 위해서 큰 판을 만들어주셨도다!”
찬양하도다! 찬양하도다!
그분의 은총이 어두운 지하를 가득 메우셨도다!
쿵! 쿵!
300m 이하에 있는 깊은 굴에서 배불뚝 리전의 정예 핏빛쥐들이 할버드로 바닥을 찍으며 드낙을 찬양했고, 그 은총을 기렸다.
“모조리 먹어치워 마신장의 콧대를 누르자!”
“먹어서 이기자!”
배불뚝 리전은 무식하게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훈제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단독전술을 펼쳤다.
콰직!
썩은 핏물이 흘렀다.
광신도 중에서도 대장쥐의 카리스마 때문에 더욱 광신도 같은 놈들이 배불뚝 리전에 소속된 핏빛쥐들이었다. 특히, 핏빛쥐 중에서도 가장 터프했다.
이들은 부패한 시체를 씹고, 먹고 즐겼다.
단단한 마수의 뼈도 무기로 부숴서 어금니로 부숴서 먹었다. 두개골을 쩍 갈라서 뇌를 혀로 핥았다. 역겨운 풍미가 느껴졌지만 드낙에 대한 충성심과 대장쥐의 카리스마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신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자들이 배불뚝 리전의 핏빛쥐들이었다.
“벌컥! 벌컥!”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 부패한 머리통에 썩어서 진물이 된 시쳇물을 마셨다.
최소 이각수인 배불뚝 리전의 정예 핏빛쥐들의 털이 점점 검게 변해가며, 새로운 뿔이 돋아났다.
한층 더 진화하며 개체의 그릇이 커지며 몸집이 비대해져 갔다. 꼬리가 굵어지며 꼬리 피부가 바위처럼 단단해지고, 뼈가 굵어지며 자연스럽게 내구력이 높아졌다.
“그아아아아!”
배불뚝 리전의 핏빛쥐가 포효했다. 토실토실한 살덩이가 출렁거리며 어둠 속에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검은 털이 반짝였다.
똑같이 검은 털로 변모한 대장쥐의 주변으로 어둠의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8번째 뿔이 돋아나며 팔각수가 된 대장쥐가 자기의 몸만한 대형 마수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두 팔을 쩍 벌렸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모습이여, 힘이다!”
뜨-낙!
“배불뚝 리전은 그분의 첫 번째 자식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큰뿔 검은쥐다! 다른 핏빛쥐들보다 우월한 검은 쥐가 바로 우리다!”
뜨-낙!
동시에 대장쥐가 선포했다.
“마수 군단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다른 리전보다 앞서있는 지금을 기뻐하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우리는 계속 달릴 것이다! 그분의 오른편에 설 때까지!”
뜨-낙!
“전쟁이다! 다른 리전 또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터다! 허나, 기다리기만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배불뚝 리전은 지금부터 총력전에 들어갈 것이다!”
뜨-낙!
배불뚝 리전은 시체를 생으로 먹으며 업을 날 것으로 집어삼켰고, 그간 활동하면서 얻은 성장을 통해서 다른 핏빛쥐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핏빛쥐 리전 중에서 가장 먼저 검은 돔의 마수 군단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동시에 마수가 이 세계에서 얻은 업을 드낙에게로 향하는 일이었다.
대장쥐의 붉은 눈동자가 지하의 어둠을 꿰뚫었다.
‘모든 것은 살아숨쉬는 우리의 신을 위해서!’
이 한 몸 불사르리라.
대장쥐의 독단이었지만, 드낙이 막지 않았고 하지 말라고 안 했으므로 거침없었다.